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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남북 기후 협력 시작, ‘한반도 생물다양성 정보 플랫폼’ 구축으로

2025-05-22 최민욱 기자

지구촌 곳곳이 기후변화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생물다양성 보전은 인류 생존을 위한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다. 반세기 넘는 분단의 역사를 지닌 한반도는 독특하면서도 매우 취약한 생태 환경을 갖고 있어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발길이 엄격히 통제된 비무장지대(DMZ)는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로 자리매김했지만, 이곳 역시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한이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한반도의 기후평화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결정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반도 땅 위와 하늘, 강과 바다를 공유하는 수많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지키고 건강한 생태계를 함께 가꾸는 남북의 공동 노력은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협에 함께 맞서며 평화의 지평을 넓히는 실질적인 협력 과정이 될 수 있다.


생명의 보고 DMZ, 멸종위기종의 마지막 안식처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다양한 기후대가 교차하며 다양한 생물을 품어 왔다. 특히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파주에 이르는 약 248㎞의 군사분계선과 그 주변의 비무장지대(DMZ)는 지난 7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되면서 야생 동식물의 낙원으로 변모했다. 이곳에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매년 찾아와 겨울을 나고,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사향노루와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며, 수달, 삵 등 다양한 포유류와 희귀 조류, 어류, 곤충, 식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DMZ는 단순한 완충지대를 넘어 한반도 생태계의 핵심축이자, 동북아시아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한 거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DMZ의 생태적 가치마저 위협하고 있다. 온도 상승과 강수 패턴의 변화는 식생 분포에 영향을 미치고, 특정 종의 서식 환경을 악화시킨다. 북한 지역의 산림 황폐화와 농경지 확대는 DMZ 인접 지역의 생태계 단절을 심화하고, 야생동물의 이동 통로를 위축시킬 수 있다. 남한 측 역시 DMZ 인근 개발 압력과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후변화는 이러한 위협 요인들을 더욱 증폭시켜 DMZ의 생물다양성을 급격히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생물다양성 보전 논의의 씨앗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위치한 시드볼트 입구와 종자은행 전경.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현재 한국의 희귀식물 571종류 가운데 70%인 400종류를 현지외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 나고야 생물다양성협약(CBD)의 지구식물보전전략 2020은 2020년까지 75%를 보전하는 것이 목표로 국립수목원은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진은 수목원의 비공개 연구영역 종자은행(Seed Bank)의 모습. 2015.5.6 국립백두대간 수목원


남북은 과거에도 생물다양성 보전을 포함한 환경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러 차례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1991년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제16조는 남과 북이 환경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고 명시하여 환경 협력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1992년 9월 발표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제2조 1항에서는 과학·기술, 환경 분야에서 정보자료 교환, 해당 기관과 단체, 인원들 사이의 공동연구 및 조사, 산업부문의 기술 협력과 기술자, 전문가들의 교류를 실현하며 환경보호 대책을 공동으로 세운다고 합의했다.


구체적인 생물다양성 협력 논의도 있었다. 남측은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DMZ 생태계 보전을 위한 남북 협력을 북측에 제의했다. 같은 해 수립된 제1차 자연환경기본계획에는 DMZ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남북 공동조사 및 보전·관리 방안, DMZ 생태계자연공원 조성, 한반도 전역의 자연환경 공동조사 등이 포함되었다. 한국, 북한, 중국 등 동북아 3개국의 대표적인 산 중 하나인 설악산과 백두산, 장백산의 생물권보전지역 비교연구사업을 유네스코 및 각국의 과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을 통해 연차적으로 실시한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담겼다.

1995년 4월에는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이 참여하여 두만강 하류 지역 개발에 적용될 '환경원칙 MOU'를 체결했다. 두만강 하류 지역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남북이 참여한 다자간 환경 협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같은 해 9월 일본 구시로에서 개최된 '동북아시아·태평양 환경포럼'과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환경회의에는 남북한 학자와 전문가가 각각 참석하여 환경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민간 차원의 교류도 시도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임진강 유역 수해 방지를 위한 남북 협력이 추진되었다. 이는 공유하천의 생태계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생물다양성 협력과도 연결될 수 있는 사업이었다. 2007년 10·4선언에서는 환경보호 분야의 협력사업 추진이 명시되었고, 같은 해 11월 남북총리회담에서는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 자연재해 발생 시 상호 통보 및 피해 확대 방지, 피해복구 협력 등을 합의했다. 12월 개최된 제1차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 분과위원회에서는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사업과 관련된 협력 사업 추진, 황사를 비롯한 대기오염 피해 감소를 위한 평양지역 대기오염 측정시설 설치 및 자료 교환 진행, 남북 환경보호센터 및 한반도 생물지 사업 추진 등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 논의와 시도들은 대부분 남북 관계 경색 국면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단발성으로 그치는 한계를 보였다. 정치·군사적 상황이 환경 협력의 발목을 잡았고, 구체적인 이행 계획과 재원 확보 방안이 미흡했으며, 상호 신뢰 부족으로 인해 정보 공유와 공동 조사 등 실질적인 협력으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DMZ 평화지도. DMZ를 포함한 남북 경계지역의 지리지형과 역사문화, 생태환경, 통일평화 정보를 종합한 지도이다.
DMZ 평화지도. DMZ를 포함한 남북 경계지역의 지리지형과 역사문화, 생태환경, 통일평화 정보를 종합한 지도이다.

기후위기 시대, 평화로 가는 다리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남북 협력은 단순히 멸종위기종 몇몇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한반도 전체의 기후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건강한 생태계는 그 자체로 강력한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 수단이다. 다양한 식물 군락은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풍부한 생물종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높여 기후변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한다. DMZ와 같이 잘 보전된 생태계는 주변 지역으로 그 긍정적인 효과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남북이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것은 기후변화라는 인류 공동의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연대의식을 형성한다. 이는 남북 간의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DMZ와 같은 공유 생태계를 함께 관리하고 보전하는 과정에서 남북의 전문가와 주민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상호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생물다양성 협력은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한다. 북한 지역의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식량 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북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돕고,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긍정적인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반도 생명의 그물망을 잇다


남북 생물다양성 협력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와 단계적인 실행 계획을 통해 추진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DMZ의 생태적 가치를 공동으로 인식하고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 공동으로 DMZ 및 인접 지역에 대한 정밀 생태 조사를 실시하고, 생물다양성 현황과 변화 추이를 기록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멸종위기종인 두루미, 산양, 사향노루 등의 공동 보호 및 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단절된 생태축을 연결하기 위한 생태통로 조성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DMZ 내 산불 및 산림병해충 발생 시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재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 나아가 DMZ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공동 등재하고,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평화와 생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한반도를 찾는 수많은 철새와 같은 이동성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남북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반도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EAAF) 상에서 매우 중요한 중간 기착지이자 번식지, 월동지 역할을 한다. 남북은 주요 철새 도래지(예: 한강하구, 천수만, 서해안 갯벌, 북한의 문덕철새보호구, 동해안 석호 등)에 대한 공동 조사와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서식지 보전 및 관리를 위한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불법적인 밀렵과 남획을 방지하고, 철새 이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국제 철새 보호 네트워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임진강, 북한강 등 남북을 흐르는 공유하천의 수생태계 보전 역시 중요한 협력 과제다. 공동으로 수질을 조사하고 오염원을 관리하며, 하천변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수질 개선을 넘어, 하천을 공유하는 남북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다양한 수생 생물의 서식처를 보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백두대간과 같은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을 보전하고 연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분단으로 인해 단절된 생태축을 복원하고, 야생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생태도로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한반도 전체의 생태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협력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수적이다. 남북 환경 전문가와 정부 관계자가 참여하는 ‘(가칭)한반도 생물다양성 보전 공동위원회’를 설립하여 공동 조사 계획 수립, 정보 공유, 정책 협의, 사업 이행 및 평가 등을 총괄적으로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위원회 산하에 DMZ, 철새, 공유하천 등 분야별 실무 협의체를 두어 전문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물다양성 관련 정보와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는 ‘한반도 생물다양성 정보 플랫폼’ 구축도 시급하다. 남북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이 조사 자료, 연구 결과, 정책 정보 등을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기구(UNEP, IUCN, 람사르협약 사무국 등) 및 관련 NGO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확보하고,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보전 활동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화의 씨앗을 뿌리다


남북 생물다양성 협력은 단기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생태계의 회복과 변화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며, 정치적 상황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의 공식적인 합의와 약속 준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에 대한 남북 주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환경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남북 청소년 및 주민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태 환경을 이해하고 보전 의지를 다지는 활동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보전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남북이 손을 맞잡고 DMZ의 숲과 습지를 가꾸고, 철새의 힘찬 날갯짓을 함께 바라보며, 맑은 강물이 흐르는 한반도를 만들어갈 때, 그 생명의 숨결 속에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 나아가 지구 전체의 생태적 건강과 평화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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