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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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먹는 것이 동물을 먹는 것에 비해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에너지 피라미드를 살펴보면, 동물은 식물 등 먹이를 통해 얻은 에너지의 10%만 다음 단계로 전달하고, 나머지는 열로 발산한다. 닭이나 소의 사료를 키우려면 넓은 땅이 필요하다. 미국 중부의 콘벨트는 대한민국 면적의 6~11배 면적에 이른다. 전 세계 농경지의 77%가 가축 사료나 방목의 용도이다. 우리가 먹는 양을 줄이거나 대체육, 배양육으로 바꾸면 온실가스를 훨씬 줄일 수 있다.
2025-07-18 김우성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나, 비건이 되어 볼까 해.”
아내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아내 님께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야! 밥은 내가 하는데! 비건은 니가 하냐? 장을 내가 보는데, 니가 비건을 어떻게 하냐고! 상을 두 번 차리라는 거야? 지금 반찬투정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주부는 저였고, 메뉴는 주부 마음입니다. 아직 어린 딸을 키우는 주부였던 저는 아내 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성장 과정에 단백질 공급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린 딸은 쑥쑥 자라 커다란 어린이가 되었고, 아빠도 쑥쑥 자라 배 나온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더 널리 공감되기 시작했습니다. 저속노화 식단이라는 것이 유행했고, 탄수화물 소비량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가스레인지를 켜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더운 여름에는 샐러드와 두부 정도의 간단한 식사를 하는 날도 늘었습니다. 우리 집의 식단은 어느새 조금씩 채식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먹고 마십니다. 우리가 먹고 마신 것들이 우리의 뼈와 살을 만듭니다. 인류는 매년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이 중에서 19%는 인류의 식량이 되어 줄 동물과 식물을 기르는 과정에서 배출됩니다. 사람이 먹을 밀과 벼를 재배하기도 하고, 사료용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기도 합니다.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토지를 개간하고 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닭, 돼지, 소, 양, 오리 등 동물을 사육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우리는 식량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다양한 형태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배출되는 온실가스들은 다시 포집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줄여야 합니다.
왜, 식물을 먹는 것이 동물을 먹는 것에 비해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할까요?
인류가 먹는 식물과 동물은 태양에너지를 바탕으로 자랍니다. 생태계의 생산자인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합성합니다. 초식동물은 식물이 모아 둔 포도당을 먹고 자랍니다. 육식동물은 식물의 에너지를 전달받은 초식동물을 먹고 자랍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수록 에너지의 양은 줄어듭니다. 동물들은 먹이를 섭취함으로써 얻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열의 형태로 발산합니다.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지 않는 동물들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용도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동물들은 먹이를 통해 얻은 에너지 중 약 10% 정도만 다음 단계로 전달합니다. 그래서 에너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육식동물일수록 먹이사슬 아래에 많은 생물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넓은 땅이 필요할까요?
닭이나 소를 기르기 위해서는 넓은 땅이 필요합니다. 가축을 기르는 공간 이외에 옥수수나 콩, 건초와 같은 사료 작물을 재배기 위한 땅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넓은 땅이 필요할까요? 미국 중서부에는 콘벨트(corn belt)라 부르는 대규모 옥수수 재배 지역이 있습니다. 그 면적이 대략 65만~110만㎢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의 면적이 약 10만㎢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6~11배에 이르는 면적입니다. 이 광활한 땅에서 재배되는 옥수수의 대부분이 동물의 사료로 쓰입니다. 콘벨트를 포함해 전 세계 농경지의 약 77%가 가축의 사료를 재배하거나 방목을 위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숲을 베어 내고, 습지를 매립한 자리에 사료를 생산하기 위한 농경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고기의 양을 줄일 수 있다면 사료를 생산하는 땅의 면적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땅에 숲과 습지를 복원할 수 있다면 인간만이 아닌 다양한 생물들을 위한 서식지를 돌려줄 수 있습니다.

대체육과 배양육이 온실가스 배출을 훨씬 줄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농경지 확장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를 걱정하기 이전에도 채식주의자들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을까요? 아마도 사육과 도축 과정 전반에 걸친 윤리적 고민이 채식주의자의 삶을 선택하게 한 중요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동물들이 고통 속에서 살게 하거나 잔인하게 죽이지 않고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어쩌면 식품과학이 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체육과 배양육은 식품 분야에서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특히 북미나 유럽 시장에서 연구와 투자, 상품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체육은 식물성 원료로 만든 고기와 비슷한 맛을 내는 제품들입니다. 과거에는 ‘콩고기’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대체육 제품들은 맛이나 질감의 영역에서 실제 고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식물성 원료만으로 만든 ‘임파서블 버거’는 실제 고기 패티와 비슷한 맛과 질감을 구현해 냈습니다. 이 버거는 식물에서 추출한 ‘햄(heme)’ 성분으로 고기의 풍미를 재현했으며,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식물성 원료로 만든 버거는 콜레스테롤이 없고 단백질 함량이 고기 패티보다 높아 건강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배양육은 생물을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 대신 실험실에서 배양한 동물의 세포로 만든 고기입니다. 실제 동물세포로 만들었으니 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 수준에서는 살아있었지만 개체 수준에서는 살아있었던 적이 없어 도축이라는 윤리적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배양육은 아직 상용화를 위한 식감·지방 생성, 생산비용 절감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향후 배양육이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대체육과 배양육은 생산 과정에서 훨씬 적은 물과 토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어 기후변화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식량 안보와 소비자의 건강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제품들이 빠르게 개발될 것이고, 시장도 성장할 것이며, 우리 삶 속에서도 조금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면
인류의 삶과 문화, 역사에서 고기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함께 고기를 먹으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던 시기에 지급된 재난지원금과 관련된 통계를 보면 많은 지원금이 고기를 사는 데 지출되었습니다. 2025년 7월부터 지급될 민생회복 소비쿠폰 또한 고기를 사는 데 많은 부분이 지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고기를 원하고, 이는 아주 오래된, 문명 이전부터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우리가 고기를 생산하는 방식, 생명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시점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여전히 베지테리언과 돼지테리언의 중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 기후변화 완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기 섭취량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있는 변화가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점심은 가볍게 샐러드로 갈음하겠습니다.
비건(Vegan)은 채식주의의 한 종류로서 과일과 채소, 해조류 정도만을 섭취하며, 우유와 알, 꿀도 먹지 않는 꽤 엄격한 유형의 채식주의입니다. 아마도 당시 아내 님께서 그 정도로 엄격한 채식주의를 지향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베지테리언(Vegetarian)은 채식주의자, 돼지테리언은 돼지와 vegetarian의 합성어로 돼지를 먹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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