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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보리와 밀 베고 모 심는, 망종

2025-06-06 배이슬

망종은 까락이 영글고, 밀과 보리를 베고 모내는 시기이다. 농부는 발등에 오줌 누는 시간도 없고 허리를 펼 짬 없이 바쁘고 바쁘다. 망촛대가 꽃몽오리를 맺고, 버찌가 익고, 오디와 앵두가 익는다. 고추는 땅 맛을 들이고, 감자꽃은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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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편집자주 농가월령가'는 조선 시대에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서 일 년 동안 농가에서 계절과 날씨 변화에 따라 할 일을 달의 순서로 읊을 수 있도록 만든 노래이다. 기후변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오늘의 농꾼들은 언제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거둘까? 전북 진안의 배이슬 농꾼은 "24절기는 해의 시간, 달의 시간이 아니라 농사짓는 시기를 24개의 점으로 찍어 놓은 '농부의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올 한 해 절기마다 그의 시간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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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락이 영글고, 모내기를 하는 때


망종은 소만과 하지 사이에 드는 완연한 여름이다. 보릿고개를 넘으며 망종이 될 때쯤에야 풋익은 밀과 보리라도 먹을 수 있게 되는 때다. 보리나 밀처럼 추운 시간을 사는 곡식이 익어 논이 다시 한번 노랗게 물든다. 보리와 밀에 달린 긴 수염 같은 까락이 영글어서 까끄라기 망(芒), 까락이 익는 때가 망종이라고 한다. 이모작을 잘 하지 않는 진안에서는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 전까지가 참 쉴 틈 없이 바쁜데, 써레질을 하고 논둑을 바르느라 허리를 펼 시간이 없다. 어느 정원가의 글처럼 농부에게 척추뼈는 참 쓸모없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때다.


보리, 밀이 익는 망종의 논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진_배이슬
보리, 밀이 익는 망종의 논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진_배이슬
승용이앙기가 나온 뒤부터는 부러 기계를 사지 않고 일을 맡긴다. 모내기 전까지가 더 바쁘다. 사진_배이슬
승용이앙기가 나온 뒤부터는 부러 기계를 사지 않고 일을 맡긴다. 모내기 전까지가 더 바쁘다. 사진_배이슬
모낸 직후에는 듬성듬성 모자라 보이지만, 섭을 최대한 적게 잡는다. 초반에 새끼 치는 벼줄기가 볍씨를 만든다. 바람 잘들고 볕 잘들게 듬성듬성 심어 놓으면 금새 초록이 빽빽해진다. 사진_배이슬
모낸 직후에는 듬성듬성 모자라 보이지만, 섭을 최대한 적게 잡는다. 초반에 새끼 치는 벼줄기가 볍씨를 만든다. 바람 잘들고 볕 잘들게 듬성듬성 심어 놓으면 금새 초록이 빽빽해진다. 사진_배이슬
논둑을 바르는 일은 허리가 없어지는 일 중의 하나다. 사진_배이슬
논둑을 바르는 일은 허리가 없어지는 일 중의 하나다. 사진_배이슬

밀, 보리 베고 모내는 시기


 써레질은 논의 흙을 곱게 하고 물이 빠지지 않게 하기도 하지만 논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 수평을 맞추는 일이다. 높은 곳, 깊은 곳이 없이 평평하게 논을 가는 써레질은 논에 물을 댈 때 물에 잠기는 모가 있거나 흙이 드러나 풀이 나는 일을 줄인다. 또한 균일하게 벼에 물을 댈 때, 떼야 할 때 알맞게 키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트렉터로 아무리 곱게 써레질을 해도 매년 같은 자리가 깊어지곤 해서 써레질 전에 할머니랑 논흙을 삽질하느라 애를 썼었다. 물이 든 논에서 삽질하는 건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발이 빠져 움직이기도 힘든데, 뻘흙은 삽으로 뜰먹도 하지 않는다. 더 힘든 건 아무리 봐도 어디가 높고 깊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답답해 하며 “여가 짚은 게 저리로 던져야지!” 하시는데 대체 어디가 깊고 어디가 높다는 건지 몰라 종종대곤 했다.


 요즘에야 경지정리된 큰 논은 트렉터로 높다랗게 논둑을 바르거나 남쪽에 가니 아예 논둑을 콘크리트로 만든 곳도 있다. (풀농약이야 덜하겠지만, 논의 생태계로보면 무시무시한 일이다.) 각기 다른 모양에 작은 논들이라 적을 때는 열일곱 마지기, 많을 때는 스물셋 마지기의 논둑을 손으로 발랐다. 한 면에 양쪽 끝에서 할머니랑 삽질하고 손으로 시합하듯 흙을 바르다 보면 허리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논둑을 부치는 일은 찰진 흙으로 단단히 올려 발라야 물이 새지 않는다. 그렇게 못자리의 모를 밖으로 내는 일, 모내기를 하려면 논에서 봄 끝과 초여름을 내 살아야 하는 일이다.


 모판을 떼고, 심을 논 크기에 맞춰 모판을 실어다 논 가상에 담갔다가 내서 모판을 올려 주면 이앙기로 모를 심는다. 기계일을 맡기면서부터는 아침과 새참을 챙기는 일을 했다. 망종 전에는 밀과 보리를 베고, 이 많은 일들을 해야 늦지 않게 모를 심는다. 그래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 이라는 말이 있다.

모내기를 마친 논. 사진_배이슬
모내기를 마친 논. 사진_배이슬

벼농사가 아니라 논농사를 짓는다. 논을 밥상으로 집으로 삼는 수많은 생명들 덕에 논은 우리의 밥과 물과 공기를 키우는 곳이다. 모내기하자마자 우렁이를 넣었다. 새들을 쫓으며 모는 밟지 말어! 부탁한다.(왼쪽) 모내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풍년새우가 가득 헤엄친다.(중앙) 둠벙이 가까운 논은 종종 큰 민물새우도 나온다.(오른쪽) 사진_배이슬



밀과 보리가 자라네, 속은 타들어가네


 진안은 겨울이 길고 여름이 서늘한 준고랭지다 보니 벼와 밀, 보리를 한 곳에 심는 이모작이 어려운 곳이다. 밀,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자니 벼를 심기에 늦어지고, 벼를 이르게 심자니 심어 놓은 밀, 보리가 아까워 속이 탄다.


근래 달라진 기후로 진안에서도 따뜻한 몇몇 면은 사료작물을 겸해 이모작을 하는 곳이 늘고 있다. 그래서 호기롭게 3년 전 가을, 여물어 가는 벼 사이로 앉은키밀과 남도참밀, 찰보리를 뿌렸다. 이모작을 하는 지역 농부 선배가 콩 베는 콤바인으로 베어 줄 수 있다고 했다. 드디어 밀도 자급해 볼 수 있겠다며 누룩을 디뎌본다고 신이 났었다. 겨울과 이른 봄 동안은 밀밭, 보리밭 덕에 행복했다. 자칫 황량하고 외롭게 느껴지던 논이 초록으로 가득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스스스 보리와 밀이 내는 소리가 참 좋았다.


그러나 소만 지나 망종이 오면서 못자리의 모가 부쩍 자랄수록 속이 새까맣게 탔다. 밀과 보리가 더디 익었다. 물을 모두 빼야 하는데 비가 왔다 하면 오래도 내려 좀체 누렇게 익지 않았다. 보리, 밀을 베고 지푸라기가 잘 썩고 논흙이 자리 잡기까지도 시간이 걸리는데, 모 심을 때를 놓치게 되어 한 해 농사를 어찌하나 얼마나 속이 타던지. 내내 속을 태우던 밀과 보리를 베고 서둘러 모를 심었다. 논이 부글부글 끓어서 모가 잘 크지 못했다.


23년도에 심었던 토종밀, 봄여름 내 아름다웠지만 모내기를 앞둔나는 속이 새까맣게 탔다. 사진_배이슬


아이들과 텃밭농사를 지을 때는 밭에 심어 거뒀다. 보리와 밀은 진안처럼 추운 곳은 밭에 심고 마음 편히 거두는 것이 낫다. 사진_배이슬

     

발등에 오줌 누는 때, 바쁘다 바빠 망종


입하부터 소만까지 밭으로 이사 갈 작물들도 한가득인데, 아카시아 피니 참깨 심고, 시집갈 들깨는 모를 낸다. 모내기하면 심을 고구마 밭도 다루고, 온갖 밭 가상에 풀도 들여다보랴, 논에 물대랴 정신이 하나도 없는 때다.


얼마나 바쁘면 망종에는 “발등에 오줌 눈다”는 속담이 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라는데 밀, 보리 베고 벼 심고 밭 다뤄야 하는 망종에 농부만큼 바쁠까. 가뜩이나 바쁜 망종에 베여하는 밀,보리를 심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내게 할머니는 손사레를 쳤다.


 “그전에 느아버지도 뭔 운동인가 한다고 심어 놔서 익지도 않고, 나락 농사 망칠 뻔 했는데 그것을 뭐 더러 심어, 밀이나 아니나 벨로 나도 않더만”

     

 유치원 다닐 때 쯤 농민운동 하던 아버지가 우리밀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고 밀을 심었던 때를 이야기하셨다. 어쩌다 한번 사 주는 과자는 죄다 우리밀 과자였고, 유치원에서 짜장면을 시켜 줬는데 우리밀이 아니라서 먹을 수 없다고 했단다. 5~6살 짜리가 그렇게 말한 걸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진심이었나 싶다. 그때도 밀을 심었다가 속이 탄 적이 있고, 정작 밀도 잘 안 들었다고 했다. 너른 밭에나 심을 것이지 논에 뭐 하러 심냐는 이야기였다.


제법 달라진 기후에 이모작 하는 데가 늘었으니 이제 되겠지. 신이나 심었다가 된통 속을 앓고 난 이후 다시 논에 밀과 보리를 심지 않기로 했다. 논에 밀과 보리 이모작을 하는 것은 남쪽에서나 가능하구나 깨달았다. 진안에서는 밀과 보리를 심는다면 논이 아니라 마늘밭, 양파밭 곁에 따로 심어야겠다.


감자 꽃이 필 때부터 감자가 들기 시작한다. 일찍 감자꽃이 진 자리에는 감자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다. 감자 꽃과 감자 열매. 이맘때 살살 파보면 이제 막 들기 시작한 감자를 만날 수 있다. 사진_배이슬


완두콩도 여물어 먹을 때가 되었다. 사진_배이슬


토마토 꽃 진 자리 토마토가 맺고 있다.(왼쪽) 고추는 그새 키가 자라 줄을 메어 줄 때가 되었다. 사진_배이슬


망종에 들과 밭


망종이라 그런가 망촛대가 허리만큼 자라 꽃몽오리를 맺었다. 올해는 달라진 기후에 기온이 높다는데 아침과 밤 온도가 높지 않아 작물이 더디 큰다. 화려한 벚꽃 뒤로 버찌가 익고, 오디, 앵두도 익어간다. 완두콩도 꼬투리를 불룩하니 채우니 달달하게 삶아 먹는다. 고추는 땅 맛 들어 부쩍 자라 줄을 메야 하고, 감자는 화려하게 꽃 피우고 일부는 일찍 감자 열매를 맺기도 했다. 꽃피는 즈음부터는 땅속에 감자가 들기 시작한다. 감자밭 북주기를 멈추고 이르게 드는 논감자나 색이 있는 감자들은 살살 파보면 맺히기 시작하는 감자를 만날 수 있다. 사방으로 줄기를 뻗어대는 서양딱총나무(엘더베리)도 꽃을 가득 준비 중이다. 여름에 실컷 따다 여름 음료로 즐길 수 있겠다.


진안담배상추 꽃과 홀씨. 추운 시간을 사는 작물들은 씨앗으로 돌아온다. 사진_배이슬


 추운 시간을 사는 작물들은 이제 씨앗으로 돌아갈 때가 된다. 배추꼬투리도 노랗게 영글어 곧 베어 말릴 때가 된다. 이르게 심은 상추는 키가 자라기 시작한다. 일부 온실에서 겨울 난 것은 벌써 꽃이 피고, 이른 봄 심은 것은 한여름의 트리처럼 꽃대를 낸다. 마늘, 양파도 수확해 그늘에 걸어 둘 때가 되었다. 반대로 더운 시간을 사는 작물들과 계속 꽃 피우는 작물들은 제철을 만나 힘껏 자란다. 토마토도 꽃 진 자리 열매를 키우기 시작하고, 호박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줄기를 뻗는다. 한숨 돌릴새라 곁을 보면 작물이나 풀이나, 개구리나 할미새나 다들 힘껏 여름을 받아먹고 사느라 바쁘다. 망종에는 그렇게 모두가 힘껏 크느라 정신 없는 때다.


달라진 기후에 어려움도 많지만, 덕분에 조금 늦게 심은 작물도 때를 놓치지 않고 자란다. 늦게 새로 심어도 걱정이 덜 한 것은 바쁘고 고되겠지만 망종의 여름볕이 부쩍 잘 키워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블루베리, 오디, 앵두, 버찌가 차차 익고 있다. 여름은 이름을 닮은 열매의 계절이다. 사진_배이슬


꽃대가 자라는 중인 파란꽃상추, 꼭 크리스마스 트리갔다.(왼쪽1) 꽃대를 올리는 평창적상추.(왼쪽2) 한쪽에 뿌려 놓은 들깨가 모종으로 자라고 있다. 참깨는 바로 심고, 들깨는 시집 보낸다. 절로 떨어져 난 들깨를 신나게 키웠다가 씨가 들지 않아 서운했는데, 들깨는 옮겨 심어야 씨가 잘 영근다.(왼쪽3) 호박꽃. 날이 더워질수록 토마토, 고추, 호박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자란다. 요즘은 너무 더워서 간혹 버거워 할 때도 있다. 사진_배이슬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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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6월 10일

모내기하는 절기가 망종이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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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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