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부엌 요리, 웍이냐 인덕션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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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15일
- 5분 분량
여름 부엌은 덥다. 부엌의 연료는 나무, 연탄, LPG, 도시가스, 전기로 진화 중이다. 열 낭비, 미세먼지 발생, 탄소 배출을 줄이는 부엌 연료 개선 방법은 무엇일까? 전기를 쓰는 인덕션이 부엌을 더위에서 해방시키고,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와 함께 탄소 배출도 줄인다. 그렇지만 팬이나 웍이 주는 맛은?
2025-08-15 김우성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최근 매일매일 울산 이야기쇼인 '매울쇼'에서 방송하고 있다.
저는 주부입니다
글을 쓰고, 대학에서 강의하기도 합니다. 정당에서 활동하고 작은 연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방송에 출연하거나 유튜브 영상(매울쇼)을 촬영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주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저희 집 부엌입니다.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과 청소를 하는 것은 저에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주부로서의 시간은 소모적인 집안일로 가득한 듯하지만 반복하는 일들을 통해 가족의 틀을 유지하는 시간은 저의 하루를 지탱하는 닻과 같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루의 균형을 잡습니다. (물론 집안일을 하다 분노가 차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주부 여러분, 마음 건강을 잘 챙기십시오.)
여름 부엌은 사실상 휴업
저의 주부생활에는 긴 휴업 기간이 있습니다. 바로 여름입니다. 저는 몸에 지방을 넉넉하게 두르고 있는 아저씨입니다. 아저씨의 몸으로 여름의 부엌에서 가스레인지를 켜고 요리를 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저의 몸이 더운 것도 힘든 일이지만 온 집안이 더워지고 쉽게 열기가 가라앉지 않는 상황도 힘듭니다.
6월이 오면 요리가 뜸해지기 시작하고 7월이 오면 저의 부엌은 사실상 휴업 상태에 들어갑니다. 여름의 식사는 가급적 불을 쓰지 않는 식단으로 준비합니다. 아내 님께서는 다이어트를 겸해 샐러드와 두부, 구운 계란으로 식사합니다. 초등학생 딸은 샐러드를 먹기도 하고, 영양 균형을 고려해 외식을 하기도 합니다. 아빠는 이 틈을 이용해 인스턴트 식품과 함께 방탕한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입추와 말복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가는 기척이 들립니다. 부엌을 정비하고 다시 주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초식동물처럼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종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깨우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씹는 시간이 줄고, 턱과 치아가 작아지고, 소화의 효율이 좋아지고, 더 많은 영양소를 흡수하고, 두뇌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슬기로운 사람,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진화했습니다. 음식을 익혀 먹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열은 대류, 복사, 전도 과정을 거쳐 식재료에 전달된다
'음식을 익혀 먹는다'는 어떤 일일까요? 우리가 음식에 열이라는 에너지를 가하면 식재료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운동 상태가 달라집니다. 결과로 식재료의 물리화학적인 구조가 변합니다. 국물이 끓으면서 졸아들거나 계란의 흰자가 하얗게 변하거나, 생선의 껍질이 바삭하게 익는 모든 과정들이 물리적이고 또한 화학적인 변화입니다.
열은 대류, 복사, 전도의 과정을 통해 식재료까지 전달됩니다. 국과 찌개가 끓으며 뒤섞이는 것,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 안에서 뜨거운 공기가 순환하며 재료를 익히는 과정은 대류입니다. 숯에서 나오는 열기가 석쇠 너머 고기를 익히는 과정은 복사입니다. 뜨겁게 달아오른 프라이팬과 재료가 직접 닿는 지점에서 재료가 익어가는 과정은 전도입니다. 주부들은 부엌에서 나무와 연탄, 가스와 전기를 이용해 열을 만들고 그 열로 식재료를 가열함으로써 요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테플론 코팅 알루미늄 팬을 안 쓴 지 10년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장인들은 좋은 도구를 사용합니다. 도구가 가진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쓸 줄 알아야 장인입니다. 제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는 스테인레스팬과 무쇠팬입니다. 보통 부엌에서 흔히 사용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코팅팬보다 무겁고 예열을 하는 과정이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금속은 더 높은 분자수와 더 큰 원자량을 바탕으로 더 많은 열을 저장합니다.
무거운 팬을 뜨겁게 달군 뒤 식재료를 올리면 팬의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지 않고 충분히 높은 온도에서 재료를 익힐 수 있습니다. 스테이크의 갈색 크러스트, 바삭바삭한 생선의 껍질, 눌어붙은 볶음밥과 졸아든 소스처럼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쓰는 팬들은 손잡이도 금속이기 때문에 가스레인지 위에서 재료의 표면을 익힌 후에 바로 오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벗겨질 코팅이 없으니 안전하고, 수명도 반영구적입니다. 제 부엌에서 플라스틱 손잡이와 테플론 코팅을 가진 알루미늄 팬이 사라진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쓰는 주방도구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을 저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간 문제없이 쓸 수 있는 제품들입니다.

제 부엌의 연료는 도시가스에서 전기로 바뀌는 중
부엌은 불을 다루는 공간입니다. 지금은 그러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난방과 조리를 겸하던 곳이었습니다.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의 부엌에서는 흙으로 만든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지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연료 체계가 바뀌면서 어머니 세대의 부엌은 연탄을 사용했습니다. 커다란 가스통에 든 LPG를 사용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가정이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발빠른 가정의 부엌에서는 전기가 도시가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가스레인지의 자리에는 인덕션이, 가스오븐의 자리에는 에어프라이어가 놓여 있습니다. 저의 부엌은 도시가스에서 전기로 변해가는 중간 정도의 단계입니다. 왜 우리의 부엌은 도시가스가 아닌 전기를 사용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을까요?

인덕션, 부엌을 더위에서 해방시키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길
우리는 언제나 더 편리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부엌을 추구해 왔습니다. 가스레인지는 연료를 직접 태워 불꽃을 만들고 음식을 가열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가스가 유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부엌은 환기가 중요합니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은 냄비를 가열하는 과정에서 많은 열기가 냄비 주변으로 빠져나갑니다. 이 열은 부엌 전체의 온도를 높이게 됩니다.
반면 인덕션은 전자기장을 이용한 유도가열 방식을 통해 냄비만을 가열합니다. 실제 불꽃이 발생하지 않고 부엌 전체의 온도 또한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여름날의 부엌에서 불꽃없이 음식을 익히는 인덕션은 주방 과학의 혁신입니다. 더워서 주부생활을 못하겠으니 인덕션을 중심으로 부엌의 시스템을 개편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좀 덥다는 이야기입니다.(아내님, 제 마음이 들리시나요?)
가스레인지처럼 화석연료를 직접 태워 요리를 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온실가스를 발생시킵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전기의 60% 정도는 화석연료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인덕션이 사용하는 전기 또한 온실가스 배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나가는 중입니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인덕션은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야성적인 부엌과 현대적 부엌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습니다. 불을 피우지 않고 냄비를 가열하는 인덕션은 마치 마법 도구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인덕션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인덕션에서는 냄비를 기울이거나, 흔들면서 재료를 볶을 수 없습니다. 오징어나 쥐포, 먹태를 구울 수도 없습니다. 불꽃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직관적이고 섬세한 온도 조절이 어렵습니다. 인덕션 또한 가스레인지처럼 조리 과정에서 미세먼지 입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덥지 않은 부엌을 위해 인덕션의 단점들을 감내할 수 있을까요? 저는 중국식 웍과 가스오븐, 가스레인지가 있는 야성적인 부엌과 인덕션과 에어프라이어가 있는 현대적인 부엌을 모두 갖고 싶습니다.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요리에 좀 신경을 써 줘”
어느덧 서늘해진 아침 공기를 느끼는 초등학생 딸의 푸념이 마음을 긁습니다. 네. 미안해요. 기후변화로 매년 여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아빠의 휴업 기간도 함께 길어지고 있습니다. 딸의 불만도 늘어납니다. 기후변화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아직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름은 지나가고 주부의 계절은 돌아올 겁니다. 더운 곳에서 요리하는 모든 주부와 자영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갈등과 과도기가 있겠지만 결국 인덕션과 전기차로 가야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