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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형의 에너지 꽈당 | ② 계통망 없는 전환은 전환이 아니다

2025-05-16 이순형

신안 8.2GW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분산형' 전원이 아닌 '중앙집중형' 구조로 추진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발전설비 확대뿐만 아니라 전력계통망 재설계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순형 교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에너지안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전기기술사이다. 전력계통 운영과 신재생에너지 접속 문제, 분산형 전원 기술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주도해 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 표준모델 실증’ 연구의 책임자로서 농촌 기반 에너지 전환의 현장 모델을 설계했다. 2020년 은탑산업훈장, 2024년 전라남도지사 표창과 대한전기학회 춘계학술대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대표 강의는 ‘전력계통’, ‘에너지변환공학’, ‘신재생에너지공학’ 등이며, 저서로는 『신재생에너지공학』과 『계통연계기술』 등이 있다. 전라남도 정책자문위원회 전략산업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지역 기반 에너지 정책의 실용화와 대중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신안 8.2GW’ 논란의 진실: 중앙집중인가 분산인가 


신재생에너지는 흔히 ‘분산형 전원’으로 분류된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원자력이나 석탄화력 발전소와 달리, 태양광과 풍력은 지역 곳곳에 나뉘어 설치되어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현실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신재생 프로젝트들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정의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서 추진 중인 8.2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다.

신안 해상풍력은 단일 부지에서 추진되는 신재생 프로젝트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며,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대형 프로젝트다. 8.2GW는 발전 용량 기준으로 원자력 발전소 1기(약 1GW)의 8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대형 발전소가 분산형 전원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고 있다는 점은 근본적인 의문을 낳는다. 8.2기가와트는 분산이 아니라 집중이며, 이는 원전 8기를 한 곳에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남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송전선은 이미 포화 상태


전력 수요와 비교해보면 그 문제는 더욱 명확해진다. 전라남도의 최대 전력수요는 약 3.3GW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신안 해상에서 생산하려는 전력은 이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이 전기를 전남 내에서 소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역에서 최대한 사용하고 남은 전기는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으로 송전되게 하는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전라남도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송전선은 두 줄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이미 포화 상태다. 현재의 계통망 구조로는 8.2GW의 전기를 수송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재생 확대와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기술적 기반과 계통 설계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채로 ‘분산형’이라는 단어만 반복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분산형 전원은 단순히 태양광이나 풍력이라는 설비의 종류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며, 수요지로 실시간 송전할 수 있는 유기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분산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안 해상풍력처럼 특정 지역에 수 기가와트급의 발전 용량을 집중시키는 방식은 기존의 중앙집중형 모델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더불어 이러한 초대형 발전 설비는 지역 주민과의 갈등도 야기할 수 있다. 발전은 지역에 설치되지만, 전기는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경관 훼손과 어업권 침해 등이다. 특히 신안과 같은 섬 지역은 어업에 의존하는 주민이 많아 해상풍력 설치에 따른 생계 위협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발전소는 세워졌지만, 정작 지역이 얻는 실익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신재생이 곧 분산형이란 공식은 재검토되어야


전력은 저장이 어렵고, 실시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핵심이다. 따라서 발전소를 아무리 많이 짓더라도, 이를 받아줄 계통이 없다면 실질적인 전력 수급에는 기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출력 제한, 잉여 전력 처리 문제, 계통 불안정 같은 부작용만 커진다. 분산형이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전력 시스템 전체를 보면 오히려 구조적 집중과 편중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 전환은 발전소 용량을 키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 수요지와의 연계, 계통 설계, 전력 흐름의 유연성, 전력 시장의 구조적 개편 등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신안 8.2GW 프로젝트는 단순히 큰 발전소를 하나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정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거대한 설비를 짓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그것이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에너지 전환이라 할 수 없다.

신재생이 곧 분산형이라는 공식은 이제 재검토되어야 한다. 기술의 종류보다 중요한 것은 설계 철학이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8.2기가와트라는 숫자에 가려진 본질을 직시할 때다.


발전소는 짓지만, 전기는 흐르지 못한다


발전은 아무 데서나 하면 된다. 하지만 전기는 아무 데로나 보낼 수 없다. 이 당연한 명제가 지금 한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정책은 발전설비만 늘리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송전, 계통, 수용, 이 모든 중요한 요소들이 정책의 뒷전으로 밀렸다. 결국,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발전소는 짓고 있지만 전기는 흐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남 지역이다.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재생에너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 중 하나지만, 정작 전기를 가장 적게 사용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전남의 에너지 자급률은 무려 198.9%에 달한다. 이 말은 필요한 전기의 두 배를 넘게 생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광주의 자급률은 9.3%에 불과하다. 지역 내 수요가 없기 때문에 전기를 밖으로 보내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수도권으로 가는 송전선은 고작 두 줄이다. 이 두 줄의 용량으로는 호남에서 생산된 막대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낼 수 없다.


버려지는 전기, 멈춰 선 태양광과 풍력 설비


기존의 전력 계통망은 소비지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산업화 시기에 지어진 화력발전소나 원전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신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외곽 지역, 특히 호남과 영남 해안에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런 신재생 발전은 전력을 역송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계통망 구조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신재생 발전설비를 지어 놓고도 접속을 못 하는 일이 벌어진다. 한국전력이 계통 접속을 허용하지 못해서 수년씩 대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전력망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만 늘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출력제한이 발생한다. 전기가 생산돼도 보낼 수 없어서 그냥 버리는 것이다. 태양광도 마찬가지다. 낮 시간대에 생산된 전기가 많아도, 계통이 흡수할 수 없으면 차단된다. 버려지는 전기, 멈춰 선 태양광과 풍력 설비는 지금 한국 에너지 전환의 민낯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통망의 대대적인 재설계


정부는 여전히 설비 중심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몇 기가와트를 설치했는지, 신재생 비중이 몇 퍼센트인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발전 설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에너지 전환이 완성되지 않는다. 핵심은 계통망이다. 계통망이 없으면, 발전은 무용지물이 된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말은 많지만, 계통 전환이라는 말은 없다. 이것이 지금 정책의 가장 큰 빈틈이다. 전기를 생산해도 흐르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정책이다. 전기는 흐름이고, 흐름은 경로를 필요로 한다. 도로 없이 자동차 공장만 짓는 것처럼, 송전망 없이 발전소만 짓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발전 확대가 아니다. 계통망의 대대적인 재설계다. 초고압 직류송전망(HVDC) 같은 새로운 송전 기술 도입(에너지순환도로), 지역 내 수요처 확대, 계통운영 인력과 기술 강화, 이런 현실적 대책이 먼저다. 그래야 진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소만 가득한 ‘전기 고립지대’만 늘어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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