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인사이트] 홍다경 『쓰레기 산에서 춤을』 저자 | 국가 목표라는 NDC, ‘왜 중요하고 무엇이 달라지는지’ 알려 주는 사람 필요해

2025-11-20 김복연 기자

기후위기는 홍다경에게 도시의 침수나 가족의 농사 피해처럼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먼저 다가왔다. 주변의 친구·동생·아버지처럼 기후변화로 생업이 흔들릴 사람들을 떠올릴수록 불안과 다정함은 동시에 깊어졌다. 청년 환경단체 ‘지지배’를 이끌며 작은 목소리를 모으려 했지만, 시민 참여의 통로는 여전히 좁고 생태계의 목소리는 더 작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지는 작은 말들 속에서 기후 전환의 희망을 찾는다.


에코픽 매거진 '에디터들의 멘토를 만나다_환경 인플루언서 홍다경' 편에 소개된 홍다경. 사진 Allure
에코픽 매거진 '에디터들의 멘토를 만나다_환경 인플루언서 홍다경' 편에 소개된 홍다경. 사진 Allure

홍다경의 환경운동은 거창한 선언보다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됐다. 같은 고민을 가진 청년들이 서로의 불안과 질문을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만든 것이 지구를 지키는 배움터 ‘지지배’다. 대표부터 활동가까지 모두 청년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청소년 분리배출 교육, 플로깅, 환경 독서모임, 캠페인 등 실천 중심의 활동을 직접 기획해 왔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환경 실천 콘텐츠를 꾸준히 나누며,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쓰레기 산에서 춤을』을 펴냈다. 활동가이자 콘텐츠 제작자로서, 그리고 기후 불안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는 시민으로서, 청년들이 기후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언어와 자리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사라진 복숭아의 계절


자신의 사람과 가족의 삶이 이어진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기후위기 속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는 홍다경. 사진 홍다경
자신의 사람과 가족의 삶이 이어진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기후위기 속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는 홍다경. 사진 홍다경

서울에서 혼자 살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스물여덟. 기후라는 단어에 마음을 두게 된 지 어느덧 9년. 오래된 관심이라고 하기엔 그 시간 동안 세상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기후는 더 가파르게 흔들렸다.


계절에 대한 예측이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길한 기척이 스며들었다. 예전 같으면 이맘때쯤이면 비슷한 냄새, 비슷한 온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는데 그 ‘예상치’가 완전히 깨지면서 이상함이 피부로 스며들었다. 2022년 여름, 관악구. 갑자기 쏟아진 호우에 동네는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고, 버스가 멈출 만큼 위협적인 침수 속에서 ‘이건 이제 오늘의 날씨가 아니구나’라는 감각이 뼈에 새겨졌다.


도시에선 그렇게 비의 위협이 있었고, 농촌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위기가 나타났다. 대구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외할머니의 밭에서는 올해 복숭아가 단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복숭아 박스 접는 걸 도와 받던 소소한 용돈, 여름마다 즐겨 먹던 복숭아의 달콤한 향기와 맛, 할머니가 농사에서 얻던 작지만 충만했던 기쁨…. 그런 것들이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복숭아는 기형으로 열리거나 아예 열리지 않았고, 기후가 만든 이상 징후는 결국 가족의 일상을 흔들었다. 행복했던 순간들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기억이자 놓치 못할 추억이 되었다.


마트에 잘 진열된 과일이 가리는 것은 기후위기만이 아니다. 위기 속에서 분투한 농부의 힘겨움과 기후변화를 제 몸으로 싸워낸 과실수들의 노력이다. 밭에서는 그 변화가 너무 빠르고 직접적이어서 오히려 뉴스조차 되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의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기, 청년은 말을 잃기 쉽다


'우리바다클린운동본부', '지구를지키는배움터', '숨탄것들' 세 단체가 모여 실미해변 1.7㎞ 구간을 청소하는 활동은 지구 환경을 지키면서 청년들이 자신들을 돌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진 인스타그램 earthcleaner_korea
'우리바다클린운동본부', '지구를지키는배움터', '숨탄것들' 세 단체가 모여 실미해변 1.7㎞ 구간을 청소하는 활동은 지구 환경을 지키면서 청년들이 자신들을 돌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진 인스타그램 earthcleaner_korea

기후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당황스러움이 컸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분노가 뒤엉키다가 지금은 일종의 ‘좌절’에 가까운 감정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포기’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느낌에 가깝다.


모두가 정오를 살고 있을 때 홀로 해질 무렵을 걷는 듯한 이런 감정들은 어디에서도 쉽게 털어놓기 어렵다. 주변에서는 “예민하다”는 말을 듣고, 기성세대는 이런 불안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일쑤였다. 다행히 환경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는 마음을 꺼내 놓을 수 있었다. 서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를 확인하는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 혼자 버티는 것과는 전혀 다른 힘이 생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상을 이해할 자기 언어인데, 요즘은 그 언어를 만들어 볼 자리조차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마음을 꺼내 놓고, 감정을 말로 부여잡고, 혼란을 문장으로 바꿔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임들이 사라지거나 지원이 끊기면 결국 말 자체가 사라진다. 말이 사라지면 감정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그래서인지 청년들이 기후 불안을 스스로 견디다가 조용히 지쳐가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사회가 책임을 나누지 않는 현실에서, 버티는 일은 너무 쉽게 각자의 몫이 된다.


NDC 논쟁은 너무 멀리 있지만, 위기는 이미 여기 있다


기후 정책을 따라잡고 싶어도, 관심이 있어도, 어느 순간 놓치게 되는 순간이 많다. 뉴스는 정쟁과 재판 이야기로 가득한데, 정작 생존과 직결되는 기후 정책은 들리지가 않는다. 2035년 NDC 상향 논란도 우연히 컴퓨터 바탕화면에 뜬 뉴스 팝업으로 알게 됐다.


NDC라는 단어 역시 너무 딱딱하고 설명되지 않은 채 흘러다닌다. 국가 목표라고 하지만 누구도 ‘왜 중요하고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풀어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청년들이 이 문제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기회조차 사라진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 역시 흔들린다. 감축 목표가 더 높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짜 의지가 담긴 건지, 정권의 눈치를 덜 보기 위한 숫자 놀음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만 바뀌는 위원회들, 방향성은 이어지지 못한 채 공백만 늘어난 정책들. 그렇게 신뢰는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


산업계의 큰 목소리, 그리고 그 뒤에 묻히는 존재들


지구를 지키는 배움터 ‘지지배’ 유투브 영상 캡쳐 이미지
지구를 지키는 배움터 ‘지지배’ 유투브 영상 캡쳐 이미지

기후 정책이 산업계를 어렵게 한다는 보도를 보면 걱정도 되고 이해도 된다. 결국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건 늘 노동자들이니까. 그런데 기후 전환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그 속도를 감당할 준비가 누가 되어 있느냐다. 산업은 기후테크다, 전환이다 하면서 점점 앞을 향해 달려가는데, 정작 그 안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고, 어떻게 업을 바꿔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지원받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요즘 기후테크나 ESG라는 말만 보면 기회가 생기는 듯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쪽으로 눈 돌리는 청년들도 주변에서 많이 본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가는 교육은 거의 없다. ‘기후 시민 교육’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드물고, 산업이 어떻게 바뀔지,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그 변화 속에서 시민이나 노동자가 어떤 선택지를 준비할 수 있는지 안내해주는 프로그램은 거의 찾기 어렵다.


결국 기술이 방향을 정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알아서 따라가야 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변화가 오면 먼저 기회를 잡는 사람이 생기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방향도 모른 채 일자리를 잃거나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전환은 분명 시작됐는데, 정작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준비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생태계의 목소리는 더 작다. 그래서 더 크게 들어야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홍천 양수발전의 실상을 젊은 감성으로 전달. 사진 인스타그램 earthcleaner_korea
인스타그램에서 홍천 양수발전의 실상을 젊은 감성으로 전달. 사진 인스타그램 earthcleaner_korea

기후 시민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참여할 통로는 생각보다 좁았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기후 시민 프로그램에 신청했을 때도 경쟁률이 너무 높아 참여하지 못했다. 관심은 분명 커졌고 말하고 싶어하는 시민도 많았지만,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막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한번은 에너지 정책 논의 자리에 참여했지만, 좋은 제안들이 결국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말 앞에서 멈춰 서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는 시민의 말이 구조 안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 더 선명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작은 목소리들이 떠오른다. 홍천의 양수발전소 부지에서 밀려나는 생명들, 재생에너지의 속도 경쟁 뒤에서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고통, 말할 힘조차 없는 존재들. 기후 전환은 속도만 보면 안 된다. 큰 목소리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부터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시민의 말을 들으려는 사회라면 생태계의 목소리에도 자리를 내줘야 한다. 기후 정책은 숫자를 조정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들의 목소리에 확성기를 달아 주는 일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가까운 얼굴들에서 시작되는 기후 감각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면 기후위기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스마트팜으로 뛰어든 친구도 걱정된다. 기술이 들어간 농업이라고 해도, 결국 작물이 햇빛과 온도 같은 기본 조건을 제대로 못 받으면 싱싱하게 자라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귀농해 농사를 배우는 또래도 있다. 아직은 괜찮다지만, 앞으로 여름이 지금보다 더 뜨거워지면 이 친구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 종종 생각하게 된다.


일터가 야외인 지인들도 마음에 걸린다. 주차장에서 일하는 동생은 한여름이면 주차장 안과 밖의 열기가 뒤섞여 몸이 금방 지쳐버린다고 했다. 정비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차 밑에서 작업할 때 엔진 열기와 바닥 열기가 한꺼번에 올라와 숨이 턱 막힌다고 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기온이 더 올라가면 이들의 일터는 더 위험해질 것이 분명하다.


피해를 피해갈 사람은 거의 없다. 기후위기는 결국 가장 가까운 얼굴들의 삶과 생업부터 흔들기 시작한다는 걸, 주변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희망은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기후 문제를 기꺼이 이야기하는 청년들, 서로 발견한 정보를 나누는 콘텐츠, 꾸준히 기후 기사를 쓰고 퍼뜨리는 언론인들. 무너지는 구조 속에서도 이런 목소리들이 끊기지 않는다면, 아직 희망을 말할 틈은 남아 있다고 믿고 싶다.

댓글

별점 5점 중 0점을 주었습니다.
등록된 평점 없음

평점 추가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