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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북ㅣ세상 끝에 있는 당신을 조금 알고 있습니다

2025-09-12 안은영

사랑과 외로움을 다룬 두 권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새를 찾아 떠나는 곰의 여정을 그린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와 식물의 시선으로 인간의 외로움을 바라본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를 통해 사랑과 외로움을 되돌아본다. "오만하면서 어리석고, 무정하다가 다정하고, 요란하면서 초라한 인간의 삶은 한철 동안 초록을 뽐냈다가 거칠하게 말라가는 식물의 이면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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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 작가, 책방 사이 대표

기자로 밥벌이를 했고 『여자생활백서』,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를 거쳐 강동구에 숲·생태·기후·환경 전문 독립서점 ‘책방 사이’를 운영 중이다. 지구에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변화의 가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무엇 때문에 지불하는지 모르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매일 느끼고 겪는 많은 감정 가운데 유독 인색한 감정은 바로 사랑이다. 크고 작은 일에 즉각적으로 기뻐하고 연민하고 안도하며, 분노하고 불안하고 슬퍼하지만 사랑의 감정만은 쉽사리 발동하지 않는다. 흔해 빠진 사랑이 역설적으로 가장 적게, 또 어렵게 소비되는 까닭은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외롭고 드물게 사랑을 한다.


만약 당신이 외롭다면 그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사랑하면 외롭지 않다고 편지를 보내는 두 권의 아름다운 그림책을 소개한다. 하나는 외로울 틈이 없이 낮이나 밤이나 사랑하는 곰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고요히 인간의 외로움을 응시하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다.


고티에 다비드, 마리 꼬드리 지음, 이경혜  옮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모래알, 2018
고티에 다비드, 마리 꼬드리 지음, 이경혜 옮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모래알, 2018

한 톨의 의심이 없는 세상 끝의 사랑

     

북쪽에 사는 곰은 함께 지내던 새가 겨울을 피해 남쪽으로 떠나자 그리워하던 나머지 남쪽 끄트머리에 가 있는 새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행운의 개암나무 열매와 함께 친구들의 우정 어린 배웅을 받을 때까진 좋았다. 자신의 숲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 본 적 없는 곰이 사랑하는 새를 찾아 무작정 세상 끝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고티에 다비드·마리 꼬드리, 모래알)는 곰이 새에게 보내는 스무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곰은 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가득 담아 여정의 순간들을 일기처럼 적어내려간다. 덩치가 무색하게도 살짝 겁을 내며 출발한 여행은 시작부터 꼬인다. 뱃사람의 그물에 걸려 바다에 빠지는데, 그를 구출하는 건 노래하는 인어 세이렌이다. 구사일생으로 뭍으로 나온 곰은 활화산 지역을 데굴데굴 구르고 전쟁이 벌어지는 벌판을 지나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다. 세상의 끝엔 절반도 다다르지 못했는데 사방은 이미 폐허다.

     

여러 겹의 이야기가 쌓인 아름다운 우화

     

채도 높은 색감과 아름다운 그림체, 다정한 언어로 그려지는 곰의 바깥세상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그가 고양이 무리와 새로운 곰을 만나고 사막과 바다를 건너면서 다시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새는 작은 지저귐으로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서로를 밀어내는 같은 극의 자석처럼 곰과 새의 거리는 일정하게 멀고 한없이 아득하다. 새를 그리워하는 곰의 메아리가 공허해질 즈음 드디어 곰은 새가 산다는 세상 끝 남쪽 나라에 도착한다.

     

사랑하는 친구를 찾아 떠나는 곰의 우정이라는 책의 외피 안에는 여러 겹의 이야기가 켜켜이 포개져 있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 없는 사랑이야기이자 내일을 알 수 없는 인생길의 항해일지, 또 누군가에게는 닿을 듯 닿지 않는 먼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여러 겹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한순간도 새를 의심하지 않는 곰의 굳은 마음이다. 사랑 앞에서, 인생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먹먹한 상실 앞에서 불안하고 연민하고 분노하고 안도하고 기쁘고 슬픈 감정들을 떨구어 내고 우리가 할 일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 끝에 있는 존재를 향해 확신의 첫발을 떼는 곰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곰은 새를 만났을까, 새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은 다행히도 책에서 호쾌한 답을 내준다.


권정민,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문학동네, 2019
권정민,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문학동네, 2019

나의 외로움을 당신은 어떻게 알았지?

     

그림책 작가 권정민의 신작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권정민, 문학동네)는 한 컷의 그림으로 많은 질문과 상념을 끌어내는 작가 특유의 화법이 응집돼 있다. 책은 식물이 화자가 되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이어지는데, 작가 특유의 대담하고 따뜻한 터치의 그림들은 다양한 식물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시선을 붙든다. 유행하는 야자나무부터 요즘 어지간한 사무실에 하나쯤 있을 법한 인기쟁이인 몬스테라와 개업선물로 여전히 환영받는 금전수까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식물들이다.

     

언뜻 식물이 주인공인 것 같지만 책이 집중하고 있는 대상은 인간이다. 책에서 식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자신이 바라보는 인간, 자신을 대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간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은 ‘궁금한 것이 많고 잘 맞지 않는 곳에서도 꽤 버티고, 우리처럼 숨 쉬고 싶고, 가끔 많이 힘들어 보’인다. 식물은 ‘우리는 당신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면서.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꺼칠한 삶

     

창문이라곤 없이 완벽하게 밀폐된 사무실에 커다란 야자나무가 배달된다. 환기시스템이 설치된 엘리베이터 천정을 찍고 꺾어질 만큼 커다란 나무는 사람들의 땀과 열기와 무관심 속에 덩그마니 놓였다가 점점 밀리는 신세가 된다. 사무실 맨 구석의 정수기 옆까지 밀려와 사람들에게 성가신 존재가 된 화분은 모두의 무관심 속에 시들시들 말라간다. 그렇게 식물은 쉴 새 없이 배달되고 잠깐 환영받았다가 방치되고 잊힌다.

     

고층빌딩의 요가 센터,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 건조한 사무실의 한쪽에서 식물은 뱃살을 내밀며 운동하는 사람, 판매대 사이에 끼어 앉아 책 읽는 사람, 과로하다 쪽잠을 자는 사람들 옆에 서 있다. 언제 또 햇살 한 줌 없는 건물 외벽으로 밀려날지 알 수 없는 채로 식물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의 삶을 묵묵히 응시한다.

     

오만하면서 어리석고, 무정하다가 다정하고, 요란하면서 초라한 인간의 삶은 한철 동안 초록을 뽐냈다가 거칠하게 말라가는 식물의 이면과 닮았다. 인간이나 식물이나 사랑받지 못하면 금세 생기를 잃어버리는 존재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는 식물을 모티프로 했지만 식집사 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움이 밀려올 때 쌉싸름한 영양제가 되어 준다. 나뿐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산다는 서글픈 동류의식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외로움이지만 외롭다고 아무나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책 읽는 동안만큼은 안정 속에 외로움을 연명할 수 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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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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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주제인 사랑과 외로움에 관한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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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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