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1 김우성 woosung.kim83@gmail.com
나무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뻗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특성 때문에 나무는 지구의 육상생태계를 떠받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물과 무기양분을 빨아들이고, 이것들을 나무 꼭대기의 잎사귀까지 밀어 올립니다. 그리고 잎사귀에서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포도당을 다시 땅속 깊이 뿌리까지 내려보냅니다. 포도당으로 셀룰로스를 만들어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뿌리를 뻗습니다. 토양 미생물의 대부분은 식물의 뿌리 표면에서 달콤한 먹이를 받아먹으며 살아갑니다. 식물 뿌리의 대부분은 물과 공기를 흡수하기에 좋은 지표면 아래 10cm정도 깊이에 분포합니다. 큰 나무의 뿌리는 조금 더 깊이 뻗는데, 지표면 아래 1~2미터 깊이까지 뻗기도 합니다. 가장 깊이 뿌리를 뻗는 나무는 남아프리카의 야생 무화과나무인데, 무려 지하 120m까지 뿌리를 뻗는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아카시아 나무 또한 건조한 사막의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하수가 있는 곳까지 깊이 뿌리를 뻗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나무는 아주 깊은 지하에서 아주 높은 지상까지 그 조직을 뻗습니다. 나무는 땅 아래의 생태계와 땅 위의 생태계를 연결하는 위대한 연결자입니다.
우리는 땅속 생태계를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을 만나지만 그 나무들의 줄기와 가지, 잎만 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어디까지 뿌리를 뻗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제한적입니다. 뿌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고생이 많습니다. 연구자들은 뿌리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땅을 파기도 합니다.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직접 땅을 파기 어려운 경우, 지하 레이더(GPR; Ground Penetrating Radar)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뿌리를 관찰하거나, 동위원소를 활용해 물과 양분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발달한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연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땅속 생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땅속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코스트 레드우드라고 불리우는 세쿼이아(Sequoia sempervirens)입니다. 그럼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는 무엇일까요? 높이 자라는 나무와 크게 자라는 나무가 다르냐고요? 다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는 미국 유타주 세비어 카운티의 피쉬레이크 국유림에 있는 사시나무(Quaking Aspen, Populus tremuloides)입니다. 사람들은 이 숲을 사시나무 거인(Trembling Giant)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판도(Pando; 라틴어로 ‘나는 뻗어나간다’를 의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얼마나 크냐고요? 이 나무는 약 4만7000여 개의 줄기로 이루어져 있고, 약 43만3000㎡의 면적에 펼쳐져 있으며 그 무게가 6615톤에 이릅니다. 많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어뜨려 번식하지만, 판도는 거대한 뿌리에서 새 줄기를 틔워 올려 번식합니다. 거대한 숲을 이루는 사시나무들은 모든 줄기가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며, 땅속으로는 거대한 뿌리로 연결되어있는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하나의 줄기가 죽으면 거대한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가 자라납니다. 사시나무 숲의 개별 줄기는 약 100~130년 정도 살아갑니다만, 뿌리의 나이는 최소 9000년에서 최대 1만8000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땅 위의 줄기가 죽어도 땅속의 뿌리는 죽지 않습니다. 판도는 큰 산불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이 거대한 사시나무 숲은 거대한 뿌리 위에 돋아난 여러 개의 줄기를 가진 하나의 나무입니다. 땅 위로 드러난 현상만으로는 우리는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판도처럼 뿌리에서 뻗어 나오는 줄기들을 움싹 또는 맹아(萌芽; Sprout)라고 합니다. 움싹은 식물의 뿌리나 줄기의 상처,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급하게 만들어진 새싹입니다. 분화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던 식물세포가 빛, 온도, 기계적 스트레스와 같은 환경요인에 의해 깨어나 빠르게 새로운 줄기로 자라납니다. 움싹은 모체의 줄기나 뿌리에 저장되어 있는 양분에 의존해 만들어지는데, 큰 나무의 뿌리나 줄기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양분이 저장돼 있기 때문에 작은 씨앗에서 출발하는 새싹에 비해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 줍니다. 다만 빠르게 성장하다보니 성글게 만들어진 조직의 비율이 높아 줄기가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움싹에서 만들어진 줄기의 일부 또는 전체가 죽거나, 줄기의 가운데가 썩어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싹을 통한 번식과 성장은 빠르게 빛과 공간을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종들이 적극적으로 움싹을 틔워 내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우리 숲에도 작은 판도들이 있습니다. 우리 숲의 뼈대를 이루는 참나무류 또한 움싹을 잘 만드는 종들입니다. 도토리에서 돋아나온 새싹은 하나의 곧은 줄기를 위로 뻗습니다. 그리고 그 줄기 끝에 작은 잎 몇 장이 달립니다. 가을이 되면 어린 참나무는 여름내 뻗은 줄기와 겨울눈을 남기고 잎을 떨굽니다.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이 오면 작년에 만든 겨울눈에서 새 가지를 뻗어 조금 더 높이, 그리고 여러 갈래로 자랍니다. 작년에 만들어둔 줄기는 올해 만든 잎과 뿌리를 연결하는 물관과 체관으로 조금 더 두꺼워졌습니다. 곧은 하나의 줄기는 참나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매년 조금씩 굵어집니다. 가끔 모진 환경이나 유전적인 요인으로 인해 줄기가 휘어지거나 여러 갈래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토리에서 시작된 어린 참나무가 갖추게 되는 가장 효율적인 구조는 태양을 향해 곧게 뻗은 하나의 튼튼한 줄기입니다.
하지만 야생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줄기가 꺾이거나 부러지기도 합니다. 심하면 산불로 땅 위에 있는 줄기와 가지, 잎이 불타 사라지기도 합니다. 참나무의 삶은 여기까지일까요? 나무는 언제 죽을까요? 초식동물이 모든 잎과 가지를 뜯어먹어 버렸을 때? 나무꾼이 밑둥을 잘랐을 때? 태풍에 의해 줄기가 꺾였을 때? 산불로 줄기와 가지, 잎이 모두 불탔을 때? 아닙니다. 아직 나무에게는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나무가 가진 유전자에 새겨진 움싹을 틔워 내는 프로그램이나 피해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뿌리가 건재하다면 나무는 다시 움싹을 틔워 새 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비록 태양을 향해 곧게 뻗은 하나의 줄기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갈래의 가는 줄기가 모여있는 형태가 되거나, 속이 썪어 있는 부실한 구조의 줄기가 되거나, 일부 줄기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조직에서 틔워 낸 움싹으로 만든 어설픈 줄기를 따라 나무는 다시 태양을 향해 자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움싹을 틔워 내는 나무의 재생능력을 활용해 산불피해지를 복구하기도 하고, 벌채 후에 어린 나무를 심지 않고 남아있는 밑둥에서 올라오는 움싹으로 다음 세대의 숲을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을까요? 가족이 자신의 뿌리일 수도 있고, 몰입하고 있는 일이나 직장이 자신의 뿌리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주부이고, 가족이 있는 부엌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마음이 뿌리내린 곳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의 삶이 뿌리내린 시간과 공간을 소중하게 여겨주세요. 삶이 거대한 시련을 만나 가지가 부러지거나 줄기가 꺾일 수 있습니다. 운 좋게 마음의 뿌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시 움싹을 틔워 내고 빛을 향해 가지를 뻗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의 삶도 그러하고, 우리의 삶도 그러합니다.
나무는 땅위 생태계와 땅속 생태계를 이어주는 연결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