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의 지구와 정치 | 이재명 정부가 극복할 대북정책은 윤석열이 아니라 문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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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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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0 윤효원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주의이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정책은 비주체적 선언주의였다. 양측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후퇴시켰다. 이재명 정부가 맹목적 한미동맹 신화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를 극복하지 않는 한, 실질적 평화는 도달할 수 없다. ‘평화’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선언이 아니라 결단, 전략이 아니라 주체, 구호가 아니라 한미동맹으로부터의 독립과 탈종속의 외교노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하노이에서 마주한 외교의 빈자리
하노이를 방문 중이다.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메트로폴 호텔과 김정은 위원장이 머물렀던 멜리아 호텔을 돌아보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 당시 하노이는 평화외교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지금은 당시의 흔적조차 희미해졌다. 일행과 북미 정상과 지도부가 오찬을 했다는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한국 정부는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
‘하노이 결렬’은 단순히 북미 간의 외교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정부가 결정적 국면에서 외교적 존재감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기대와 상징만을 부풀렸을 뿐, 실질적인 돌파구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평화의 주체가 아니라 주변 부로 밀려났다. 그 회담 이후 한반도는 다시 긴 침묵과 냉각기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내가 마주한 메트로폴 호텔의 정적은, 바로 그 상실의 공백을 반영하는 현실의 상징이었다.

‘전환’을 넘어 ‘극복’
이재명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 25주년을 맞아 대북정책 기조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소모적인 적대 행위를 멈추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하며,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전 부처에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이는 명백히 전임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정책과는 선을 긋는 행보다.
하지만 외형적 전환이 곧 실질적 극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분명히 적대적이며 대화 채널을 끊은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재명 정부가 ‘극복’해야 할 정책적 유산이 윤석열 정권에만 있는 것일까? 실질적으로 더 긴 그림자와 깊은 실패는 오히려 문재인 정권에 있었다. 남북 화해의 이미지를 포장하며, 미국 눈치 보기와 자기 검열 속에서 어떤 구조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신뢰만 잃어버렸던 문재인식 대북정책의 실상이 그것이다.
‘전환’이라는 말은 선언에 가깝지만, ‘극복’은 진단과 성찰,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권의 실패를 돌아보지 않고 단지 윤석열 정권과의 선을 긋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또 한 번의 실패는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의 ‘주체 없는 평화’
문재인 정부는 2018년 봄부터 정상회담과 선언을 연달아 개최하며 남북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민족 내부의 자율적 협력조차 미국의 승인을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을 절대화한 결과, 남북협력은 구호에 그쳤고 실질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9년 새해 첫날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제안했을 때조차, 문재인 정부는 ‘국제 공조’라는 명분 뒤에 숨었다. 북한은 이를 남측의 소극성과 자기 검열의 산물로 간주하고 실망감을 표출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미동맹 절대주의’가 남긴 유산
문재인 정부는 ‘운전자론’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미국의 입장을 복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과 북한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에 대한 철회 불가, 전시작전권 환수 유보, 북한을 위협하는 한미연합훈련 지속 승인 등은 미국의 대북 대중 적대 전략에 대한 종속을 드러냈고, 이러한 구조는 문재인 정권의 업보로 탄생한 윤석열 정권이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직진하는 데 제도적 장애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이 매달렸던 한미일 3각 동맹은 한미동맹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굴절과 연장선상에 있다. 대외적 균형자론과 내부의 대미종속 사이의 괴리가 만들어낸 결과다.
김정은의 2019년 신년사: 제안과 무응답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제안했다. 전제조건 없이 당장이라도 손잡고 재가동하자는 그의 의지는, 평화가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후속 실무조치도 취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국의 제재 우려’와 ‘국제사회와의 공조’라는 이유로,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북한의 실망은 커졌고, 이후의 대남 담화들은 갈수록 신랄해졌다. 신뢰는 무너졌고, 남북 대화의 공간은 점점 더 협소해졌다.
멜리아 호텔에서의 한밤 기자회견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인 밤 11시 30분경, 김정은 위원장이 머물렀던 멜리아 호텔 로비에서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는 당초 예정에 없던 급작스러운 회견이었다.
리용호 외무상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2016~2017년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중 민수 경제와 민생에 관련된 일부 조항의 해제를 요구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식 접근법이 회담 결렬의 원인이며, 북한은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를 대가로 한 제한적 제재 완화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최선희 제1부상은 리용호의 발언을 보완하며, “미국은 황금 같은 기회를 잃었다”고 강조하며, 회담 결렬의 전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제재 완화를 원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고 밝히며 회담 결렬의 책임이 북한 측에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국 정부는 어떤 입장도 내지 못했다.
스톡홀름 회담 결렬, 북미·남북 관계 동시 종료의 신호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인근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은 하노이 결렬 이후 처음 재개된 공식 대화의 장이었다. 당시 회담은 양측 모두 '새로운 계산법'에 따른 대화를 예고하며 재개의 의미를 강조했기에, 일각에서는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담은 불과 8시간 만에 결렬되었고, 북한은 협상장을 떠나면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북측 대표는 “미국이 빈손으로 나왔다”며, “새로운 계산법은커녕, 낡은 입장만 되풀이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미국이 적대정책 철회를 말로만 하고 행동이 없다면 어떤 협상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담 이후, 미국은 남북 간 독자적 협력·접촉에 대해서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제동을 걸었다.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철도 연결 사업, 보건의료·산림 협력 등의 인도주의적 교류도 미국의 대북제재 틀 안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 틀 내에서의 남북협력마저도 '승인 대상'으로 간주했고,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을 사실상 없애 버렸다.
김여정 담화: “중재자 흉내 그만둬라”
이때부터 북한 역시 문재인 정부를 더 이상 협상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명확히 했다. 2020년 6월, 북한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며 "남조선 당국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이 일련의 사건은 단순한 물리적 파괴를 넘어, 2018~2019년 남북 화해 국면이 구조적으로 종료되었음을 상징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은 마지막 남은 대화의 불씨마저 꺼뜨린 순간이었고, 이후 한국 정부는 어떤 외교적 개입도 실현하지 못한 채, 주변화된 '관찰자'의 위치로 밀려났다.
김여정 담화: “중재자 흉내는 집어치워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은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여러 차례 공식 담화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2020년 6월 김여정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존재 의의를 문제 삼으며 “입만 열면 평화 타령을 외우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눈치만 보고 행동하지 않는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흉내는 집어치우라”고 비판했다.
북한이 한국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며,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무력화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예고한 것이었다. 실제로 담화가 발표된 직후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단절했고, 이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다. 이 일련의 행동은 김여정 담화에서 예고한 “쓸모없는 연락기구는 파괴되어야 마땅하다”는 경고의 실행이었다.
2021년에도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연합군사훈련 관련 발언을 겨냥해 “전쟁연습을 중단하겠다는 말만 하고, 실천은 없다”고 비판했다. 김여정은 “앞에서는 민족의 평화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군사적 적대 행위를 감행한다면, 두 얼굴의 기만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판은 단순한 감정적 분출이 아니라, 북한의 외교 전략상 남한 정부를 ‘자율적 협상 주체’로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명이었다. 북한은 이러한 메시지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중재자 혹은 당사자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이후로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만을 모색하는 노선을 취했다.
결론: 극복은 구호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결주의이고, 문재인 정부의 평화정책은 비주체적 선언주의였다. 양측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후퇴시켰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실패를 공유한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전환을 원한다면, 단순한 선 긋기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해부하고 교훈을 실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대북정책의 전환을 말한다면, 그 출발점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대외정책의 근본적 태도 전환이어야 한다. 특히, 과거 진보정부조차 벗어나지 못했던 맹목적 한미동맹 신화와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를 극복하지 않는 한, 실질적 평화는 도달할 수 없다. ‘운전자론’이라는 표현 뒤에 감춰졌던 비주체성, 미국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행동반경을 좁힌 외교는 진보정권마저 제자리에 머물게 만들었다.
이제는 한미동맹을 맹종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남북문제를 민족 내부의 자율적 문제로 접근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승인 여부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주체적 외교’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평화’가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선언이 아니라 결단, 전략이 아니라 주체, 구호가 아니라 한미동맹으로부터의 독립과 탈종속의 외교노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대주의와 자기 검열을 벗어나는 용기, 바로 그것이 이 정부가 진정한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