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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형의 에너지 꽈당 | ⑥ 기술, 철학, 지역…한국형 에너지 전환의 3축

최종 수정일: 6월 23일

2025-06-20 이순형

"한국형 에너지 전환은 ‘지역’, ‘기술’, ‘철학’이라는 세 기둥 위에서 다시 짜야 한다. 이걸 빠뜨리면, 아무리 재생에너지 비중이 올라가도, 진짜 전환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양적 전환’만 있을 뿐, ‘질적 전환’은 시작도 못했다. 세 가지를 중심에 두고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발전소 몇 개 더 짓는 게 아니다. 그건 시작일 뿐이고, 진짜 전환은 철학과 기술, 그리고 지역에서 완성된다."


이순형 교수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에너지안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인 전기기술사이다. 전력계통 운영과 신재생에너지 접속 문제, 분산형 전원 기술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주도해 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과제인 ‘영농형 태양광 발전 표준모델 실증’ 연구의 책임자로서 농촌 기반 에너지 전환의 현장 모델을 설계했다. 2020년 은탑산업훈장, 2024년 전라남도지사 표창과 대한전기학회 춘계학술대회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대표 강의는 ‘전력계통’, ‘에너지변환공학’, ‘신재생에너지공학’ 등이며, 저서로는 『신재생에너지공학』과 『계통연계기술』 등이 있다. 전라남도 정책자문위원회 전략산업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지역 기반 에너지 정책의 실용화와 대중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연재 기사


한국형 에너지 전환: 지역·기술·철학의 3축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신재생을 몇 GW 설치하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태양광 패널을 깔고 풍력 터빈을 세우는 것을 넘어선다. 에너지 전환의 본질은 철학이고, 기술이고, 지역이다. 이 세 가지가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그게 빠지면, 아무리 많이 설치해도, 아무리 큰 예산을 써도, 결국 실패한다.


대규모 전력 소비처를 발전소 옆에 붙여야 한다 분산형 수요지


우리는 지금까지 에너지 전환을 너무 ‘공급’ 위주로만 접근했다. 몇 GW를 설치했는지가 성과의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의 본질은 '소비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전기를 생산한 다음 어딘가에 보내서 쓰는 게 아니라, 전기를 쓸 곳을 그 옆에 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게 바로 ‘분산형 수요지’ 개념이다.


그동안 발전만 해 왔다. 신재생은 분산형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발전소만 지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안 해상풍력이다. 8.2GW를 한 곳에 짓는다고 한다. 원전 8기 규모다. 이게 어떻게 분산형인가? 발전은 분산형이 아니라, 오히려 더 중앙집중형으로 가고 있다. 그 많은 전기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송전선도 없고, 수요지도 없다.


그래서 수요지를 같이 설계해야 한다. RE100 공단, 데이터센터, 해수담수화 시설, 수소 생산 시설 같은 고정적이고 대규모 전력 소비처를 발전소 옆에 붙여야 한다. 그래야 계통 부담도 줄고, 전력 낭비도 막고, 진짜 지역 분산형 모델이 된다. 지금껏 발전만 해 왔는데, 정작 어디에서 쓸지는 빠져 있었다.


기술 없는 정책은 실패한다 무효전력 보상장치, ESS, DLR, 전압 제어, 그리드포밍기술, 직류계통 등


기술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출력제한을 해소하려면 무효전력 보상장치, ESS, DLR, 전압 제어, 그리드포밍기술, 직류계통 같은 기술들이 필수적이다. 이걸 모르면 정책도 설계 못한다. 기술 없이 정책을 짜니까, 맨날 송전선 얘기만 나온다. 기술 기반 없이 구호만 있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철학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은 국가 인프라 설계다

철학도 중요하다. 지금은 ‘전기 많이 쓰는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전기차로 바꾼다고 해서 탄소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전체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효율을 높이고, 절약하고,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런데 효율은 제쳐 두고, 전기차 몇 대 보급했는지가 목표다. 이건 전환이 아니다.


또 철학이 없으니까, 정책이 표류한다. 구호만 넘쳐 왔다. ‘1.5도’, ‘2050 탄소중립’, ‘그린뉴딜’, ‘블루이코노미’. 그 안에 어떤 기술이 필요하고, 어떤 경로로 갈 것인지, 어떤 지역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 설계가 없었다. 그냥 포스터 붙이고, 간판 걸고, 그게 정책이 돼버렸다.


에너지 전환은 ‘국가 인프라 설계’다. 도로나 철도처럼,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 그동안 임기 내 성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5년 안에 뭐가 보일지를 따지고 있으니, 장기적 구조 전환은 뒷전이었다. 계통망 설계는 몇십 년을 보고 해야 하는데, 몇 년 단위의 예산 싸움으로 끝나면 되겠는가.


지역마다 특화된 모델을 세우자 자원, 수요, 기술 여건에 따라 지역 중심 에너지 전환


지역도 중요하다. 해 왔듯이 서울 중심, 수도권 중심으로는 에너지 전환이 안 된다. 지역마다 자원도 다르고, 수요도 다르고, 기술 여건도 다르다. 그러니까 지역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전북은 ESS, 전남은 해상풍력, 경남은 수소, 이런 식으로 특화된 모델이 나와야 한다.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정한 목표만 내려보내는 식으로는 안 된다. 이제 지역을 그저 할당량만 채우는 역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한국형 에너지 전환은 ‘지역’, ‘기술’, ‘철학’이라는 세 기둥 위에서 다시 짜야 한다. 이걸 빠뜨리면, 아무리 재생에너지 비중이 올라가도, 진짜 전환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양적 전환’만 있을 뿐, ‘질적 전환’은 시작도 못했다. 세 가지를 중심에 두고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발전소 몇 개 더 짓는 게 아니다. 그건 시작일 뿐이고, 진짜 전환은 철학과 기술, 그리고 지역에서 완성된다.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다,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을 돌아보며


정책은 기술적 현실 위에서 설계되어야

에너지 정책은 기술의 문제이자, 철학의 문제다. 그동안 한국의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은 철학이 아니라 정치에 휘둘려 왔다. "1.5도니까 블루이코노미 하자"는 식의 구호는 과학도 아니고 정책도 아니다. 이게 한국 에너지 정책이 처한 현실이다.


정책은 기술적 현실과 철학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 기술자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거기에 정치가가 책임을 지는 구조여야 한다. 그런데 정반대였다. 정치가가 구호를 먼저 던지고, 기술자는 그걸 따라가느라 허덕였다. 그렇게 되면 정책이 아니라, 캠페인이 된다.


정책은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정책은 '이게 맞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태양광 중심으로 가겠다', '우리는 원전을 기저로 하겠다', '우리는 수요처 중심의 분산형 전환을 하겠다'는 식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인기 있는 키워드만 나열되어 왔다. 그럴듯한 단어가 정책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그런 검토는 없었다.


“타이어가 미래인지, 말발굽이 미래인지, 이걸 결정하는 게 정책이다.” 이 말은 내가 늘 강조하는 대목이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지금 당장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책은 그 방향성을 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타이어가 맞다고 믿으면, 그에 맞춰 도로를 깔고 차량 구조를 바꾸고 산업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이전에 논의를 보면, 타이어 얘기하다 말발굽 얘기 나오고, 또 거기다 덧붙여서 하이브리드니 수소니 탄소중립이니 다 섞여 나왔다. 아무런 철학도 구조도 없이, 말만 많았다.


정책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선택’이다.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정책에는 항상 자원이 한정돼 있고, 기술적 제약이 있다. 그 제약 속에서 최적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모든 걸 다 하려 하면 안 된다. 어떤 것도 제대로 안 될 수 있다.


이전 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로드맵은 목표 수치만 가득하다. 2030년까지 몇 GW, 2050년까지 몇 %, 그 숫자가 정책의 전부다. 그러나 그 안에 기술 검토는 없었다. 실제로 가능한가, 경제성이 있는가, 계통이 뒷받침되는가, 수요처는 있는가, 그런 질문은 생략되어 왔다.


기술자, 계통 전문가, 전력공학자가 정책 설계의 중심에 서야

또 하나, 정책은 누가 만드는가의 문제도 있다. 현재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은 전문가가 배제돼 있다. 기술자, 계통 전문가, 전력공학자가 정책 설계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전기와 계통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을 짰다. 환경단체, 시민단체, 정치권이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기술자는 따라가는 구조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정책이 정치화되면, 정책의 일관성이 무너진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방향이 달라지고, 이미 설계된 시스템이 중단된다. 에너지는 수십 년의 시계로 봐야 하는 인프라 산업이다. 임기 5년의 정치 논리에 따라 갈지자를 걸으면, 국민도 산업도 혼란스럽다.


기술과 현장을 중심에 두고, 합의와 책임이 쌓여야

필요한 건 구호가 아니라, 철학이다. ‘왜 전환해야 하는가’, ‘어떤 기술에 기반해야 하는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써도, 아무리 많은 설비를 깔아도, 진짜 전환은 오지 않는다.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철학이다. 기술자와 현장의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그 위에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책임이 쌓여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정책이 되고, 그 정책이 결국 에너지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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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Jun 23

임기 5년의 정치 논리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에너지전환 정책 일관성이 유지 될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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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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