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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여자 박소연의 러브레터|쑬루세(Chthulucene)에서 함께 살기

최종 수정일: 4월 17일


 

박소연 2024-03-02


연세대 인류학과 졸업. 서울대 지리학과 석사과정에서 정치생태학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정치활동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크다. 복잡한 논의를 통해 해답을 찾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스물여섯 살 '지구여자'다





인류세(Anthropocene), 인간의 강력한 활동이 지층에 새겨지다

 

현대 사회는 전례 없는 전지구적 생태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며, 1990년대부터 이러한 변화의 위험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대표적 지표인 기후는 이미 산업화 이전의 기준선보다 1℃ 이상 높아져 있으며, 생물다양성 또한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불릴 만한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특히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지질시대 용어를 통해 이러한 변화에 대해 진단한다. 인류세는 2000년 대기화학자 Paul J. Crutzen에 의해 제안되었고, 명확한 인류세의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본래 2024년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 명칭의 공식적 선포가 계획되어 있었으나, 지난 3월 5일 국제지질학연합의 4기 층서소위원회에서 지질학적 사건의 축적 및 시작 시기 합의의 부족으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인류세’라는 용어는 학계 및 담론에서 여전히 상용되고 있다. 인간의 활동이 지층에 새겨질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용어는, 커다란 지구적 힘으로서 인류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리고 이 명칭은 단순히 현상을 분석하는 과학적 개념이기보다는 실천적 개념으로서, 분명 기존의 사고를 벗어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비판들이 ‘인류세’라는 호명 기저의 인간 중심주의를 향한다. 인간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언어 아래에서, 인류세 위기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힘도, 과연 우리 인간에게만 있을까? 방향을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문제는 해결될까? 혹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사태는 바뀌지 않는 것일까?

 

쑬루세(Chthulucene),  시대의 주인공을 인간에서, '대지의 존재들 전부'로 바꾸다


세계적인 여성주의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인류세를 대체할 언어로 ‘쑬루세(Chthulucene)’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존재들 모두에게 지구를 되돌려준다. ‘쑬루세’라는 단어의 뿌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과 지옥의 신 사이에서 태어난 크토니오스의 이름에서 따온 ‘크톤khthôn’(대지)과 ‘카이노스kainos’(시작의 시간, 새로움)의 합성어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지구, 대지의 다양한 존재들과의 얽힘, 그리고 그 얽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과 함께 머무르며 살아가는 시공간으로서 현재의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로써 시대의 주인공은 인간에서 대지의 존재들 전부로 바뀐다. 이 시공간을 살아가는 대지의 존재(Chthonic ones)들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촉수적(촉수는 주로 무척추동물의 몸 앞부분에 있는 돌기 모양의 기관으로, 주로 감각기관으로 사용된다) 연결망을 만들어낸다.


(2011, Nasser Mufti의 도안) 해러웨이는 이러한 관계맺기의 모습을 ‘실뜨기 놀이(cat’s craddle)에 비유한다. 실뜨기는 파트너들끼리 패턴을 함께 만들고, 또 주고받는 놀이로, 누가 참여하는지에 따라 패턴이 바뀌기도 하고, 이전의 패턴에 따라 다음 패턴이 바뀌기도 하는 등 인간과 비인간 종들 간 역동적 연결을 표현한다.



해러웨이는 땅 속 식물의 뿌리와 줄기들, 곰팡이들, 거미, 문어, 자포동물, 편모가 있는 것들, 미생물 등의 촉수적 관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곤충들이 더듬이로 주변의 물질을 감지하고 그것에 반응하듯, 촉수적 사고는 관찰자와 객체가 독립적인 몸으로 분리되는 관계가 아닌, 자신이 위치하는 곳과 자신의 신체에 기반한 타자와의 접촉, 그리고 그것을 통한 감각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가 비인간적 존재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또 그러한 감각적 관계가 언제든 변화할 수 있음을 드러내 놓는다.

 

지구의 다양한 것에 촉감하고 응답하는 능력을 길러야


변화를 고민하는 우리는, 이러한 관계적 그림을 들여다봐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지구의 다양한 것들을 예민하게 촉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상대에 응답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반려동물의 신호에 반응하는 연습을 하는 것, 바이러스의 내부적 특징에만 집중하여 맞서 싸우고 박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비인간 모두의 다양한 신체, 환경과 관계 맺는 양상을 들여다보며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 도시에 살아가는 동등한 타자들을 파트너로서 마주하는 것 등이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야 할 관계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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