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기획 | 해양 위기 대응, 지방정부가 실질적 권한 가져야

2025-04-30 김성희 기자

한국의 해양정책은 정권 변화에 따라 조직이 흡수·분리되기를 반복하며 일관성을 잃어 왔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바다를 마주하는 지방정부는 권한과 예산 없이 해양쓰레기, 연안침식 등 긴급한 위기에 직면해도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 놓여 있다. 해양은 단지 개발 대상이 아닌 기후, 생태, 식량, 안보가 교차하는 전략적 공간이다. 지방정부가 정책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과 중앙정부와의 협력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해양보전의 출발점이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구조적 전환의 핵심이다.


지금이 분권 기반 해양정책으로 전환할 ‘골든타임’


지방정부 없이 해양정책은 실현될 수 없다. 해양은 기후, 생태, 식량, 에너지, 재난안전이 얽힌 복합적 공간이며, 그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이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 구조는 중앙정부가 계획을 설계하고, 지방정부는 이를 뒤따라 실행하는 수동적 조력자로 남겨져 있다. 이런 구조로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해양위기, 특히 기후재난과 생태계 붕괴, 해양쓰레기와 연안침식 같은 지역 기반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해양 문제는 지역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고, 피해도 지역이 먼저 감당해야 하는 만큼, 지방정부가 정책 설계와 대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방과 중앙이 정책 전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실질적 분권 체계다. 중앙은 국가적 기준과 제도적 틀을 제공하고, 지방은 지역의 특성과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 이원화된 권한 구조를 수평적 거버넌스로 전환하지 않으면, 현장과 행정의 간극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지방시대’를 말하는 정부라면, 해양 분야에서부터 그 의지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권한의 이전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대응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조적 전환의 출발점이다. 지금이 바로, 분권 기반 해양정책으로의 전환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정부 조직, 정권 따라 바뀐 해양수산부의 운명


한국 해양 정책의 역사는 곧 정권의 역사였다. 해양수산부의 역사는 정권에 따라 흡수되고 분리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통합과 분산의 시계추’를 타고 정권에 따라 생멸을 반복해 왔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부터 해양 관련 조직은 정권의 정치적 기조와 맞물려 반복적으로 분산과 통합, 신설과 폐지를 겪었다. 이승만 정부는 일본의 평화선 침범에 맞서 해양경찰 기능까지 포괄하는 ‘해무청’을 설치하며 강력한 해양영토 수호 의지를 보였고, 박정희 정부는 이를 해체한 뒤 수산과 해운을 각기 농림부와 교통부로 이관하며 기능을 분산시켰다​.


  • 김영삼 정부(1993~1998): 해양 관련 기능이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6년 해양수산부를 신설했다. 해운항만청, 수산청, 내무부 등 10개 부처의 기능을 통합해 강력한 중앙 해양행정체계를 마련한 최초의 시도였다.


  • 김대중 정부(1998~2003): 해양수산부 조직은 유지되었으나, IMF 구조조정 여파로 정원 감축을 겪고 기구와 인력이 대폭 축소되었다. 해양행정에 대한 성과 요구가 높아졌지만, 정책의 안정성과 장기 비전 확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 노무현 정부(2003~2008): 해양수산부는 독립 부처로 존속하며, 해양·수산 통합행정의 효율성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해양수산 행정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해양·수산 통합 행정의 효율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 이명박 정부(2008~2013): '실용정부'를 표방하며 해양수산부를 폐지하고, 기능을 농림수산식품부와 국토해양부 두 부처로 분산시켰다. 행정조직의 슬림화를 위한 조치였지만, 이로 인해 정책 추진의 일관성이 약화되었고 정책 간의 연계나 시너지 효과도 줄어들었다.


  • 박근혜 정부(2013~2017):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인해 2013년 해양수산부가 부활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안전과 통합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96년 해양수산부 설립 목적과 대동소이하게 부처로서의 위상과 기능이 회복되었다.


  • 문재인 정부(2017~2022): 해양수산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어촌뉴딜300 사업, 스마트양식 클러스터 등과 같은 지역 기반 해양정책이 강화되었다.


  • 윤석열 정부(2022~현재): 해양수산부는 유지되고 있으나, 여전히 지방정부와의 협력보다는 중앙 중심의 구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해양정책의 분권화에는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해양정책은 대통령의 정책 의지에 강하게 영향을 받으며, 전문 관료보다는 대통령과 그 측근의 판단이 정책 형성과 실행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특징이 있다. 해양수산행정 조직 개편도 기능 이관과 회복을 반복했을 뿐, 실질적인 업무 혁신보다는 기존 틀 안에서의 이동에 머물렀다. 정책은 여러 부처에 분산돼 전략성이 부족하고, 조직·예산·제도 측면에서도 뚜렷한 변화 없이 해양수산부만이 분주히 움직이는 구조가 반복되었다. 이처럼 정책이 국가의 중장기 전략이 아니라 정권 성향에 따라 흔들리는 행정 실험대에 오르내린 것은 단지 조직 개편의 문제를 넘어, 지역 주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든 셈이나 다름없다. 정책의 일관성 없이는 생태보전도, 어촌 경제도, 해양영토 수호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동해안의 무너지는 현장 대응력


강원도는 바다를 치우고 싶었다. 누군가는 떠밀려온 스티로폼, 조업 중 그물에 걸려 나온 폐어구, 갯바위에 낀 플라스틱 등 쓰레기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건져야 했다. 그런데 그 손이 멈춰 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해안도로에 해양쓰레기들이 쌓인 모습. 사진 강원일보
강원도 해안도로에 해양쓰레기들이 쌓인 모습. 사진 강원일보

강원 동해안을 비롯한 국내 해양쓰레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9~2023년 해양쓰레기 유형별 수거량’에 따르면, 2023년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13만1930톤으로 5년간 누적 수거량은 62만5727톤에 달했다. 특히 강원 동해안 지역은 2013년 4만6000톤에서 2023년 14만5000톤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하며, 그 피해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양양, 속초, 고성, 강릉, 동해, 삼척 등 관광객이 집중되는 해안도시들은 관광 성수기마다 폭증하는 쓰레기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양양군의 경우 여름철 하루 쓰레기 반입량이 최대 150톤에 이르지만, 노후화된 환경자원센터는 하루 21톤밖에 처리하지 못해, 하루 1015톤씩 미처리 쓰레기가 쌓이고 있다. 


쓰레기는 쌓이는데 예산과 권한은 줄었다


양양군은 연간 1500톤을 태백시로 보내고, 5000톤가량은 민간업체에 위탁해 처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특정 지자체만의 어려움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강릉시는 연간 약 7만 톤의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며 2023년 기준 133억 원 이상을 지출했고, 속초와 동해, 삼척 등도 각각 수천 톤의 쓰레기를 감당하며,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해양쓰레기 수거·처리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은 지속적으로 축소돼 왔다. 인양쓰레기 수매사업은 2004년부터 2019년까지 국비가 투입됐으나, 2020년부터 도비 전환으로 바뀌면서 국비 지원이 중단됐고, 해양쓰레기 집하장 운영사업도 2023년 일몰되었다. 지자체는 도비·시비 3:7 매칭 방식으로 쓰레기 문제를 떠안고 있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동해안 지자체들에겐 버거운 현실이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6개시군의회 의장협의회가 해양쓰레기 수거 및 처리 사업 국비 지원 확대 건의문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강원도민일보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6개시군의회 의장협의회가 해양쓰레기 수거 및 처리 사업 국비 지원 확대 건의문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강원도민일보

더욱이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 증가와 수온 상승은 해양쓰레기 유입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폐그물과 플라스틱은 연안 생태계를 교란하고 어자원을 파괴해 어민 생계에도 직격탄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해양정책은 여전히 중앙정부 중심이다. 해양쓰레기 수거에서부터 연안관리계획 수립, 보호구역 조정까지 모두 해양수산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작 ‘바다를 가장 잘 아는 곳’은 지방이지만, ‘정책의 열쇠’는 여전히 서울이 쥐고 있는 셈이다.


지방이양일괄법 실효성의 괴리


현재 지방분권이 국가 정책의 주요 기조로 자리 잡았지만, 수산업과 어촌 분야, 특히 해양정책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방이양일괄법」은 중앙정부가 수행하던 국가사무를 지방정부에 일괄 이양해, 지방정부를 단순한 집행기관이 아닌 정책 설계와 집행의 주체로 삼겠다는 의도로 도입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35개의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했지만, 연안 지자체들은 전국 평균보다 15.5% 낮은 재정자립도, 7.2% 낮은 재정자주도로 인해 실질적 대응력을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균형발전특별회계의 구조 개편 이후 포괄보조사업 예산은 2019년 2348억 원에서 2020년 487억 원으로 급감했고, 지원사업 수도 24개에서 2개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재정 여건이 열악한 군 단위 지자체들은 기존 사업 유지조차 어렵고, 공익성이 높은 어촌 정책은 지역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유는 자율적인 정책 기획 및 집행 경험 역량의 부재였다. 그동안 재정과 권한은 중앙에 있고, 자율적 사업 실행의 부재의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형식이 아닌 실질적 권한 부여가 필요해


지방이양 이후 자율성을 부여받았다고는 하나, 지방의 정책 기획 역량 부족은 예산이 생산 중심 인프라로 편중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자원 회복이나 친환경 양식, 안전검사 같은 공익사업 예산은 줄줄이 삭감되고 있다. 해양쓰레기 처리, 연안 침식 대응처럼 긴급한 해양문제에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예산 배정과 승인 절차를 기다려야 해,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강원특별자치도는 ‘강원특별법’을 통해 산림, 물, 군사, 농지 등 지역 특성에 맞춘 다양한 특례를 부여받고, 자율적 발전 정책을 추진하고자 출범했다. 그러나 발의된 137개 조항 중 실제 통과된 것은 84개에 불과하며, 수산업‧어촌 관련 특례는 해양심층수 취수해역 지정과 자유무역지역 지정에 관한 2건뿐이었다.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실현하려면, 실질적인 분권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무 이양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정책 수요에 맞춘 특례 발굴과 자료 기반 환류 체계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해양은 기후와 식량, 생태, 안보가 교차하는 전략 공간인 만큼, 지방이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 분권이 절실하다.


수산업, 어촌 분야 지자체 사업에 대한 지방분권 필요성 인식 정도.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 어촌 분야 지자체 사업에 대한 지방분권 필요성 인식 정도.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설문조사 결과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수산업·어촌 담당자들은 지방분권 필요성에 대해 평균 4.6점(7점 척도)을 부여했지만, 예산 확보 가능성에 대해서는 2.56점에 불과해 심각한 재정적 제약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정부는 책임지고 있지만, 그 책임을 실행할 여건은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현장의 시급함을 놓치는 중앙 중심 구조는 기후위기라는 장기적 리스크 앞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해양은 기후와 식량, 생태, 안보가 교차하는 전략 공간이며, 하루하루 변화하는 현장에서의 유연한 대응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권한만 넘기는 형식적 분권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스스로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의 정착이다.


해양분권, 일본은 어떻게 해냈나


기후위기, 해양오염, 자원경합의 시대에 해양은 이제 단지 개발 대상이 아닌, 복합적 생태·사회·정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인식 전환 속에서 세계는 중앙집중적 해양행정 체계를 넘어, 지역이 주도하는 해양 분권 거버넌스를 실현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분권개혁 단계.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일본의 지방분권개혁 단계.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우리와 가까운 나라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자. 일본은 1993년 ‘지방분권 추진 결의’를 채택하고, 1995년 ‘지방분권추진법’, 1999년 ‘지방분권일괄법’을 제정해 2000년부터 본격적인 지방분권 개혁에 착수했다. 이후 국고보조금 개혁, 세원이양, 교부세 개혁 등 이른바 ‘삼위일체 개혁’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2014년에는 수도권 일극 집중과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지방창생’ 정책도 발표되었다. 특히 일본은 지방정부가 제도 개선을 직접 제안할 수 있는 ‘제안모집 방식’을 도입해 상향식 분권 구조를 제도화했다. 같은 해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도입된 ‘연계협약 제도’는 별도의 법인 없이 지방공공단체 간 협약을 통해 사무 분담과 정책 연계가 가능하도록 하여 유연한 협력체계를 가능하게 했다. 자율통합위원회와 주민 통합건의권 제도도 마련되어 기초자치단체 간 자율적인 통합을 촉진하고 있으며,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례 제정과 벌칙 규정도 가능해 실효성이 높다. 또한 광역자치단체 조례가 기초단체 조례에 우선하지 않도록 하여, 상하 관계보다는 협력적 관계를 지향하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Comment

Rated 0 out of 5 stars.
No ratings yet

Add a rating
trokim
2일 전

일본의 지방분권일괄법을 제대로 벤치마킹 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Like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