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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⑧ 기후질병(2) | '기후 신체증상장애'는 사회적 질병

최종 수정일: 5일 전

2025-08-13 김복연 기자

기후변화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두통, 불면증 등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기후 신체증상장애'가 새로운 사회적 질병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



폭염이 길어지고, 산불·홍수 뉴스가 잦아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잠을 설치고, 두통·속쓰림 같은 몸의 신호가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를 의학에선 ‘신체증상장애’라고 명명하는데, 쉽게 말해 몸의 불편과 걱정이 서로 증폭되어 일상이 흔들리는 상태다. 중요한 것은 이를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시대적 스트레스로 인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체증상장애는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문화적인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이미지 ChatGPT5 프롬프터 박성미
신체증상장애는 생물학적, 심리적, 환경문화적인 요인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이미지 ChatGPT5 프롬프터 박성미

이러한 현상은 더 이상 개인의 '신경성'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새로운 질병의 서막일지 모른다. 바로 '기후 신체증상장애(Climate Somatic Symptom Disorder)'다. 마음의 고통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체증상장애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스트레스 요인과 만나 새로운 사회적 질병으로 진화하고 있다. 


병명 없는 고통, 신체증상장애


신체증상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는 심리적 고통이 원인이 되어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는 꾀병과 달리 환자가 실제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증상이 중복해서 나타날 경우 만성화될 가능성도 높다.


많은 환자들이 신체 증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 기저에 있는 심리적 문제를 간과하기 쉽다. 이 때문에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 쇼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체화의 배경에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 즉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심리적 특성이 있다고 본다. 표현되지 못한 분노, 슬픔, 불안이 몸의 언어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정식으로 등재된 질병인 만큼 의료보험 적용이 가능한 질환이므로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최근 이 '표현되지 못한 불안'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더는 북극곰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생태불안(Eco-anxiety)'과 '기후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미래 세대는 기후 재앙에 대한 무력감과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 미래에 대한 상실감을 동시에 느끼며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경험한다. 이러한 만성적인 불안은 마땅히 해소될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두통, 소화불량, 만성피로, 피부질환 등 다양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직접적인 기후 재난 피해자가 아니어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는다. 매일 쏟아지는 재난 뉴스와 비관적 전망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뇌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계속 자극한다. 결국 스스로 "내가 기후 문제 때문에 불안하구나"라고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몸은 정직하게 고통의 신호를 보내게 된다.


기후위기는 정신건강의 위기


이 현상은 개인의 상상이 아닌, 국제기구와 국내 기관이 데이터를 통해 경고하는 실재하는 위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기후변화와 정신건강(Climate Change and Mental Health)' 정책 브리핑을 통해 기후위기가 불안, 우울,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폭염, 홍수 같은 극한 기후를 직접 경험한 후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주요 증상 중 하나로 원인 모를 신체 통증이나 피로감 같은 신체화 반응이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역시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불안,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증거가 명백하다"고 밝혔다. 나아가 2029년 발표될 제7차 보고서에는 '기후 정신건강' 분야가 공식적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이는 기후변화가 정신을 넘어 신체까지 병들게 하는 '심리신체적(psychosomatic)' 위협임을 전 세계가 공인했음을 의미한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2019년 강원도 산불 재난 이후 피해 주민들의 정신건강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주민 다수가 불안, 우울과 함께 높은 비율의 불면증과 신체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재난이라는 급성 스트레스가 어떻게 구체적인 신체적 고통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국내의 중요한 사례다.


'건강한 불안'을 '희망의 근거'로 바꾸는 길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해야만 하는가? 전문가들은 오히려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수미 연구위원은 기후 불안이 긍정적, 부정적 기능을 모두 가지며, 한국인의 경우 적당한 불안이 오히려 환경친화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긍정적 작용을 한다고 분석했다.


핵심은 불안이 질병이 되는 임계점을 넘지 않는 것이다. 불안은 병든 지구에 사는 인간의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반응이다. 이 불안이라는 에너지를 무력감과 신체화로 소모시킬까, 아니면 긍정적 행동과 변화의 연료로 사용할까. 그 갈림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 없애기가 아니라, 불안을 길잡이로 삼아 건강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다음은 무력감을 넘어 희망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가이드다.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사진 환경운동연합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사진 환경운동연합

정보와 감정의 주인되기


압도적인 정보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하루 종일 재난 뉴스를 보는 '둠스크롤링(Doom-scrolling)'은 무력감만 키운다. 하루 중 특정 시간을 정해 신뢰할 정보를 얻고, 나머지 시간은 현실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파괴되는 환경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지 말고 온전히 인정하자. 그 감정들은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려 주는 중요한 신호이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


작지만 확실한 실천으로 '자기 효능감' 키우기


거대한 담론이 아닌, 내 손으로 즉시 바꿀 수 있는 작은 성공 경험이 '나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회복시킨다. 이번 달에는 '텀블러 매일 사용하기',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기'처럼 딱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실천해 보자. 작은 성공이 다음 행동을 위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 또한 '희생'이 아닌 '즐거운 경험'으로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고기를 못 먹는 날"이 아니라, "새로운 채소 레시피를 탐험하는 날"로 의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고립을 넘어 '함께'라는 백신 맞기


기후 불안의 가장 큰 적은 '고립감'과 '무력감'이다. 이를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은 '연결'과 '연대'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쓰레기를 줍거나, 동료들과 다회용기 사용을 약속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관심사가 비슷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지역의 환경 동호회에 참여해 "나만 이렇게 유난 떠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하니 더 쉽고 재미있구나"라는 연대감을 느끼는 것은 무력감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다.


기후 신체증상장애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서 병명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다. 우리는 이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대응이 탄소 감축이라는 물리적 과제를 넘어,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을 보살피고 공동체의 회복력을 키우는 과정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결국 그 안에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이 새로운 질병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음의 방역과 공동체 백신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파고를 함께 넘어갈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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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4일 전

신체증상장애에 대한 좀더 많은 임상 데이터가 필요해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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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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