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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기후재난리포트12 ③ 폭염 | '무더위'에서 ‘살인폭염’으로 변한 기후괴물

2025-07-10 김성희 기자

폭염은 더 이상 계절적 무더위가 아닌, 기후위기와 함께 도시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결합된 기후재난이다. 예측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단순한 예보를 넘어 경보부터 복지, 노동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폭염을 일상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응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시점이다.


기후위기가 만든 재난의 서막

미국에서 가장 더운 대도시 피닉스의 소방서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급증하자 2024년 열사병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얼음에 담그는 새로운 응급법을 시연하고 있다. "냉수 침수(cold-water immersion)"라고 알려진 이 기술을 피닉스 병원들은 필수 의료 절차로 채택하고 있다. 사진 https://weather.com/safety/heat/news/2024-06-05-heat-deaths-ice-immersion
미국에서 가장 더운 대도시 피닉스의 소방서는 폭염으로 사망자가 급증하자 2024년 열사병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얼음에 담그는 새로운 응급법을 시연하고 있다. "냉수 침수(cold-water immersion)"라고 알려진 이 기술을 피닉스 병원들은 필수 의료 절차로 채택하고 있다. 사진 https://weather.com/safety/heat/news/2024-06-05-heat-deaths-ice-immersion

7월 말 무렵에나 찾아왔던 폭염이 6월부터 대한민국을 덮쳤다. 유럽도 6월부터 살인적인 극한의 폭염에 갇혀 있다.  프랑스 남서부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40도 가까운 고온이 이어졌고, 스페인 우엘바는 46도를 기록해 "불구덩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공립학교 수천 곳이 휴교했고, 프랑스 파리 에펠탑은 정상부 입장이 통제되었으며, 몽블랑의 만년설이 해빙되는 장면도 목격됐다.벨기에 브뤼셀의 아토미움 등 관광명소가 내부가 달궈져 임시 폐쇄됐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실외 노동자 사망 사례가 보고됐다. WHO는 유럽 854개 도시 분석을 근거로 “매년 17만5000명 이상이 폭염으로 사망한다”며 단 4일 만에 4500명 넘는 초과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위는 더이상 계절의 일부가 아니다. 사라진 장마와 일찍 찾아온 무더위, 유럽의 극한 폭염은 우리가 살아가는 기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폭염은 기후위기가 불러온 구조적인 재난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 


산업화 이후, 가장 뜨거운 10년의 기록


인간이 만든 열은 결국 지구의 온도를 바꿔 놓았다. 산업화 이후 계속된 온실가스의 배출이 지구온난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2011~2020년 전 지구 지표면 온도가 1850~1900년 대비 평균 1.1℃ 상승했다고 분석하며, 이는 화석연료 중심의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 사용과 토지 이용 변화, 그리고 국가·지역·개인 간 불균등한 소비와 생산 패턴이 누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산업화 이전(1850-1900)기준 대비 185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간 지구 평균기온 편차. 사진 WMO
산업화 이전(1850-1900)기준 대비 1850년부터 2024년까지의 연간 지구 평균기온 편차. 사진 WMO

세계기상기구(WMO)도 2024년이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지표면 근처 연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5℃ ± 0.13℃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매달 기록적인 월별 평균기온이 경신되었으며, 2015~2024년이 전례 없는 폭염이 지속된 ‘가장 더운 10년’으로 남았다. WMO는 이러한 기록적 고온의 배경에 강력한 엘니뇨의 단기 영향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2023년 단계에서 기온이 사상 최고치 수준에 도달했음을 지적하며 구조적인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지구 평균온도가 상승할수록 폭염이 발생하는 임계점에 더 빨리 도달해 계절의 경계를 허물며, 봄과 초여름부터 극심한 고온이 일상화되는 새로운 폭염 시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열돔과 블로킹이 만든 뜨거운 공기 감옥


폭염이 단발적인 무더위를 넘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재난으로 변모하는 배경에는 ‘열돔(Heat Dome)’과 ‘블로킹(Blocking)’ 같은 대기의 특이한 기상 패턴이 있다. 

열돔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나타내고 있다. 사진 기상청
열돔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나타내고 있다. 사진 기상청

열돔(Heat Dome)은 뚜껑이나 모자로 덮은 것처럼 대기가 뜨거운 공기를 가두어 극심한 열을 발생시키는 기상현상이다. 상층 대기의 강력한 고기압이 한 지역을 오랫동안 덮치며 공기를 하강·압축가열해 지표면의 온도를 급격히 높이고, 구름 생성을 억제해 강한 일사량을 그대로 흡수하게 만든다. 낮에는 기온이 극단적으로 치솟고 밤에도 열이 대기 중에 갇혀 식지 않아 열대야가 지속되며, 이런 상태가 며칠에서 수 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캐나다와 미국 북서부를 강타한 열돔 현상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리튼에서 49.6℃라는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마을이 화재로 전소하며 수백 명이 열사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블로킹 현상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사진 뉴닉
블로킹 현상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사진 뉴닉

블로킹(Blocking) 커다란 고기압이 공기의 흐름을 완전히 막아섰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온난화로 인해 제트기류가 약화·곡류하면서 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되는 현상으로, 차가운 공기의 유입을 차단해 열돔을 장기화하고 고착화시킨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러시아 폭염은 한 달 넘게 블로킹 고기압이 동유럽 상공을 가로막아 모스크바 기온이 평년보다 5~10℃ 높아지고 대형 산불과 스모그로 5만 명 이상이 조기 사망했다. 2018년 북유럽 폭염도 블로킹으로 인해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극권 지역까지 30℃를 넘나들며 산불과 농업 피해가 속출했다.


이처럼 열돔과 블로킹은 서로를 강화하며 폭염을 한두 주가 아닌 한 달 이상 지속되게 만들어 인명 피해, 농업·산업 차질, 에너지 수요 급증을 동반한 복합 재난으로 진화시키며, 기후위기가 이러한 패턴의 발생 빈도와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이 과학자들의 공통된 경고다.


뜨거워진 바다, 폭염을 앞당기다


폭염을 조기에 불러오고 그 강도를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핵심 요인은 바다다. 해양은 지구가 흡수한 열의 90% 이상을 저장하는 거대한 에너지 저장고로, 이 열이 대기로 방출되며 지표 온도와 대기 불안정을 높인다. WMO에 따르면 해양 열함량은 2024년까지 8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지난 20년간의 증가 속도는 그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빨라졌다고 경고했다. 따뜻해진 바다는 수증기 방출을 늘려 강력한 온실효과를 유발하고,구름 형성과 비의 패턴을 변화시키며 대규모 기상 시스템을 교란한다. 특히 엘니뇨와 같은 해양-대기 상호작용은 아열대 고기압대를 강화시키거나 북상시켜 열돔과 블로킹 같은 고온 패턴을 유지시킨다. 실제로 2023~2024년 전례 없는 엘니뇨로 전 세계 각지에서 장기간 폭염이 이어졌고, 한 지역에서는 기온이 50도를 넘으며 수백 명의 순례자가 목숨을 잃었다. 과학자들은 해양 온난화가 폭염의 시기와 범위를 바꾸고 있으며,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연속폭염’ 67회, 247개국 모두에서 확인된 ‘폭염 증가’


폭염은 더 이상 단순한 계절적 무더위가 아니라, 기후변화가 직접적으로 증폭시키는 재난으로 규명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클라이밋센트럴이 적십자적신월 기후센터, 세계기상특성(WWA)과 공동으로 실시한 글로벌 분석에 따르면, 1991~2020년 기온 분포에서 상위 10%를 기준으로 전 세계 247개국의 폭염일수를 평가한 결과, 지난 1년 동안 3일 이상 이어진 ‘연속 폭염’이 전 세계에서 67회나 발생했으며, 전반적인 폭염일수는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예상되는 수준을 크게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같은 기간 76일이 폭염일로 집계되었는데,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64일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됐다. 보고서는 한국의 평균기온이 30년 평균 대비 1.2℃ 상승했음을 말하며, 이는 기후변화가 폭염의 시기와 빈도를 바꿔 놓았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특히 분석 대상인 247개국 모두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일수가 늘어났으며, 195개국에서는 폭염일수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폭염일수가 30일 이상 늘어난 국가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40억 명에 달했다.


연구진은 폭염이 홍수나 태풍보다도 치명적인 기상이변이라며, 최근 수년간의 극심한 폭염은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발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은밀하고 치명적인 재난 ‘폭염’


국내 재해연보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폭염으로 인한 연평균 인명피해는 36명으로, 같은 기간 호우(8.2명)나 태풍(3.9명)보다 월등히 높아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로 꼽힌다. 폭염의 피해는 단순히 인명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가축과 어류의 집단 폐사, 농작물 고사와 수확량 감소, 타이어 폭발, 도로 포장 파손과 기차 선로 변형 같은 교통 안전 문제를 유발한다. 또한 전력 사용 급증으로 인한 전력망 과부하, 산업 현장의 휴·폐업 손실 등 경제 전반에도 충격을 준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폭염일수의 증가가 강수일수 감소로 이어져 가뭄을 심화시키고, 메마른 대기와 토양은 산불 발생 위험을 높이는 연쇄 효과도 있다. 실제로 2022~2023년 유럽에서는 여름철 산불이 대규모로 발생했는데, 연구 결과 고온 현상이 산불 발생을 촉진했다는 분석이 제시되었다.


이처럼 폭염은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지만, 태풍이나 호우처럼 경보가 비교적 명확한 재난과 달리, 그 발생 시기와 주기가 뚜렷하지 않아 대응이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폭염은 은밀하게 사회 전반을 마비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각국의 정교해진 폭염 경보 시스템


폭염이 일상적인 재난으로 자리 잡으면서 각국은 경보 체계를 정교화하고 있다. 미국은 NOAA가 열지수와 야간 최저기온을 기준으로 폭염 특보를 4단계로 나누며, 최근에는 24시간 열 위험을 평가하는 5단계 등급제(Heat Risk)를 시험 운영한다. 일본은 기온 기준의 고온주의정보와 WBGT(습구흑구온도)를 활용한 열중증 예방정보를 병행해 5단계로 세분화한다.


한국도 일 최고기온뿐 아니라, 체감온도와 야간 최저기온을 반영한 특보와 영향 예보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23년부터는 인체 건강 영향을 고려한 폭염위험도 예측기술이 시험 도입되었으며, 기상청은 기존 수치예보모델에 인공지능(AI) 기반 보정기술을 접목해 지역 맞춤형 예보 정밀도 향상을 추진 중이다. 기상청의 예측은 단기(3일 이내), 중기(3~10일), 장기(3개월 이상)로 나뉘어 운영되며,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과 기온·습도 등을 종합한 체감온도 예측도 병행된다.


폭염 예보가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예측 기술은 고해상도 모델과 인공지능 보정 기법의 발전으로 정밀도를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국지적 기후 특성과 도시 열섬 현상, 장기 예측의 불확실성 등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단순히 ‘더울 것’이라는 정보를 넘어, ‘누가, 어디서, 어떻게 위험한가’를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위험 중심 예측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선 기상청 단독의 기술 고도화뿐 아니라, 보건·복지·노동 등 유관 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통합형 조기경보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세분화된 폭염 발생 데이터와 실시간 대응 매뉴얼이 연동된다면, 고위험군의 사망 예방은 물론 농업 피해, 전력망 불안, 노동 생산성 저하 등 사회·경제적 손실 역시 줄일 수 있다. 폭염은 더 이상 견디는 문제가 아니다. 정확한 예측과 실질적 대응이 연결될 때,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의 생존 역량을 갖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폭염 시대의 우리의 '생존 전략'


폭염은 이미 시작된 미래다. 여름은 길어지고, 도시는 식지 않으며, 해가 저물어도 열기는 빠지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을 바꿔 놓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 시스템은 폭염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간주한 채, 대응보다는 견디기를 요구한다. 이제는 폭염을 재난으로 대하는 패러다임 전환,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 기반 대응, 도시와 사회의 적응력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더위는 자연의 현상이지만, 그 치명성은 인간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뜨거워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이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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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3시간 전

폭염을 기후위기의 얼굴이라고들 하는데...기후괴물이라는 표현이 더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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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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