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③ 폭염 | 폭염은 왜 이리 불평등한가
- Dhandhan Kim
- 7월 9일
- 3분 분량
2025-07-09 김복연 기자
기후변화로 심각해진 폭염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인도의 SEWA가 실험한 '폭염 파라메트릭 보험'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혁신적인 제도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일을 멈출 권리
인도의 자영여성노동자연합(Self Employed Women's Association, SEWA)은 지난 2년간 아주 독특한 보험을 실험했다. 기후위기로 심화된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름은 ‘폭염 파라메트릭 보험’. 원리는 간단하다. 온도가 40도를 넘는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되면 별도의 피해 증명 절차 없이 바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공식 기상청 데이터만 있으면 조건은 충족된다.
SEWA는 보험사·국제재단·기후리스크 전문가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대상은 노점상, 가사노동자, 재활용노동자, 농업 임노동자 같은 인도의 비공식 여성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사회보험망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구조로 폭염 경보가 내려도 일을 멈출 수 없다. 멈추면 바로 소득이 ‘0’이 된다.
2024년 5월 인도 북부에서 폭염이 심화되자 이 보험은 5만 명 넘는 여성노동자에게 자동으로 지급됐다. 평균 400루피(약 5달러) 정도의 현금이 며칠 내 은행계좌로 입금됐다. SEWA와 스위스재보험(Swiss Re),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 등이 협력한 이 사업은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소득 손실을 직접 보전하려는 세계적 첫 시도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보험의 핵심은 “오늘은 나가지 마라”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일을 멈출 권리를 실질적으로 갖게 만드는 장치다. 단순히 보험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중단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한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전통적 손해보험과 달리, 피해 심사 없이 기상조건만 충족되면 자동 지급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피해가 너무 광범위하고 증명도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설계다. 실제로 SEWA는 지역별로 다른 온도 임계값(40℃ 이상 이틀 연속 등)을 설정해 지역별 기후 리스크를 세밀하게 반영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시사하는 것은 단순히 “보험기술이 똑똑하다”는 차원이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이런 보험이 필요한가? 왜 이런 사람들이 위험한가?
폭염 피해는 누구를 겨누는가

폭염은 모든 사람을 덥게 만든다. 하지만 피해를 입히는 방식은 전혀 평등하지 않다. 노동자 중에서 폭염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공사장 인부, 배달·물류 기사, 농민, 환경미화원, 건설노동자, 비닐하우스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으로, 공통점은 야외나 반야외, 고온의 작업 환경에서 장시간 일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비정규직이나 일당제이거나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로 산업안전망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부는 매년 여름 “온열질환 예방 3대 기본수칙(물·그늘·휴식)”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70% 이상이 온열질환자가 발생한다.
비노동자 중에서는 누구인가. 독거노인, 장애인, 노숙인, 쪽방·비닐하우스 거주자, 만성질환자,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 등이다. 이들은 일하지 않아서 생존이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애초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다. 냉방시설이 없거나, 있어도 전기요금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이동이 제한되거나, 위험을 감지하고 피할 사회적 자원이 부족하다.
폭염이 겨누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회의 ‘가장 바깥’에 있는 층위에 집중된다. 기후변화가 단지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렇다면, 폭염은 왜 이런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폭염은 왜 이렇게 불평등한가

폭염은 물리적으로는 고온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노동을 중단할 수 없는 사람”과 “노동을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시험지다. 플랫폼 배달기사에게, 하루에 40도가 넘는 날씨는 ‘휴업’이 아니라 ‘수입 중단’을 의미한다. 농업 이주노동자에게 폭염은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에서 물 마실 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을 꼬박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계층화된 노동의 바닥에 그들이 놓여 있다. 누군가는 안전을 유지하며 냉방된 실내에서 근무를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야외노동을 멈출 권리조차 없다. 그리고 이 격차를 통해서 이윤과 상품이 만들어진다.
폭염을 만든 것도 같은 시스템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폭염이라는 재난 자체가 왜 심화되었는가? 기후변화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후변화는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 냈는가?
화석연료 기반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 개발주의, 저비용-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는 글로벌 분업 체계가 만들어 낸 것이다. 노동을 더 싸게, 더 빨리, 더 많이 쓰기 위해 산림을 없애고, 도시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었다. 즉, 폭염은 자연이 일으킨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산업과 자본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재난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가장 싸게 쓰인 노동자, 사회안전망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집중된다. 재난을 만들어 낸 시스템이 재난의 피해자를 선택하는 셈이다.
인도의 실험이 말하는 것
인도의 SEWA 폭염보험은 이런 구조를 정확히 겨냥했다. 이 보험이 혁신적인 이유는 “보험금 몇 루피가 나와서”가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 “오늘은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노동을 멈출 권리”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이것이 없으면, 폭염에 대한 모든 대응은 ‘얼음물 주겠다’, ‘선풍기 사주겠다’는 시혜적 차원에 머무른다. 정말 필요한 것은 노동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중단할 권리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권리다
폭염이 겨누는 사람들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불안정하고 저임금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비노동자 중에서는 사회의 안전망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결국 폭염에 취약한 사람들은 사회 시스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그리고 그 폭염을 심화시킨 기후변화 자체가, 이윤을 위해 노동을 계층화하고 자원을 불평등하게 배분해 온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렇다면 대응의 방향도 명확하다. 노동자에게는 폭염 속에서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비노동자에게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기후위기에 맞서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사회적 안전장치다.







폭염 파라메트릭 보험은 좋은 아이디어 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결국 기본소득사회로 가야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