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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그린피스 “중동발 위기의 본질은 전쟁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구조”

  • 1일 전
  • 4분 분량

2026-04-03 김사름 기자

그린피스는 지난 3월 2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중동 전쟁의 여파로 전력·수송·석유화학·물가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며, 이번 위기의 본질은 중동 정세 자체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경제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면 재설계와 수송 부문 탈화석연료 전환, 탈플라스틱 정책 강화 등 구조적 전환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성명서] 멈춰선 공장, 치솟는 물가 “범인은 중동 정세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시스템이다” 사진_그린피스
[성명서] 멈춰선 공장, 치솟는 물가 “범인은 중동 정세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시스템이다” 사진_그린피스

12차 전기본 재설계·수송 전환·탈플라스틱 전면 개편 촉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26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멈춰선 공장, 치솟는 물가의 범인은 중동 정세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시스템”이라며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면 재설계, 수송 부문 전환, 탈플라스틱 정책 재구성, 취약계층 직접 지원, 화석연료 의존 비용의 투명한 공개를 정부에 요구했다.


이번 성명은 트럼프-네타냐후의 대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위기, 카타르 LNG 공급 차질,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나프타 공급 불안 등으로 한국의 에너지·산업 시스템 전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그린피스는 “정부가 위기 관리에 머물 것이 아니라, 다음 위기가 오지 않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피스는 중동 전쟁 여파로 드러난 한국 경제의 충격을 두고, 문제의 본질은 지정학 자체가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전력과 수송, 석유화학, 생활물가까지 한꺼번에 흔들린 이번 사태는 특정 지역 리스크가 아니라 한국 경제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단지 국제정세 악화에 따른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수입 화석연료에 깊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 드러냈다고 그린피스는 분석했다.


전쟁이 드러낸 것은 에너지 안보의 허상


성명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4일 원유 관련 자원 안보 위기 ‘주의’ 경보에 따라 대응 체계를 가동했고, 석탄발전 운전 제약을 완화하는 한편 올해 6월 폐쇄 예정이던 석탄발전소 3기의 일정 재검토에 들어갔다. 같은 날 카타르에너지는 한국 등을 상대로 맺은 LNG 장기 공급 계약에 대해 공식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앞서 카타르 측은 이란 미사일 공습으로 LNG 생산 시설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린피스는 이를 두고 “장기 계약과 인프라가 있어도 물리적 공급 자체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화석연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공급선만 바꾼다고 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카타르 LNG 비중이 전체 수입의 일부에 불과하고 대체 도입선 확보가 가능하다는 정부 설명은 본질을 비껴간다”며 “공급처를 미국이나 호주로 바꿔도 LNG 가격 충격은 글로벌 시장을 통해 그대로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고 비판했다.


여수산단 멈추고, 물가 흔들리고


이번 위기의 충격은 전력 부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린피스는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나프타 공급이 막히면서 LG화학, 여천NCC 등 석유화학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거나 최소화했고, 가동률도 90% 수준에서 60%대로 떨어졌다고 짚었다.


해협 하나가 막히자 전력뿐 아니라 석유화학, 제조업, 수송, 생활물가까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이를 두고 “개별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화석연료 기반 경제 전체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특히 나프타 공급 차질이 에틸렌과 플라스틱 가격 급등, 비닐 등 생활물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적하며, 현재의 탈플라스틱 대책이 폐기물 관리에만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석유 기반 생산 구조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자원 안보 위기와 물가 불안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억눌린 요금, 쌓이는 공기업 부채


그린피스는 한국이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국제 LNG 가격과 전력도매가격이 급등했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했다. 그 결과 비용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기업 부채로 이전됐다는 것이다.


성명은 한전이 2022년 한 해 약 33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누적 총부채는 206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가스공사의 민수용 미수금도 약 14조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지금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결국 미래의 요금 인상이나 세금으로 돌아온다”며 “화석연료 의존 비용을 보이지 않게 미루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유류세 인하 반복은 전환 지연의 결과


수송 부문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그린피스는 정부가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연장 등으로 유가 급등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는 내연기관 중심 수송 체계를 유지하는 재정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사가 가격 상한 이하로 공급하면서 입는 손실을 국가가 보전하고, 유류세 인하 역시 반복 연장되면서 화석연료 의존 수송 시스템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전기차 전환의 경제적 유인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유가 위기 때마다 같은 처방을 반복하게 된다고 봤다.


그린피스는 “재생에너지 전환이 지연돼 석탄발전을 다시 돌리게 되는 구조와, 수송 전환이 지연돼 유류세 인하를 반복하는 구조는 닮아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의 다섯 가지 요구


그린피스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정부에 다섯 가지 조치를 요구했다.


우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에너지 안보 핵심 전략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목표를 실질적 이행 계획으로 담고, 석탄 퇴출분을 다시 LNG로 메우는 방식은 반복해선 안 된다고 했다.


둘째로는 수송 부문의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차 유지 비용을 지원하는 재정을 줄이고, 이를 전기차 보조금, 충전 인프라, 대중교통과 자전거 인프라 확충으로 재배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셋째로는 탈플라스틱 정책을 폐기물 관리 중심이 아니라 자원 안보 전략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유 기반 플라스틱 생산 감축과 재사용 의무화 같은 실효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로는 난방비, 주유비, 생활용품·식료품 가격 급등에 가장 취약한 저소득 가구를 직접 지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정 연료 소비를 보조하는 방식보다 민생지원금 등 가계에 직접 도달하는 소득 지원이 더 실효적이라는 주장이다.


다섯째로는 LNG 추가 도입 비용, 가스공사와 한전의 재무 영향, 향후 요금 인상 전망, LNG 인프라의 좌초자산 위험, 석유화학과 반도체 산업 피해 규모 등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람과 햇빛에는 불가항력 선언이 없다


그린피스는 이번 위기가 보여 준 현실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해협이 막히자 전기요금 불안이 커지고, 석유화학 공장이 멈추고, 플라스틱 가격과 주유비가 뛰었다는 것이다. 에너지에서 시작된 충격이 산업 전반을 관통해 결국 가정의 난방비와 장바구니 물가에 도달하는 구조가 바로 화석연료 의존 경제의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국내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는 전쟁이나 해상 봉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기차와 자전거는 국제 유가와 무관하게 움직이며, 재사용 시스템은 나프타 가격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린피스는 성명 말미에서 “바람과 햇빛에는 불가항력 선언이 없다”며 “정부는 이번 위기를 관리하는 데 그치지 말고, 다음 위기가 오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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