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돼지고기는 무쇠팬에 구워야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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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요리에 쓰이는 무쇠팬의 사용 경험을 시작으로 일상에서 철의 쓸모와 철에 관한 역사를 살펴본다. 철 1톤에 이산화탄소 1.83톤이 생산된다. 제철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 온실가스 문제의 해결 기술로 수소환원제철이 알려져 있고, 이는 개별 기업의 혁신에만 맡길 수 없다.
2025-12-12 김우성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최근 매일매일 울산 이야기쇼인 '매울쇼'에서 방송하고 있다.
“돼지고기가 맛이 없네.”
언제부터인지 돼지고기가 맛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 자체의 풍미가 약하고, 퍽퍽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부족한 맛을 보완하기 위해 매콤달콤, 단짠단짠 양념을 만드는 것은 주부 입장에서는 꽤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돼지고기는 잘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나날을 돼지고기와 서먹서먹한 관계로 지내던 중 우연히 무쇠팬을 만났습니다.
무겁고 투박한 무쇠팬(Cast Iron Skillet)을 뜨겁게 달구고 돼지고기를 얹으면 ‘치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고기 표면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시작됩니다. 가벼운 알루미늄팬 위에 차가운 돼지고기를 얹으면 순간적으로 팬의 온도가 뚝 떨어집니다. 고기를 맛있게 익히기 어렵습니다. 충분한 열 에너지를 보전할 수 있는 무거운 무쇠팬이 있어야 높은 온도에서 돼지고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무쇠팬에서 익힌 돼지고기는 겉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비계는 충분히 녹아 녹진한 지방의 맛을 냅니다. 그렇게 저는 잃어버린 돼지고기의 맛을 되찾았습니다.
애초에 벗겨질 코팅이 없는 무쇠팬은 팬 위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쓸 수 있고, 설거지할 때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도 됩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고기를 굽다가 바로 오븐에 집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조리가 끝난 고기를 식탁에 그대로 올려도 멋스럽습니다.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무쇠팬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철은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부엌의 많은 부분이 철로 만들어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스테인레스 팬과 냄비, 오븐과 가스레인지, 칼과 식기류, 서랍을 채운 많은 도구들, 매일 설거지할 때 쓰는 씽크대와 설거지 기계도 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일상에서 철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철로 만든 칼과 창을 들고 갑옷을 입고 전쟁터를 누비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철기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도구인 노트북, 스마트폰, 자동차와 지하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뼈대까지 모두 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포스코의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철은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철은 왜 이렇게 우리 삶 속에 깊이 녹아들어 있을까요? 철은 흔하고, 저렴하며, 튼튼하고, 가공하기 쉽습니다. 재료로서 모든 장점을 갖춘 현대 문명의 기반 그 자체입니다. 지각에서 네 번째로 풍부한 이 금속은 인류의 삶을 지탱하는 금속입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황금을 동경했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철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철과 함께 살아왔을까요?
기원전 1300년경 인류는 청동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세계적으로 주석이 부족해지면서 청동 생산이 어려워 졌습니다. 청동을 대체할 금속으로서 철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철은 청동보다 강하고, 저렴했기 때문에 빠르게 청동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더 강한 도구와 무기를 얻게 되었고, 더 많은 식량생산, 더 거대한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대문명은 철 위에 세워졌습니다. 19세기 말, 미국은 앤드루 카네기가 주도한 철강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세계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카네기는 ‘철강왕’으로 불리는데, 카네기가 생산한 강철이 현대 도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카네기는 피츠버그 근처에 거대하고 효율적인 제철소를 건설하고 강철의 생산공정 혁신을 통해 파격적인 생산 비용 절감에 성공했습니다. 카네기의 제철소는 대영제국 전체보다 더 많은 철강을 생산했으며, 미국을 세계 최고의 산업국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카네기의 철강을 바탕으로 밴더빌트는 미국 전역에 철도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철강산업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철은 곧 국력이며, 현대문명 그 자체
반면 철을 다루는데 실패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중국의 마오쩌둥은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대약진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의 전환을 위해 철강산업의 구축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마오쩌둥은 기계나 자본 대신 수억명의 인민이 직접 강철을 생산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전국의 마을마다 재래식 용광로를 설치하고 강철을 생산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인민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집에 있는 밥그릇과 숟가락, 농기구까지 용광로에 녹였습니다. 강철은 탄소의 함량이나 열처리 과정에 따라 물리적 성질이 크게 달라집니다. 제대로 된 설비가 갖춰진 제철소도 없고, 금속을 다루는 지식도 부족했던 인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철은 품질이 매우 떨어지는 불량품들이었습니다.
당에서 지시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저질 철 생산을 반복하면서 농기구는 사라지고, 농민의 일손은 부족해졌습니다. 농기구를 녹여 쓸모없는 쇳덩이를 만드는 동안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농업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이 시기에 발생한 대기근으로 약 3600만 명의 사람이 굶어죽었습니다.*** 대기근으로 인한 사망자 규모는 제1차 세계대전 희생자의 곱절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수년간 진행된 싸움의 결과지만 대기근은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 한 나라의 잘못된 정책에서 파생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입니다. 이처럼 철을 잘 다룬 나라는 세계 최강국이 되었고, 철을 잘못 다룬 나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철은 곧 국력이며, 현대문명 그 자체입니다.
철 생산에는 이산화탄소가 대량 배출된다
현대 문명의 토대인 철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배출된다는 점입니다. 철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Fe2O3)은 비교적 흔한 광물입니다. 땅에서 캐낸 철광석은 철과 산소와 결합한 상태인 붉은 돌덩이입니다. 여기에서 산소(O2)를 제거해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순수한 철(Fe)이 됩니다.
우리는 순수한 철을 얻기 위해 용광로에서 섭씨 1700도 이상의 온도로 철광석과 코크스(석탄을 가공한 연료)를 녹입니다. 코크스에서 나온 탄소가 철광석의 산소와 결합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을 화학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2Fe2O3+3C → 4Fe+3CO2 (산화철 + 탄소 → 철 + 이산화탄소)
강철 1톤에 이산화탄소 1.83톤 발생
철광석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겁게 용광로를 가열하는 과정에서도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또한 공장을 운영하고 기계를 작동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제철소에서 강철 1톤을 만들면 약 1.83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7~9%가 철강산업에서 배출되는 이유입니다. 2050년에 전 세계에서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철강은 28억톤입니다. 이 철강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생산한다면 50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함께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전기차를 타고 플라스틱을 줄여도 철을 생산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덮쳤고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침수됐습니다. 창사 49년만에 처음으로 포스코의 쇳물이 멈췄습니다. 철강산업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변해버린 기후가 철강산업을 멈췄습니다. 포스코는 2023년 기준 약 7197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순위로 국내 부동의 1위 기업입니다. 단일 기업이 대한민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역시 2927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습니다. 두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치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16.2%를 차지합니다.
이산화탄소 대신 물을 만든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기술혁신을 통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CO2) 대신 물(H2O)이 만들어집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입니다. 스웨덴의 HYBRIT 프로젝트는 2021년 세계 최초로 수소 환원 제철로 만든 강철을 출하했습니다. 포스코 또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수소환원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공장 운영에 필요한 전기를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미 RE100(재생에너지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많은 것처럼 철강회사들도 탄소배출량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앞으로는 철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 Carbon Capture & Storage)을 이용해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철을 생산해야 합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저렴한 석탄 대신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추가적인 생산 비용도 발생합니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도 상용화해야 합니다.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방식으로 철을 생산하기 위해 철강회사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시장은 더 비싼 철을 구입할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여러분이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비싸지만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철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업체 사장님이 저렴한 석탄으로 생산된 철을 이용해 원가를 낮추고 더 저렴한 상품을 판매한다면 여러분의 기업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생산 과정이 다르고 가격이 다르지만 최종 생산물인 철의 품질은 비슷합니다. 시장은 냉정하고 비싼 철은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별 기업의 혁신으로는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없다
개별기업의 혁신으로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혁신과 시장이 저탄소 제품을 선택하게 만드는 정책혁신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자유로운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조절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셀 수 없이 많은 규제 위에 존재합니다.
규제는 국가의 법과 정책일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합의일 수도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조별 과제라면, 우리는 인류 차원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탄소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고, 고탄소 제품을 비싸게 팔게 하는 규제 정책이 필요합니다. 소비자의 합의로 시장의 규칙을 바꿀 수 있을 때 공급자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면 선진국답게 탄소 배출을 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만드는’ 나라입니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철강까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지만 여전히 제조업 중심 국가입니다. 제조업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는 태생적으로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시 만난 돼지고기를 사랑합니다. 가끔 돼지고기의 쫄깃한 껍질과 고소한 지방이 몹시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쇠로 만든 도구가 가득한 주방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시작합니다. 주부는 철과 이별할 수 없습니다. 화석연료와 이별하고, 플라스틱과 이별하고, 전기와 이별하더라도 철과는 이별할 수 없습니다. 철은 부엌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의 뼈대이며, 현대문명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철과 이별할 수 없다면 철을 만드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목표한 바 대로 2050년에는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기를, 우리 사회 또한 탄소중립에 가까워지기를, 그 때는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돼지고기 요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이야르 반응: 식재료의 아미노산과 당이 섭씨 140~200도의 고온에서 갈색으로 익으면서 풍부한 맛과 향을 만드는 반응. 노릇노릇한 고기, 갈색 빵, 볶은 곡식 등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의 맛을 만드는 핵심적인 과정입니다. **롯지: 미국에서 주물(cast iron) 식기와 조리도구를 생산하는 브랜드입니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1958~1962) 시기, 대기근 사망자 수는 학자마다 추정치가 다릅니다. 최소 1500만에서 최대 45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출산 감소까지 합치면 인구 손실이 760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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