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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영남권, 4세대 산업단지 모델로

최종 수정일: 1일 전

2025-05-16 김성희 기자

영남권은 고탄소 산업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소·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재편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후 대응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환의 전략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RE100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산업정책으로, 지방정부와 기업의 공동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다.


경남 창원, 국내 최초 RE100 실증단지로 전환의 선두에 서다


창원 국가산단 전경 사진 경남도
창원 국가산단 전경 사진 경남도

2023년 6월, 창원국가산단이 국내 최초로 RE100 실증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며 재생에너지 기반 수출경쟁력 확보의 전초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6월 창원시 의창구 동전일반산업단지에 문을 연 '경남창원그린에너지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 경상남도, 창원시, SK에코플랜트를 비롯한 7개 기업·기관이 참여해 총 393억 원을 투입한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사업의 결과물이다. 이 사업은 연료전지(1.8MW), 태양광(2MW), 에너지저장장치(ESS 3MWh), 전기차 양방향 충방전 시스템(V2G 74kW) 등 다양한 분산형 전원과 통합 에너지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창원산단 내 다수 수출 중소·중견기업에 직접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단일 전력공급자가 한전 전력망을 이용해 외부의 복수 수요기업과 직접 PPA 계약을 맺은 국내 최초의 1 대 N 거래 구조의 사례이다. 폭스바겐 등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경한코리아, 태림산업, 한국NSK 등이 이 계약에 참여했으며, 공급 전기는 RE100 이행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 태양광 발전의 높은 단가(kWh당 160~180원)로 인해 기업들이 RE100 실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SK에코플랜트는 연료전지 운영 수익(전력거래 및 REC 판매)을 활용해 공급단가를 kWh당 140원 수준으로 낮춰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는 2023년 기준 한전의 산업용 평균 전기요금(134.22원/kWh)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현재 연료전지는 재생에너지로 인정되지 않아 직접 PPA 대상에서 제외되어, 천연가스 개질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연료전지 전력은 기업에 직접 공급되지 않고 전력거래소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20kW급 고체산화물수전해기(SOEC)를 도입하고, 그린수소 생산 실증운전을 진행 중이며, 향후 제주 실증사업에도 참여해 RE100 적합성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사례는 단순한 재생에너지 보급을 넘어, RE100 전주기 실증, 제도 한계 극복을 위한 기술 실험, 산업단지 맞춤형 가격 설계, 복수 기업 대상 전력 공급 등 다층적 구조의 혁신 모델을 보여 주며 향후 여타 산단으로의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산업부는 창원 외에도 반월시화, 구미, 여수, 대구성서 등 9개 주요 산업단지에서 유사한 신재생 발전 인프라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산업용 열수요, 온실가스 감축, 전기요금 부담이라는 3중의 현실을 반영해 분산에너지 기반의 복합 솔루션이 요구되는 만큼, 창원 모델은 RE100 이행과 탄소중립 전환의 기념비적 전환점으로 주목된다.


RE100이란 무엇인가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국제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의 비영리단체 더 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공동으로 시작했으며, 전 세계에서 약 4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RE100 가입 기업은 일정 시한까지 전력 사용의 100%를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하고, 매년 이행 수준을 보고해야 한다. 참여 기업에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BMW, IKEA, 도요타 등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자체 이행뿐 아니라 공급망 전반에도 동일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RE100의 영향력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자발적 선언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탈탄소화를 유도하는 실질적 기준이 되었고, 특히 유럽연합과 미국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ESG 공시 의무화 등 제도적 장치를 병행해 RE100을 법제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로 인해, RE100은 더 이상 환경 캠페인이 아닌 “탄소 없는 에너지 조달”이라는 경제 규범으로 자리잡았으며, RE100 이행 여부는 글로벌 거래의 참여권을 결정짓는 핵심 조건이 되고 있다.


산업단지, 국가경제의 엔진이자 탈탄소 전환의 시험대


대한민국의 산업단지는 단순한 생산시설 밀집 구역이 아니다. 국토의 1.4%에 불과한 면적(1447㎢)에 분포한 총 1257개 산업단지는 국내 제조업 생산과 수출의 약 66%, 고용의 약 50%를 담당한다. 그 중에서도 국가산업단지 47곳은 전체 생산과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기지로, 자동차·조선·기계·전자 등 수출 주력산업의 중심에 있다. 이처럼 산업단지는 한국 경제성장의 엔진이자 수출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산업단지는 동시에 대한민국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84%, 온실가스 배출의 약 78%를 차지하는 고탄소 공간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다배출 구조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와 맞물려 있으며, 이는 최근 들어 글로벌 공급망의 ‘탄소기준’과 충돌하고 있다. 특히 RE100, ESG, CBAM 등 글로벌 기업과 국가들이 요구하는 탄소규범이 사실상 거래의 필수조건(De facto 규제)으로 자리 잡으면서, 산업단지 중심의 제조업은 탄소중립 이행 여부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리는 기로에 놓였다.


영남권, 탈탄소 전환의 최대 시험지


영남권은 이러한 이중성과 기회가 공존하는 핵심 지역이다. 경상남도에는 207개의 산업단지가 운영 중이며, 이 중 116개는 일반산단, 81개는 농공단지, 나머지는 국가산단 및 도시첨단산단이다. 전체 산단 지정면적은 1억 3825만㎡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제조업 밀집 지역이다. 특히 창원시, 김해시, 양산시 등 3개 기초자치단체에만 경남 제조업 종사자의 66.5%가 집중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금속가공, 기계, 전자, 식품가공 등 에너지다소비 업종이 다수를 차지한다.

경상북도 역시 온실가스 고배출 지역이다. 2019년 기준 총 배출량은 7895만 톤CO₂eq로, 국가 전체의 11.3%를 차지하며 전국 5위 수준이다. 그중 에너지(산업·수송 등)와 산업공정 부문이 전체 직접배출의 91.6%를 차지해, 산업구조 자체가 고탄소 기반임을 보여준다. 구미, 포항, 경주 등지에는 철강·전자·기계 제조업이 밀집되어 있으며, 대다수가 중소기업이어서 RE100 이행을 위한 재정적·기술적 부담이 크다는 점도 정책 과제로 지적된다.

이처럼 영남권은 한국 제조업의 핵심 축이자, 탈탄소 전환의 최대 난제이기도 한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RE100 실현은 국가 탄소중립 전략의 향방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이자, 수출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중대한 시금석이다.


울산, 정유 도시에서 수소·재생에너지 전환도시로


울산은 한때 ‘대한민국 산업수도’로 불렸다. 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 S-OIL, 현대중공업 등 국내 굴지의 정유·석유화학·조선 산업이 집결해 있는 도시로, 2020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 중 제조업 비중이 무려 62.6%에 달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그만큼 울산은 에너지와 산업이 중첩된 도시이며, 동시에 탄소 배출량 또한 전국 상위권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울산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고 ‘에너지 산업구조의 저탄소화’와 ‘신산업 기반 재편’이라는 두 축의 전환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수소경제와 재생에너지 기반의 산업전환 모델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이는 울산이 다른 산업도시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린수소와 블루수소를 모두

울산 수소산업 거점도시 개요. 사진 울산경제자유구역청
울산 수소산업 거점도시 개요. 사진 울산경제자유구역청

포괄하는 ‘수소에너지 전환 모델’이다. 울산시는 국가 수소산업 거점도시로 지정되어, 수소 생산, 저장, 운송, 활용 전주기를 포괄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수소 연료전지 기반 산업단지 전력 공급 실증사업도 가동 중이다. 울산은 ESS를 포함한 스마트 분산형 전력시스템 구축에도 앞장서고 있다. 산업단지 내 태양광 발전 전력을 ESS에 저장한 후, 주간 피크 시간대에 재공급하거나, V2G(Vehicle to Grid) 기술을 통해 전기차의 잉여전력을 활용하는 실증 사업이 이미 진행 중이다. 이는 간헐성 재생에너지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울산의 에너지 전환 전략은 단지 탄소 감축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생태계 전환’이라는 적극적 구조 개편의 성격을 지닌다. 산업도시의 전형이었던 울산이 수소경제와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변모하는 과정은, 탄소중립 시대 지역 경쟁력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포항, 철강도시에서 수소·재생에너지 산업도시로의 전환


포항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기업 협의체 출범식 현장 . 사진 경북브리핑뉴스
포항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기업 협의체 출범식 현장 . 사진 경북브리핑뉴스

포항은 한때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으로 불렸다. POSCO를 비롯한 대형 철강기업이 밀집해 수십 년간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역할을 해 왔으나, 고탄소 산업구조와 산업 노후화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에 포항시는 과감한 산업구조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포항은 철강 중심에서 벗어나 이차전지, 수소, 바이오 등 3대 신산업 특구를 모두 유치하며 미래 산업 생태계를 빠르게 구축 중이다. 2023년 이차전지 특화단지 지정, 2024년 기회발전특구 지정에 이어, 11월에는 전국 최초 ‘수소특화단지’로 지정되며 산업 전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블루밸리·영일만 산단을 중심으로 7조 4천억 원 규모의 이차전지 투자 유치를 이끌었고, 행정절차 간소화와 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기업 입주 여건도 개선했다. 배터리 순환이용, 전기어선 등 미래형 분야 국책사업 유치도 추진 중이다. 수소 산업에서도 H₂Power 혁신허브, 인증센터 고도화, 수소 배관 인프라 구축 등 수소 전주기 생태계 조성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33개 수소 기업이 참여하는 협의체도 결성됐다. 또한 북부권 수소교통 복합기지 구축, 1GW 해상풍력 단지 개발, 영일만항의 수소·가스 복합에너지기지 전환 등 에너지 기반 확충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포항의 전환 전략은 단순한 탈탄소를 넘어, 철강 도시에서 이차전지·수소·재생에너지를 결합한 첨단 에너지산업 도시로의 진화를 꾀하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넘어 산업 지속가능성과 일자리, 기술 주권을 포괄하는 전략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산업단지 중심의 RE100, 새로운 에너지 거버넌스를 요구하다



우리나라 산업단지는 국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53.5%, 산업부문 중 83.1%를 차지하며, 에너지 소비의 과반 이상이 여전히 석유(51.4%)와 석탄(23.7%)에 의존하고 있어 탄소 의존도가 극심한 구조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탄소 규제가 본격화되는 오늘날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최근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공급망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산업단지도 탄소중립과 RE100 전환이라는 국제 질서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2030년까지 국내 기업의 40%가 RE100 이행을 요구받을 것으로 전망되며, 모든 산업단지를 일률적으로 전환하기보다는 기업 수요에 기반한 맞춤형 산업단지 개발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산업단지의 구조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4세대 산업단지'로 명명된 새로운 모델은 자원 순환, 탄소포집 및 활용(CCUS), 그린수소 인프라 구축, 스마트그리드 조성이라는 네 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한다. 특히, LNG 연료전지를 통한 과도기적 전력 공급과 이산화탄소의 포집·재활용, 지붕 태양광과 전력구매계약(PPA)을 통한 RE100 전력공급 등은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산업단지의 역할 변화. 국토교통부
산업단지의 역할 변화. 국토교통부

그러나 기술적·제도적 대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토지이용계획, 업종규제, 재생에너지 입지 제한 등 구조적 제약이 여전하며, 개별 제조기업의 생산설비 전환 없이는 실질적인 탄소 감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소중립 시대의 산업단지는 단지 공장을 모아 놓은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자율적으로 조절되고, 자원이 재순환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단지를 넘어선 에너지 체계 전체의 재설계다.



RE100은 영남권의 새로운 산업정책이다


RE100은 더 이상 환경정책의 일부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영남권의 수출 제조업 생태계를 재정비하고, 산업구조를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재편하는 불가피한 전환 전략이다. 창원, 울산, 포항으로 이어지는 영남권 산업축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수출경제의 중추였으며, 이제는 탄소 없는 산업지대로 거듭나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단지가 집중된 만큼, 글로벌 공급망의 탄소 규범 변화에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노출되는 지역이다. RE100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기업이 거래선에 남기 위해, 지역이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생존조건’이다. 이는 단지 개별 기업의 경영과제가 아닌, 지방정부와 산업단지 전체가 공동 대응해야 할 산업정책의 축으로 다뤄져야 한다.

전력 구조의 전환,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도입, 중소기업 공동 설비 운영, 제도와 인프라에 대한 재정지원은 이제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산업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적 과제가 되고 있다. RE100 실천은 기후 대응을 위한 책무임과 동시에, 지방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 시대를 통과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이자, 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전략적 방어선이다. 영남권에서 시작된 실천은 단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가 변화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출발점이다. 이제 RE100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되었다. 기후위기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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