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호남권, 주민참여형 에너지 전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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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5 이담인 기자
전라남도와 제주도는 풍부한 자연 자원을 바탕으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선도적으로 육성하고, 공유부 배당 시스템(햇빛연금·도민배당제)을 통해 주민 참여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특히 전남은 전국 1위의 탄소 감축 성과와 함께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제’ 등을 도입해 지방정부 차원의 기후재정 혁신을 이끌고 있다. 두 지역의 사례는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정책을 넘어서는 지역 맞춤형 기후 대응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4년 여름, 전 세계를 휩쓴 기록적인 폭염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임을 명확히 인식시켜 주었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농업 지역을 중심으로 가뭄, 홍수, 태풍 등 복합적인 기상 재난이 발생하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했다. 이상 기후가 일상화된 지금, 지역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 기후 정의를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 전라남도와 제주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해 온 대표적인 지역으로, 전국적인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중요한 선도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전남과 제주도의 노력은 햇빛연금, 바람연금과 같은 공유부 배당 시스템을 통해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태양과 바람의 잠재력을 현실로, 전남의 에너지 전환 노력

전남은 풍부한 일조량과 바람 자원을 바탕으로 2000년부터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선도적으로 육성하며 에너지 자립을 실천해 왔다. 전남의 태양광 발전량은 7087GWh로 전국 1위다. 전라북도(5547GWh), 경상북도(4302GWh), 충청남도(4254GWh)가 그 뒤를 잇고 있지만, 전남의 발전량이 압도적이다. 특히 신안군(1073GWh), 해남군(782GWh), 영광군(603GWh), 영암군(630GWh), 고흥군(655GWh) 등 서남해안의 주요 군들은 전남 전체 태양광 발전량의 52.8%를 차지하며 지역 에너지 전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중이다.
풍력 발전 분야에서도 전남은 644GWh의 발전량으로 전국 3위를 기록하며 강원도(961GWh), 경상북도(934GWh)와 함께 국내 풍력 발전량의 73.5%를 차지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전남이 명실상부한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유리한 자연 조건에 더해진 정책적 의지
전남이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리한 자연 조건만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높은 연평균 일조량과 안정적인 바람이 부는 서남해안은 태양광과 해상풍력 발전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신안군 앞바다는 얕은 수심과 풍부한 바람 자원으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 단지 후보지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해 광범위한 유휴 부지와 낮은 인구 밀도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으며, 지방정부의 선도적인 정책 의지가 이러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 전남은 에너지산업국 신설, 관련 조례 제정, RE100 산업단지 육성 등 제도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마련해 왔으며, 이는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 장기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책의 성과를 '전국 1위 탄소 감축'이라는 수치로 증명
전남의 노력의 결과는 뚜렷한 탄소 감축 효과로 나타났다. 총 3404kt의 탄소 감축량을 기록하며 전국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약 3억 8천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것과 동일한 효과로, 전남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기후변화 대응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 준다. 전남연구원은 전남이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모두에서 전국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과 저탄소 에너지 기반 산업 전환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전남은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2021년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탄소 없는 건강한 미래, 청정 전남"이라는 비전 아래, 청정에너지, 청정산업, 청정생활, 청정산림이라는 4대 전략과 102개의 핵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업은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8.2GW 신안 해상풍력단지' 조성 프로젝트다. 풍부한 해상풍력 자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이 단지가 완공되면 약 18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외에도 한국남부발전과 탑솔라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2.6GW 해상풍력 개발 사업, 다양한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모델이 전남 곳곳에서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한국전력공사 본사와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가 위치한 지역적 이점을 활용하여 에너지 연구 개발 및 정책 설계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 구축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관련 기술 인프라와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이익을 주민소득으로 환원
전남은 신재생에너지 개발 확산과 더불어 이익 공유 제도를 통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신안군이다. 1000개가 넘는 섬을 보유한 신안군은 과거 열악한 정주 여건과 고령화로 인해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으로 인구가 각각 179명, 136명씩 증가했고, 유인섬도 기존 77개에서 81개로 늘어났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매년 감소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정주 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에서 나타난 인구 순증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긍정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햇빛연금'으로 대표되는 신재생에너지 이익 공유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신안군은 전국 최초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조례'를 제정하여 협동조합 기반의 주민 참여형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약 2만 명의 주민이 신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을 배당받고 있으며, 18세 이하 아동에게는 '햇빛아동수당'까지 지급된다. 또한 지역 청년을 위한 '청년어선 임대 사업', 스마트팜 경영 농장 조성 등 청년층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으며, 파인다이닝 납품용 개체 굴 양식, 정원수 사회적 협동조합 등 주민 주도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실질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섬 1뮤지엄', '1섬 1정원' 정책과 같은 문화 및 정주 환경 개선 사업은 지역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단순한 경제 정책 이상의 공동체 재생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2024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환경 시상식 '그린월드어워즈(Green World Awards)'에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햇빛연금'과 '바람연금' 등 이익공유제를 통해 주민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가 되는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린에너지 부문 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6월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햇빛연금, 아동수당, 농어촌주민수당 등 기본소득 성격이 담긴 정책들을 취합해 ‘기본사회’ 실현의 대표 정책으로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생에너지 수익을 주민에게 환원함으로써 지방소멸 대응, 지역경제 활성화, 취약계층 지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취지다.
예산까지 기후 대응 중심으로 사용하도록 설계하는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제도'
전남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재정 시스템 혁신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제도(Greenhouse Gas Budget Tagging)' 도입이 그 예다. 이 제도는 각 부서가 예산을 편성하거나 집행할 때 해당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를 사전에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산서에 명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OECD는 ’기후인지 예산제도(Climate-Informed Budgeting)’를 저탄소 전환을 위한 핵심 재정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각국 정부가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기후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2022년 제정된 「전라남도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제 운영 조례」에 따라 2025년 5월 현재 도 예산서 및 결산서에는 각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항목별로 상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특히 이 제도는 '주민참여예산제'와 연계되어 주민들이 자신들의 세금이 기후위기 대응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성을 높였다.
'탄소 없는 섬'을 향한 제주도의 실험
제주도는 섬이라는 독특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 중이다. 우선 천혜의 바람과 햇빛이라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연중 평균 풍속이 5m/s를 상회하는 지역은 풍력 터빈이 안정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며, 연간 일사량이 내륙보다 높고 구름이 적은 날씨는 태양광 발전 효율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육지와 분리된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전력 공급에 제약도 따른다. 현재 해저 케이블을 통해 일부 전력을 육지에서 공급받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시스템 불안정성의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자체적인 에너지 생산 및 소비 구조를 확립하는 것은 곧 제주도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재생에너지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에너지 자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섬이라는 제약을 기회로, 풍력과 블루카본 중심 기후 대응 정책
제주도는 ‘2030년 탄소 없는 섬’이라는 목표 아래, 에너지 전환, 수송, 건물, 폐기물, 농축산, 흡수원 등 6개 부문에 걸쳐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비중을 대폭 늘리고 스마트그리드를 도입해 에너지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한편, 공유수면을 활용한 해상풍력은 핵심 동력으로 육성 중이다. 모든 운행 차량을 전기차·수소차로 전환하고,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을 확대해 수송 부문의 배출을 줄이고 있다. 건물 부문에서는 제로에너지 건축과 기존 건물의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친환경 자재 사용도 확대하고 있다. 폐기물은 감량과 재활용률 향상, 음식물 쓰레기 기반 바이오가스 생산 등으로 배출 저감을 꾀하고 있다. 농축산 부문에서는 저탄소 농업과 축산 기술을 보급하고, 탄소 흡수력이 큰 농경지·초지·산림을 적극 관리하고 있다. 도시 녹화와 해중림 조성 등 자연 생태계 기반의 탄소 흡수원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특히 해조류 감소로 인한 바다 사막화를 막기 위한 블루카본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공공에너지 수익을 지역사회와 도민에게 환원, 제주의 도민배당제
제주도 역시 사업자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공유 기금으로 출연하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제주에너지공사는 제주도가 만든 공공에너지기업으로, 풍력발전단지를 직접 개발하고 운영하면서 생긴 수익을 도민에게 다시 돌려주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복풍력발전단지(30㎿)를 포함해 여러 발전단지를 운영하며, 매년 약 6만5700㎿h의 전력을 생산 중이다. 전기를 팔아 얻는 수익은 제주도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쓰인다. 지역 복지에 활용되거나,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수익이 도민 개인에게 더 직접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제주에너지공사는 환원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으며, 공공에너지를 통해 지역 주민이 직접 혜택을 받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에너지 자립과 공유부 배당 선순환에 기반한 지속가능성이 핵심
전남과 제주도가 보여주는 선도적인 기후대응 노력은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풍부한 자연 자원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재생에너지 정책 추진, 창출되는 이익을 지역 사회와 공유하는 혁신적인 모델은 에너지 자립을 넘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햇빛연금과 바람연금으로 대표되는 공유부 배당 시스템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지방정부의 시도는 재생에너지 생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주체적인 성장을 촉진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방정부의 지역 맞춤형 해법이 만들어 가는 기후 전환의 미래
전남의 탄소 감축 노력과 제주도의 '탄소 없는 섬'을 향한 담대한 도전은 중앙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정책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지역 맞춤형 기후변화 대응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지역별 특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는 지방정부의 리더십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구축의 핵심 동력이다.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의 환경 영향 최소화, 안정적인 에너지 시스템 구축,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전남과 제주도가 보여 주는 혁신적인 시도와 성공적인 사례들은 다른 지역에도 귀감이 되어, 대한민국 전체의 기후변화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지방정부의 끊임없는 노력과 실험 정신이 앞으로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 정책의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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