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기후위기 대응, 세계 지방정부의 선택
- sungmi park
- 2025년 5월 16일
- 4분 분량
2025-05-15 박성미 총괄
기후위기는 선언이 아닌 실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의 중심은 이제 중앙이 아닌 '지방'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실행력이 기후위기 극복의 핵심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왜 지금, 지방정부 중심의 기후정책 전환이 필요한지 국제적 근거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전 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중심이 점차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동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제에너지기구(IEA), 유엔환경계획(UNEP)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지방정부가 기후정책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자원을 넘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권한의 분산이 아니라, 실행력과 지역 맞춤형 대응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왜 지방정부인가? 가장 큰 이유는 기후위기의 발생과 대응이 모두 '현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력 소비, 교통체계, 건물 에너지 관리, 자원순환 등 거의 모든 온실가스 배출 요인은 지역의 생활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후정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효과를 내려면, 지역 주민의 삶에 가장 가까운 지방정부가 정책의 기획과 실행을 직접 주도해야 한다.
EU의 '로컬 그린딜'
EU의 '로컬 그린딜(Local Green Deals)'은 에너지, 건물,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방정부가 직접 기후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ICLEI유럽은 지방정부가 기후 중립을 위한 EU의 포괄적 전략인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을 이행하고 있다. ICLEI(지속가능성을 위한 지방정부, Local Governments for Sustainability)은 2500개 이상의 지방 및 지역 정부로 구성된 글로벌 네트워크로, 125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2020년 독일 만하임에서 열린 유럽 도시회의에서 처음 제안된 이후 유럽 전역의 지방정부들이 참여하고 있다.
ICLEI유럽과 유럽 지방정부위원회(CoR)가 운영하는 ‘Intelligent Cities Challenge’ 프로그램을 통해 정책 자문과 금융 지원이 이뤄진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서, 도시들이 각자의 환경 조건과 인프라 수준에 맞춰 실질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세울 수 있도록 다각적 컨설팅과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 시민, 기업, 지역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지속가능한 기후 해법이 만들어진다. 로컬 그린딜은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역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구조이기도 하다.
벨기에 겐트(Ghent)는 시민과 협동조합, 지자체가 공동 운영하는 에너지 커뮤니티를 통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5년 만에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고, 도시 내 식량 공급의 80%를 지역 농산물로 채우는 로컬 푸드 정책도 병행했다. 겐트는 시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을 20% 이상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시민 제안 기반의 ‘기후행동 2030’ 계획을 통해 탄소예산제를 도입하고, 500개 이상의 주민 아이디어를 도시정책에 반영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해 계획을 만들고, 실행까지 주도하는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IEA는 『Net Zero by 2050』 보고서에서 전 세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대중교통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를 제시한다. 특히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약 30%가 건물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냉난방 시스템 개선, 단열 강화 등은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도시 차원의 정책 없이는 실현이 어렵다고 진단한다. 보고서는 “에너지 시스템 전환의 70% 이상이 도시 수준에서 실행돼야 실질적인 감축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 역시 지역 단위에서의 실천이 관건이다. 독일 북부의 프리슬란트 지역은 100% 에너지를 풍력과 바이오가스로 자체 생산하며, 주민이 발전소의 주주로 참여하는 구조를 채택해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이러한 지역주도형 모델을 장려하고 있으며, 전국 900개 이상의 에너지 협동조합이 지역 사회 기반으로 운영 중이다.
UNEP의 『GEO-6 for Cities』 보고서 역시 도시화가 환경 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임을 지적하며, 도시와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의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 에너지의 75%, 온실가스의 70% 이상이 도시에서 발생하는 만큼, 정책 설계와 집행의 주체가 지방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UNEP는 지방정부가 토지이용, 교통계획, 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 핵심 분야에서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실제 성과도 이 같은 접근을 뒷받침한다. EU의 ‘100 Climate-Neutral and Smart Cities’ 프로그램에는 112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으며, 이 중 33개 도시는 이미 자체 기후행동계획을 수립해 실행 중이다. EU는 이들 도시가 2030년까지 평균 60~70%의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 총 6500억 유로 규모의 민간·공공 투자가 함께 집행되고 있다
'EU 미션 라벨(EU Mission Label)'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기후중립을 달성하려는 도시들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투자은행(EIB)을 통해 총 20억 유로(약 2조 9천억 원)의 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자금은 'EU 미션 라벨(EU Mission Label)'을 획득한 도시들이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확대, 친환경 교통 등 기후중립 목표를 위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112개 도시 중 92개 도시가 EU 미션 라벨을 받았으며, 이들 도시가 자금 지원 대상이다. 도시들은 자체적으로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EIB에 대출을 신청하면 EIB는 각 도시의 계획을 평가하여 자금을 배분한다.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지역 난방 시스템, 재생에너지 인프라, 지속가능한 교통, 도시 재생, 물 및 사회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가 대상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도시들이 기후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며, 각 도시의 계획과 실행 능력에 따라 자금이 배분된다.
프랑스 그르노블시는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온실가스를 25% 감축했고, 교통 시스템을 대중교통 중심으로 재설계했으며, 시민참여형 기후예산제를 도입해 지방정부 주도의 민주적 기후정책 모델을 제시했다. 스웨덴 벡쇼시는 1993년 대비 2015년까지 온실가스를 55% 줄였고, 화석연료 기반 난방 시스템을 지역 바이오매스 기반으로 전환해 유럽의 대표적인 에너지 자립 도시로 거듭났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2025년까지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수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전체 대중교통의 75%를 전기버스로 전환하고 도시 내 자전거 도로를 전국 최고 수준으로 확대했다. 모든 신규 건축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해, 신축 아파트의 평균 탄소배출량을 40%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정책들은 지방정부가 직접 기획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실천적 사례는 과학적 분석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EU가 2024년 발표한 ‘EU Missions’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정부가 주도한 기후계획은 중앙정부가 주도한 계획보다 평균 1.6배 높은 이행률을 보였고, 시민 참여율도 25% 이상 높았다. 계획의 실현 가능성, 주민 수용성, 재정 집행의 투명성과 속도 면에서 모두 지역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Key Cities’ 연합도 중앙정부에 기후 관련 권한의 지역 이양을 공식 요청하고 있다. 이 연합은 27개 중소 도시 지방정부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각 도시가 자체 기후목표를 세우고 그에 필요한 예산과 권한을 확보할 수 있어야 정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전환, 녹지 확대, 교통 개편 등에서 중앙정부의 지침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실행력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카운티들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은 자체 탄소중립 목표와 전력 소비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기반의 커뮤니티 전력 프로그램(CCA: Community Choice Aggregation)을 통해 주민 참여형 에너지 전환 모델을 확산시키고 있다. 2023년 기준 캘리포니아 전체 전력 소비의 35% 이상이 CCA를 통해 조달되고 있으며, 이 모델은 점차 미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하와이, 워싱턴, 뉴욕 등 10여 개 주에서 이 모델을 채택해 지역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는 각 시의회가 주도하는 지역 탄소저감 로드맵을 통해 농촌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있다. 태양광 패널 설치, 고효율 양식장 전환, 폐자원 순환 프로그램 같은 사업을 통해 지역 내 에너지 비용은 평균 18% 절감되었고,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도 두드러졌다.
이제는 기후위기 대응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지방정부는 더 이상 중앙의 지침을 따르는 수동적 집행자가 아니라, 지역의 현실과 주민의 삶에 가장 밀착된 실천의 주체다. 실행력과 수용성이 높은 정책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 만들어질 때 실현 가능하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정책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실질적인 권한과 재정 자율권을 이양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하고 실효성 있는 기후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열쇠다. 지방이 살아야, 지구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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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 만큼 권한과 예산도 커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