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알약 하나로 식사를 대체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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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2일
- 5분 분량
무얼 먹을까 궁리하고, 장보고, 부엌에서 요리하고, 식탁에 내놓고, 그릇 씻고. 식사 과정은 복잡하다. 알약 하나로 대체하면 안 될까? 먹는 양을 줄이니 야채나 가축을 기를 공간도 줄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고. 음식 조리가 점점 간편식을 고르는 조립이 되는 편리한 세상. 과연 알약 한 알로 식사한다면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2025-09-12 김우성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최근 매일매일 울산 이야기쇼인 '매울쇼'에서 방송하고 있다.
“셰프님은 어떤 요리를 좋아하세요?”
“음. 사실 저는 알약 하나로 식사가 해결되면 좋겠어요. 하하”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나는 셰프님의 표정 속에는 요리가 취미나 예술이 아니라 매일매일 마주하는 노동임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메뉴를 고민하고, 장에 가고, 좋은 재료를 고르고, 식재료를 다듬고, 칼을 잡고, 불 앞에 서고,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와 정리까지. 우리가 ‘식사’라고 부르는 일의 앞뒤에는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합니다. 셰프님 뿐 아니라 주부나 자취생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알약 하나로 모든 식사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상상은 꽤나 달콤합니다.

점시시간은 너무도 짧다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알약 한 알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무기질까지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다면 장보기와 요리, 설거지까지 이어지는 고단한 과정을 생략할 수 있습니다. 충실한 점심시간을 위해 오전부터 메뉴를 고민하고, 식당으로 이동하고, 줄을 서고, 식사를 하고, 남는 시간을 쪼개 커피를 마시거나 주변을 산책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낮잠을 자기에 한국 사람들의 점심시간은 너무도 짧습니다. 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다른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단순하고 편리한 삶입니다.
알약 식사, 야생의 터전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알약 식사의 매력은 편리함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류 전체의 미래, 지구의 미래와도 연결됩니다. 인류는 매년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그중 약 19%는 무언가를 기르는 과정에서 배출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과 빵, 고기와 채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토지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먹는 밀이나 벼와 같은 곡물 재배도 중요하지만, 가축을 사육하기 위한 옥수수나 콩과 같은 사료작물의 재배를 위해 넓은 땅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 농경지의 77%가 사료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방목하는 데 쓰입니다.
아마도 이 농경지들은 과거 숲이었거나, 초원이었거나, 습지였을 테고, 셀 수 없이 많은 야생 동식물들의 서식지였을 터입니다. 우리는 농업 전반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고, 동시에 축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하는 땅의 면적도 줄여야 합니다. 우리가 알약으로 식사할 수 있다면 식량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농경지의 많은 부분을 야생으로 되돌려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야생의 동식물은 삶의 터전을 회복하고, 새로 만들어진 생태계는 커다란 탄소흡수원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삶의 효율과 더불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알약은 꽤나 매력적인 대안이 됩니다.

식사라는 복잡한 과정을 제거해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류는 알약의 강을 건널 수 있을까요?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인 장벽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인류에게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활동이라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행위입니다. 먹고사니즘은 인간 진화와 역사의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좋은 재료를 고르기 위해 오래 고민합니다. 오감으로 식재료의 품질과 신선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재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길러졌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엌에 와서도 생각할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시각 뿐 아니라 손끝의 촉각, 후각과 미각, 때로는 청각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식탁에 여러가지 메뉴를 올리기 위해서는 조리 순서와 시간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주방의 마에스트로가 되어야 합니다. 요리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며, 오랜 시간에 걸친 학습과 경험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협력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먹을 수 있는 동식물을 구분하고 그들의 생태까지 이해해야 했습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식사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동식물을 기르고 거두지 않습니다. 많은 과정이 간소해졌지만 여전히 식사 준비는 복잡한 일입니다. 이 모든 시간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두뇌를 작동하게 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두뇌가 기억하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뇌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복잡한 처리과정을 거치고, 다시 우리의 몸을 움직여 반응을 내보냅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많은 감각을 사용하고, 기억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이 시간을 통해 더 넓게 생각하고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인류의 삶에서 식사라는 복잡한 과정을 제거하고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전통적인 식사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혹시 두뇌를 많이 써야하는 전통적인 식사를 포기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단순한 알약 식사를 반복하다 멍청이로 진화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농촌은 어떻게 될까
인류의 식사가 알약으로 대체된다면 농촌은 어떻게 될까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정확한 통계를 추산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농업에 종사했습니다. 인류의 80% 정도는 농부였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선진국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대체로 5% 미만입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농가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8% 수준입니다. 우리가 알약을 먹게 된다면 농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요? 농산물을 유통하는 분들은 산업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식품회사의 영역까지 진출한 제약회사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게 될까요? 그 돈은 우리 사회로 환원될 수 있을까요? 우울한 미래에 관한 걱정들이 뭉글뭉글 피어납니다.

조리가 조립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의 식탁은 꽤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식사 준비 과정을 조리(cook)라고 표현하지만, 어느새 조립(assembly)에 가까운 형태로 변하고 있습니다. 즉석밥, 냉동볶음밥, 냉동만두, 사골육수, 파스타, 돈까스 등 메뉴도 다양합니다. 김장철이 되면 우리는 절인 배추와 취향에 맞는 양념을 구입해 버무리기만 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김치찌개를 끓이기 위해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 갖은 양념과 채소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간편식 김치찌개를 뜯어서 데운 뒤 두부나 대파 정도만 얹어내는 방식으로 간소화 되었습니다.
이제 며칠씩 곰국을 끓이거나 계절에 맞는 나물을 다듬는 주부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뼈를 사서 어떻게 핏물을 빼야 하는지, 어느 계절에 어느 나물을 어떤 양념으로 무쳐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들은 빠르게 단절되고 있습니다. 주부들이 나물을 뜯지 않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조리와 조립 중 어떤 방식이 온실가스를 더 적게 배출하는지, 생태계에 더 적은 영향을 미치는지는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조립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두뇌를 쓸 일도 없습니다. 이게 올바른 방향일까요?

직장인들에게 알약 점심을 권하는 사회라?
정부가 알약 식사를 권할 수 있을까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의무입니다. 알약 식사가 소화기, 장내미생물, 심혈관계, 뇌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다층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식사의 유일한 목적은 아닙니다. 정부는 농민의 삶을 지켜야 합니다. 유통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도매상과 소매상, 운송노동자의 삶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요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수가 아주 많은 나라입니다. 먹는 행위와 관련된 일련의 문화와 산업을 후퇴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직장인들에게 알약 점심을 권하는 사회는 꽤나 끔찍한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간편함을 추구하는 개인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장보기도 귀찮고, 설거지도 하기 싫은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 도시락 싸기가 귀찮아서 씨리얼과 단백질바를 쌓아 두고 먹으며 사료 먹는 고양이를 부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장려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면 가끔은 찾아 먹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도 식사를 준비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거울 속에 비친 저의 모습을 보면, 종종 피곤한 셰프님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밥을 짓고 반찬을 차려내는 일이 고단한 노동임을 알기에, 오늘도 식사를 준비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알약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게 되더라도, 그 방식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더라도, 전통적인 방식의 식사는 여전히 인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알약 식사는 그냥 밥 차리기가 귀찮은 주부의 사고실험으로 남겨 두겠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오늘 저녁은 그냥 알약으로 때울까요? 안되겠죠? 밥 차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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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으로 식사를 대체한다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