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기후위기’ TV토론, 사실 확인조차 안 한 후보들
- sungmi park
-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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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7 박성미 총괄
2025년 5월 24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TV토론회에서 대한민국 대선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위기 대응 방안’이 단독 의제로 다뤄졌다. 이날 토론에는 이재명(더불어민주당), 김문수(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 권영국(민주노동당) 후보가 참여했고 주어진 1분 30초의 발언과 6분 30초의 주도권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플래닛03은 이번 대선을 맞아 『기후국가 10대 과제』를 연재하면서 ① 산림 보호지역의 재설계 ② 기후에너지부 신설 ③ 남북의 숲 연결하는 남북공동기후정책수립 ④ 해양국가 로드맵 수립 ⑤ 탄소감축 및 주민참여 제도화 ⑥ 지방정부 중심 대전환 ⑦ 기후평화 체제 구축 ⑧ 강과 물 정책 대전환 ⑨ AI 기반 기후시민 공론장 ⑩ 기후법 및 헌법 체계 개정 등을 주장해 왔다. 각 후보들의 발언 내용을 토대로 제21대 ‘대통령의 기후미션’을 점검해 본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선 후보들이 철저히 외면
기대감을 가지고 TV토론을 지켜보던 시민사회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 이후,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통해 “기후 정책은 없고 노골적인 가짜 뉴스 유포와 기후·생태 위기를 악화시킬 우려스러운 주장이 난무하는 장이었다”고 혹평했다.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 화석연료 퇴출 정책,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제시되지 않았으며, 관련 공약이 없는 김문수, 이준석 후보뿐 아니라 각각 2040년과 2035년 ‘탈석탄’ 공약을 낸 이재명, 권영국 후보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시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소홀했으며 생태계 복원과 탄소 흡수원에 대한 논의가 빠진 점 역시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한국환경회의도 성명서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선 후보들이 철저히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후보자 전원이 올해 UN에 제출해야 하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기후위기는 선언이 아닌 이행의 문제로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한 수치 기반의 감축 목표, 법제화를 통한 실행력 확보, 그리고 사회 전환을 위한 정의롭고 민주적인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김문수 “원전 6기 건설·RE100 불가능”… 사실과 다르고 국제 흐름에 어긋나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원전을 6기 더 건설하겠다”, “SMR(소형모듈원자로)을 세계 최고 기술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RE100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후쿠시마는 폭발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주장하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영화 보고 결정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탈원전으로 수십 조 원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을 내놨다.
김 후보의 “후쿠시마는 폭발한 게 아니지 않느냐”는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은 실제로 폭발했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1·3·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고, 1~3호기에서는 노심용융(meltdown)도 일어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사고를 원전 사고 중 최고 등급인 ‘레벨 7’로 분류한 것이 사실이다. "RE100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애플, 구글, 삼성전자를 포함해 전 세계 42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 이행은 이니셔티브를 넘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일본의 공급망 규정 등과 연결되는 기업 입장에서 사활을 건 문제다. 글로벌 공급망의 필수 기준이 되고 있어 주요 수출 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까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원전 6기를 새로 짓겠다는 공약도 국제 흐름과 역행하는 공약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원전을 재생에너지의 ‘보완 수단’으로 분류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주력이며, 원전은 한계적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이미 탄소중립 전략에서 원전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김 후보가 언급한 소형모듈원자로(SMR) 역시 현재까지 상업 운전 사례는 없다. 대표주자이던 미국 NuScale 프로젝트는 건설비가 93억 달러까지 치솟고 구매자가 없어 2023년 중단되었다.
민주당의 탈원전 정책으로 수십 조 원의 손실이 났다는 주장 역시 통계와 맞지 않는다. 한국전력 통계에 따르면, 원전 발전 비중은 2017년 26.8%에서 2022년 29.6%로 증가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 폐쇄된 원전은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단 두 곳뿐이다. 이 중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 내려졌다.
재생에너지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국제 추세와는 다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전 세계 신규 전력 설비의 80% 이상이 재생에너지였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가 가장 저렴한 전력원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지난해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123개국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3배로 확대하겠다는 공동 선언을 채택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김문수 후보는 국민들에게 기후위기를 단순 기술적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오류를 범했다. 기후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 전환의 문제다. 정의로운 전환, 시민 참여, 생물다양성, 자원순환, 지방정부 중심으로의 전환 등을 고려한 사회 대전환을 준비하는 것이 대통령의 기후 미션이다.
이준석 “태풍 오는 곳에 풍력?”… 과학 외면하고 혐오만 부추겨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우리나라 풍력은 남해안인데 태풍 경로입니다”, “RE100은 글로벌에서도 한물 간 구호입니다”, “중국산 비중이 너무 높아서 위험합니다”라고 주장하며, 종이 빨대 관련해 “유해 물질이 나온다는데 왜 강제하냐더라”는 말로 친환경 정책 전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드러냈다.
이준석 후보의 “태풍 오는 곳에 풍력 설치는 위험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현대 풍력터빈은 시속 70~80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으며, 일본, 대만, 중국 등 태풍이 잦은 지역에서도 풍력발전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히려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한반도를 관통했을 당시에는 고리·월성 등 원전 8기가 동시에 가동을 멈춘 사례가 있다. 실제 위험은 오히려 원전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고 빠르게 확장 중인 에너지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COP28에서는 123개국이 재생에너지 발전을 3배 확대하겠다는 공동 서약을 했다. 이 후보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회의론은 이런 국제적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탄소중립 흐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김문수 후보와 마찬가지로 이준석 후보는 RE100을 ‘글로벌에서 한물 간 구호’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이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 지적했듯이 RE100은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에게도 현실적 압력이다.
재생에너지 장비의 ‘중국산 비중이 높아 위험하다’는 주장도 문제다. 태양광,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의 문제이지 재생에너지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대응은 기술 자립보다 국제 협력이 필요한 공동 과제다. 재생에너지 기술에 ‘중국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혐오를 자극할 뿐, 대통령 후보로서 부적절했다. 종이 빨대에서 유해 물질이 나온다는 주장 역시 과장됐다. 이 후보가 언급한 내용은 해외 일부 논문에서 제기된 가능성을 확대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국내에서 시판되는 종이 빨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안전기준을 통과한 제품이며 지금까지 국내에서 유해 물질 검출 사례가 보고된 바 없다. 친환경 소재 개발을 위해 노력 중인 기업들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의 기후·에너지 정책은 공약집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TV토론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탄소세, 탈석탄, 분산형 전력망 등 구조적 이슈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 언급한 ‘규제 완화’도 태양광 인허가 규제 철폐 정도이며, 환경 평가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발언은 생태계 보전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교 출신의 ‘이공계 정치인’으로 알려진 이 후보가 정작 과학보다 정치적 수사에 기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청년과 미래를 대변한다고 밝힌 대통령 후보에게 기후위기를 극복해 나갈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태양과 바람이 돈이 되는 시대”… 에너지 전환 진전, 신공항은 물음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후위기 해법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분권을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해 재생에너지 접속 문제를 해결하겠다”, “분산형 전력망이 필요하다”,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밝혔으며, 원전 수명 연장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태양과 바람이 돈이 되는 시대를 열겠다”며 재생에너지 확대, 공공 전력망의 구조 혁신, 기후 복지 연계 정책을 제시했다. 특히 탄소예산제, 기후기본법 제정, 복지·산업·에너지 전환을 통합하는 구조적 접근은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기후위기를 총체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주요 정책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의 구체적 수치나 탈석탄 시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었다. 국제사회가 COP28에서 ‘재생에너지 3배 확대’와 ‘화석연료 감축’에 합의한 흐름과 비교하면, 감축 시계에 대한 명확한 계획 제시는 중요했다.
“시민 참여 기반의 기후 전환이 필요하다”며 서울시의 기후시민회의 사례를 언급한 것은 단순한 정책 이행을 넘어 사회적 합의 기반의 전환 정책을 지향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방분권, 기후법 개정, 에너지 체계 개편 등이 공약에 포함된 점은 다른 후보와는 명확히 달랐다. 하지만 ‘신공항 추진’은 다른 기후 공약들과 충돌하는 지점이다. 항공은 탄소 배출량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고, 신공항 개발은 생물다양성 훼손과 토지 이용 등 사회적 갈등을 가져오고 있다. 국토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제시했지만 신공항은 기후 정책의 일관성을 흔들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재명 후보의 기후 공약은 구조적 인식과 전환적 관점이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난다. 기후를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 전환의 과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구체적 실행 시점과 목표 수치, 기존 개발 중심 정책과의 정합성 문제 등은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선언이 아닌 이행의 문제다. 총론적 방향이 분명하다면, 실현을 위한 정책 간 일관성 확보가 향후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권영국 “2035년까지 70% 감축”… 유일하게 수치 제시한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기후위기의 본질을 자본주의 구조 문제로 진단하며, 공공 주도의 정의로운 전환을 전면에 내세웠다. “기후위기는 상위 10대 기업과 부유층이 배출한 온실가스에서 비롯됐으며,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70% 감축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명확히 제시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 수치를 직접적으로 제시한 후보는 권 후보가 유일하다. 70% 감축 목표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권고한 수치(2035년까지 65~70% 감축)와 일치하는 수준이다.
권 후보는 ‘기후정의세’ 도입을 주장하며, 기후위기의 책임이 계층별로 불균형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는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전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기후정의세를 통해 조성된 재원을 에너지 전환과 기후 복지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는 최근 일부 OECD 국가들이 검토 중인 ‘부유세 기반의 전환 재정 구조’와 유사한 정책 방향으로 평가된다.
에너지 전환 체계에 대해서도 그는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며, 민간 중심의 재생에너지 시장이 불러온 불균형을 비판했다. ‘공공이 주도하는 에너지 체계’는 이른바 ‘에너지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하며, 최근 기후운동 진영에서 강조되고 있는 탈중앙화·지방분권적 전환과도 연결된다.
권 후보는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기후정의법 제정, 지방정부 기후전환 특구 조성 등도 제안했다. 이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기술이나 환경 문제가 아닌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 기후위기의 책임과 부담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명확히 짚고, 전환의 과정에서 정의를 확보하겠다는 철학이 뚜렷하게 반영된 공약이다.
‘탈석탄 시점’이나 ‘탄소예산제’, ‘해양·산림 보전 전략’ 등 일부 핵심 기후 정책 항목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후보는 기후 정치에 대한 명확한 문제 의식과 구조적 해법을 제시한 후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단순한 기술 해법을 넘어서 사회 구조를 전환하려는 정치적 비전은 대통령의 기후미션에서 가장 중요하다. 권영국 후보는 그 전환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할지 가능성을 제안해 준 후보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국가 거버넌스·산업구조·복지·외교 등 모든 분야의 전환을 요구하는 중대한 시대 과제다. 동신대학교 이순형 교수는 “이번 TV토론은 기후위기 대응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정치 과제임을 보여 주는 기회였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그 무게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후보자들에게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인공지능전문 기업 포스트에이아이 조인호 대표는 “유권자의 기후 감수성과 정책 참여가 가능한 공론장을 만들어 당선 이후에도 기후 정치에 대한 숙의 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은 기후위기를 대선 토론 주제로 끌어 낸 의미 있는 첫 시도였지만, 기후위기의 구조적 복합성과 생태·사회 전환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놓쳤다. 기후위기 시대, 대통령의 기후미션은 기술 대책이 아니다. 전 지구적 생태 회복, 기후 정의, 시민 참여를 포괄하는 ‘기후 정치’의 비전을 가지고 국가시스템을 재편하는 일이다. 6월 3일 투표로 당선되는 제21대 대통령은 반드시 '기후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권을 가진 시민사회와 '기후국가' 로드맵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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