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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특집 | 기본소득사회와 노동자

  • 2시간 전
  • 6분 분량

2026-05-01 김사름 기자

기본소득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후위기와 산업 전환의 시대에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안전장치다. 폭염과 폭우, 감염병과 재난은 노동을 계속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든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일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재택근무를 선택하지만, 어떤 사람은 폭염 속에서도 배달을 하고, 건설 현장에 서고, 농지와 공장으로 나간다. 기본소득은 바로 이 불평등을 묻는 제도다.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권은 이제 ‘일할 권리’만이 아니라 ‘멈출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노동을 계속할 수 없는 날을 자주 만든다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사람은 언제까지 일할 수 있는가. 폭염이 일상이 되고, 폭우와 태풍이 잦아지고, 감염병과 재난이 반복되는 순간에도 노동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일을 멈추면 생계가 끊기는 사람에게 “위험하면 쉬라”는 말은 무책임한 언어다.


기본소득 논의는 이 질문과 닿아있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급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과 생계의 관계를 다시 묻는 제도다. 지금의 사회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노동을 계속할 수 없는 조건을 더 자주 만든다. 너무 더워서 일할 수 없는 날, 폭우로 이동할 수 없는 날, 산불 연기와 미세먼지로 야외 작업이 위험한 날이 늘어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기후변화로 인한 열 스트레스가 노동생산성과 양질의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ILO는 2030년이면 전 세계 총 노동시간의 2% 이상이 매년 손실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너무 더워 일할 수 없거나, 더위 때문에 더 느리게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규직 사무직보다 야외 노동자, 농업 노동자, 건설 노동자, 비공식 노동자에게 더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기후위기는 ‘일을 멈출 수 있는 사람’과 ‘멈출 수 없는 사람’으로 가른다


일하지 못하면 소득이 줄어드는 사람일수록 기후 재난 앞에서 더 취약하다. 기본소득은 이 지점에서 노동 정책이자 기후 정책이 된다. 기후 재난은 모두에게 오지만, 같은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냉방이 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폭염은 불편함일 수 있다. 그러나 도로 위의 배달 노동자, 건설 현장의 일용노동자, 농지의 계절 노동자, 물류 창고 노동자에게 폭염은 생명과 생계의 문제다.


위험하면 일을 멈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을 멈출 수 있는 사람과 멈출 수 없는 사람이 나뉜다. 유급휴가가 있는 노동자, 재택근무가 가능한 노동자, 고정급을 받는 노동자는 위험한 날에도 소득을 지킬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일당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특수고용 노동자는 일을 멈추는 순간 소득이 줄어든다.


기후위기 시대의 불평등은 여기서 드러난다.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은 소득과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폭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의 불쾌지수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치 임금의 상실이다.


ILO는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려면, 극심한 더위 때문에 일을 멈추더라도 임금이나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하는 권한 부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폭염 속 작업중지권은 단지 안전 규정이 아니다. 생계를 잃지 않고 위험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은 이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묻는다. 노동자가 위험한 조건에서 일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는 더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을 거부하는 제도가 아니라, 위험한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인도의 폭염 보험, 사전에 정한 기상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지급


기후위기 시대의 소득보장 실험이 인도에서 시작됐다. 인도의 자영여성노동자연합(SEWA)과 기후회복력 관련 단체들은 폭염에 노출된 비공식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파라메트릭 보험을 도입했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피해를 일일이 증명하지 않아도, 사전에 정한 기상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지급되는 방식이다.


2024년 인도에서는 기온이 40도를 넘는 폭염이 발생하자 약 5만 명의 자영 여성 노동자에게 보험금과 현금 지원이 지급됐다. 로이터는 이 제도가 2024년 5월 18일부터 25일 사이 40도 이상 폭염이 발생하면서 작동했고, 총 34만1553달러가 지급됐다고 보도했다.


세계경제포럼도 이 사례를 소개하며, 참여 여성들이 연 250루피를 납부하고 폭염 기준이 충족되면 직접 현금 지원을 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2024년 지급액은 2억9200만 루피, 달러로 약 35만 달러 규모였다. 이 제도는 폭염으로 일을 못 하거나 소득이 줄어드는 비공식 노동자에게 빠른 지원을 제공했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보험이 지급됐기 때문이 아니다. 기후 재난과 소득 보장을 직접 연결했기 때

문이다. 폭염은 건강 문제이면서 동시에 소득 문제다. 특히 비공식 노동자에게 폭염은 “아프면 쉰다”는 개인적 선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루를 쉬면 하루 소득이 사라진다.


인도의 폭염 보험은 기본소득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의 소득 보장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보여 준다. 피해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위험이 발생하면 자동으로 지원하는 방식. 노동자가 위험 속에서도 생계 때문에 일을 계속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식. 이것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보장 원리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가장 흔한 오해는 “일하지 않아도 돈을 주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핵심은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사회가 특정한 노동만을 소득과 연결해 인정해 왔다는 점을 묻는다.


가사노동, 돌봄노동, 지역사회 활동, 생태계 회복을 위한 활동, 재난 대응과 회복을 위한 공동체 노동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임금으로 평가되지 않거나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기본소득은 인간의 삶이 임금노동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더 많은 돌봄과 회복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폭염 취약계층을 돌보고, 재난 이후 지역을 복구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며,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는 생활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노동은 모두 경제적으로 보상받기 어렵지만, 사회적으로는 필수적이다.


기본소득은 노동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노동의 의미를 넓히자는 제안이다. 생계를 위해 위험한 노동을 강요받지 않도록 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 시장가격으로만 평가되지 않도록 하자는 요구다.


기본소득 사회란 생존 때문에 위험한 노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


이재명 정부의 ‘진짜 성장’은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질적 성장, 지속가능성, 사람 중심 경제, 지역 균형, 저탄소 산업구조 전환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진짜 성장이 되려면 하나의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 성장은 누구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가.


GDP가 늘어도 폭염 속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노동자가 늘어난다면 그것은 진짜 성장인가. AI와 첨단산업이 성장해도 플랫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후 재난 앞에서 아무 보호 없이 남겨진다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인가. 저탄소 산업이 커져도 노동자가 전환의 비용을 혼자 감당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성장인가.


기본소득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 사회란 모두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니라, 누구도 생존 때문에 위험한 노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다. 아프면 쉴 수 있고, 폭염이면 멈출 수 있고, 재난이면 대피할 수 있는 사회다. 일시적으로 노동을 중단해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다.


이것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권 문제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어야 노동도 지속된다. 일할 권리만큼 중요한 것은 위험할 때 일하지 않을 권리다. 기본소득은 그 권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공동의 자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사회 구성원이 함께 나누자는 데 있어


기본소득은 재정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재원으로 지급할 것인가는 현실적 쟁점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본소득 논의가 새로운 재원 논의와 만난다. 탄소세, 배출권 수입, 재생에너지 개발이익, 토지와 자원에서 발생하는 공적 수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가격을 매기면 에너지 비용은 오를 수 있다. 이때 부담은 저소득층과 에너지 취약계층에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탄소가격제의 수입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는 기후 배당은 이런 역진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논의돼 왔다. 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는 방식도 넓은 의미에서 기본소득적 상상력과 연결된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공동의 자원에서 발생한 이익을 사회 구성원이 함께 나누자는 데 있다. 대기와 기후, 토지와 에너지, 데이터와 기술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만의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과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앞으로 더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진짜 성장’은 분배의 문제와 만나게 될 것이다. 성장의 성과가 일부 기업과 자산소유자에게 집중되고, 위험과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전가된다면 그것은 진짜 성장일 수 없다. 기본소득은 성장의 성과를 시민의 삶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기후위기 시대, 기본소득은 노동 정책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본소득은 복지 정책이며 노동 정책이다. 노동자가 위험한 날 일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정책, 산업 전환기에 생계를 지키는 정책, 불안정 노동자가 협상력을 갖게 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소득의 기본이 있으면 노동자는 더 나쁜 조건을 거부할 수 있다.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고, 부당한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며, 재교육과 전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시장에서 약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협상력을 제공한다.


특히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이 의미는 더 커진다. 기존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유급휴가 제도는 표준적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피해는 제도 밖 노동자에게 더 크게 다가간다. 기본소득은 제도 밖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보편적 안전망의 가능성을 갖는다.


물론 기본소득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작업중지권, 유급 기후휴가, 고용보험 확대, 산재보상, 폭염 기준 강화, 주거·의료·돌봄 공공성,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함께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이 모든 제도를 대체하는 만능 해법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제도들이 작동하기 위한 생활의 기본을 제공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을 약화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노동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제도


노동절에 기본소득을 말하는 것은 노동절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를 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는 노동의 권리도 변화하고 있다. 노동권은 일할 권리만이 아니라 안전하지 않을 때 멈출 권리, 전환의 시간을 가질 권리, 생계의 위협 없이 재난을 피할 권리까지 포함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 권리들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사회적 기반이다. 기후 재난이 일상화될수록 노동을 계속할 수 없는 날은 늘어난다. 산업 전환이 빨라질수록 직무와 일자리의 이동도 잦아진다. 이때 노동자가 모든 위험을 개인적으로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은 노동을 약화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노동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제도다. 노동자가 더 안전한 조건을 요구할 수 있게 하고,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게 하며, 전환 과정에서 버틸 시간을 제공한다. 기본소득은 노동의 대체물이 아니라 노동의 존엄을 지키는 기본적 조치다.


기후위기가 노동의 조건을 바꾸고 있는 지금, 기본소득은 노동자가 자신의 삶과 몸을 지킬 수 있는 권리의 문제다. 2026년 노동절에 기본소득을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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