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동물 | 경계동물, 비인간 생명들이 만들어 온 도시 생태계
- Theodore

- 9시간 전
- 5분 분량
2025-12-17 최민욱 기자
도시는 오랫동안 인간만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도로와 건물, 공원 등 도시의 구조는 인간의 안전과 편의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중심의 도시 환경 속에서도 다양한 비인간 생명체들이 도시를 터전 삼아 살아가고 있다. 길고양이, 쥐, 까마귀, 비둘기 등 도심에 머물러 사는 이들 존재는 악취, 소음, 위생 문제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인간의 안전을 위해 해결해야하는 문제 거리로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은 도시를 오직 인간의 관점에서만 이해해 온 한계를 드러낸다. 도시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얽혀 작동하는 복합적 생태계이며, 비인간 생명 역시 엄연히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경계동물이란 무엇인가

도시 곳곳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경계동물'이라 부른다. 경계동물(Liminal Animals)은 길들여진 가축도, 완전한 야생동물도 아닌 중간적 존재로, 인간이 만들어낸 먹이원에 의존하며 인간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야생종 또는 가축종을 가리킨다. '경계'는 담이나 울타리와 같은 물리적 구분이 아니라, 인공환경과 자연환경 사이를 오가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
길고양이는 대표적인 경계동물이다. 서울의 길고양이는 주택가 골목, 아파트 지하주차장, 공원 등에서 인간과 빈번히 마주친다. 사람이 제공하는 사료나 버려진 음식물에 의존하고, 상자나 차량 보닛 위와 같은 도시 구조물을 은신처로 활용한다. 인간이 의도치 않게 제공한 자원으로 생존하지만, 특정 개인의 보호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생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반려동물과 구별된다.
도시의 하늘과 건축물을 터전으로 삼는 비둘기와 까치, 쓰레기 더미와 도심 하천을 오가는 너구리, 공원 숲에 서식하는 청설모 역시 경계동물에 속한다. 이들은 인간 주변에서 먹이를 얻고 도시의 빈 공간을 서식지로 활용하면서도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채 독립적인 생활권을 유지한다. 도시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다수의 동물이 이러한 경계적 위치에 놓여 있다.
재개발 지역, 인간이 떠난 공간에 남은 동물들
재개발과 재건축을 앞두고 인간이 떠난 도심의 빈 공간들은 경계동물들의 새로운 생태 공간으로 변모한다. 길고양이는 한번 터를 잡으면 쉽게 떠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건물 철거가 시작되어도 제 영역이었던 개발 현장에 남는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조례를 통해 재개발 지역 내 길고양이 보호 대책 수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철거 과정에서 발생할 동물 매몰 사고를 방지하고, 안전한 이주를 돕기 위한 조치다.
공원화를 앞두고 폐쇄된 용산 미군기지는 사람의 간섭이 사라지자 길고양이들에게 거대한 도심 속 은신처가 되었다. 기지 내부의 낡은 시설물은 고양이들의 쉼터로 활용되었으며, 높은 담장은 외부 위협을 막아 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양재천 인근의 방치된 비닐하우스촌 역시 철거 직전까지 고양이 군집의 서식 터전이 되었다. 개발 직전의 빈집과 공터는 경계동물들에게 한시적이지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
반면, 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동물이 인근 주거지로 유입되며 인간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쥐다. 노후 주거지 정비와 하수도 개량으로 기존 은신처가 사라지자, 쥐들이 인근 아파트 단지나 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3년 간 쥐 출몰 민원이 2배 늘어 났다. 이는 도시 정비 사업 진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간에게는 낙후된 개발 대상지가 동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서식지다. 개발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이르러 이들의 이주와 공존 문제가 비로소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담장과 구조물, 경계 공간에서 찾은 은신처

도심의 담장, 옹벽, 건물 벽체 등 인공 구조물은 인간의 접근이 제한되어 동물들에게 유용한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 길고양이는 뛰어난 점프력과 유연성으로 담장을 오르내리며 차량이나 보행자의 위협을 피한다. 케어테이커들은 고양이가 안전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일부러 담장 위에 급식소를 마련하기도 한다. 고양이들은 볕이 잘 드는 에어컨 실외기 위를 일광욕과 휴식 장소로 활용한다. 개방된 공원에서 생활하는 개체들과 달리, 인공 구조물의 높낮이와 사각지대를 이용해 인간과 거리를 유지하며 생존하는 방식이다.
도시 조류인 까치는 도심 개발로 둥지를 틀 거대한 나무가 부족해지자 전신주 꼭대기를 대체 서식지로 선택했다. 포식자를 피해 높은 나무에 서식하던 습성을 유지한 채, 도시 환경에 맞춰 전신주를 일종의 인공 나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둥지 재료로 물어온 철사 조각 등이 전선과 접촉해 정전 사고를 유발한다. 전력 당국이 산란기마다 둥지를 제거하는 등 생존을 위한 적응이 인간의 도시 관리와 충돌하기도 한다.
비둘기 또한 다리 교각 밑, 간판 뒷공간, 건물 처마 등 사람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구조물을 주 서식지로 삼는다. 주간에는 광장이나 공원 등 개방된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지만, 야간에는 안전을 위해 건물 외벽의 깊숙한 틈새나 굴곡진 공간으로 이동해 몸을 숨긴다. 옥상 난간이나 창틀은 비둘기의 주요 번식지로 활용되는데, 둥지 재료와 배설물이 지속적으로 쌓여 악취 및 미관 훼손 등 인간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다. 건물 외벽의 은밀한 틈새가 비둘기에게는 안전한 보금자리인 반면, 인간에게는 위생 및 관리상의 골칫거리가 되는 셈이다.
고가도로 아래, 도심 속 동물들의 둥지
도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와 교량의 하부 공간은 도시 동물들에게 은신처이자 번식지로 활용된다. 지상 6~12m 높이에 위치한 한강 교량이나 고속화도로 교각 밑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외부 침입이 어려워 비둘기 떼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그러나 비둘기의 집단 서식은 하부 산책로의 위생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강한 산성의 배설물이 교량의 철근을 부식시켜 시설물 안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주요 교량의 빔에 스프링 코일이나 미끄럼대 등 서식 방지 장치를 설치하여, 비둘기의 둥지 구축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번화가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건물 처마 밑이나 고가차도의 트러스 사이 공간은 지상의 번잡함과 격리되어 있어, 비둘기에게 천적과 악천후를 피할 수 있는 '도심 속 인공 동굴' 역할을 한다. 서울 광화문 광장 등 도심 중심부에서도 비둘기 집단 출몰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어 지자체가 긴급 방역에 나서는 등, 구조물의 틈새 공간을 점유한 조류와 인간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고가 구조물의 하부는 길고양이들의 은신처이자 이동 통로로도 기능한다. 고가차도나 육교 아래의 그늘진 공간은 인적이 드물어 경계심 강한 동물들이 몸을 숨기거나 이동하기에 유리한 회색지대다. 그러나 이 공간이 동물에게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다. 내부순환로 고가 하부의 방호망 등에 고양이가 진입했다가 스스로 내려오지 못해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토목 구조물의 틈새는 동물들에게 생존을 위한 피난처인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하 공간, 보이지 않는 서식처
도시의 지하 공간은 인간에게는 기능적인 시설이지만, 동물들에게는 외부의 위협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용한 은신처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겨울철 길고양이들의 대표적인 피난처다. 고양이들은 차량 엔진의 잔열과 지하의 따뜻한 공기를 찾아 유입되며, 주민들의 급여 활동이 더해지면 정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개체 수가 늘어나자 일부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주차장 내 고양이 주의 안내문을 부착하거나, 심지어 입주민에게 외부 주차장 이용을 권고하는 등 사실상 동물의 서식권을 인정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밀폐된 지하 공간이 길고양이들에게 독자적인 생태 공간인 '아지트'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다.
서울 지하철 역사 역시 조류의 예기치 않은 서식지로 변모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지하철 역사 내 비둘기 관련 민원은 130건을 상회하며, 합정·신도림·왕십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역사를 중심으로 유입이 잦다. 환기구나 천장 틈새로 침입한 비둘기는 단순한 미관 훼손을 넘어 시민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2021년 4호선 노원역에서는 전차선에 앉은 비둘기로 인한 단전 사고 위험이 있었고, 2022년 신도림역에서는 비둘기를 피하려던 승객이 기둥에 충돌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 측은 버드스파이크(조류 착지 방지 침)나 차단 필름 설치 등 물리적 대응에 나섰으나, 개방된 역사의 특성상 완벽한 차단은 어려운 실정이다.
지하 보도 아래 촘촘히 뻗은 하수도망은 쥐들의 주 서식지이자 도시 전역을 연결하는 이동 통로다. 평소 지하에 은신하던 쥐들은 폭우로 수위가 상승하거나 먹이가 부족해질 때 지상으로 출몰한다. 2020년 서울시의 서식 밀도 조사 당시 포획률이 극히 낮아 시민 다수가 쥐를 체감하지 못했으나, 최근 기후 온난화와 음식물 쓰레기 증가로 개체 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강남구와 관악구 등 일부 자치구는 스마트 쥐덫을 설치하고 하천변에 살서제를 살포하는 등 적극적인 방제에 나섰다. 그러나 지하 하수도망은 인간의 통제가 완벽히 미치지 못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어, 도시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기능하고 있다.
경계부 녹지, 도심과 자연의 접점 공간
공원 변두리, 하천변 둔치, 도로변 완충녹지 등 도시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녹지 공간은 인적은 드물고 먹이와 은신처가 풍부해 도시 동물들에게 소중한 안식처가 된다. 성동구의 서울숲은 이러한 공간의 기능을 잘 보여준다.
공원 외곽의 수풀과 주택가가 맞닿은 경계 지역은 길고양이들의 주 서식지다. 공원 조성 초기, 길고양이 케어테이커의 활동이 용인되었다. 공원 내 쥐 개체 수 조절에 고양이가 기여한다는 점이 확인되어서였다. 이후 2016년에는 지자체가 공식 급식소와 보금자리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공원 가장자리의 소나무와 관목 숲이 고양이들의 자연스러운 은신처가 되면서, 완충녹지 공간이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는 경계 지대로 재편된 것이다.

도심과 자연의 접점인 하천 부지와 산자락 공원에서는 야생동물의 유입이 뚜렷하다. 특히 최근 서울에서는 '도시 너구리'라 불리는 야생 너구리가 안양천, 중랑천, 양재천 등 하천변은 물론 아파트 단지 인근까지 서식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서울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 중 16개 구에서 너구리가 목격되었으며, 소방 구조 건수도 2년 새 3배 급증했다.
과거 외곽 산림에 머물던 너구리가 도심 근린공원과 하천 둔치에 적응하여,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먹이 활동을 하는 등 행동 양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광견병 예방약 살포와 옴(피부병) 감염 개체 치료 등 질병 관리에 나섰으며, 전문가들은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불가피한 만큼 구체적인 공존 가이드라인 수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결국 서울의 경계부 녹지는 인간의 활동권과 자연 서식권이 교차하는 완충지대로서 경계동물들에게 유리한 생존 기반을 제공한다. 도심 가장자리의 수목은 조류의 휴식처, 도로변 녹지대는 길고양이의 이동 통로, 하천변 갈대숲은 너구리의 은신처로 각각 활용된다. 인간의 간섭이 덜한 틈을 타, 이러한 녹지 공간들은 도시 생태계의 일부로 기능하며 동물들의 실질적인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