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픽션 '더 체인'ㅣ#3화. 조율
- hpiri2
- 7월 25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8일
2025-07-25 정욱식

지난 줄거리
대만 해협의 포성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미중 함대가 동아시아로 집결하며 일촉즉발의 상황,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수화기 너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한 순간, 그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의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전쟁 행위'라는 북한의 섬뜩한 선언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러시아 함대. '사라예보의 총성'이 동아시아에서 재현되면서, 일본은 80년 만에 다시 전쟁이라는 악몽과 마주하는데...
#3화. 조율
북한 김정훈 위원장은 “조중우호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미국은 대만 해협이 위기 상황이면 전투기, 핵항모 등 군사력의 입출입을 남한에 요구해 왔다. 최서희 대통령은 미국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분쟁에 연루되지 않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이 순간 최 대통령에게 전화 한 통이 오는데...
중국 특사를 면담한 직후 김정훈 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정치국 연석회의를 열었다. 하루 전에는 조선 외무성이 담화를 발표한 터였다. 담화에선 '조선은 대만에서 중국 당과 정부가 자기의 핵심 이익을 지키고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정을 수호하기 위해 취한 조치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중국 동지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중국 측에서는 우리 공화국이 모종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소. 자유롭게 말씀들 해 보시오.”
“우리 공화국과 중국은 조국해방전쟁과 항미원조(抗美援朝)로 혈맹이자 하나의 사령탑 관계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항미원중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인 리승길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전하면 조미정상회담을 통해 이룩한 성과가 수포로 돌아가고 공화국도 큰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최성희 외무상이 반박했다. 김정훈은 2026년 4월에 타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갈마원산지구를 걸으면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너무 아름답군요. 이미 훌륭한 시설을 갖췄지만, 미국이 이곳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 세계적인 휴양지로 만들 수 있어요. 중국과 멀리하고 우리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 주면 더 이상 비핵화도 요구하지 않고 제재도 풀어 주겠습니다. DPRK가 요구해 온 평화협정과 수교도 가능하고요.”
“우리 공화국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겠다는 말씀입니까?”
통역사를 바라보던 김정훈이 시선을 돌려 타럼프에게 물었다.
“하하. 욕심이 과하군요. 이스라엘을 떠올려 보세요. 그 나라는 100개 정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핵보유국이라고 자랑하지도 않고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아요. 핵실험도 안 하고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도 하지 않지요.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도 하지 않고요. 한 마디로 조용한 핵보유국이죠. 미국은 이런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묵인해 왔어요. 위원장께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타럼프 대통령이 답했다.
“각하의 말씀은 알겠지만, 우리 공화국의 핵무력과 조중관계는 흥정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의 핵무장은 미국에도 이익입니다. 각하도 잘 알고 계신 미어샤이머 교수도 우리 공화국의 핵보유가 전쟁을 억제해 주기 때문에 비핵화보다 낫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바로 각하도 말씀하신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핵보유는 중국을 상대로도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여 줄 수 있습니다. 조미관계가 좋아지면 더더욱 그렇게 되겠지요.”
당시 김정훈이 타럼프에게 전한 말이다.
“아니 미제놈들을 믿고 혈맹의 도리를 저버리자는 뜻이오?”
나광철 국방상이 발끈했다.
“최 외무상은 과거에 미국에 그렇게 당해 놓고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이번에도 타럼프가 제재 해결이다, 평화협정이다, 조미수교다 등등 떠벌려 놓고 실제로 한 게 뭐 있습니까?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러시아가 펼친 ‘특별군사작전’을 우리가 지원하면서 얻은 효과를 생각해 보시오. 러시아는 우리 공화국을 핵보유국으로 대우하고 있고 제재도 흐지부지되었어요. 모든 방면에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면서 우리 공화국의 국운 융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중국을 도와주면 대미 장기전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고, 또 중국이 우리 공화국을 핵보유국으로….”
“먼 곳에서 난 불과 옆집에서 난 불은 다르지 않소.”
김정훈이 최성희가 반박하려는 것을 손짓으로 제지하면서 말했다.
“조율된 조치를 생각해 봅시다. 조중우호 관계 수호의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전쟁의 불똥이 우리 공화국으로 튀지 않게 하는 방법 말이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경택 총정치국장이 말을 받았다.
“우리 공화국이 복수의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을 지나 제주도 남방 해역에 한 발,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 공해상에 한 발을 떨어뜨리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발을 묶어 놓고 한국과 일본이 미국을 지원하는 것도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미일한이 우리의 미사일을 요격하면 전쟁 행위에 해당한다는 발표도 준비하고 러시아와 동해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면 더욱 효과적일 겁니다. 조러 간에는 이미 군사훈련을 논의해 온 만큼, 러시아도 즉각적으로 동의할 것입니다.”
“그게 우리 뜻대로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 우리가 중국을 돕겠지만 전쟁을 할 의사는 없다는 걸 저들에게 무슨 수로 알릴 수 있다는 말이오?”
김정훈이 담배 연기를 짙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공화국의 운명이 걸린 사안입니다.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하되 모두 동해 쪽으로 쏘시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도 다양하게 검토해서 보고하시오.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과 통화해야겠소. 준비하시오.”
대만 해협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조율’하는 문제도 한미 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이 추진해 온 것으로 한반도 밖 분쟁, 특히 대만 사태 발생시 주한미군 투입 옵션을 갖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고 조선의 모험주의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표해 왔다. 그런데 타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고, 이번 대만 해협의 충돌로 미국은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 통보하면 될 일이라는 일방주의적 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
이중식 안보실장이 이태식 국방장관과 협의해 작성한 1쪽짜리 NSC 회의 문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미측의 통보 및 요구 사항 - F-35 20대 군산공군기지에 추가 배치 및 핵항모 제주해군기지 입항 예정 - 오산 공군기지에 기항 중인 C-17 글로브마스터 III로 패트리엇을 포함한 군사 물자 대만으로 수송 - 군산 및 오산공군기지에서 전투기 출격해 중국의 동해함대 및 북해함대에 대한 초계비행 실시 - 미군 피격시 한국의 군사 지원 요청
○ 아측의 고려 및 논의 요망 사항 - 미측의 입장에 대한 선별적 대응 필요: 미측의 요구 수용과 아 측의 연루 위험 최소화 - 중국측 대응에 대한 분리 대응 필요: 주한미군 기지 공격 시와 출격 후 공격 시 분리 대응 - 증시·외환·국가신인도 대책 마련 시급 - 미 측 통보 및 요구 사항에 대한 철저한 보안 유지 필요 |
“핵심은 미국의 요구는 최대한 수용하되 그로 인해 우리가 분쟁에 연루될 위험은 피하자는 것이군요.”
보고를 받은 최서희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두 가지를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어렵습니다.”
이한결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제3자인 우리가 미국에 발진기지를 제공하는 셈이기 때문에 중국의 군사적 보복을 야기할 공산이 큽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 전수방위’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를 미측에 확고히 전달하면서….”
“아니, 미국이 주한미군을 차출하겠다는 것을 무슨 수로 막습니까? 미국은 우리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투입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이태식이 답답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면 최소한 우리는 강한 유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연루의 위험을….”
“그건 한미동맹을 깨자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한결의 말에 이태식이 삿대질을 하면서 가로막았다.
“자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책을 논의해봅시다. 미측에는 한국의 동의 없이 미국 군사력의 유출입은 곤란하다는 점을 계속 전달하세요. 북한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최 대통령이 물었다.
“어제 외무성에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이 나왔지만, 군사적인 특이 동향은 아직 없는 듯 합니다.”
정승환 국정원장이 최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덧 NSC 회의 시작 후 3시간이 지났다. 최서희는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모두 청와대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지시하면서 여민관 3층 집무실로 향했다.
“대통령님, 북측의 김정훈 위원장이 통화를 원합니다.”
의전 비서관이 집무실에 들어와 최서희에게 말했다.
[글쓴이 주] 2027년 중국과 대만의 충돌, 미국의 개입, 그리고 한국·조선·일본·러시아 등이 엮여 있는 동맹의 체인이 맞물려 고조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위기를 지나 재앙으로 치닫는 기후변화, 그리고 배타적이거나 공유된 두려움…. 이들이 빚어 내는 대서사를 ‘리얼픽션’ 행태로 써 내려갑니다. 리얼픽션 '더 체인(the chain)'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과 곧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필자가 도전해 본 영역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욱식 평화네크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핵과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는 평화를 상상하고 궁리해 온,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6~20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로 한미동맹과 북핵문제를 연구했다.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군축⸱반핵⸱평화체제를 천착한 공로로 리영희상(2020)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과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전하는 기후위기와 신냉전 이야기』(2023),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2023), 『미중 경쟁과 대만해협 위기』(2022), 『흥미진진한 핵의 세계사』(2020), 『김종대 정욱식의 진짜안보』(공저, 2014) 등 40여 권의 저작이 있다.
갈수록 흥미진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