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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북ㅣ층을 없애면 이웃이 보인다

2025-05-02 박옥균 객원기자

홀로 가구가 늘고 고독사가 증가하는 추세다. 간단하고 폐쇄적인 현재의 아파트 구조를 벗어나 공동체 주택들이 늘고 있다.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가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판교 하우징과 강남 하우징 사례를 통해 중정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주거 구조를 소개한다. 가게나 공방이 살림집과 연결된 중세형 주택을 꿈꾼다.


박옥균 리더스가이드 대표

독자의 길라잡이라는 뜻의 리더스가이드를 운영하며, 이곳에서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에서 ‘과학’과 ‘교육’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 3년 동안 과학을 가르쳤고, PC 통신 ‘하이텔’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2002년부터 ‘리더스가이드’를 창립해 도서 정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빅데이터 관련 기술을 공부하면서 도서 7만여 종에 대해 빅데이터 작업을 진행했다. 빅데이터 관련 특허 두 건(‘도서 관리 시스템 및 도서 관리 방법’, ‘집단 지능을 이용한 상품 검증 방법’)을 등록했고, 데이터 교육과 관련한 자문과 최신 흐름에 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전에 쓴 책으로는 『수학은 스토리다』(2023),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데이터 이야기』(2022)가 있다.

블로그 리더스가이드 / 홈페이지 www.readersguide.co.kr / 서점 알지책방


평면 주택의 옆집, 입체 아파트의 옆집


세상이 평면일 때가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높이가 생겼다. 2차원 평면이 높이를 더해서 3차원 입체가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면에 파리가 한 마리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느 날 파리가 평면을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간다. 그 순간에 파리는 평면에서는 볼 수 없다. 공중으로 간 파리는 거만한 존재처럼 위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모두 평면에 살 때는 함께 만났던 사이도 이제는 만나기 힘든 존재가 될 수 있다. 평면과 입체는 단층집만 있던 세계에 갑자기 솟아오른 아파트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시의 아파트 숲은 마치 평면에서 높이 솟아오른 입체가 된 듯 평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서먹하게 다가왔다. 솟아오른 아파트 주민들도 서로에게 서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층간 소음은 있어도 옆집은 없는 것으로 잘 보여 준다.


1가구 1주택, 사생활 보호를 위해 좁고 간단하고 막힌 구조


아파트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택 형태이다. 지금도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저소득층을 위한 집합 주택이었다거나 성냥 상자 모양이라는 이야기는 흘러간 옛노래처럼 잊혔다. ‘영끌’의 대상이 될 만큼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아파트 가격이 그 집을 소유한 가족의 계급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긴다. 아파트가 가진 속성은 처음 시작에서 찾아야 한다. 아파트는 도시로 노동인구가 몰리면서 그 사람들이 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지어진 집합 주택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1가구 1주택’과 ‘사생활 보호’였다. 그래서 아파트는 한 가구가 거주할 만한 좁고 간단한 구성과 프라이버시를 위해 막힌 구조를 택했다.


홀로 가구의 비율이 35.5%


그렇게 시작한 아파트는 일조권과 조망권을 가리며 주변의 단독주택들을 빨아들인다. 오래된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있던 지역은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재개발되었다. 건축된 지 시간이 흐른 아파트는 재건축을 이유로 더 높은 아파트로 바뀌어 간다. 점점 더 높아지는 아파트들은 고대 바빌론 문명의 바벨탑과 닮아 있다. 새로 짓고 더 높아져도 욕망은 ‘더욱더’로 꿈틀거린다. 잘 늘어지던 고무줄도 언젠가는 끊어지듯이 아파트의 빛이 바랠지도 모른다. ‘무슨 소리냐? 요즘 지방에서도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파트서 잔다고 하는데.’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파트를 받치던 도시의 팽창성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노령층이 많아지고 있다. 한때 핵가족으로 표현되었던 1가구는 더는 1주택의 주체로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의 ‘핵’ 가족은 홀로 사는 사람들로 더 작게 분리되었다. 홀로 가구의 비율이 35.5%이다. 20~30대가 12,5%, 60대 이상이 10%를 차지한다.


한국인 고독사 3661명 (2023년)


현대인의 주거문화는 ‘고립’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고립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청년층의 자살률이 올라가고, 노령층의 고독사는 늘어간다. 일본은 매일 60명씩 고독사한다. 고독사의 정의가 숨진 뒤 8일 이상 지나서 발견된 경우만 간주했음에도 그렇다. 한국은 2023년 기준 3661명으로 조사되었으나 일본처럼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고령층 남성이 홀로 남겨질 경우, 주변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고 스스로 움츠러드는 경향으로 고독사의 비율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커뮤니티 공간을 늘리고 있다. 공동 식당을 운영하고, 영화관을 아파트 단지에 들여놓고 공동 거실을 만들기도 한다.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지음, 이정환 옮김, 『탈 주택』, 안그라픽스, 2025.3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지음, 이정환 옮김, 『탈 주택』, 안그라픽스, 2025.3

시키이, 사적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외부를 향해 개방된 장소


한두 개의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고 공동체 문화가 생길까? 도시인이 귀촌한 후 힘들다고 토로하는 일 중의 하나가 ‘아침 마실 나온 동네 어르신의 방문’이라는 이야기처럼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질적인 배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건축의 공간 자체가 관계 형성을 바라보며 만들어져야 한다. 202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과 건축가 나카 도시하루는 『탈 주택』이라는 책을 통해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을 이야기한다. 야마모토는 이웃 간의 단절이 단순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건축과 주거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저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키이(閾)’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시키이는 일본어로 ‘문턱’이라는 뜻이지만, 한 발짝으로 넘을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택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중간 공간이다. 과거 한국의 사랑방처럼 시키이는 사적 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외부를 향해 개방된 장소다.


모든 주택의 거실이 마당 한가운데로 향한다


이러한 건축 철학을 바탕으로 리켄이 한국에서 설계한 집합 건축으로 ‘판교 하우징’이 있다. 100세대로 건축되었으나 미분양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10년 뒤 건축가를 불러 좋은 집을 설계해 줘서 감사하다는 파티를 열었다. 설계의 핵심에는 ‘중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말로는 마당 한가운데에 가깝다. 건물로 둘러싸인 마당의 형태로 고대 로마와 중국에서부터 사용된 형태다. 중정을 향해서 지어진 모든 주택의 거실은 유리로 되어 있어 안과 밖에서 서로 볼 수 있다. 그 공간을 어떤 이는 전시실로 가꾸고 어떤 이는 작업실로 쓴다. 중정 자체는 아이들의 놀이터도 될 수 있고 산책로도 될 수 있다. 리켄의 다른 설계 작품인 ‘강남 하우징’은 옥상이나 중정이 텃밭으로 활용되고 있다.


중세 도시 이탈리아 산지미나노, 소매 가게와 공방이 살림집과 함께


이렇게 대규모 단지로 설계된 사례들은 시범적인 몇 곳에 불과하다. 한국의 건축사들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마포구 망원동 성미산 마을에 있는 한국형 코하우징 주택인 소행주는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라는 뜻하며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상업적으로 공동 시설 이용을 목적으로 한 ‘타운 하우스’와 ‘셀립’의 형태도 발전하고 있다. 건축물의 구조가 공적인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것으로 주거 문화가 변할까? 저자들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주택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경제활동에도 참가하는 구조를 갖추지 않는 한 커뮤니티는 성립될 수 없다.”라고 강조한다. 작업 공간과 거주 공간, 식당과 같은 상업시설과 거주 공간이 결합한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 ‘오래된 미래’처럼 이들이 사례로 드는 곳이 이탈리아 토스카나시에 있는 산지미나노이다. 이 도시는 탑의 도시로 유명하며, 여전히 중세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중심가에 있는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중세 시대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데, 여전히 소매업 가게와 공방이 살림집과 함께 구성되어 있다.


이미 분업화된 현대에서 이런 주택 구조를 모두 갖추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 차원에서 생산과 소비가 함께 공존하는 시스템을 생각해 볼 여지는 있어 보인다. 도시가 그렇게 바뀌는 과정에서 각 건축물도 공동체형으로 바뀌어 간다면 조금은 이웃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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