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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요와 계통이 빠진 100GW는 공허한 숫자다

  • 2월 27일
  • 3분 분량

관건은 정치적 결단과 전문성의 존중이다. 목표 설정과 실행 설계를 분리하지 못하면, 정책은 구호에 머무르고 만다.



김용만  편집인
김용만  편집인

지난 2월 24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기술과 자본을 감안하면 100GW 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을 게다. 문제는 ‘설치’가 아니라 ‘운영’이다. 전력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되어야 하고 저장이 제한적이다. 설비를 늘리는 일보다 생산된 전기를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계통이 더 까다롭다.


에너지 전환에 당면한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확보 모두 이루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보급 구상은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수요와 계통 설계가 결여된 채 설비 용량만을 앞세운 목표는 정치적 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설비 총량이 아니라 ‘어떤 비율로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력계통을 선로의 집합으로만 보면 안 된다. 주파수와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수요 변동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 돌발 사고에도 전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관성’과 ‘유연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변동성이 크고 출력 예측이 어렵다. 설비 목표만 높이면 출력 제한 증가와 계통 불안정, 전기요금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의 이분법이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재생에너지, 원전, LNG,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어떤 비율로 조합할 때, 계통 안정성과 탄소 감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력계통을 일정 수준의 기저·관성 전원에 의존해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더라도 일정한 관성 전원과 유연성 자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 전체의 품질이 흔들린다.


재생에너지 100GW 구상이 현실이 되려면 수요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력 수요를 견인할 곳은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충전 인프라, 신규 산업단지 등이다. 이 수요를 어느 지역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 전략이 없으면, 발전 설비와 수요의 공간 불일치는 심각해진다. 발전은 남는데 소비할 곳이 없거나, 소비는 폭증하는데 송전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100GW는 공허한 숫자가 된다.


송전·변전 설비 확충은 발전 설비 설치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주민 수용성, 환경 영향 평가, 인허가 절차 등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역에서는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계통 보강 계획과 동떨어진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실행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발전 설비는 몇 년 안에 세울 수 있어도 계통은 십년 단위의 계획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53% 감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약속한 40% 감축보다 상향된 수치다. 현실은 40% 목표조차 달성 여부가 불투명하다. 계통 정비 속도와 재생에너지 수용 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53% 목표는 선언에 그치기 쉽다. 목표의 상향이야 원하는 바이지만 이행 경로가 구체적이지 않다면, 정책은 오히려 신뢰받기 어려워진다.


에너지 전환은 특정 발전원의 퇴출이 전부가 아니다. 관성과 품질을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구조 재설계’다. 에너지원의 종류가 아니라 에너지 비율이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50%, 원전 20%, LNG 20%, 저장 및 수요관리 10%와 같은 조합이 현실적인지, 혹은 다른 비율이 더 효율적인지 정밀한 시뮬레이션과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 이 과정 없이는 숫자가 정책을 우선하게 된다. 본말전도다.


지역 분산형 전원 확대와 중앙 집중형 계통 운영 사이의 역할 재정립도 시급하다. 재생에너지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지만, 수요는 수도권과 산업 집적지에 집중되어 있다. 중앙정부가 계통 계획을 독점으로 설계하게 되면 지역의 수용성과 참여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거버넌스 개편 없이는 재생에너지 확대도, 계통 보강도 속도를 내기 어려운 이유다.


관건은 정치적 결단과 전문성의 존중이다. 전력계통은 고도의 기술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지만, 세부 설계와 실행 권한은 계통을 이해하는 전문가 집단에 충분히 위임해야 한다. 목표 설정과 실행 설계를 분리하지 못하면, 정책은 구호에 머무르고 만다.


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흐름이다. 문제는 속도와 방식이다. 계통이 견딜 수 있는 속도와 산업 구조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전환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목표 달성에도 실패하고 사회적 비용만 키우게 된다.


100GW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숫자를 떠받칠 수요·계통·저장·산업 전략이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된다. 전력계통 없는 에너지 전환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 설비 용량 경쟁을 넘어, ‘에너지 비율의 설계’와 ‘계통 중심의 전환’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2030년과 2035년의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어쩌면 유일한 길이다.


2025년 12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발표했다. 사진_목포MBC
2025년 12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를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발표했다. 사진_목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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