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재정의…황거누이강에서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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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8 김사름 기자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 뉴질랜드 마오리 공동체의 이 말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망으로 보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황거누이강(Whanganui River)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뉴질랜드의 실험은 '지구의 날'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황거누이강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답하고 있다.
자연을 보는 두 개의 시선

지구의 균형은 언제, 어떻게 흔들리기 시작했을까. 인간 중심의 근대적 사고는 인간만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것을 오랫동안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생물다양성이 무너지고, 기후위기가 일상이 되며, 지구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지금 그 전제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이제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지구 중심의 가치관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유럽 근대법의 전통에서 강은 물과 강바닥, 제방, 지류, 유역으로 잘게 나뉘는 관리 대상이었다. 반면 뉴질랜드 황거누이강에 기대어 살아온 마오리 공동체에게 강은 그런 분절된 요소의 집합이 아니었다. 강은 하나의 살아 있는 전체였고, 조상이었으며, 공동체 삶의 중심이었다.
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다. 하나는 자연을 통제와 활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을 관계와 상호 의존의 질서 속에 놓인 존재로 보는 시선이다.
이 차이는 결국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전자가 개발과 효율의 논리라면, 후자는 공존과 책임의 논리다. 마오리 세계관에서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모두가 하늘과 땅으로부터 이어진 존재이며, 서로 연결된 관계망의 일부일 뿐이다. 이 시선은 인간 문명의 기본 전제를 다시 묻게 한다.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
황거누이강(Whanganui River)은 뉴질랜드 북섬 중부 화산지대에서 시작해 바다로 흘러가는 긴 강이다. 마오리 공동체에게 이 강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었다. 700년 넘게 공동체는 강을 돌보며 살아왔고, 강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곳이자 약을 얻는 곳, 길이자 방어선, 치유와 의례의 공간이었다. 곧 삶의 중심이었다.
마오리 부족이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I am the river, the river is me)”라고 말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강은 자연물이 아니라 조상이었고, 공동체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유럽계 정착민의 유입과 식민지 국가의 확장은 이 관계를 무너뜨렸다. 강의 급류는 관광선 운항을 위해 폭파됐고, 강바닥의 자갈은 철도와 도로 건설에 쓰였다. 하구는 도시 오폐수의 배출구가 됐고, 상류의 물길은 수력발전 사업을 위해 다른 유역으로 돌려졌다.
마오리 공동체에게 이는 단순한 개발이 아니었다. 강의 생명력을 훼손하고, 공동체의 세계관을 무너뜨린 깊은 침해였다.
자연을 ‘대상’에서 ‘관계의 중심’으로 옮기다
뉴질랜드는 법률을 통해 황거누이강을 하나의 법적 주체로 인정했다. 강을 단지 수자원이나 경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이자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권리 주체로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이 단지 강 하나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연을 소유와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을 인간과 관계를 맺는 존재, 존엄과 연속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2017년 3월 20일, 뉴질랜드 의회는 '테 아와 투푸아(Te Awa Tupua) 법'을 통과시키며 황거누이강과 그 물리적·비물리적 요소 전체를 “분리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전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이 강은 법적으로 모든 권리와 권능, 의무와 책임을 가진 인격체로 인정됐다. 강이 하나의 법적 주체가 된 것이다.
이 법의 핵심은 자연에 인간과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는 상징성에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꿨다는 점이다. 강은 더 이상 인간이 관리하고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관계를 회복하고 책임을 져야 할 상대가 됐다.
이를 위해 정부와 마오리 공동체가 각각 대표를 세워 강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도 마련됐다. 자연을 ‘대상’에서 ‘관계의 중심’으로 옮겨 놓은 셈이다.
권리보다 먼저 온 것은 관계의 회복이었다
황거누이강 사례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마오리 지도자들이 법적 권리 그 자체보다 관계와 책임의 회복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핵심은 “강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자연과의 관계를 권리보다 상호 의무의 문제로 보는 마오리 세계관이 여기서 드러난다. 가족 안에서 권리보다 책임이 먼저이듯, 자연 역시 법적 대상이 아니라 관계망 속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뉴질랜드의 실험은 단순한 환경 입법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식민 통치와 약속 위반, 그리고 마오리 공동체의 권리 침해에 대한 사과와 화해의 과정이기도 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새 법률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강을 중심에 둔 “새롭고 지속적인 관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결국 황거누이강의 법적 지위 인정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국가와 원주민 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했다.
황거누이강 법은 하나의 고립된 사례에 머물지 않았다. 이 선례를 바탕으로 숲과 호수, 강을 포함한 테 우레웨라(Te Urewera)도 법적 인격을 얻었고, 타라나키 산도 같은 흐름 속에서 법적 지위 부여가 추진되었다.
뉴질랜드는 자연을 단지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법적으로 다시 정립하려는 길을 열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정의할 때
이 제도가 법정에서 얼마나 강한 효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직 이 법적 지위를 바탕으로 제기된 소송은 없고, 자연의 법적 지위가 어디까지 실질적 보호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 시도는 인간 중심 법체계가 놓쳐 온 자연의 존엄과 상호 책임의 윤리를 법의 언어 안으로 불러들였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대기와 바다, 숲과 강, 생물다양성과 기후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인류가 직면한 것은 하나의 하천 오염이나 하나의 지역 개발 갈등이 아니라, 지구 전체 생명 순환의 위기다.
강을 법적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관계를 맺고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임을 법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뉴질랜드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자연을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시대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요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는 점이다. '지구의 날'에 황거누이강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하나의 법적 지위가 아니라, 인간 문명의 시선을 바꾸는 질문이 그 강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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