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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날 특집 | 생물다양성 전쟁…DSI와 이익공유의 정치학

  • 22시간 전
  • 5분 분량

2026-04-17 김사름 기자

눈에 보이는 생태계 파괴만이 생물다양성 위기의 전부는 아니다. 오늘의 국제사회는 디지털 염기서열정보를 둘러싸고, 생명의 정보를 공공재로 볼 것인지, 주권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지구의 날'을 맞아 생물다양성 논쟁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DSI 문제를 살펴본다


생명의 정보, 디지털 염기서열정보(DSI)


생물다양성 논의에서 산림과 해양, 멸종위기종 보전의 중요성은 비교적 익숙한 의제가 됐다. 그러나 오늘의 생물다양성 위기는 눈에 보이는 생태계 보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전자 정보가 데이터로 전환되고, 그 데이터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디지털 염기서열정보(DSI, Digital Sequence Information)를 누가 이용하고, 그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이용을 둘러싼 국제 논쟁은 이제 숲과 바다를 넘어, 생명의 정보가 저장된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사진_샹카 인도행정서비스 아카데미(Shankar IAS Academy)
사진_샹카 인도행정서비스 아카데미(Shankar IAS Academy)

유전정보를 디지털 데이터 형태로 다루는 시대


생물다양성은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 형태와 유전적 변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생태계와 종, 그리고 유전자 수준의 다양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유전적 다양성은 각 종이 가진 유전자 구성의 차이를 뜻하며, 현대 생명과학 기술의 발달은 이 유전정보를 디지털 데이터 형태로 다루는 시대를 열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디지털 염기서열정보(DSI)다. DSI는 생물체의 유전체에서 얻은 디엔에이(DNA, Deoxyribonucleic Acid), 알엔에이(RNA, Ribonucleic Acid) 등의 염기서열 데이터와 관련 디지털 정보를 가리키는 국제 정책상의 용어다. 물리적인 생물 자원, 즉 유전자원을 비물질화한 정보 형태로 바꾼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용어는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2018년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산하 전문가 그룹은 ‘디지털 염기서열정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편의상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핵산 서열 데이터가 중심이지만,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이나 대사체 정보 등 유전자원으로부터 파생된 다른 정보까지 포함할 것인지를 두고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DSI의 정의와 범위가 아직도 국제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접근 및 이익공유(ABS)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제 협력 장치로는 생물다양성협약과 그 부속 문서인 나고야의정서(Nagoya Protocol)가 있다. 이 두 체계는 접근 및 이익공유(ABS, Access and Benefit-Sharing)를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각국은 자국 유전자원에 대해 주권적 권리를 가지며, 이를 이용하려는 측은 사전승인(PIC, Prior Informed Consent)과 상호합의조건(MAT, Mutually Agreed Terms)에 따라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전자원 제공국은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의 일부를 공유받을 수 있다.


그러나 DSI가 등장하면서 이 체계는 큰 균열을 드러냈다. 기존 ABS 체계는 물질적 유전자원의 이동과 이용을 전제로 설계됐다. 하지만 오늘날 연구자들은 생물 표본을 직접 넘겨받지 않아도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된 유전자 서열 정보를 내려받아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DSI 이용이 기존 ABS 절차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공개 데이터로 제공된 DSI는 별도의 계약 없이 누구나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다. 그 결과 DSI로부터 상업적 성과가 발생하더라도, 원래 유전자원을 제공한 국가와 이익을 나누지 않는 제도적 빈틈이 생겼다.


오픈사이언스 관행은 연구를 촉진했지만, 동시에 ‘공정하고 공평한 이익공유’라는 기존 원칙을 흔들어 놓았다.


형평성과 혁신의 충돌


DSI를 둘러싼 국제 논쟁은 결국 형평성과 혁신의 충돌로 압축된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개발도상국들은 자국 유전자원에서 유래한 정보가 DSI 형태로 활용돼 막대한 이익이 창출되는데도, 정작 제공국에는 아무런 환원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이는 ABS 체계의 핵심인 공정한 이익공유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DSI 역시 자국 유전자원의 연장선으로 보고, 그 이용 이익이 제공국과 공유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국내법에서 DSI를 물질적 유전자원과 유사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반면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 등 연구개발 선진국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DSI에 나고야의정서식 규제를 적용하면 행정 부담이 커지고, 생명과학 연구와 바이오산업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DSI는 지금까지 별다른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용돼 왔기 때문에, 새로운 규제가 연구개발의 핵심 데이터 접근을 막을 수 있다는 반발이 크다.


특히 DSI는 합성생물학과 크리스퍼(CRISPR) 유전자편집 기술 같은 새로운 산업 기회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국제사회가 DSI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생물다양성 국제 거버넌스의 실효성뿐 아니라 과학기술 혁신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DSI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해


DSI를 둘러싼 혼란은 용어와 법적 지위가 모두 확정되지 않았다는 데서 더 커진다. 2018년 생물다양성협약 산하 임시 전문가지원그룹(AHTEG, Ad Hoc Technical Expert Group)은 DSI의 개념과 범위를 논의하며, 핵산 서열 외에 단백질 서열과 대사체 정보, 전사체, 환경 유전체, 메타데이터 등을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지 검토했다. 아직도 국제사회는 DSI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를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현행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을 “유전정보를 지닌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디지털 정보는 직접적인 규율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결국 DSI를 현행 체계 안에 본격적으로 포함시키려면 정의를 수정하거나, 별도의 국제적 결정을 만들어야 한다.


일부 국가는 국내 법령에서 DSI를 유전자원의 연장선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국제적으로 통일된 규범은 여전히 부재하다. 이 불명확성이야말로 지금의 갈등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DSI 이익공유, 다자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메커니즘 설립하기로 합의


DSI 이익공유 논쟁의 핵심은 어떻게 이익을 나눌 것인가에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쌍무적 접근이다. 이 방식은 DSI를 이용할 때 그 정보가 유래한 유전자원의 제공국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다.


다른 하나는 다자적 접근이다. 전 세계 공통 기금이나 글로벌 메커니즘을 만들어, DSI 이용자들이 일정한 기여를 하고 그 자금을 제공국과 지역사회 등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기존 ABS 체계의 연장선이고, 후자는 오픈 데이터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이익공유를 실현하려는 타협안에 가깝다.


이 논쟁은 202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 Conference of the Parties)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각국은 오랜 대립 끝에 DSI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다자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DSI 데이터에 대한 개방적 접근은 유지하되, 상업적 이용 등으로 얻는 이익 일부를 전 세계 공동기금에 출연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같은 회의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 Kunming-Montreal Global Biodiversity Framework에도 DSI 이익공유가 포함됐다.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DSI를 포함한 유전자원의 이익공유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칼리 기금(Cali Fund)’은 생명 정보의 새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


2024년 콜롬비아 칼리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제16차 당사국총회(COP16, Conference of the Parties)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 마련됐다. 당사국들은 결정문 16/2를 통해 DSI 이익공유를 위한 글로벌 기금을 설립하기로 합의했고, 이 기금은 ‘칼리 기금(Cali Fund)’으로 명명됐다.


제약, 화장품, 종자·농업, 바이오테크놀로지 산업 등 DSI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매출의 일정 비율을 기금에 분담하는 방식이 논의됐다. 다만 구체적인 부담률과 시행 방식은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추가 협의를 거쳐 확정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완결이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 칼리 기금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기업의 기여 방식, 기금의 배분 기준, 제공국과 지역사회에 대한 환원 구조가 세밀하게 설계돼야 한다. 동시에 과도한 규제로 연구와 혁신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제공국이 정당한 몫을 보장받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국제사회가 아직도 DSI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갈리는 이유다.


DSI는 공중보건과 지식재산, 해양 거버넌스를 아우르는 국제 질서의 문제


DSI 논의는 이제 생물다양성협약 바깥의 다른 국제 무대로도 번지고 있다. 2024년 5월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에서는 유전자원 및 관련 전통지식의 지식재산 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은 특허 출원 시 해당 발명이 이용한 유전자원의 출처 공개를 의무화했다. 최종 조약문에서 “직접적”과 “물질적”이라는 수식어가 삭제되면서, DSI를 기반으로 한 발명도 출처 공개 대상에 넓게 포함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는 특허 단계에서 DSI 이용의 추적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병원체 유전자 정보의 공유와 이익공유를 다루는 병원체 접근 및 이익공유 체계(PABS, Pathogen Access and Benefit-Sharing System)를 논의하고 있다. 또 유엔해양법협약(UNCLOS,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체계 아래의 국가관할권 이원지역 해양생물다양성협정(BBNJ, Biodiversity Beyond National Jurisdiction)에서도 해양 유전자원과 관련해 DSI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DSI 문제가 더 이상 생물다양성 분야 내부의 기술적 논의가 아니라, 공중보건과 지식재산, 해양 거버넌스를 아우르는 국제 질서의 문제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생명의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DSI 논쟁은 결국 생명의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생물다양성 보유국의 주권인가, 전 세계 과학계의 공공재인가, 아니면 글로벌 산업이 활용할 수 있는 혁신 자원인가.


'지구의 날'에 이 문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생물다양성 전쟁은 숲을 지키느냐, 바다를 보전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생명의 정보를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학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연을 보호하는 시대를 넘어, 자연에서 나온 정보를 어떻게 공정하게 공유하고 책임 있게 활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규칙의 핵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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