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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날, 지구법을 생각하다…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지구 중심 세계관으로

  • 22시간 전
  • 5분 분량

2026-04-18 김사름 기자

강과 숲, 산과 습지도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인간만을 위한 법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막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국제사회는 자연을 법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보는 지구법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지구의 날'을 맞아 법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지 묻는다.



인간만을 법의 주체로 상정한 기존 법체계…기후위기와 생태위기 감당할 수 없어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대형 산불과 홍수, 해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일상이 된 시대다. '지구의 날'이 던지는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탄소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 재생에너지를 얼마나 늘릴 것인가를 넘어 이제는 묻게 된다. 지금의 법은 과연 지구를 지킬 수 있는가. 


인간만을 법의 주체로 상정한 기존 법체계로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감당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국제사회는 새로운 법철학과 제도 실험을 축적해 왔다. 그 이름이 바로 지구법(Earth Jurisprudence)이다.


지구법은 자연을 단지 이용하거나 보호해야 할 객체로 보지 않는다. 강과 숲, 산과 습지, 곤충과 동물 같은 자연적 실체도 고유한 존재 가치와 권리를 가진다는 관점이다. 인간 중심의 법에서 벗어나 인간을 지구 공동체의 일부로 다시 위치시키려는 시도다. '지구의 날'을 맞아 지구법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마스 베리가 제안한 지구법, 지구 공동체의 권리를 말하다


지구법은 21세기 초 본격적으로 제안된 법과 거버넌스의 전환 이론이자 법철학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인물은 미국의 문명사상가이자 생태신학자인 토마스 베리(Thomas Berry)다.


그는 2001년 지구법 개념을 제창하며, 근대의 인간 중심적 법체계가 오히려 오늘의 생태위기를 심화시켜 왔다고 비판했다.


베리는 저서 『위대한 과업』에서 현재의 법체계가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다루는 데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자연적 실체도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권리와 자격을 갖는다고 본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본 권리는 “자연 체계 안에서 구성 요소들이 자신들의 기능과 역할을 실현할 수 있는 서식지와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그는 2001년 회의에서 ‘지구법학의 열 가지 원리’를 발표했고, 그 가운데 핵심으로 존재할 권리, 서식할 권리, 지구의 진화에 참가할 권리를 제시했다.


이 세 가지 원리는 지금도 세계 각국의 ‘자연의 권리’ 논의에서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강은 강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고, 산은 산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으며, 생물종은 자신이 살아갈 터전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만 권리의 주체라는 오랜 전제를 뒤집는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자연도 소송할 수 있어야 한다


지구법의 선구적 논의는 197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른바 ‘시에라클럽 사건’에서 널리 알려졌다. 당시 사건은 미국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 세쿼이아 국유림 안 미네랄 킹 계곡에 스키장을 건설하려는 개발 계획의 적법성을 둘러싼 것이었다. 쟁점은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이 이 사건에서 원고 자격을 가질 수 있느냐였다.


이 재판에서 윌리엄 O. 더글러스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획기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자연물도 법적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환경단체는 자연물의 후견인처럼 이를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법학자 크리스토퍼 스톤의 견해를 인용했다.


스톤은 자연물도 후견인이나 수탁자를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침해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원상회복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 주장은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이후 지구법과 ‘자연의 권리’ 논의의 중요한 사상적 출발점이 됐다.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으로, 법의 방향을 바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근대법은 인간 중심의 법이다. 법의 주체는 인간과 법인이며, 자연은 소유하거나 관리하거나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그러나 지구법은 이 전제를 근본에서부터 뒤집는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며, 법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안녕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더 선명해진다. 예컨대 산림 벌채는 인간법 체계 안에서는 국가의 허가를 받으면 적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구법의 관점에서 보면, 그 벌채가 지구 전체의 안정성과 생태계의 존속을 해친다면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인간 사회 안의 허가 여부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 전체의 지속성이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다.


하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하천은 치수와 이수의 대상으로 다뤄져 왔다. 어떻게 해야 홍수를 막고, 물을 저장해 인간에게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법과 정책이 설계됐다. 그러나 지구법의 관점에서 보면 하천은 그 자체로 권리를 가진 실체다.


강은 물의 양과 흐름을 유지할 권리가 있으며, 강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홍수 방지와 농업 용수 확보라는 이유만으로 강의 흐름을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댐 건설은 지구법의 기준에서는 허용되기 어렵다. 인간에게 유익하더라도 강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배자가 아니라 대변자다


지구법은 자연의 권리를 인간법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자고 제안하는 법철학이다. 박태현 강원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지구법은 특별한 개별법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접근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인간 중심 법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근대법과 지구법의 가장 큰 차이는 인간의 역할과 자세다. 지구법에서 인간은 지배자가 아니라 대변자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지구 중심주의로의 전환이다. 이 관점에서는 ‘국가의 안보’가 ‘지구의 안보’로, ‘민주주의’가 ‘생명주의’로, ‘국가연합’이 ‘종의 연합’으로, ‘세계평화’가 ‘지구평화’로 목표 자체가 달라진다. 법의 주어와 목적, 보호의 범위를 통째로 다시 생각하자는 요구다.


이 철학은 오늘날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도 일부 반영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화장품 회사 페이스 인 네이처(Faith In Nature)는 2022년 ‘자연’을 사외이사로 임명했다. 자연 자체가 직접 발언할 수는 없지만, 후견인이 자연의 입장에서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자연의 관점에서 발언하고 투표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자연을 법적 주체로 보고, 그 권리를 대변하도록 한 상징적 시도다.


자연의 권리를 법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실험


국제사회는 이미 자연의 권리를 법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을 시작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에콰도르다.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를 헌법에 명시했다. 자연을 단지 인간의 소유물이나 자원이 아니라, 고유한 존재로서 권리를 가진 법적 주체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지구법 철학이 실제 헌정 질서 안으로 들어간 첫 사례로 평가된다.


뉴질랜드의 황거누이강 역시 대표적이다. 이 강은 마오리족에게 단순한 수자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상으로 여겨져 왔다. 이를 반영해 뉴질랜드 정부와 마오리 공동체는 2017년 황거누이강 법(The Te Awa Tupua (Whanganui River Claims Settlement) Act 2017)을 제정했고, 강에 법적 인격을 부여했다.


법에 따라 강은 ‘테 아와 투푸아(Te Awa Tupua)’라는 하나의 법적 주체로 간주되며, 인간과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두 명의 법적 대리인, 즉 한 명의 정부 대표와 한 명의 마오리 대표가 강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도 마련됐다.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I am the river and the river is me)”라는 철학이 법으로 구현된 셈이다.


이 밖에도 200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마쿠아 자치구는 폐광 유독 폐기물 유출 사건을 계기로 생태계를 조례상 ‘사람’처럼 간주하고 주민들이 자연공동체를 대신해 소송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인도 우타라칸드주 고등법원은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에 법인격을 인정했고, 강고트리 빙하와 야무노트리 빙하에도 권리를 부여했다. 세계 각지에서 자연을 권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인정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인간의 이용과 편의를 우선하는 법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한국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둘러싼 문제제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04년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며 제기된 ‘도룡뇽 소송’은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서식지를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한국 사회에 처음 본격적으로 던진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국 현행법은 자연물에 당사자 능력이나 원고 적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자연은 여전히 보호의 대상일 뿐,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 결과 한국의 환경법과 개발법 체계는 여전히 인간의 이용과 편의를 우선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태계 파괴가 장기적으로 인간 사회의 안전과 존속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음에도, 법은 자연을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조정해야 할 객체 정도로 다룬다. 국제적 흐름과 비교하면 한국은 지구법적 전환에서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지구의 날', 법의 주어를 바꿔야 할 때


전등을 끄고, 플라스틱을 줄이고, 나무를 심는 날로서의 '지구의 날'은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구조적 문제라면, 그것을 다루는 법과 제도 역시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구법은 전환을 요구한다. 법의 주어를 인간만으로 한정하지 말고, 지구 공동체 전체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을 권리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상상하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을 중심에 둔 법체계가 오늘의 재난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지구의 날'에 지구법을 생각한다는 것은 단지 새로운 법학 이론을 소개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 중심 세계관의 한계를 직시하고, 지구 중심 세계관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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