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팔았는가, 성장과 자본이 훔친 기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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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8일
- 6분 분량
2025-08-01 권춘오 객원기자
개인이 아닌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이며, 소비와 기술에 대한 우리 편견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옌스 베케트의 책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팔았는가』는 ‘우리는 왜 구조적 변화 대신 상징적 실천에 머무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상태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를 탐구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권춘오 (주)네오넷코리아 대표
(주)네오넷코리아는 정부중앙기관, 지방자치단체, 국공립 공공도서관, 국책 연구소 등에 지식 데이터 베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권춘오 대표는 동국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코리아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동아비즈니스리뷰」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기회의 심리학』, 『세계사를 바꾼 49가지 실수』,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실험경제학』, 『세스 고딘 보고서』 등이 있다.
홈페이지 북집 www.bookzip.co.kr
기후위기의 실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 제기의 전환
기후변화 대응의 실패를 개인의 나태함이나 무지로 환원하는 시각이 우리에게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텀블러 사용, 플라스틱 줄이기, 자가용 대신 자전거 이용과 같은 개인의 실천은 구조상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공허하게 반복되고 있다.
사회는 이처럼 '착한 시민'의 윤리적 선택을 장려하면서도, 그들이 몸담고 있는 시스템이 오히려 개인의 실천을 무력화시키며 현실 노력을 외면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시민 개개인의 도덕심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불리한 조건으로 만든 경제·정치·문화의 구조에 있음에도 말이다.
기후위기라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는 일상에서 체감하기 어렵다. 당장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회 시스템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특히 현재 안정과 성장의 유지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체계에서는, 미래의 생존이라는 추상 개념이 실제로 의사결정의 동력이 되기 어렵다.
구조는 개인의 선의를 압도하며, 사회 전반에 무관심과 체념을 유도한다. 구조적 조건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개인의 실천도 체제의 경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기후위기의 실패는 곧, 우리가 속한 사회 전체의 실패다.
더욱이 이 구조는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야 자체를 가린다. 개인의 실천을 강조할수록, 구조 개혁이나 정책의 변화 요구는 약화된다. 이는 권력자와 시스템 유지 세력에게 유리한 구조이며, 변화를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교육, 언론, 소비 캠페인 등 사회 각 부문은 시민에게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정치적 책임과 구조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기후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안심할 수 있는 작은 실천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는 않았나?’
“사회 구조는 기후 문제를 생각할 공간을 가로막거나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나 정치인은 선호를 설계하지만, 그 선호는 시스템이 만들어 낸다(Social structures must not obscure or restrict the space in which climate problems can be thought. Economists and politicians design preferences, but those preferences are shaped by the system).”

자본주의 시스템은 왜 기후에 적대적인가?
현대 자본주의는 성장과 이윤을 가장 핵심 가치로 삼는다. 시장은 이윤을 낼 자원에 투자하고, 정부는 성장률을 중심으로 경제 성과를 평가한다. 이 구조에서는 환경 보호, 기후 안정 같은 장기 목표는 언제나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정책들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다고 비판받고, 규제는 경제 활동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로 취급된다.
정치와 금융의 긴밀한 연결 고리도 문제를 심화시킨다. 자본은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를 회피하거나 무력화할 능력을 갖췄고, 정치는 자본의 눈치를 보며 규제에 소극적이다.
순환되는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 속에서, 기후 대응은 '성장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일'로 한정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선언은 있으되 실행은 없고, 계획은 있으되 실효는 없는 상태가 반복된다. 결국, 기후 대응 실패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 실패는 성장 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구조적 예측 가능성이자 필연적 결과다.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후 정책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무력화된다. 중요한 점은 정책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다(Climate policies that do not generate profit are rendered ineffective by the logic of capital. What matters is not the policy itself, but the institutional basis that makes it possible).”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욕망과 성장지상주의는 기후위기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변화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후 문제가 포섭당하기도 한다. 탄소 배출권 거래, 친환경 투자, ESG 경영과 같은 언어가 긍정적으로 보이는가? 실제로는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자본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바꿔치기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유연함과 적응력은 기존 질서를 바꾸지 않고 위기를 흡수하는 능력으로 기능하며, 변혁 대신 지속을 선택하게 만든다. 기후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종종 시장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소비는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오늘날 소비는 단순한 욕망 충족 수단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나는 무엇을 소비하는가’는 곧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직결되며, 소비를 줄이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문화적 소속감에서 이탈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회에서는 소비 줄이기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소비 개념은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소비 사회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순을 안고 있다. 친환경 상품을 소비하는 것조차 ‘윤리적 소비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며, 상품화된 양심은 시장 안에서 또 다른 수요로 기능한다.
결국 기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가 아니라 ‘소비 자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소비는 개인의 도덕적 선택 이전에 사회가 강요한 생존 방식이다.
“‘윤리적 소비’를 내세워도, 그것은 여전히 시장 논리에 포획된 소비사회 안의 변주에 불과하다(Even so-called 'ethical consumption' remains a variation embedded within the logic of market-based consumer society).”
더 나아가 이 구조는 ‘불평등한 소비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고소득층은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기후위기의 피해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더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 구조적 불균형은 소비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가려져 왔다.
소비는 자유가 아니라 생존이고, 어떤 계급은 더 많은 생존 수단을 보장받는다. 진정한 기후정의는 이 소비의 불평등, 책임의 불균형을 밝히고 드러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소비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기후위기에 맞서는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기술 신화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책임 회피
기술은 오랫동안 인류 문제 해결의 열쇠로 여겨져 왔다. 오늘날의 기후위기에서 기술은 오히려 책임을 유예하고 희망을 착각하게 만드는 '신화'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 탄소 포집, 태양 복사 조절, AI 기반 효율 기술 등은 실험 단계이거나 충분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해결책이 확정된 듯 홍보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중심 사고방식은 현재의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도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해 준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기술만 바꾸자는 환상은 변화하고자 하는 정치 의지를 약화시키며, ‘과학이 해결해 준다’는 막연한 기대에 묻혀 사회적 책임과 불편한 선택을 뒤로 민다.
“기술 낙관주의는 정치적 책임을 지연시키고, 기후위기를 기술적 관리 문제로 환원한다(Technological optimism delays political responsibility and reduces the climate crisis to a matter of technical management).”
진실은 ‘기술은 중요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의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 문제는 기술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위험과 비용이 존재한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 개발과 적용 과정에서도 불평등과 권력이 개입한다. 따라서 기술에 모든 희망을 걸기보다는, 기술을 정치·경제·윤리의 맥락 속에서 재배열하고 성찰해야 할 때다.
시민사회는 왜 무력해졌는가
기후위기를 둘러싼 담론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종종 강조된다. 실제 현실에서는 시민사회가 기후 대응의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동원력 부족이나 정보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무력화된 조건’에서 비롯되었다. 현대 시민사회는 정치·경제 권력에 비해 지나치게 약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채널과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
특히 대규모 환경 NGO나 국제기구조차도 자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나 대기업 후원에 의존하며, 이는 발언의 수위와 방향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환경 운동이 지나치게 ‘개인 윤리’나 ‘소소한 캠페인’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구조적 문제의 비판이나 정치적 행동은 위축되고 만다.
이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이겠지만, 실제로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감시자에서 동조자로, 개혁 세력에서 시스템 내 참여자로 변화하며 본래의 비판성을 상실한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민 행동은 상징적 소비나 제한적 참여로 흡수되어 체제의 변화를 정지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Citizen action for sustainability is absorbed into symbolic consumption or limited participation, functioning as a mechanism to suspend systemic change).”
게다가 디지털 시대의 시민사회는 분열적이고 일회적이다.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정보와 감정, 분노는 지속적인 조직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해시태그 운동의 한계는 명확하다. 기후위기처럼 장기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선 즉각적인 분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장기적 연대와 제도 개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구조를 만들 능력과 자원은 시민사회가 갖고 있지 않으며, 이는 기후위기를 둘러싼 진짜 권력의 비대칭을 드러낸다.
미래를 위한 정치, 가능할까
기후위기의 본질은 미래 세대를 위한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권리도, 표도 갖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기후 정책은 항상 현재의 이해관계에 밀려나며, 정치인은 당장의 인기와 선거 주기에만 관심을 가진다.
정치 제도의 시간 지평이 너무 짧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4년 혹은 5년 단위의 선거 주기 안에서, 수십 년을 내다봐야 하는 기후 정책은 표심을 얻기 어렵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은 장기적 정치 비전이 아니라, 단기적 정책 레토릭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조건에서 기후 정치가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은 거의 없다.
“현행 민주주의는 미래 세대의 이익을 대변할 제도적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기후위기의 정치적 무능은 민주주의의 시간 구조에 뿌리박혀 있다(Contemporary democracy lacks institutional mechanisms to represent the interests of future generations. The political incapacity to address climate change is rooted in the temporal structure of democracy).”
정치가 미래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 공백은 누가 메울 수 있을까? 일부 국가에서 시도하고 있는 ‘기후 시민의회’, ‘세대 간 공공기금’, ‘헌법상의 미래 세대 권리 보장’ 같은 제도는 중요한 실험이지만, 아직은 제도 외곽에 머물러 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선 민주주의 자체를 재구성할 상상력과 실천이 요구된다. 미래의 권리를 현재의 권력 안으로 가져오는 정치 혁신 없이는, 기후위기의 극복도 불가능하다.
미래를 되찾는 싸움은 지금부터!
이 책의 핵심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왜 구조적 변화 대신 상징적 실천에 머무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상태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성장과 이윤, 소비와 기술, 정치와 시민사회는 서로 맞물려 미래를 희생시키는 현재를 만들어 냈고, 그 결과 기후위기는 '해결되지 않은 채 관리되는 위기'로 전락했다. 기후위기의 해결은 더 나은 기술, 더 강력한 정책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 감각, 정치의 구조, 경제의 방향, 소비의 문화 자체를 재편하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불편하고 불확실하며, 지금까지 삶의 방식을 바꾸기를 요구한다. 변화는 가능하며,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는 이미 팔렸지만, 되찾을 수 있다. 되찾는 싸움은 바로 지금 이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상상력'이다. 기후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단기 이익을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결단을 요구하고, 변화를 유예하는 모든 구조에 맞서, 이제 묻고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가?”
* 저자 소개
옌스 베커트(Jens Beckert)는 독일 출신의 경제사회학자로, 자본주의 체제와 미래 예측, 기대 형성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으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의 New School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공부했으며, 프린스턴, 하버드, 파리 정치대학교 등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현재는 쾰른에 위치한 사회연구 맥스플랑크연구소(MPIfG)의 소장으로 재직하며,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로 학문적·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작인 Imagined Futures와 Uncertain Futures는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허구적 기대의 역할을 조명한 저술로, How We Sold Our Future는 그 연장선에서 기후위기를 둘러싼 경제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비판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왜 기후에 적대적인가? 근본적인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