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북ㅣ진실은 기후 해법의 핵심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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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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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권춘오 객원기자
우리는 ‘서로 맞물린 다중 위기’인 폴리크라이시스의 한가운데 서 있다. 책 A Climate of Truth를 낸 마이크 버너스-리는 영국의 북해 유전 확대 정책 등에서 보인 정치 왜곡, 정보의 불평등이 낳는 언론 왜곡, 선한 의도지만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과 제도를 꼬집는다. ‘진실은 기후 해법의 핵심 인프라’이며 회피, 왜곡, 묵인하는 사이 우리가 잃는 것은 공동체의 미래라고 말한다.

권춘오 (주)네오넷코리아 대표
(주)네오넷코리아는 정부중앙기관, 지방자치단체, 국공립 공공도서관, 국책 연구소 등에 지식 데이터 베이스를 제공하고 있다. 권춘오 대표는 동국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코리아 편집국장을 역임했고, 「동아비즈니스리뷰」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기회의 심리학』, 『세계사를 바꾼 49가지 실수』,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 『실험경제학』, 『세스 고딘 보고서』 등이 있다.
홈페이지 북집 www.bookzip.co.kr
기후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사회적 태도에 있다. 과학은 경고하지만, 정치와 언론은 이를 왜곡하거나 침묵하며, 대중은 혼란에 빠진다. 마이크 버너스-리(Mike Berners-Lee) 교수는 바로 그 부재한 진실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미래 자체가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폴리크라이시스의 도래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히 ‘기후변화’라는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선언했듯, 우리는 지금 ‘서로 맞물린 다중 위기’, 곧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의 한가운데 서 있다.
기후변화는 폭염, 가뭄, 홍수, 해수면 상승 같은 물리적 재난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식량 부족, 이주민 위기, 정치 불안정, 경제적 충격 등 다른 위기를 촉발하거나 심화시킨다.
“인류는 치명적인 폴리크라이시스로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Humanity is accelerating into a deadly Polycrisis).”
이 선언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현실의 진단이다! 기후변화가 불러오는 산불은 지역 사회의 주거지를 파괴하고, 곧바로 보험 산업의 붕괴로 이어진다. 해수면 상승은 연안 도시를 위협하고,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켜 국가 간 갈등을 격화시킨다. 극단적인 기상 현상은 곡물 수확을 줄이고, 이는 국제 곡물 가격의 급등을 낳아 정치적 불안정으로 직결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러한 위기는 자연의 불가피한 변덕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사실을 무시하고 대응을 지연한 결과라는 것!’
이에 대해 과학은 수십 년 전부터 명확한 경고를 해 왔지만, 사회적 행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폴리크라이시스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진실을 외면한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대가’인 셈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정치와 언론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상은 정치와 언론이다. 정치권은 언제나 당장의 표 계산과 단기적 이익만을 우선시한다. 장기적 기후위기를 외면하거나 축소하고, 과학적 사실을 경제적 논리로 희석한다. 영국 정부의 북해 유전 확대 정책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의 석유와 가스 가격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 국내 생산을 바꾼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2050년까지 넷제로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훼손했을 것이다.”
이는 정치가 얼마나 쉽게 진실을 왜곡하는지 보여 준다. 경제적 효과는 미미하지만, ‘국내 자원 강화’라는 정치적 구호는 표를 모으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를 약화시키고, 기후 대응의 신뢰성을 훼손한다.
언론 역시 진실의 위기를 악화시킨다. 과학적 사실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갈등 프레임은 독자와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쉽다. 이 과정에서 기후변화는 종종 ‘정치적 논쟁거리’로 소비된다. 과학자들의 수십 년간의 연구는 단 몇 초의 방송 클립으로 왜곡되거나, “양쪽의 의견을 다 다뤄야 한다”는 명목 아래 허위 주장과 동일선상에 놓인다.
이처럼 정치와 언론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축소하면, 대중은 혼란에 빠지고,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무너진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나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진실을 지키지 못한 사회적 구조’에 있다.
과학과 사회 사이의 간극
오늘날 과학적 데이터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하고 방대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위성 관측과 빅데이터 분석으로 실시간 추적된다.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2도 이상 상승했고, 이는 수많은 보고서에서 반복해서 확인된다. 생태계의 위기는 종 다양성 감소, 산호초의 백화, 북극 해빙의 축소라는 구체적 현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명확한 과학적 신호가 사회적 행동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점점 더 지체되어 왔다. 즉, 과학은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고 있지만, 정치와 사회는 그 신호를 무시하거나 둔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이러한 문제를 다음의 일갈로 강조한다.
“우리는 과제를 과소평가해서도, 과장해서도 안 된다(We should neither overstate nor understate the challenges …).”
더 큰 문제는 과학적 사실이 왜곡된 채 전달된다는 점이다. 때로는 과장이 동원되어 공포를 자극하고, 또 다른 때에는 축소되어 안일한 태도를 부추긴다. 과학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태도가 없다면, 데이터는 단순한 수치에 그칠 뿐이다.
또한, 과학과 사회 사이의 간극은 정보의 불평등으로도 드러난다. 선진국의 시민은 기후 관련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글로벌 차원의 불균형은 국제적 협력을 방해하고, 기후 대응의 속도를 더 늦춘다.
법과 제도의 딜레마
기후위기를 둘러싼 법과 제도 또한 아이러니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의 규제와 제도는 분명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기오염 방지법, 수질 관리법, 산업 배출 규제 등은 한때 도시의 스모그를 줄이고 환경오염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법과 제도는 변화된 현실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나 도시의 녹색 전환이 과거의 규제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본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지금은 청정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지연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기후 대응의 긴급성이 간과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법과 제도는 선한 의도로 출발하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끊임없이 갱신되지 않으면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행동을 지연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
진정한 법치란 과거의 규범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진실에 맞게 제도를 끊임없이 조정하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 드러나는 단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와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 기술적 인프라는 역설적으로 기후위기 담론의 왜곡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기후변화는 종종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과장되거나 축소된다. ‘기후위기는 과학적 음모’라는 가짜뉴스가 퍼지는가 하면, 반대로 비현실적인 해결책이 만병통치약처럼 제시되기도 한다.
이에 A Climate of Truth가 강조하는 바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다. 진실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기술적 성취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기술, 수소 경제, 원자력 정책 등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와 신뢰가 부족하다면 이러한 프로젝트는 번번이 좌초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단순히 기술 개발이 아니다. ‘독립적인 검증 기구’를 통해 정책의 사실성을 확보하고, ‘투명한 데이터 공개’를 통해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며,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와 언론이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역시 진실의 위기 속에서 기후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다.
'진실'은 기후 해법의 핵심 인프라
A Climate of Truth가 내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주장은, 기후위기의 해법은 기술이나 시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 합의와 신뢰 위에서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실은 기후 해법의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핵심적 인프라다(Truth is not an accessory to climate solutions but their very infrastructure).”
이 구절은 저자의 전체 논지를 압축한다. 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정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거짓과 왜곡으로 꾸며진 구호는 일시적 성과를 낳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저항과 불신을 불러온다. 기후위기에는 새로운 기술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할 용기와 그것을 제도화하는 정치적 의지’도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는 단순히 좌우 이념을 넘어, 사실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합의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정치다. 그것이야말로 21세기 민주주의가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치다.
바보야, 문제는 진실이야
진실 없는 미래는 없다! A Climate of Truth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사실을 직시할 용기가 있는가? 기술과 자원은 충분하고 앞으로 더욱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회피하는 정치,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 그리고 그것을 묵인하는 사회적 태도 속에서는 그 어떤 기술도 무력하다.
“우리가 잃은 것은 단순히 신뢰가 아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미래를 잃었다(What we lost was not just trust. We lost the future of community).”
이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사회적·도덕적 위기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에 기후 전환은 곧 진실의 회복이다. 우리가 진실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진 않는다. 다만 가장 근본적인 조건을 일깨운다.
‘진실 없는 사회에는 기후 전환도, 민주주의도, 미래도 없다’는 것.
우리는 이제라도 더 늦게 전에 시작해야 한다. 불편한 진실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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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마이크 버너스-리는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 환경센터 교수로 활동하며,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탄소발자국 연구 분야의 권위자다. 컨설팅 기업 ‘Small World Consulting’의 설립자이자 대표로, 기업과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탄소 감축 전략과 지속가능 경영을 자문해 왔다. 대중 친화적인 글쓰기로 유명하며, 복잡한 기후 과학과 탄소 배출 문제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내는 데 탁월하다.
주요 저서로 How Bad Are Bananas? The Carbon Footprint of Everything, There Is No Planet B: A Handbook for the Make or Break Years (2019), The Burning Question 등이 있다.
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리 경(Sir Tim Berners-Lee)의 형이지만, 학문적·사회적 영향력은 독립적으로 쌓아 왔으며, 기후 담론의 ‘대중적 해설자’로 평가받는다.
“진실은 기후 해법의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핵심적 인프라다" 사회적 합의와 신뢰...이게 너무 어려운 게 인간사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