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기후변화와 미래 산림 비즈니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한테 원래 요청하신 강연 주제가 ‘기후변화와 미래의 비즈니스’예요. 제가 비즈니스 전반을 다 할 수 없어서, 숲 분야, 산림 분야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하려고 제목을 약간 바꿨습니다. ‘기후변화와 미래 산림 비즈니스’로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는 원래 전공이 토양학입니다.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손요환 교수님이 기후변화 관련 숲을 이야기했는데, 저는 토양 입장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연구직 공무원으로 한 29년 정도 일하다가 작년에 퇴직하고 학교로 옮겼습니다. 오늘 주제 관련해서 기후변화 연구센터장으로 일을 좀 했습니다. 나중에는 국회 기후변화 포럼이나 기후변화학회에도 활동했고, 제가 원장하면서 탄소중립위원회 시민탄소교실 강사로 일했어요. 산림 분야를 말했고 직접 들은 얘기들도 있으니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작년 산림과학원 퇴직 후 연구직 공무원들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연구 사색』을 냈고, 전공을 살려 『토양으로 읽는 세상』을 썼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가 미래 비즈니스를 얘기해야 합니다. 여기 프로그램에서 배재수 원장님이 강의한 적이 있는데, 미래를 알려면 현재 우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나서 전망해야 합니다. 배재수 원장은 한국 산림정책사를 전공했어요. 그분과도 항상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거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투영해보자’라는 취지라고 말해 왔습니다. 저도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 과거 역사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다음에 기후변화와 우리 숲의 관계를 알아보고, 이걸 토대로 우리 산림 분야가 어떤 비즈니스를 해 나갈 수 있을까를 말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진행해 보겠습니다.
Ⅰ. 미래를 논하기 위한 역사 고찰
앞서 강의하신 분들 자료와 유튜브 자료를 봤습니다. 역대 저처럼 산림과학원장을 하셨던 분도 있고, 현직인 분도 있습니다. 저도 연구직 공무원 출신인데, 학자들은 각자의 시각이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방식들도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제 주장이 꼭 옳다는 게 아니라,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1. 195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산림
제가 1993년에 학위를 하고 귀국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산림청 산림과학원에서 영어를 좀 편안하게 할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제가 외국인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일이 좀 많았습니다. 통역하고 외국에 돌아다녔지요. 당시 우리 산림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어떻게 좋아진 거예요?’ ‘어떤 노하우가 있어요?’ 이런 얘기를 제가 당시 강의에서 많이 했는데 제 원래 전공은 아니어서, 자료를 받아서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당시 항상 했던 얘기가 뭐냐면, 일제강점기를 우리가 먼저 겪었다고 말합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도 유럽 사람들이 가서 식민통치하면서 자원을 많이 수탈했어요. 유럽이 식민지를 지속하기 위해서 좀 투자는 했습니다.
목재 수확으로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엄청나게 남벌합니다. 그러면서 조림을 약간씩 하기는 해요. 1922년에 임업시험장을 일제 총독부가 만들어서 조림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하기는 하는데 사실 굉장히 적었습니다. 1950년이 되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습니다. 전쟁으로 산림이 황폐화됩니다. 전쟁보다 더 심각한 거는 전후에 춥고 배고픈 상황입니다. 추운 겨울을 나려니까 연료로 집 근처 나무들을 거의 다 때버립니다. 전쟁 후 산에 서 있던 나무들의 양은 6입방 정도입니다. 1입방이 1m×1m×1m의 부피인데 그게 1ha입니다. 축구장이 0.75ha이니까, 1ha는 축구장보다 좀 큽니다. 큰 소나무가 하나가 서 있으면 그게 한 2입방 정도 나옵니다. 축구장보다 더 큰 곳에 큰 소나무 3그루밖에 없었죠. 큰 소나무가 아니라 작은 소나무니까 작은 소나무가 그 큰 축구장에 한 10그루에서 20그루 있는 정도였습니다.
2. 대한민국 산야의 변화
1960년이면 나무를 열심히 심고 가꿨습니다. 후에 보여드릴 텐데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열심히 심어서 두 배로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축구장에 큰 소나무 너댓 그루 있는 수준이죠. 지금 밖에 나가 산을 보면 우거지잖아요. 그림을 보면 더 쉽게 알 것입니다. 전쟁 직후 민가 근처는 나무가 하나도 없고, 저 멀리 산이 녹색이죠. 거기에 나무가 있었던 거예요. 집 근처는 아예 없고, 저 멀리 있는 것 덕분에 평균으로 6입방 정도였지요. 이제는 이렇게 완전히 변했습니다. 1953년에서 2022년 통계까지 이렇게 쭉 바꿔서 보면, 인구는 한 2배, 국민소득은 540배 정도 부유해졌죠. 그와 동시에 산도 30배 가까이 나무가 많아졌습니다. 이걸 보고 세계인들이 ‘야, 니네 대단하다’, ‘이건 거의 기적이야’,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졌어’라고 합니다. 와서 배우려고 우리나라를 찾는 상황입니다.
외국에서 봤을 때 한국은 일제강점기도 겪고 전쟁으로 먹고살기 힘드니까 산림 황폐화가 심해져서 복구 안 될 것 같으니 포기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요즘도 공적개발원조(ODA,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개도국의 경제개발과 복지증진을 위해 무상으로 지원하는 자금)가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가면 아랄해라는 큰 호수가 있어요. 이 호수 물이 점점 줄어서 거의 소금 모래가 날릴 정도로 바뀌고 있어요. 이를 보고 미국이나 선진국들이 안 될 것 같다고 포기하자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 한국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회수하고 빠져나오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1982년 세계식량농업기구에서 워크 리포트가 나옵니다. 한국이 산림조합, 산림계를 통해서 녹화에 성공했다고 나옵니다. 진짜 특이한 사례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개도국이 스스로 산림 녹화에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거 몰랐어요.
2006년쯤 되면 환경운동가들이 ‘야 이거 한국에 한번 좀 가봐라, 여기 진짜 기가 막힌 데야, 이 모델 좀 벤치마킹해서 우리도 좀 더 좋은 지구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얘기들이 서서히 나옵니다. 산림 분야가 아니라 환경 분야 사람들이 얘기하는 상황이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3. 유네스코 등재 신청된, 국토녹화의 성공 요인
작년에 저희가 유네스코에 ‘산림녹화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했어요. 현재 프랑스에서 열심히 심사하고 있어요. 우리 국토녹화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자료를 전부 정리해서 등재 신청했습니다. 주 내용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책을 아주 제대로 추진했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배재수 원장님 강의에서도 말씀하신,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가 들어오면서 목재 연료를 대체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임산 연료를 때지 않게 되어서 숲이 좋아졌다고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가면서, 지금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화전이 정리된 덕분에 우리가 성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탁월한 행정력과 사회경제적인 발전으로 산림 녹화가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처럼 외국인들에게 강의했어요. 이 분들은 대부분 산림 분야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떠날 때, 특히 연구 분야에서 온 분들이 저한테 질문합니다. “그러면 산림 분야 사람들은 뭘 했어? 산림 전문 연구자들은 뭘 했어? 행정의 승리야, 아니 사회경제가 발전하면 저절로 되는 거야, 나는 산림 전문가인데 나 그럼 우리나라 가서 무슨 얘기해야 돼?” 그 질문에 제가 답을 못했습니다. 다시 봤어요. 진짜 그럴까?
4. 녹화 성공 요인에 대한 재조명(1)
2023년이 국토녹화 50년이어서 역사 기록 작업에 저도 참여했습니다. 조만간 책이 나올 건데, 치산녹화 50주년이라고 말한 것처럼 1973년에 이렇듯 산에 나무 양이 확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은 치산녹화 계획이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봐서는 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산에 나무가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하면 달라져요.
제 손으로 이렇게 나무를 가슴 높이에서 쥐어 봐서, 이 손가락이 서로 닿으면 두께가 5cm예요. 조사에서는 손이 닿지 않는 약간 두꺼운 나무들만 측정합니다. 그보다 작은 애들은 측정도 안 해요. 측정된 것으로 입목축적을 계산해요. 처음 심으면 아무리 큰 나무라고 해 봤자, 무릎 높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 나무가 우리 가슴 높이에서 두께가 6cm가 넘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죠. 제가 기후변화연구센터장하면서 동료에게 ‘한번 데이터를 뽑아봅시다’했어요. 11년 3개월이 걸리더군요. 평균이 나무 심어서 흉고직경(DBH, Diameter at Breast Height)이 6cm를 넘으려면 최소 10년이 걸려야 된답니다. 6cm 넘는 애들만 측정한다고 해서, 진계생장이라 하는데 최소 10년이 걸린다고요.
그 얘기는 1973년에 입목축적이 확 늘려면 최소 10년 전에 심었던 나무라는 것입니다. 1973년이 아니라 1963년 이전에 심었던 나무들이 드디어 크기 시작해서 측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도 1973년에 마술처럼 기적처럼 큰 거라고 얘기하잖아요. 산림청은 1967년에 개청했습니다. 산림국 수준이었죠. 제가 산림청 소속이었지만 산림청이 개청하고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때문에 이렇게 우거진 거는 아님을 솔직히 말해야 되지 않을까요. 저는 연구자 시각에서 그렇게 봤어요.
5. 녹화 성공 요인에 대한 재조명(2)
이거를 2017년에 논문으로 썼어요. 외국인들을 위해서 쓰게 되는데요. 좀 더 뒷받침할 자료가 배재수 원장님이 『광복 이후 산림자원의 변화와 산림 정책』을 쓴 게 있습니다. 11쪽에 보면 우리 산림 면적이 언제 변했는지, 얼마나 늘었는지가 표로 나와 있습니다. 산림 면적 중에 나무가 없는 데를 포함한 게 주황색이에요. 거의 비슷해요. 요새 산지 전용을 통해서 약간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나무를 심은 면적을 보세요. 광복 이후 혼란기가 지나고 전쟁이 났는데, 전쟁 직후부터 엄청나게 나무를 심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심은 면적이 확 늘어요. 1973년부터죠. 1973년, 1967년에 진짜 나무 많이 심습니다. 그때도 면적이 늘었지만 진짜 1950년대에 나무 많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냐, 다 죽습니다.
재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세계산림총회를 열었습니다. 제가 산림과학원 원장을 할 때인데,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여러 나라 산림청장들이 제 방에 와서 한국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물었어요. “우리 대통령이 고속도로 주변에 나무를 심어서 푸르게 만들어라고 한다. 열심히 심었는데 다 죽었다. 와서 좀 살려다오.” 제가 웃으면서 그랬어요. “우리도 그랬다.” 그랬더니 “진짜냐, 니네도 나무 심었는데 죽었어, 처음 듣는다”는 거예요. 우리도 그랬습니다. 산림 녹화 성공의 역사를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새로 쓰는 녹화 성공 요인
나무 열심히 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나무 하나하나가 살아남아야 숲이 되는 거잖아요. 숲을 만들 기술이 필요한 겁니다. 아프리카, 동남아도 나무 진짜 많이 심어요. 근데 다 죽어요. 몽골, 중국 가서 나무 많이 심었어요. 다 죽어요. 몽골, 중국에서 저희가 ODA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나무 심는 비용을 주는 게 아니라 나무 살리면 돈을 준다고 했더니, 살리더라구요. ‘많이 심지만 죽이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가야 됩니다’라고 현진규 박사님이 대통령한테 계속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1960년에 한국 산림과학회라고 지금 이름이 돼 있는데, 그 임학회가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때부터 숲을 어떻게 만들까를 연구합니다. 연구는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인지 그 현황부터 파악합니다. 당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개발계획(UNDP)가 돈과 기술을 주고, 항공 사진를 해석하는 방법도 가르쳐 줬어요. 그렇게 해서 상황을 파악했고, 그때 산림자원조사소가 만들어졌죠. 실제로 토사 재해 방지가 중요하고, 살아남을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나무는 또 오래 가니까 장기 투자 측면에서 쓸 만한 나무를 심어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품질이 좋은 똘똘한 묘목이여야 하고, 그래서 알맞은 종자를 얻기 위해서 육종연구소, 임업시험장에서 1960년대에 열심히 연구합니다. 연구를 토대로 병해충 관리를 합니다. 제가 내년에 환갑입니다. 저희 또래는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나무젓가락으로 솔나방 잡으러 다녔어요. 그렇게 손으로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방제도 했습니다. 지금도 있는 산림조합에서 질소 고정하는 미생물, 천적 미생물도 개발해서 같이 뿌렸어요. 1960년대, 1970년대에도 했습니다. 그런 게 진짜 노하우입니다. 동남아나 아프리카 친구들한테 가르쳐 줘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이 관련한 얘기를 별로 안 했던 거죠. 과학기술 파트에서 이 점을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에요.
7. 종합적인 시각으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종합적인 시각으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했던 역할이 굉장히 큽니다. 1961년 5월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대한민국 최초의 산림법을, 일제강점기에 있던 거 말고, 그해 12월에 만들어요. 관심이 컸고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추진하신 건 맞아요. 다음 해 초에 바로 사방법을 최초로 만들었어요. 산림국을 산림청으로 바꿨어요. 지금 산림청에 국이 한 5개 정도 있어요. 규모가 5배 정도로 커진 거예요. 지방 조직까지 다 커서, 엄청난 수준으로 확대한 거죠. 제 지도 교수님인, 이돈구 청장님이, 중국인들 만난 자리에서 자신은 ‘치산치수’ 대신 ‘지산지수’를 쓴다고 하셨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는 산악 국가라서 벼를 심어봤자, 밭에다가 뭘 심어봤자 홍수가 나면, 산에서 흙탕물이 내려와 다 망쳐버리고, 산밑에 공장을 져도 다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나 산을 제대로 관리하면, 흙탕물이 내려오지 않고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면, 주거가 안정이 되고 그걸 토대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국가경제 초석을 ‘치산치수’로 천명하게 됩니다. 대통령이 나중에 한자로까지 썼지요.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으니까 산림청도 만들었지요.
8. 전략적 접근으로
세계적으로 쿠데타 일으킨 분들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 사회 정의를 부르짖습니다. 사회가 부패해서 정화 차원에서 사회 5대악 근절해야 된다고 합니다. 여기 세 번째로 불법 벌채가 들어갑니다. 지리산 같은 데서 불법으로 나무 베서 훔치는 자들을 감옥에 처넣습니다. 1964년 한 해 600명을 감옥에다 넣을 정도로 강력하게 단속합니다. ‘산림 간수’을 둬서 말 타고 다니면서 산에서 나뭇가지나 나무들 불법으로 베는지를 감시합니다. 이렇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정도로 리더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9. 전략적 접근(1)
유네스코 등재 신청할 때 아쉬운 점은 ‘산림 조사와 연구 성과’를 좀 넣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기후변화연구센터장으로 있을 때, 선배 연구자들에게 이를 말했더니, ‘니네가 연구 잘했다’고 연구한 사람들을 칭찬하란 말이녀며 반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넣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구를 통해서 우리 현황을 관찰하고 자원조사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자원조사할 때 국제사회의 자금 도움을 받았어요. 강원도, 경북, 그리고 낙동강 발원지를 중심으로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1971년까지 한 조사가 1972년 계획 편성에 들어갔고, 1973년 전국 단위 치산녹화 계획이 실행되는 토대가 됐습니다.
당시 임업시험장은 지금 산림과학원입니다. 한국임학회가 당시에 한 연구들도 제가 다 뒤져봤어요. 1973년보다 훨씬 전, 산림청이 개청되기 전에 이미 산림 조사 자료가 많이 나옵니다. 양묘, 조림, 병해충 방제 등에 대한 조사도 있었습니다. 산림청이 개청한 다음 병해충방제, 육종연구들을 집중 지원하고 실제 결과들이 나옵니다.
10. 전략적 접근(2)
1973년 국가 수준의 종합 계획이 만들어집니다. 10개년 계획을 세웠는데, 빨리빨리 덕분에 1973년에서 1978년까지 6년 만에 완성합니다. 나무만 신경 쓰는 게 아닙니다. 이때 중요한 게 산림 복원(Forest Restoration)이 아니라 포레스트 앤 랜드스케이프 리스트레이션(Forest & Landscape Restoration)입니다. 요새 FAO에 한국이 주도하는 펀딩으로 FLRM(Forest & landscape Restoration Mechanism)이 있습니다. 렌드스케이프 어프로치(Lndscape Approach)를 ‘경관적인 접근’이 아니라 ‘전략적인 접근’으로 저는 번역하고 싶습니다. 대상 지역의 산이나 숲을 어떻게 녹화시킬까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산림과 어우러져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사회경제적인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추진해야 된다는 말이 들어갑니다.
처음 귀국해서는 외국분들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데 이제는 이런 게 들어갔음을 말할 수 있어요. 당신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데 나무 심는 데만 신경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유엔이 정한 ‘세계 숲의 날’(3월 21일)이었죠. ‘국제 산의 날’(12월 11일)도 있습니다. 산림청에서는 매년 10월 18일을 ‘산의 날’로 정했습니다. 유엔은 산만이 아니라 ‘마운틴 피플’이라 하여, 숲 자체만이 아니라 산촌 사람들을 어떻게 할지를 함께 고민하자고 표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습니다. 1982년 FAO 보고서에도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산이 녹화가 됐다’가 아니라, ‘산림계’라는 기가 막힌 조직을 통해서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녹화를 자발적으로 해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했습니다. 극찬을 받았습니다.
11. 전략적 접근(3)
과학기술이 적용되었어요. 나무를 심었지만 살아남은 진짜 현황을 살펴서, 괜찮은 땅이라면 중장기적으로 돈될 괜찮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게 ‘적지적수(適地適樹)’입니다. 적당한 땅에 적당한 나무를 심자. 당시 우리나라 땅이 대부분 황폐화돼 있었습니다. 좋은 나무 심어도 다 죽어요. 생물학적인 천이는 화산 폭발하면 처음엔 풀 같은 게 올라오고 버틸 수 있는 식물들이 자랍니다. 이렇게 흙이 좋아지면 점차 잘 자랄 수 있는 나무를 심게 됩니다. 처음부터 잘 자라는 게 아니죠.
흙에 안 쓸려가게 하고, 다음에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서 비료를 제공할 수 있는 나무들 먼저 심어야 합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나무를 심고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마을 양묘를 통해서 묘목을 잘 키워 갖고 오면 봄철에, 보리고개 시절이죠, 나무를 갖고 오라고 합니다. 어린 묘목을 잘 키워 오면 국가가 그걸 사주고 밀가루를 주는 것입니다. 봄철 궁핍한 시기에 농산촌이 생존할 일자리 창출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척박한 토양에서 잘 버틸 ‘개척자 수종’은 연구를 통해서 골라냅니다. 그렇게 나무들을 심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게 1974년 이후 본격화되었지만, 그 앞서서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12. 전략적 접근(4)
처음 제가 O&R이라고 했고요. 두 번째는 플래닝, P라 썼고요. 방금 두잉(Do), 실제로 추진하는 걸 말했습니다. 이렇게 O, P, D까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심어 놨는데 제대로 자랄까가 걱정입니다. 제가 국제산림연구과 과장을 잠깐 했습니다. 남아공, 에티오피아, 몽골에서 나무 열심히 심어주고, 그 친구들한테 ‘잘 키우세요’라며 비료와 물을 줄 수 있는 돈을 드립니다. 근데 공무원들이 돈을 받아서 인마이포켓해 버립니다. 나무는 물 주기로 했는데 물을 안 주니까 그냥 죽어요. 우리나라도 그랬어요. 나무 열심히 심었지만, 다 죽습니다. ‘아니다 이거 제대로 살았는지 검사해야겠다’고 했고, 살아서 제대로 정착했는지를 따지는 활착률 검사를 합니다. 이 조사를 같은 동네 사람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 성공회대학교 근처 공무원들이 나무 심었잖아요, 그럼 활착률 검사는 노원구 또는 강북구 공무원이 와서 검사하는 식입니다. 지역에는 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들이 대부분입니다. 서로 잘 몰라야 좀 냉정하게 조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강원도 공무원이 오고, 다음은 내무부에서 조사하러 옵니다.
우리 소나무 재선충 굉장히 심하잖아요. 경상남도 갔더니 그 동네 주민이 그러는 거예요. 재선충 방지로 나무를 자르고 처리하는 데 전라도 사람들이 오면 잘한다는 것입니다. 전라남도 산림조합에서 오면 잘 하는데 여기 경상남도 같은 동네에 사람들은 적당히 한대요. 왜냐면 공무원이 감사를 하는데, 보면 다 선배고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잘 안 되도 눈감는 일들이 생겼지요. 타지 사람이 오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니까, 재시공 떨어지고 제대로 하게 되었죠.
요새 개도국에 가면 말합니다. 몽골도, 중국도 똑같아요. 그곳에 나무들이 살아남는 이유는 우리가 했던 검사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감사를 오면 숨겨 놓은 나무를, 잠깐 보식이라고 해서 딴 나무로 갖다 심어 놓는 거예요. 그런데 다음 해에 또 갑니다. 그럼, 보식할 나무가 없으니까, 이 사람들이 진짜로 나무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전문가한테 묻더라고요. 전문가들에게 돈 주고, 또 돈으로 물 주고, 비료 주시라고 합니다. 그럼, ‘언제 얼마큼 물을 줘요?’를 물어오고, 가르쳐 주게 됩니다. 토양이 진짜로 좋아지기 위해서는 낙엽을 다 긁어다 집에서 때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저도 7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산에 땔감 주으러 많이 다녔어요. 나뭇가지나 낙엽, 솔잎 진짜 잘 타니까요. 이제 하지 말라고 하면, 그럼 자신들은 어떻게 사냐고 합니다. 그 대안으로 연료용으로 쓸 아까시나무를 심으라고 합니다. 이 나무가 빨리 자라서 연료림으로 적당합니다. 이렇게 대안을 만들고 체킹합니다. 했던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를 피드백해서 실행 체계를 재정립하는 겁니다.
13. 전략적 접근(5)
토지를 안정화시키고 적지적소로 가고, 관리가 제대로 되려면 연료림도 조성하고, 이렇게 차곡차곡하다 보니, 드디어 나무가 살아서 숲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얻은 순간에 전 국민 대상으로 캠페인을 열심히 했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내일의 번영을 산에서 찾자’ 홍보막도 올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이던 시절 대통령과 함께 나무 심고 우표도 내고, 박정희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도 ‘식목은 애국이다’라고 국민 캠페인을 한 거예요. 이렇게 해서 성공한 거죠.
14. (소결) 대한민국 국토녹화의 성공 요인
데밍(Deming)이라는 사람이 ‘PDCA 사이클’, 어떤 일을 제대로 플래닝(Plan)하고 두잉(Do)하고 체킹(Check)하고 액팅(Act)하는 피드백을 해야 일을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해서 ‘모디파이드 데밍 사이클(Modified Deming cycle)’라고 합니다. 앞에 R을 붙이면 리서치라고 연구쟁이들이 말할까 봐, O(Observation)를 붙였습니다. ‘OPDCA 사이클’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녹화에 성공한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가는데 기반 연구가 토대였지만 우리가 할 수 없어서 UNDP나 FAO, 독일의 도움 진짜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도움이 감사해서 외국에 ODA 많이 다닙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받은 거를 다른 후배들에게, 어려운 나라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국제사회가 도움을 줄 때 잘 받아서 부패의 사슬도 끊고, 적지적수하기를 권합니다.
단순히 녹화만 하면 안 되고, 쓸모 있는 걸 찾으라고 강조합니다. 심는 것보다 가꾸는 게 더 중요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적극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배워갈 게 바로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성공했다고 설명해야 된다는 거죠. 이것을 하자고, 제가 국제산림연구과장할 때, FAO 산림위원회가 우리나라가 WFC 유치를 제안했고, 신원섭 청장님이 발표하셨지요. 우리가 유치했는데, 제대로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15. 성공적인 녹화를 이루었건만
대학이나 산림청의 산림 분야 전문가들에게도 얘기합니다. 산림 녹화를 통해서 산이 안정화, 곧 치수가 되니까 농촌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새마을운동은 산이 녹화가 안 되면 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작고 농사짓고 도로 놔 봤자, 산사태 나서 다시 망가지는데요. 즉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같은 산업 국가에서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식량이나 이런 게 안정화될 수 있는 기초가 산림 복구 보호였다는 거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야 산림청, 그래 옛날에 뭐 수고했어. 이젠 됐잖아. 녹화 다 됐는데, 나도 나무 심었는데, 더 이상 산 필요 없는 거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제가 남아공의 2010년에 세계산림총회에 갔습니다. 그때 독일인 앵커가 사회를 보면서, 전 세계에서 온 산림의 장차관들에게 말합니다. ‘산림 분야 장차관 여러분, 많은 국민들이 뭐라고 하냐면요.’ 영어로 얘기했으니까 제가 실감나게 영어로 얘기해 줄게요. ‘Planting tree good(나무 심는 건 참 좋다). But planting forest is not good(숲을 만드는 거는 안 좋다).라고 얘기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도 산림 좋아하는 분들이 참여했는데요. 산이 좋으면 땅값이 올라가나요? 산의 땅값이 주택지보다 비싼가요? 반대잖아요. 그 산을 개발해서 집지으면 훨씬 더 비싸지잖아요. 이런 게 현실 아닙니까? 제가 그때 과장이었는데 전 세계 산림 분야 장차관들이 아무도 답을 못했습니다.
당시 제가 산림 치유 같은 얘기를 막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사람들은 ‘산림 치유? 지금 저렇게 민둥산에서 무슨 치유?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네’라고 합니다. 차원이 다른 거죠. 이게 단계가 있습니다. 남북 협력 과정에서 북한 친구들도 많이 만나는데, 진짜 우리가 성공한 게 뭐고, 그 다음은 뭐가 문제인지를 묻습니다. 그럼, ‘니네 녹화 열심히 해놔라, 그러면 다 알게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나무는 저절로 자라는 거 아닐까요. 나도 나무 심었는데, 왜 요새 산림청이 봄철에 산에서 나물을 뜯으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요? 산에 주인이 있지만, 나무 심어서 원래 민둥산을 좋게 만드는 데 나도 기여했습니다. 나도 뭔가 혜택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들이 뭐 특별히 한 게 있습니까’라고 얘기들 합니다. 숲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혜택을 당연히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를 이제 연구자들이 고민해야 합니다.
16. 과거 영광이 현재의 행복을 주지는?
1987년이면 2차 치산녹화계획이 다 끝납니다. 1988년에 산림청 예산이 20분의 1로 확 줄어듭니다. ‘성공했잖아, 산림 부문 예산이 더 필요 없잖아’ 돈을 줄여버립니다. 산림청이 더 있어야 돼? 다시 농림부로 돌려보냅니다. ‘이게 아닙니다. 아직 좀 더 제대로 된 숲을 만들어야 합니다. 녹화 피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산으로서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산이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데요. 산 덕분에 깨끗한 물이 생겼고, 산사태도 막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투자해야 돼요’라고 얘기하는데 안 들려요.
그래서 내부화를 끌어냅니다. 공익 기능이 큰 숲을 살아나게 하려면 내부화 개념에서라도 투자해야 됩니다. ‘내부화’는 경제 주체들이 의사결정하는 과정에서 눈에 쉽게 보이는 편익과 비용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공익적 편익과 비용도 변수로 계산해서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는 개념입니다.
치산 녹화 계획은 산을 경영하기보다는 피복하는 계획입니다. 나무 심어서 녹색만 만들면 된다고 해 왔죠. 그러니까 1차 치산녹화계획이 완료된 다음, 현신규 박사님이 ‘제발 이러면 안 돼요’라고 해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평가하는 용역을 받습니다. 그 평가 보고서에 ‘천혜의 산림국이었던 이 대한민국 한반도 옥토가 아주 낙후된 안타까운 산림국으로 변하고 말았다’라고 씁니다. ‘2차 시기라도 그렇게 가지 마십시오’라고 권합니다만, 반영이 안 됩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면서 공업화, 산업화 쪽에 쏠렸고, 산림은 투자 대상이 아닌 걸로 가는 거예요. 이때 나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 70%가 민간인들 소유야, 국가 소유도 아니야. 근데 왜 민간인들 자기 땅에 자기가 투자해야지 왜 국가가 투자해야 해? 사유림이잖아?’ 그러면서 산에 있는 나무는 베면 안 된대요. 규제는 계속하고 돈은 벌지 말고 그냥 놔두래. 이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산을 나무 잘라 목재로 수확을 얻을 생각만 하다가 괜히 나무 심었네가 되었죠. ‘여기 정원수를 심는 건 괜찮을까’, ‘숲을 만드는 건 아닌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물론 산림 분야 연구자들은 산림 경영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제안하고, 산림이 기후변화, 미세먼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Ⅱ. 기후변화와 숲
그중 이제 뜬 게 기후변화입니다. 기후변화와 숲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그림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지구 탄생기와 현재 대기의 차이
오페론 가설에 따르면, 빅뱅이나 여러 이론으로 지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지구를 둘러싼 공기에는 산소가 거의 없고 이산화탄소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폭발해서 가스가 나오니까, 뭐 태워도 이산화탄소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2. 대기 조성의 변화
어느 날 바닷속에 남조류라고 시아노박테리아라는 단세포 생물이 생깁니다. 얘가 광합성을 합니다. 조금씩 이산화탄소를 먹어서 산소를 내놓았지요.
3.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 활동
지금은 지구 대기의 5분의 1을 산소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바꾼 진짜 주역은 식물입니다. 식물들이 광합성하면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전부 물과 광에너지를 결합해서 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를 만들어서, 인류와 동물이 살 여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식물의 대표가 나무이고 나무들이 모여 숲이 됩니다. 인류나 동물,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 게 바로 숲입니다.
4. 흡수된 이산화탄소의 장기 보관
원래 원시 대기에는 이산화탄소가 참 많았습니다. 나무들이 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기 시작합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점점 줄어들고 이산화탄소가 나무에 축적이 되어갔죠.
5. 화석연료/숲 자원의 무분별한 관리
세상이 살기 좋아진 듯했는데 나무가 오래되다 보니까 죽는 애들이 생기죠. 얘네들이 죽으면 이산화탄소가 다시 나갈 텐데, 그게 땅속에 묻히게 됩니다. 땅속에 탄화돼 있던 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페트롤륨, 원유예요. 석유, 석탄이 쓸 정도까지 변하는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석유와 석탄을 썼고 에너지 효율이 높으니 더 파내서 쓰기 시작합니다. 땅속에 잠겨 있던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다시 올라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240ppm으로 진짜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았는데, 지금 400ppm이 넘는 정도로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산불 나면, 나무는 타버리고 저장하던 탄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6. 대기 관리를 위한 숲 경영
나무가 원래 그랬다며 나무를 심어서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게 하자, 에너지원을 바꾸면 해결될 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이오에너지도 자꾸 오해가 있습니다. 땅밑에 화석연료를 끌어내면 대기 중에 없던 이산화탄소를 끌어올립니다. 반면 바이오에너지는 나무를 다시 태운다고 해도 밑에 있던 걸 신규로 쓰는 게 아니고 공기 중에 그냥 순환하는 거예요. 그래서 재생 가능이라고 얘기합니다. 나무가 재생 가능 에너지라고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바이오에너지를 비판하는 분들이 있는데 바이오에너지와 석탄 에너지하고 전혀 달라요. 에너지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석유나 석탄은 저 밑에 저장돼 있던 걸 끌어내지만, 반면에 바이오는 유동성있는 이산화탄소를 쓰는 거예요. 전 세계 학자들이 바이오에너지는 석유 석탄 에너지의 대안으로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7. 숲 자원의 적극적 활용, 목재
나무는 때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차고 있는 나무 시계, 제가 이거 버리겠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나무들을 가구나 아니면 목조 건축에 쓰면 탄소 저장고로 목재가 변합니다. 쉽게 탄소 통조림이라고 말합니다. 나무를 먹어 없애면 물론 다시 나오죠. 그 통조림을 제대로 보관하면 산에 있던 탄소를 땔 것이 아니죠. 과거에는 쓸 나무가 별로 없어서 땔감으로 썼지만, 이제는 쓸모 있는 나무들이 많아요. 나무로 철이나 콘크리트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원광석을 열심히 녹여서 철, 알루미늄을 뽑아내려면 에너지가 엄청 듭니다. 물론 나무도 자르고 뭐 하는데 에너지가 듭니다. 훨씬 적게 듭니다. 나무가 일정 양을 만드는데 에너지로 1이 필요하다면, 콘크리트는 거의 6.6배, 철은 270배, 알루미늄은 800배의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이산화탄소가 그 만큼 방출됩니다. 이를 대체하면 효과가 있으니 하다못해 시계라도 나무를 쓰자는 것이죠. 플라스틱 의자를 쓰지 말고 나무 의자를 쓰고, 집의 내장재도 나무로 바꿔보자고 얘기합니다.
8. 숲은 자연에 기반한 탄소 문제 해결책(NbS)
그럼, 숲과 나무가 탄소 문제를 해결할 좋은 자연 해결책이 아닐까요? 요새 유행하는 NbS(Nature Based Solution)는 가장 대표적입니다. 제가 기후변화센터장을 할 때 탄소중립위원회에 가서 국무총리실과 함께 우리 숲과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해야 된다고 말했어요. 전 세계에서 많이 말합니다. NDC에도 이걸 넣자라고 했습니다. 2015년 배출권 거래제 처음 시작할 때, 상쇄 제도가 들고 갔습니다. 그랬더니 나온 얘기가, ‘박사님, 그린워싱 아니에요?’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혁신해서 이산화탄소를 최대한 덜 나오게 해야 하는데, 이산화탄소 흡수한다고 땜빵하는 누수 현상, 환경 윤리에도 안 좋아지는 상황을 얘기한다’고 하면서 반영을 안 해줍니다. 제가 원장이 될 때 되니까, 윤순진 서울대학교 교수님이 탄소중립위 위원장이 되면서 받아들여졌어요. ‘야 진짜 탄소 한 푼이 아쉬운 시기인데 배출만이 아니라 흡수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다’고 합니다. 국산 목재 쓰는 것도 HWP라고 해서 카운팅합니다. 옛날에 ‘야 그거 뭐 몇 푼이나 된다고 그거 신경 쓰지 마라’고 했는데 이제는 다 아쉬운 거예요. 탄소값이 올라가니 윤순진 위원장이 적극적인 감축 활동으로 흡수 활동을 포함시키자고 해서 상쇄 제도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국제사회가 탄소 포집․저장(CCS), CCUS를 막 말하기 시작합니다. ‘맞아 숲이 중요하구나’라고, 그렇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9. 성공의 덫에 걸린 우리나라 산림
우리나라 숲이 진짜 좋아졌어요. 숲의 부피가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이산화탄소 저장량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숲이 느는 듯하다가 이산화탄소 순흡수량은 어느 순간 되니까, 1998년이 되면 정체 상태에 들어갑니다. 2008년이면 꺾입니다. 흡수량도 줄어들어요. 2010년에 지도교수님이었던 이돈구 청장님께, 당시 저는 기획과장이었는데, 산림과학원에서 얘기했더니, 대학자께서 ‘숲이 좋아지는데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는 게 말이 돼 정신 차려’라고 하셨어요. 석학이신 분도 이해를 못할 정도였죠. 1988년부터 예산 20분의 1로 줄었고, 1990년부터 나무를 거의 안 심습니다. 많이 심을 때는 47만ha까지 심었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2만ha도 못 심습니다. 어린 나무는 없고 나이 든 나무들만 계속 커지는 거예요. 2020년 기준 10년생 이하, 20년생 이하가 거의 없어요. 1960년대, 1970년대에 심었던 나무들만 잔뜩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계속 나이 들죠. 심지 않았으니, 청년기 숲이 없습니다. 청년들, 어린애들은 성장하지만 어른들은 안 커요. 어린 친구들은 세포 수가 많아지지만, 노인들은 세포가 비대해지잖아요. 나이 들면 결국 힘들게 호흡하다 죽게 되잖아요. 자연의 이치입니다. 나이 든 숲이 많아지니까 순수한 성장하는 양은 줄어드는 거죠. 그러니까 나무를 잘라야 됩니다. 나이 든 숲을 젊은 숲으로 교체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환경 분야에서 반대합니다. ‘무슨 소리냐, 나이도 몇 살 안 됐는데 벌써 우리 산이 늙었다고, 외국에 가면 100년, 200년까지도 잘만 사는데’라고요.
10. 순 생장량(탄소 흡수량) 감소 원인
근데 제 전공이 토양학이라고 그랬잖아요. 토양 입장에서 솔직하게 제대로 데이터로 말씀을 드릴게요. 우리나라 진짜 숲이 지금 나이로 보면 분포가 이래요. 근데 저희가 아까 DBH 흉고직경 6cm 될 때까지 얼마 걸려 이런 거 조사 다 한다고 그랬잖아요. 저희가 그런 조사 다 해요. 조사 다 해서 보니까 실제로 우리 침엽수 같은 경우는 22년에서 25년 정도 되면 그때가 제일 잘 자라요. 그때가 피크예요. 그 다음에도 잘 자라요. 계속 근데 자라는 양이 점점 줄어들어요. 침엽수뿐만 아니라 활엽수도 마찬가지예요. 얘네들도 실제로 20년에서 30년 사이 이때가 피크가 되고 줄어들어서 사실 100년 정도 되면 진짜로 이제는 거의 안 커요.
11. 산림 토지 생산성에 대한 이해
‘딴 나라에 보면 200년이 되도 잘 큰다.’ 그럴 수 있어요. 딴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라요. 제 전공인 토양으로 말씀을 드리면, 흙이 양분을 주는 모체예요. 근데 우리 흙에 양분이 없어요. 나이 들어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더 이상 주지 않는 거예요. 실제로 더 자랄 수가 없어요.
딴 나라 좋아요. 독일, 특히 뉴질랜드는 나무 장사를 잘하죠. 뉴질랜드는 땅속에 나무가 썩다가 덜 썩고 남은 ‘토양 유기물’이 엄청 달라요. 탄소를 중심으로 수소나 다른 원소들이 뭉쳐 있는 걸 유기물이라고 합니다. 유기물에는 탄소, 수소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양분도 많이 있어요. 유기물 함량이 뉴질랜드는 헥타르 당 91.9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침엽수림은 더 적고 활엽수림은 그나마 많다고 해도 딴 나라에 비하면 훨씬 적습니다. 이게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