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② 홍수 | '알림'만 있고 '행동'은 없다: 무용지물 재난 경보 시스템과 훈련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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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일
- 7분 분량
2025-07-03 최민욱 기자
신뢰할 수 없는 재난 알림

한국의 재난 문자 경보는 국민 신뢰를 잃었다. 장마철이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반복·중복된 내용의 알림이 쏟아져 온다. 한국일보의 인터뷰에 따르면,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하루 동안 35건의 안전 안내 문자를 받았는데, “일기예보로 충분히 알 수 있는 상식 수준의 내용이 자정 무렵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와서 잠을 설쳤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놀라서 확인했지만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반복되자 이제는 경보음이 울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사소한 정보의 남발로 경보 시스템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면서 많은 국민이 아예 알림을 꺼버리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8년 기준 300만 대가 넘는 휴대전화가 긴급재난문자 수신이 불가능한 상태로 집계되었는데, 상당수 사용자가 설정을 통해 재난 문자 수신을 차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재난 문자에 대한 신뢰 붕괴는 단순히 횟수나 중복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경보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충북 오송에서 발생한 지하차도 참사 당시가 대표적 예다. 해당 날 새벽부터 청주시는 폭우로 인한 위험을 여러 차례 알렸지만, 정작 사고 직전에 “궁평2지하차도로 진입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경고 문자는 없었다. 청주시는 사고 발생 5분 전인 오전 8시 35분에 인근 하천 범람 위험을 알렸을 뿐, 운전자들이 지하차도 진입을 멈추게 할 구체적 경고는 제때 전달되지 않았다. 한밤중까지 휴대전화 경보음을 울려대던 재난 문자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큰 허탈감을 느꼈다.
국민들의 불만 중 하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재난 문자 내용이다. 현재 재난 문자는 90자 내외의 짧은 글자로 구성되어 중요한 상황을 담기에도 벅차다. 그러다 보니 “많은 비가 예상되니 주의 바랍니다”처럼 추상적 문구만 울리기 일쑤다. 서울시가 지난 5월 북한 우주발사체로 인한 경계경보 발령 시 보낸 위급 재난 문자에도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문구만 있었을 뿐, “대체 어디로 대피하라는 건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를 두고 “마치 정부는 사실을 알려줬으니 국민은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 같다”고 풍자했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반지하에 사는 한 시민도 “폭우 때마다 ‘지상으로 대피하라’는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오는데, 한밤중에 집주인 집으로 올라가라는 건지 현실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재난 문자에 행동 요령이나 피난 안내가 부재하다 보니, 경보를 받아도 국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개선된 단계별 송출 방침, 왜 실효성이 낮은가

재난 문자 시스템의 남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단계별 송출 방침을 도입했다. 재난 문자 경보는 상황의 긴급도에 따라 ‘위급 재난’, ‘긴급 재난’, ‘안전 안내’ 세 단계로 구분되어 있다. 위급 재난 문자는 생명에 치명적인 국가적 위기 상황에 한해 송출되며 사용자가 수신을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된다. 반면 긴급 재난 및 안전 안내 문자는 지방자치단체장 등 발송 권한자가 판단하여 비교적 경미한 재난 정보를 전파하며, 휴대전화 설정을 통해 알림을 끌 수 있다.
2019년 정부는 재난 문자 길이를 30자 내외에서 90자로 늘리고 표준 문안을 마련했으며, 송출 권한을 시·군·구 단위까지 확대해 지역 밀착형 경보를 시도했다. 2023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읍·면·동 단위로 세분화해 인근 지역에만 문자를 보내는 기능도 도입했다. 이러한 단계별·지역별 송출 기준은 “필요할 때만 보다 정확하게” 알림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과도한 알림이 문제로 남아 있다. 이유 중 하나는 지자체 등 발송 기관의 운용 미숙이다. 안전 안내 문자 단계의 남용으로, 심야 시간에도 중요도가 낮은 안내가 울려 퍼지거나 다른 지역의 재난 상황까지 반복 전파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인천 강화군은 지난 7월 토사 피해 우려를 알리는 문자를 보내면서, 처음에는 관내 상황인 것처럼 전송했다가 한 시간 후 “타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 중이니 우리 군도 주의하라”는 식으로 정정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런 중복 송출과 혼선 때문에 “재난 문자 알림이 마치 날씨 앱 알림처럼 너무 자주 온다”는 자조가 나왔고, 결국 수많은 국민이 안전 안내 문자를 꺼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럴수록 긴급 상황에서 조차 알림을 못 받게 되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정부가 내놓은 개선책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행정안전부는 2023년 재난 문자 송출 기준을 손질하여 심야 시간 불필요한 알림 자제와 중복 전송 필터링을 추진했다. 미세먼지 경보처럼 긴급하지 않은 사안은 밤 9시 이후 보내지 않는 등 시간을 구분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부 지침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문자 발송 실적을 평가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보니, “일단 보내고 보자”는 식의 면피용 문자가 계속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 설문조사에서 국민 상당수가 “재난 문자에 중요한 정보가 빠져있거나 신속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계별 송출 체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특히 행정 영역의 경계 없는 활용도 문제다. 재난 문자 시스템은 원래 재난 및 안전사고에 한정돼야 하지만, 실종 아동 안내나 일부 교통 통제 소식까지도 이 채널로 송출되는 경우가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생명과 직결된 재난 경보음이 울렸기에 확인했더니 단순 실종 방송이거나 행사 교통 통제 안내였던 일이 잦았다. 왜 이런 내용까지 시도 때도 없이 ‘재난 경보’ 형태로 전달되는지 의문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는 경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정작 진짜 위험 상황에서 경각심을 무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해 내년까지 재난 문자 방송 체계를 재난·민방위·실종·지진해일 등 유형별로 세분화할 계획이다. 이는 실종 경보 등은 재난 경보음과 분리해 별도 체계로 알리겠다는 의미로, 국민 불편을 줄이려는 조치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현장의 체감도를 높이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행동요령 없는 경보의 허점
재난 문자 경보가 무용지물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보만 울릴 뿐 정작 구체적 행동요령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보음을 듣고 깜짝 놀란 국민들은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 혼란에 빠지지만, 문자에는 막연한 주의 당부나 추상적인 권고뿐이다. 앞서 언급한 오송 지하차도 사고 당시를 돌아보면, 사고 이후 뒤늦게 발송된 문자에도 “하천 인근 저지대 침수 위험, 외출 자제” 등의 일반론적인 문구만 있었다. 만약 그보다 1시간이라도 앞서 “궁평2지하차도 진입 금지! 인근 우회로 이용” 같은 직접적 지시가 있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이렇듯 재난 문자에 행동지침 부재는 국민 안전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된다.
행동요령이 빠진 재난 경보의 사례는 2023년 5월 서울시 경계경보 문자에서도 드러났다. 북한 발사체 경보로 새벽에 울린 위급 재난 문자에는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문장만 포함되었는데, 시민들은 “어디로 대피하라는 말이 없었다”며 크게 불안해 했다. 지하철역, 지하 주차장 등 구체적 대피 장소 안내가 없었던 것이다. 훗날 당국도 해당 문자가 부실했다는 점을 인정했고, 이후 매뉴얼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이러한 허술한 경보 메시지는 국민에게 깊은 불신을 남겼다.
미비한 학교 방재 교육
어린 시절부터 받는 재난 대비 교육은 평생의 안전습관을 형성한다. 한국도 세월호 참사 등을 계기로 학교 안전교육을 강화해 왔다. 교육부는 2016년 ‘학교 안전교육 실시 기준’을 고시하며 유치원 및 초·중·고교에서 연간 51시간 이상의 안전교육을 의무화했다. 이 안전교육은 생활안전, 교통안전, 폭력예방, 약물·사이버 중독 예방, 재난안전, 직업안전, 응급처치의 7개 영역으로 구성되며, 각 영역별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도록 했다.
특히 재난안전 영역에서는 화재 등 인적 사고는 물론 자연재해, 테러, 건축물 붕괴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가르치도록 명시되었다. 학생들이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알고 스스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로는 다중 밀집 사고 예방 교육도 강화되어, 군중 속 압사 위험 등 새로운 유형의 재난 대응 교육이 2024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되었다.
제도상으로는 학교에서 재난별 행동요령을 교육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 교육 현장의 체계성은 의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우선 51시간 안전교육 중 재난안전 분야가 차지하는 시간은 한 해 약 7~8시간 수준으로, 그마저도 여러 재난 유형을 모두 다루기에는 촉박하다. 일선 학교에서는 안전교육 주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이론 위주로 교육하는 경우가 많다. 화재 대피훈련이나 지진 대피훈련을 실시하는 학교도 있지만, 홍수나 산사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육 내용 역시 교과서나 동영상 자료 위주로 전달되어, 학생들이 몸으로 체득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결국 학생들은 시험 대비 과목에 밀려 재난 대응 요령을 피상적으로 익히는 데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인 대상 재난 훈련의 사각지대
학교 교육을 떠나 사회에 나온 성인들은 어떤가. 현실적으로 성인 일반 시민이 재난 대비 훈련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재 법령상 의무화된 재난 관련 훈련은 대부분 특정 시설이나 특정 직책에 한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물 화재 대피훈련이다.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형 건물 등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관리자는 연 1회 이상 소방훈련과 교육을 실시해야 하며, 훈련 시 건물 내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는 피난훈련을 포함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를 어길 시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제재도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고층 빌딩, 지하철,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정기적으로 화재 대피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연 1~2회 건물 화재 대피훈련이나 소방훈련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외의 재난에 대해서는 성인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할 훈련이 거의 없다. 지진 대비 훈련이나 홍수 대비 주민 대피훈련 같은 것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다. 과거 민방위 훈련에서 지진 대피 교육 등을 시행한 적이 있지만, 최근 수년간 민방위 훈련은 사이렌 점검이나 온라인 교육 중심으로 바뀌어 현장 대피훈련이 유명무실해졌다. 그나마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매년 실시되는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이 중앙부처·지자체·공공기관 차원에서 종합훈련을 벌이는 정도다. 이 훈련에서는 홍수, 지진, 화재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응 체계를 점검하지만, 참가자가 주로 공무원이나 기관 종사자 위주여서 일반 주민의 체감도는 낮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자율방재단과 함께 홍수 위험 지역 주민대피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전국적 의무는 아니다. 예컨대 2025년 5월 경기도 연천군에서 임진강 범람 대비 주민대피훈련을 실시해 주민 100여 명이 참가했지만, 이런 훈련은 해당 지역의 선도적 사례일 뿐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결국 대다수 성인 국민은 재난 대피 훈련을 해볼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실제 재난 발생 시 각자도생식 대응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령자나 장애인, 임산부 등 취약계층은 훈련 부재 시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일본의 경우 주민들이 지역별로 정기적인 지진 대피훈련, 해일 대피훈련에 참여하고 직장 단위 민방위 훈련도 활성화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재난 대비 훈련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해 “훈련은 공무원만 하고 정작 주민은 실제 재난 때 처음 대피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성인 대상 교육·훈련의 공백은 결국 재난 문자 경보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경보를 받아도 훈련된 기억이 없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고, 우왕좌왕하거나 적절한 대피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신뢰 회복 위한 맞춤형 경보와 대피 체계 시급
재난 경보 시스템이 제 역할을 다하려면 경보 자체의 신뢰성을 높이고, 경보 이후의 대응까지 아우르는 종합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우선 국민 신뢰 회복이 선결 과제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알림은 줄이고 꼭 필요한 경보만 골라 송출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경보가 자주 울리지 않아도, 울릴 때는 정말 위험한 상황임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경보 메시지의 내용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주의하십시오”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수신자의 위치와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 스마트폰 기술을 활용하면, 재난문자에 인근 대피소 위치나 권장 대피 경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경보를 받은 국민이 곧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있게, 알림 단계와 행동 단계를 이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평소 대비 교육과 주민 훈련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재난문자를 받았을 때 망설임 없이 몸이 반응하도록 반복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단위의 정기적인 대피훈련과 주민 참여 모의 재난 대응 연습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는 재난 유형별 행동요령 교육을 강화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형 안전교육 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주관하는 연례 종합훈련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궁극적으로는 경보 시스템의 하드웨어적 개선과 국민의 소프트웨어적 대비 역량 향상이 함께 이루어질 때, 재난 문자 경보가 진정한 생명줄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폭우와 홍수 같은 기후재난이 잦아지는 시대, 더 이상 ‘알림’만 울리고 끝나는 허술한 경보 체계로는 국민 안전을 지킬 수 없다. 경보를 보낸 당국도 “이후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시민의 생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작은 휴대전화 알림 한 통이 실제 인명 피해를 줄이는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경보 시스템 전반의 혁신이 시급하다.
국가의 재난경보 시스템이 '양치기 소년' 처럼 알멩이 없이 남발되면 안된다. 세금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