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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② 홍수 | 저류시스템, 패러다임 전환 필요해

2025-07-03 김성희 기자

기후위기로 극한강우가 일상이 된 지금, 도시는 침수를 막기 위해 물을 ‘품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서울의 대심도 빗물터널처럼 하류에 집중된 저류 시설은 일정 성과를 냈지만 한계 또한 분명하다. 도심 홍수 대응은 상류와 하류의 특성에 맞춰 그린 인프라와 그레이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결합해야 하며, 나아가 통합적 물관리로 전환되어야 한다.


폭우 시대, 도시는 어떻게 물을 감당할 것인가


도시가 직면한 홍수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강우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면서, 과거의 설계 기준을 훌쩍 넘어서는 폭우가 도심을 덮친다. 2022년 서울 강남 일대가 시간당 141㎜의 폭우로 물바다가 된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빗물이 순식간에 도로와 지하공간을 집어삼키며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상가와 주택을 파괴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도시들은 이런 극단적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저류시스템을 핵심 전략으로 삼는다. 하지만 저류시스템이란 말은 단일한 해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하 깊숙이 거대한 터널을 파서 빗물을 가두는 대규모 집중형 방식부터, 도시 곳곳에 소규모 빗물저류조를 나누어 설치하는 분산형 방식까지 다양한 접근이 존재한다.


기존 도시 빗물 배수 시스템의 한계


기존 도시에 설계된 빗물 배수 시스템은 주로 배수관, 집수정, 배수로로 구성되어 빗물을 신속하게 하천이나 저류지로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배수관의 용량이 한정돼 있고, 집수정이나 배수로가 낙엽·쓰레기·토사로 막힐 경우 배수 효율이 크게 저하된다. 설계 방식에 따라 특정 지역이 상습 침수구역이 되기도 하고, 불투수층 증가로 인해 강우 유출량이 급격히 늘어나 하류 지역의 홍수 위험을 높인다. 집중호우 시에는 수압을 견디지 못해 관거가 균열·침하되거나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시 빗물 배수 시스템에 쓰레기가 가득한 모습이다. 사진 플래닛03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시 빗물 배수 시스템에 쓰레기가 가득한 모습이다. 사진 플래닛03

도시화로 인한 불투수면적 증가도 큰 문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로, 주차장, 건물 부지는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어 지표유출량을 크게 늘린다. 2023년 기준으로 서울의 불투수면적률은 52.9%에 달하며, 중구·동대문구·양천구는 70% 이상, 성동구·광진구 등 여러 자치구도 60% 이상이 불투수면이다. 불투수면 증가는 지표유출량을 늘리고 기저유출량을 감소시켜 지하수위를 낮추고 건천화를 유도한다. 강우량이 10% 증가할 때 홍수피해액이 13.6%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될 만큼, 불투수층 확대는 침수위험을 극적으로 높인다. 반지하 주택, 지하주차장, 저지대 침수 피해가 반복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저류 시스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도시 아래 거대한 방파제, 신월 터널의 가능성과 한계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대규모 시설 사례가 서울시 양천구의 신월 빗물저류배수터널이다. 국내 최초의 대심도 빗물터널로서, 직경 10m의 주터널이 3.6㎞, 유도터널이 1.1㎞ 연장되어 있고 총 32만 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이 시설은 시간당 100㎜ 수준의 폭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2023년 기록적인 집중호우 때 신월동 일대 침수 피해를 거의 없앴다는 평가를 받다.


서울시는 2021년 준공된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을 시작으로 강남역 등 6곳의 상습 침수지역에 대심도 빗물저류시설을 추가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부산시도 온천천 일대에 40만m³ 규모의 대심도 하수저류 빗물터널을 2032년 준공 목표로 추진 중이다. 이는 도시 내 상습 침수구역의 특성과 지하공간을 고려한 집중형 대응 전략으로 평가된다.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 현장 점검. 사진_양천구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 현장 점검. 사진_양천구

그러나 대심도 빗물터널 같은 집중형 그레이 인프라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와 고민이 따른다.

첫째는 막대한 예산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10년간 6곳에 추가로 이런 터널을 건설하는 데 약 1조5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지하 깊숙이 터널을 굴착하고 거대한 배제펌프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설계와 공사도 수년 이상 소요된다.


둘째는 사용 빈도의 한계다. 이런 시설은 평상시에는 비어 있다가 극한 강우가 발생할 때만 가동된다. 즉, 일 년에 몇 번 혹은 수년에 한 번 찾아오는 비상상황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셈이다. 서울시 보고서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호우 시기에만 운영돼 경제성과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셋째는 기후위기의 불확실성이다.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폭우가 발생할 경우 터널 용량을 초과할 위험이 있다. 2022년 강남역 침수 당시 시간당 141㎜가 쏟아졌는데, 이는 신월 시설의 설계강우(100㎜)를 초과하는 수준이다.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설계빈도를 재설정하고 시설을 증설해야 하는데, 예산과 공간의 제약이 점점 커진다.


도시 물 관리, 재난을 넘어 다목적 인프라로 진화해야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로 인한 도시 홍수와 수질 오염 문제에 직면하면서 물 관리 인프라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과거에는 빗물을 신속하게 배수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재난 예방을 넘어 수질 개선, 재이용, 비상시 활용까지 고려한 다목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미국 시카고 TARP(Tunnel And Reservoir Plan) 프로젝트 항공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시카고 TARP(Tunnel And Reservoir Plan) 프로젝트 항공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시카고의 TARP(Tunnel and Reservoir Plan)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심도 저류·배수 터널 시스템으로, 170㎞ 길이의 터널과 대형 저수지를 결합해 홍수 저감과 수질 개선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2013년 집중호우로 침수와 오염수 방류가 발생하며 저수지 완공 지연, 운영체계 미비, 극단적 폭우 대비 부족 등 한계가 드러났다. 이는 대규모 인프라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장기적이고 다층적인 계획과 유연한 운영 전략, 수질 개선과 오수 처리 기능 강화가 필수적임을 보여 준다.


일본 사이타마현의 수도권 외곽 방수로 '방재 지하신천' 사진. 중앙일보
일본 사이타마현의 수도권 외곽 방수로 '방재 지하신천' 사진. 중앙일보

일본은 기후위기에 대응해 도시 물관리 인프라를 다기능화하고 있다. 도쿄 칸다가와 유역의 환상 7호선 지하 조절지는 지하 43m, 길이 4.5㎞ 규모로, 집중호우 시 주택 침수를 줄였고 초기 우수 저류, 수질 개선, 방공호·대피소 활용까지 고려한 설계가 특징이다. 사이타마 가스카베시까지 이어지는 수도권 외곽방수로는 지하 50m, 길이 6.3㎞, 저장 용량 67만 톤 규모로 조성돼 하천 범람을 막고 있다. 일본은 외곽 방수로부터 도심 저류터널, 소규모 저류조, 투수성 포장까지 연계한 유역 단위 물 순환 관리를 추진 중이다.


서울의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도 국내 최초의 대심도 빗물 터널로서 의미가 있지만, 침수 저감이라는 단일 목적성이 높아 설계돼 초기 우수 처리, 재이용, 수질 개선 등 부가가치 기능은 제한적이다. 운영 과정에서 퇴적물 관리, 안전사고 대응, 하수처리장 유입 유량 증가 등의 문제도 지적된다. 앞으로 서울이 강남역, 광화문 등으로 대심도 저류 터널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수질 개선, 재이용, 방재와 생활 인프라 기능을 통합한 다차원적 설계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빗물을 품는 도시, 그린 인프라의 힘


도시의 홍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주목받는 해법 중 하나는 바로 그린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이다. 그린 인프라는 단순히 빗물을 빨리 배제하는 기존 관거 중심의 방식이 아니라, 빗물을 도심 내부에서 최대한 침투·저류·정화하고, 자연의 물순환을 복원하는 전략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공모 사업으로 운영된 학교 옥상 녹화의 모습. 서울시
서울시 교육청의 공모 사업으로 운영된 학교 옥상 녹화의 모습. 서울시

주요 유형으로는 빗물정원, 투수성 포장, 옥상녹화, 식생 도랑(bioswale), 도시 숲과 가로수, 인공습지, 저류지 등이 있다. 예를 들어 빗물정원은 도로변이나 공원에 약간 함몰된 녹지를 만들어 빗물이 스며들어 지하로 침투하도록 유도하고, 투수성 포장은 아스팔트 대신 물이 스며드는 블록을 사용해 불투수층을 줄인다. 옥상녹화는 건물 옥상 위에 식물층을 조성해 빗물을 저장하고 증발산을 통해 냉각 효과를 내며, 도시열섬 완화에도 기여한다.


특히 빗물저류조와 결합한 옥상녹화의 경우, 일반 옥상녹화보다 건조한 기간에도 표면온도를 최대 4.7℃까지 추가로 낮출 수 있었다. 빗물을 저장해 증발산을 유지함으로써 냉방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도시열섬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도 나타났다. 


이처럼 그린 인프라는 단순 홍수저감 기능을 넘어서, 비점오염 저감, 지하수 함양, 수질 개선, 도시열섬 완화, 경관 향상, 생태계 서비스 제공까지 다차원적인 혜택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설계와 관리가 복잡하고, 유지관리 주체와 비용 분담 문제, 주민 협조 등 현실적인 제약도 존재한다. 결국 도시 홍수 관리 전략에서 그린 인프라는 빗물이 발생하는 상류·중류부터 유출량을 억제하고, 관거 시스템의 부담을 분산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대안으로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그린-그레이 인프라, 도시 생존의 조건


도심의 홍수는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상류에서 발생한 빗물이 하류로 몰리면서 침수 위험이 커지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시 홍수 관리의 핵심은 단일한 해법이 아니라 무엇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수적이다.


상류(기여영역)는 빗물이 처음 발생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물의 발생을 줄이고 천천히 흘려보내면 하류의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예를 들어 빗물정원과 투수성 포장은 빗물이 지면에 스며들어 지하로 흘러가도록 돕는다. 옥상녹화는 건물 옥상에서 빗물을 저장하고 증발산을 통해 냉각 효과를 내며, 물의 유출을 지연시킨다. 도시 숲과 가로수는 빗물을 붙잡아 두고 서서히 증발산해 하천으로 급류가 몰리는 것을 완화한다. 이렇게 상류에서 유출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하류의 침수위험을 낮추는 가장 근본적인 대응이다.


반면 하류(영향영역)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침수 위험이 집중되는 지역이다. 아무리 상류에서 억제해도 일부 물은 흘러오게 마련이기 때문에, 하류에서는 이를 빠르게 처리하거나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대심도 빗물터널, 하수관거 확장, 펌프장 같은 그레이 인프라가 바로 이런 하류의 마지막 방어선을 담당한다. 넘치는 물을 신속하게 배제하거나 임시로 저류해 도심 침수를 막는다.


최근 연구에서도 상류의 기여영역에는 그린 인프라를 집중하고, 하류의 영향영역에는 그레이 인프라를 강화할 때 홍수량을 최대 88%까지 줄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제시됐다. 이는 도시 홍수관리가 단일한 해법으로는 대응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극한강우의 불확실성과 기후위기의 심화는 상류와 하류의 역할을 구분해 지역별·유역별 특성을 정밀 분석하고, 각기 다른 해법을 상호 보완적으로 배치하는 전략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상류에서는 빗물의 발생을 줄이고 지하로 스며들도록 하는 그린 인프라가, 하류에서는 넘치는 물을 빠르게 처리하는 그레이 인프라가 각자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앞으로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단계별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시민과 행정이 함께 고민하며 유역별 맞춤형 설계와 투자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후위기가 거세질 미래를 대비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저류시스템의 선택과 설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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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Jul 07

더 크고 넓은 저류, 배수 터널이 능사는 아니다. 막대한 예산 투입과 낭비도 문제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빗물도 자원이다. 도시가 빗물을 최대한 품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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