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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칼럼 다짜고짜 기후 | 기후변화가 심각하니 에어컨을 켭시다

에어컨은 단순히 온도를 낮추는 것뿐 아니라 습도 조절, 공기 순환, 환기, 공기 정화까지 수행한다. 온갖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생산에도, 데이터센터를 식히는 데도 에어컨이 필요하다. 현재 인간의 행위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중 냉난방에 7%가 배출된다. 앞으로 열대지방 거주자들의 에어컨 사용이 폭증할 것이다. 모든 에어컨은 전기로 작동한다. 이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에어컨 사용 시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2025-07-04 김우성

김우성 생태포럼 대표,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

“아빠는 직업이 뭐야?” “글쎄? 주부인가?” 김우성은 주부, 작가, 정치인, 연구원, 대학강사, 활동가 등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41세 남성이다.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에서 산림환경학(학사), 조림복원생태학(석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생물지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갑내기 생태학자 한새롬 박사와 결혼해 아홉살 딸 산들이와 울산에서 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수련생을 거쳐, 울산광역시 환경교육센터 팀장, 울산생명의숲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조국혁신당 울산남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직 아내의 월급에 손댄 적은 없다. 아직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에어컨을 발명한 연구자의 이름을 쓰시오.” 


2025년 1학기 울산대학교 ‘기후변화의 과학적 이해’ 기말고사의 2번 문항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정답을 적었고, 일부 학생들은 틀린 답을 적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 선생님의 가호 아래 뜨거운 여름의 매 순간을 살아 내고 있습니다. 

여름만큼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 담긴 답안지입니다. 배점은 2점이지만, 저는 마음 속으로 6점을 드렸습니다. 사진_김우성
여름만큼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 담긴 답안지입니다. 배점은 2점이지만, 저는 마음 속으로 6점을 드렸습니다. 사진_김우성

최초의 에어컨은 사람을 위해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1902년, 미국의 한 인쇄 회사는 높은 습도로 인한 종이의 팽창과 수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종이가 습기를 잔뜩 머금는 계절이 오면 인쇄물의 품질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인쇄 회사는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젊은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는 냉장고와 비슷한 원리를 적용해 공기 중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공기 조화 장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컨의 시작이었습니다. 에어컨은 단순히 온도를 낮추는 것뿐 아니라 습도 조절, 공기 순환, 환기, 공기 정화까지 수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치를 ‘에어 쿨러(air cooler)’가 아닌 ‘에어 컨디셔너(air conditioner)’라고 부릅니다. 에어컨의 등장은 인쇄 공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놓았습니다. 다양한 산업 현장 이외에도 극장과 백화점과 같은 상업 공간뿐 아니라 사무실과 병원, 나아가 가정집에도 에어컨이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현대 문명은 에어컨 바람 아래서 만들어졌습니다


‘모든’이라고요?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습도가 높아지면 인쇄물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현대 산업의 쌀이라고 부르는 반도체는 우리 주변의 모든 곳에 사용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물론이고 이제는 자동차, 냉장고, 청소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조명에도 반도체가 사용됩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클린룸은 온도와 습도 변화는 물론이고 작은 먼지조차 허용하지 않기 위한 기술들이 적용됩니다. 이러한 클린룸은 반도체 뿐 아니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제조 등 다양한 첨단산업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환경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공조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외부 공기 유입을 최소화하고, 내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온도와 습도, 기압과 공기의 흐름마저 통제하는 기술의 기반이 에어컨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전제품들만 에어컨의 가호를 받을까요?


우리가 누리는 모든 IT 서비스 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운영됩니다. 유튜브,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chatGPT, 네이버, 카카오톡, 당근마켓, 인스타그램, 쿠팡, 배달의 민족 등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모두 거대한 서버들로 가득찬 데이터센터를 운영합니다. 데이터센터에는 수천, 수만 개의 칩이 촘촘히 들어찬 서버들이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이 칩들은 연산 과정에서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고, 부수적으로 대량의 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CPU, GPU, 메모리, 저장장치 등 고성능 반도체가 밀집된 데이터센터에서는 열을 식혀주는 공조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지 않으면 서버가 과열되어 속도 저하, 오류, 심하면 물리적 손상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녹아내리거나 불탄다는 뜻입니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며, 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 또한 에어컨입니다.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폰, 인터넷, IT 서비스, 사진 속에 숨어 있는 많은 것들이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_김우성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폰, 인터넷, IT 서비스, 사진 속에 숨어 있는 많은 것들이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_김우성

에어컨은 인간이라는 종의 분포면적을 바꿔 놓았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 거대한 제국들은 대체로 위도 23.5도 이상의 중위도 지역이나 고위도 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적도와 가까운 열대지방의 덥고 습한 기후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밀이나 옥수수같은 식량을 생산하기도 어려웠고, 식량을 저장도 어려웠습니다.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나 황열 같은 전염병으로 열대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인간은 오랫동안 낮은 밀도로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에어컨이 보급되고 온습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열대지방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식량을 저장하거나 유통할 수 있게 되고, 상업이 발달하고,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한결 수월해 졌습니다. 창을 닫고 살 수 있으니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에 걸릴 확률도 낮아지고, 보건 의료 환경 전반이 개선됐습니다.


인도,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의 열대지방은 이제 아주 높은 밀도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열대지방의 에어컨 보급률은 높지 않습니다. 인도는 5%, 인도네시아는 9%, 브라질과 멕시코는 16% 정도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에어컨 보급률은 86%입니다.) 열대지방의 개발도상국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에어컨의 보급률도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에어컨을 사용하게 될 것이고,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조금 더 쾌적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열대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틀기도 하고 천장에 실링팬을 달기도 합니다. 인간은 온도와 습도를 통제할 수 있는 종이 되었습니다. 사진_김우성
열대지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틀기도 하고 천장에 실링팬을 달기도 합니다. 인간은 온도와 습도를 통제할 수 있는 종이 되었습니다. 사진_김우성

‘덥다! 에어컨을 틀자!’


지극히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그래도 될까요? 폭염으로 달아오른 도시의 열기는 자비가 없습니다. 열대야는 우리의 휴식을 앗아갑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전기세는 낸다고 칩시다.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의 생태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에어컨의 전원을 켜도 될까요? 우리가 에어컨을 켜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될까요?


매년 인간이 배출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 중 7%가 냉난방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자료_김우성
매년 인간이 배출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 중 7%가 냉난방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자료_김우성

인간은 매년 510억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이 중 31%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됩니다. 철강, 시멘트, 플라스틱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27%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60%는 여전히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를 태워서 만들어집니다. 무언가를 기르는 과정에서 19%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비료를 만들고, 작물을 키우고, 소와 닭을 기르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아황산질소 등 다양한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16%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사람이 타는 승용차, 배, 비행기, 물건을 나르는 트럭 대부분이 화석연료를 태우고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움직이는 교통수단들입니다. 냉난방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7%를 차지합니다. 냉방과 난방을 합쳐서 7%입니다. 


산업 영역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비해 가정용 에어컨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소소한 수준이니까 무시해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여 결국에는 ‘0’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개발도상국에 보급될 에어컨은 더 효율이 좋아야 합니다. 새로 지어질 건물들은 최소한의 에너지로 냉방과 난방을 할 수 있도록 더 좋은 단열재를 사용해야 합니다.


모든 에어컨은 전기로 가동됩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에어컨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아직 그 단계에 와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을,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풍력발전을 통해 전기로 바꿔 각자의 집으로 가져온 뒤, 다시 에어컨과 선풍기의 바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조금 더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여러 공학자들이 발전 효율, 송전과 배전, 배터리 기술, 규모 확대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들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마음 편히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세상을 위한 혁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려 준 생성형 AI 또한 윌리스 캐리어가 만든 세상의 일부입니다. 사진_김우성
그림을 그려 준 생성형 AI 또한 윌리스 캐리어가 만든 세상의 일부입니다. 사진_김우성

윌리스 캐리어 선생님은 1950년 10월 7일, 향년 73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윌리스 캐리어 선생님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쉽니다. 윌리스 캐리어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K-제사를 지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최소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카라쿠배당토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파운드리나 서버실 한켠에 작은 상 하나 놓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름의 첫 날 에어컨 바람을 맞이하는 그 순간,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낮게 읊조려 봅시다. “윌리스 캐리어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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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Jul 07

에어 컨디셔너에 이런 역사가 의미가 담겨 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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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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