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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명 | 보건의료노조ㅣ추석에 병원은 안녕하지 못했다

 

황희정 기자 2024-09-20

나영명은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에서 활동했다. 1992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편집부장, 1994년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선전부국장, 2000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 2017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으로 있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기획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추석 연휴에도 계속된 응급실 뺑뺑이


이번 추석 연휴에도 응급실 이송 거부로 인한 응급실 뺑뺑이는 계속됐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25주차 고위험 임신부가 75곳 병원의 수용 거부로 6시간 만에 입원치료 받은 사건도 있었고,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4곳 병원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겨우 접합수술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흉기에 배를 찔린 환자가 10곳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4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헤맨 경우도 있었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극히 일부 사례일 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더 많다.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대란도 없었고 긴 대기 시간 없이 원활한 진료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응급진료가 신속하게 이뤄지거나 이송·전원 진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볼 수 없다. 응급실 의사가 없거나 응급 처치를 받은 후 치료를 위한 배후진료과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응급실 이송·전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불편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응급실 문은 열어놓았지만 응급진료는 작동하지 않고 있어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 큰 불상사나 의료 공백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보건복지부 발표를 보면 올해 추석 연휴 기간에 응급실을 찾은 환자수는 하루 평균 2만7505명으로 올해 설 연휴 기간 3만6996명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중증환자는 1255명으로 지난해 추석 1455명과 올해 설 1414명에 비해 다소 줄었고, 경증환자는 1만6157명으로 지난해 추석 2만6003명, 올해 설 2만3647명에 비해 30% 넘게 대폭 감소했다. 추석 연휴 기간 문을 연 의료기관은 하루 평균 9781곳으로 지난해 추석 연휴 5020곳보다 95%, 올해 설 연휴 3666곳보다 167% 늘었다. 응급실도 전국 411곳 중 3곳을 제외한 408곳이 추석 연휴 기간 매일 24시간 운영됐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응급의료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표면상의 숫자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응급실 문을 열어 놓고 있지만,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해 소진이 심각한 데다 배후진료 역량마저 떨어져 필요한 만큼의 응급진료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부족과 의사 사직으로 응급실 의료 공백은 64.6%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추석 직전 수련병원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수는 지난해보다 42.1% 줄었고, 의사 1명이 근무하거나 응급처치 후 환자를 수술하거나 입원치료할 수 있는 배후진료 약화로 실제 응급실의 진료역량은 50% 이상 감소했다. 보건의료노조가 9월 초에 65곳 의료기관의 응급실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응급실 진료역량은 심각한 상황이다. 응급실이 정상 가동되고 있는 곳은 26곳(40.0%)에 불과했고, 의사 부족과 의사 사직 등으로 응급실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 42곳(64.6%)이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응급실을 매일 24시간 운영(61곳, 93.8%)하고 있지만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불안하다”고 응답한 곳이 36곳(55.3%)으로 절반이 넘는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이 마비될 정도의 대란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거나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응급의료는 상시적인 위기 상황


우려와 달리, 이번 추석에 큰 불상사가 없었다고 정부가 자화자찬 할 문제가 아니다. 응급의료 분야 의사 이탈과 소진을 막지 못하고, 배후 진료역량을 탄탄하게 구축하지 못하면 응급의료 대란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응급의료는 상시적인 위기 상황이다. 정부 스스로 추석 연휴 기간 심각한 의료대란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로 응급의료 현장 의료진의 헌신과 시민의식을 꼽고 있듯이 의료대란의 근본 원인 해결대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아프지도 말고 다치지도 말자”, “가능하면 병원 가지 말고 참자”는 국민들의 자조 섞인 위기의식과 절제력에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진료공백 해소대책과 배후진료 역량강화대책, 의료인력 확충과 지원대책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많은 의료기관들과 보건의료인력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추석 연휴 진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더 이상 환자와 국민들의 자제와 희생에 기대서는 안 될 정도로 필수의료 위기가 폭발 직전의 상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이미 시작돼


지난 2월 20일부터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7개월 이상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는 2월 6일 2025학년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계획을 발표했고, 3월 20일에는 의대별 입학정원 배분을 발표했다. 이후 대학별 조정을 거쳐 5월 24일 1509명 증원이 확정됐다. 의대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이 의대정원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냈지만 6월 19일 대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렸고, 9월 9일 수시 모집으로 증원 의대 입시가 본격 시작됐다. 확정된 의대정원을 바탕으로 입시가 시작됨에 따라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의사단체들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철회,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경질을 요구하며 진료 정상화를 거부하고 있다.


필요한 곳에 균형 배치될 수 있는 합리적 정책필요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 백지화를 진료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의료 현장의 실상을 살펴볼 때 의대 증원은 붕괴 상태로 치닫고 있는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23개 공공병원 의사가 정원에 비해 2427명이나 부족하다.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공공병원이 의사가 없어 진료과를 폐쇄하거나 파행 운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사가 없어 법적 보호도 없이 의사업무를 대리하고 있는 진료지원 (PA) 간호사가 2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수련생인 전공의 1만3천여 명이 이탈하자 중증·응급의료 중추기관인 대형병원에 심각한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말해 준다. 따라서,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며 의대 증원 백지화를 내걸고 의료 공백 사태를 장기화하고 있는 의사단체들의 집단행동은 공감과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의대 증원을 추진하던 지난해 12월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서 국민 89.3%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했고, 올해 추석 직전 국민일보가 실시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의대증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2.2%였고,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7.8%에 불과했다. 따라서, 의사단체들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억지 주장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인정해야 하고, 의대증원 백지화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의대증원과 함께 필요한 곳에 적정한 의사인력이 균형 배치될 수 있는 합리적 정책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료대란 발생과 장기화의 진짜 원인은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의사단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의대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의사 부족으로 인한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붕괴와 이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처사일 뿐이다.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질 것이 아니라 국민생명을 살리기 위한 관점에서 의대증원과 의료개혁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의료대란 발생과 장기화의 진짜 원인은 의대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설 명절 민심을 선점하기 위해 의대정원 2000명 확대계획을 서둘러 발표했고, 집단행동 금지,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업무개시명령, 면허정지 행정처분, 압수수색, 소환조사 같은 강압적인 조치로 반발하는 의사들을 굴복시키려 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의정 대치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고, 벼랑 끝 강 대 강 치킨게임으로 내몰았다.


의료 공백 사태는 당사자인 의사단체와 정부가 풀어야 한다


의정대치로 인한 의료 공백 사태는 당사자인 의사단체와 정부가 풀어야 한다. 먼저, 의사단체는 “의사가 부족하고, 부족한 의사를 확충하기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장기화하고 있는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에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조건이다”라는 주장만 고집해서는 환자와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집단행동에 대한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오히려 불신과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현재 가동되고 있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나 의료공백 해결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야의정협의체는 의사들의 백기투항을 유도하기 위한 대화체도 아니고, 정부가 일방적·독단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대화체도 아니다. 의사단체들은 대화체에 참여해 합리적인 방안을 적극 내놓고,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활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정부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방안을 일방적·기습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의료대란이 발생하게 된 점과 대화와 설득 대신 행정처분과 사법처리 등 강압적 조치로 의료대란을 장기화로 내몬 점에 대해 사과하고,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확정된 대로 추진하되, 2026년도 이후 의대 정원 확대는 과학적 추계를 바탕으로 합리적 논의를 거쳐 추진하겠다는 유연한 입장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를 살릴 수 있는 의료개혁이 되어야


의사단체와 정부의 태도가 이렇게 바뀐다면, 당장 여야의정협의체 구성의 걸림돌은 사라지게 된다. 여야의정협의체는 가장 먼저 7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로 인한 의료 공백 해소책부터 마련해야 하고,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를 살릴 수 있는 의료개혁 추진 방안에 대한 협의에 착수해야 한다. 지난 4월 25일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필수의료 인력 확충과 양성, 지역의료체계 혁신, 공정하고 충분한 보상,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 4가지 의료개혁 의제를 놓고 세부 방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협의가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를 제대로 살리고,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의료개혁이 될지, 아니면 정치적 이해타산에 휘둘리다 실질적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나거나 일부 진료과 의사와 의료기관 퍼주기로 끝나는 의료개혁이 될지 그 결과는 아직 불투명하다.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료개혁 취지와 정반대로 의료 공공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약육강식 경쟁이 격화하면서 의료민영화·영리화를 앞당기는 결과를 빚을 우려도 있다.


'국민 생명을 위한'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지금과 같은 의료 공백 사태와 언제 의료대란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기상황이 장기화하면 할수록 의료파행은 더 심각해지고, 올바른 의료개혁은 더 멀어진다. 따라서 빨리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대화 자리를 만들고,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같은 국민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마저 팽개친 채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는 의사단체도, 의사단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 의료대란 위기를 수습하려는 정부도 “국민생명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붙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정작 국민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고, 온갖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국민생명을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수식어가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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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idado:
23 de set.

의료공백에 대한 해결점은 언제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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