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슬의 기후월령가 | 여름으로 들어가는, 입하
- hpiri2
- 5월 9일
- 5분 분량
2025-05-09 배이슬
입하 때, 들풀이야 지천이지만 가을에 거둔 쌀은 다음 해 가을까지 먹어야 하고, 이르게 심은 감자도 아직이고, 가을에 갈아둔 밀과 보리도 아직 여물지 않아 곡식이랄 게 없다. 뭐든 내다 심지만 든든히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잔대와 무릇을 캐다 밥에 섞어 짓고, 덜 영근 밀과 보리를 태워 먹었다.

배이슬 이든농장 농부 / 한국퍼머컬처네트워크 공동대표활동가 / 진안생태텃밭강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로 익힌 다름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알리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안전한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일터인 '이든농장'은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작은 농장이다. 논, 밭, 산이 조금씩 있고, 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작물들을 심고 키우고 먹는다. 씨앗을 받고, 퍼머컬처 숲밭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봄의 끄트머리, 여름의 시작, 입하
들 입(入), 여름 하(夏). 여름으로 들어가는 절기인 입하는 완연한 봄의 끝이자, 여름의 시작을 의미한다. 날이 풀리기 시작해 이맘때에는 된서리가 오지 않는다. 덕분에 걱정 없이 모종을 내다 심는 때다. 그러나 진안은 해발이 높고 산이 많아 입하가 지난 5월 7일(마지막서리가 내리는 날)을 지나야 따뜻한 시간을 사는 작물들을 내다심을 수 있다. 근래에는 비교적 날이 빨리 더워져 다들 조금씩 일찍 심고 있지만, 지난 3년을 돌아보면 13일을 넘어서도 예기치 못한 된서리에 심어 놓은 고추 모종이 얼어 피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니 입하가 지났다고 마음이 급해도 밭의 기세를 살펴 가며 심어야 한다.
입하가 오니 여름의 색인 수백 수천의 초록이 물든다. 새로 싹을 낸 잎사귀의 연한 노랑 같은 초록, 이미 꽃이 지며 잎을 낸 밝은 초록, 겨울부터 가지고 있던 단단한 짙은 초록까지 모두 다른 초록이 산과 들을 덮는다. 같은 초록은 하나도 없다. 눈이 부신 초록이 가득해지고 귀가 아플 만큼 온갖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해가 길어져 밭에 한참 있고서야 해가 진다. 입하만큼 밭에 머물기 좋은 때가 없다. 눈앞에 날아다니거나 물어대는 벌레도 아직 없고, 해는 길고, 풀은 억세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나게 밭에 있다가 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솥-쩍 솥-쩍 소리가 나면 여름이 오는구나! 한다.


입하에 추운 시간을 사는 작물들이 제법 자랐다. 속노랑홍감자 감자싹(왼쪽). 북을 줄 때다. 대가리파(오른쪽)가 꽃을 피웠다. 사진_배이슬
블루베리 꽃(왼쪽)이 피었다. 씨앗 받을 무고 꽃을 피우고 꼬투리를 맺어간다.(오른쪽) 사진_배이슬
제때 잘 챙겨 먹기!
추운 시간을 사는 감자와 상추는 그새 제법 자랐다. 입하와 소만 사이 감자는 금새 꽃을 피운다. 씨앗 받을 배추도 꽃잎을 떨러뜨리며 씨앗주머니를 초록으로 만들고, 대가리파도 차이브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겨울을 난 마늘도 꽃대를 올린다. 밭에서 난 채소 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들 만큼 좋아하는 마늘쫑의 시간이 온다. 제철을 맞은 마늘쫑은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어 촉촉할 때 뽑으면 끊기지 않고 뽁! 뽁! 잘 뽑힌다. 어느 해에는 신이나서 실컷 먹겠다고 서둘러 마늘쫑을 한아름 뽑았는데 할머니한테 혼이 났다.
“이렇게 가물 때는 마늘 몸살헌게, 뽑으면 안디야”
생각해 보면 꽃대를 쏙 뽑히고 나면 줄기에 구멍이 나니 더 가물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때 맞춰 먹는다고 신이났더랬다.
마늘쫑뿐이랴 두릅도 밭일한다고 넋 놓고 있다가는 하루 사이에도 펴버려서 맛있는 때를 놓치기 쉽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옻순, 가주나무순, 나무새순으로는 내게 1등인 화살나무 순도 부지런을 떨며 들여다 보지 않으면 때를 놓쳐 못 먹기 쉽다. 그렇게 못 먹고 나면 봄을 다 못 잡아 먹은 것 같아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여름이 온다고 벌써 제때 챙겨 먹기 바쁠 만큼 먹을거리가 넘치는 때다.
마지막 민들레와 쑥을 한가득 먹는다(왼쪽). 밭 메는 양, 온갖 풀을 뜯어다 봄풀효소를 담근다(오른쪽). 사진_배이슬
겨울 난 백합과(마늘, 파, 양파)는 꽃을 준비한다. 덕부네 마늘 쫑이 제철이다.(왼쪽) 시장에야 팔쭉만한 미나리가 나오지만, 논에는 이제 한 뼘만한 돌미나리가 제철이다. 사진_배이슬
따뜻한 시간을 사는 작물들 밭으로 이사 보내는 때
조금만 추워도 잎이 얼고 녹는 따뜻한 시간을 사는 작물들을 밭에 보내는 때다. 제때 찾아 먹는 게 어려울 만큼 바쁜 때이기도 하다. 노심초사 길러낸 모종들은 제법 추워도 모종상을 닫지 않고 바깥 추위에 익숙해지게 한다. 이를 ‘모굳히기’라고 하는데, 사람이나 식물이나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시간을 사는 작물들로 고추, 토마토, 옥수수, 오이, 호박, 참외 등을 밭에 이사를 보낸다. 모굳히기 하며 밭을 다룬다. 그중에도 대표적인 작물인 고추를 심느라 마을마다 바쁘다.
진안의 만상일이 7일이라, 어버이날 즈음하여 집에 온 일가친척들이 모두 밭으로 나와 고추를 심는다. 밭마다 사람들이 나와 물 주며 고추 모종을 심고, 마을마다 모종판이 산처럼 쌓인다.
고추, 토마토는 특히 첫 꽃이 필 즈음 밭에 심으면 자리를 잘 잡는다. 직접 모종을 낼 때는 부쩍 자란 모종을 두고 비의 시간에 맞춰 이삿날을 잡느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일기예보를 검색한다. 모종은 키가 크지 않고 땅에서 첫 꽃이 피는 자리까지의 마디가 짧고 굵은 것이 좋다. 고추는 모종이 있는 흙의 높이까지 맞춰 심고, 토마토는 첫 꽃 아래로는 깊게 눕혀 심는다. 고추와 달리 토마토는 묻힌 곳에서 뿌리가 발달해 더 오래까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비 오는 시간을 맞춰 고추 모종을 일찍들 심었는데 되려 날이 추워져 걱정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만상일을 지나 심으면 서리가 와도 쎄지 않아서 큰 피해가 없었는데, 근래 5년 사이에는 감자도 고추도 제때 심었는데도 된서리에 제법 피해가 늘고 있다. 이 역시 빠르게 따뜻해졌다가 이전과 다른 시간에 갑작스러운 추위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는 기후위기의 한 모습이다.



좋은 모종은 키가 아니라 대가 두꺼워야 한다. 토마토 첫 꽃이 달렸다.(중앙) 고추 첫 꽃이 달렸다.(오른쪽) 밭에 이사 가기 쫗은 때다. 사진_배이슬
솥-쩍-다, 솥-쩍-다 우는 새
여름이 왔구나! 하고 알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소쩍새 소리다. 밭일하기 좋은 때라 밭에 있다가 보면 깜깜해질 무렵에야 집으로 걸어오면 여지없이 소쩍새가 울었다.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서 무섭다고 할머니 옆에 바짝 붙어 팔짱을 끼고 걸으면 할머니는 배고파 죽은 며느리가 우는 거라고 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라 밥을 짓고도 안채에 밥상 내고 나면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은 며느리가 솥이 쩍다 솥이 쩍어서 밥이 없다 하고 우는 거여.”
옛날에는 며느리는 부엌에서 밥을 지어 나르느라 제때 함께 먹는 일이 없었다. 밥상에 내고 난 것을 그것마저도 식구들 밥시중이 끝난 뒤에야 부엌에서 밥을 먹었단다.
“아니, 치사하게 같이 먹지, 굶어 죽도록 밥을 안 주는 게 어딨데?!”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한껏 어이가 없다며 손사레를 치고는 했는데, 할머니한테서 듣는 속상한 보릿고개 이야기와 며느리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입하는 들풀이야 지천이지만 가을에 거둔 쌀은 다음 해 가을까지 먹어야 하고, 이르게 심은 감자도 아직이고, 가을에 갈아둔 밀과 보리도 아직 여물지 않은 때라 곡식이랄 것이 없을 때였다. 지금이야 냉장고도 있고 마트도 있다지만, 그 시설 입하 즈음은 뭐든 내다 심지만 든든히 먹을 것은 하나도 없던 때였다. 잔대와 무릇을 캐다 밥에 섞어 짓고, 덜 영근 밀과 보리를 태워 먹었던 이야기다.
할머니는 이맘때 우는 소쩍새 소리로 그 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소-쩍, 소-쩍 하고 들리면 흉년이고, 솥쩍-다- 솥쩍-다 하고 3음절로 들리면 풍년이란다. 쌀이 많아서 솥이 적을거라고 일러주는 거라는데, 배고픈 며느리 설움은 어디 가고 이제 솥쩍다 소리가 배부를 소리라니.


보릿고개를 넘는 때
보릿고개에 먹을 것이 없으니, 고지먹는 일이 많았단다. “고지먹다”는 것은 보릿고개에 쌀이나 보리를 얻어다 먹고 일 년 동안 남의 집 농삿일을 하는 것이었다. 못자리부터 시작해 모를 찌고, 모내기하고 피살이 하고 벼를 거두기까지 내내 와서 농사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손이 되어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일을 했다. 보릿고개를 살아내기 위한 일이었다.
고지먹던 때 이야기를 할라치면 할머니는 빼먹지 않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셨다.
일찍이 돌아가셔서 기억에 없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기억을 통해서만 들었는데, 그 시절에 없던 “관식이”였다. 늘 자상하고 할머니를 위했던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화를 내시는 때가 있었다. 바로 고지먹는 놉(일손)들 새참 때 수저가 모자랄 때였다.
놉들이 밥을 먹을 때면 그 집 자녀들이 어린 동생을 둘러업고 나와 같이 먹었는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나온 아이들이 수저가 없어 무안할까 봐 수저 낙낙히 챙기라며 신신당부하셨다.
“수저만 한번 져다 놓고 와야 혀, 먹다가 숟가락 모지라면 느 할아버지 썽나니까.”
쌀 한 말을 넘게 밥을 짓고, 절구에 고추 찧어 겉절이 하고 나물을 무쳤다. 할머니는 음식이 모자라지 않게 밥을 해 여러 번 나누어 머리에 이어 날라야 했다. 할머니와 장에 가면 종종 그때 고지먹었다는 할머니들을 마주쳤다. 하나같이 할머니를 반가워하며 그때 이야기를 하셨다.
“다른 집에 일을 가면 밥 밑에 감자를 넣어주니까. 어린 것 젖 먹이는 사이 큰놈이 먹고나서라 겨우 감자 한입 먹고 일을 하려니 배가 고파. 저놈의 해는 언제 지나하며 일을 했는데, 성네(형님네) 올 때는 자식들까지 모두 배불리 멕이고, 맛있게 한껏 먹으니 마음이 좋아서 일을 더해주고 싶은데, 해가 빨리지는 게 서운하더랑게.”
“내 죽기 전에 성이 해 준 밥 한번 먹고 잡으네, 내가 그 밥 먹고 살었네 성.”
우리 집이라고 넉넉했을까. 언제고 함께 먹는 일에는 아낌이 없었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을 건너 함께 먹고 사는 일이 말 그대로 함께 먹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보릿고개는 옛말이라지만, 함께 먹고 살지 못하는 때가 많다. 여름의 시작에서 보릿고개를 넘던 지혜를 생각한다.
이맘때에는 할머니랑 시합하듯이 고추를 심었다. 고추말목은 둘째 형원이의 몫이다. 할머니랑 내가 고추 심기가 무섭게 쫓아온다. 사진_배이슬


절기마다 나오는 글 재미지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