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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세계제국 1.0’의 붕괴와 중국의 문명적 야망―자유주의 한계를 넘어선 ‘보편’의 재구성에 대해

2025-10-10 윤효원

중국의 정치철학자이자 법학자 창스궁은 말한다. ‘세계제국 1.0’은 붕괴했고 2.0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는 ‘제국’을 문명사를 관통하는 ‘정치적 기술’로 정의한다. ‘주권 평등’이란 근대의 신화는 작동하지 않으며 세계 질서는 언제나 제국적 위계 속에 놓여 있었다고 말한다. 자유시장, 민주주의, 인권으로 대표되는 근대 자유주의 질서인 ‘세계제국 1.0’은 경제적 불평등, 국가의 무력함, 문화 허무주의로 방향을 잃었다. 창스궁은 자유주의 가치를 넘어설, 문명의 새로운 후보로 중국의 도덕적, 문명적 자원을 꼽는다. 그러나 1.0이나 2.0이 아닌, ‘상호의존의 원리’로 세계를 재구성할 새로운 보편을 찾아야 한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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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제국 1.0의 붕괴


영국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균열하고 있다. 중국의 법학자 창스궁(强世功, Qiang Shigong)은 이를 ‘세계제국 1.0(世界帝国1.0)’의 붕괴로 규정하며, 인류가 새로운 세계제국 2.0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은 단순한 반서구 선언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대한 법사상과 정치철학적 응답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제국의 불가피성’은 또 다른 위계와 복속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글은 중국 학자 창스궁의 「제국과 세계 질서」를 통해, 자유주의 이후 세계의 보편성 문제를 다시 묻는다.


창스궁(1967년생)은 중국의 정치철학자이자 법학자다. 현재 중앙민족대학교 총장이며, 베이징대학교 법학원 부원장을 지냈다. 전공은 법이론·헌법학·법사회학이며, 시진핑 시대를 대표하는 국가주의 법학자로 평가받는다. 주요 저서로 『법치와 거버넌스』, 『입법자의 법이론』 등이 있다.

근대 자유주의는 더 이상 보편의 언어가 아니며, '문명 간 경쟁'이 새로운 질서라고 말하는 창스궁 중앙민족대학교 총장. 사진_중국 중앙민족대학교
근대 자유주의는 더 이상 보편의 언어가 아니며, '문명 간 경쟁'이 새로운 질서라고 말하는 창스궁 중앙민족대학교 총장. 사진_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제국은 이미 돌아왔다


세계는 지금 ‘세계제국 1.0’ 체제의 균열 위에 서 있다. 자유시장, 민주주의, 인권으로 대표되는 근대 자유주의 질서는 더 이상 보편의 언어가 아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문명 간 경쟁’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언어다.


이 거대한 전환의 사상적 배경에는, 서구가 아닌 중국 내부에서 출현한 한 사상가의 시선이 있다. 창스궁의 2019년 논문 「초대형 정치 실체의 내적 논리: ‘제국’과 세계 질서」(『문화종횡』 2019년 4월호)는 오늘날 자유주의의 위기를 “세계제국의 구조적 변환기”로 읽어 내는 선언문이다.



창스궁은 ‘제국’을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적 기술(political technique)로 정의한다. 그에게 제국은 폭력의 잔재가 아니라, 보편성과 특수성의 긴장을 조정하기 위한 인류의 역사적 장치다. 그는 “제국은 인류가 보편성과 특수성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적 기술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보편적 질서로 확장하려는 내적 추진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는 ‘주권 평등’이라는 근대의 신화를 냉정히 해부한다. 200여 개의 국가가 국제법상 ‘주권국가’로 존재하지만, 현실의 세계질서는 언제나 불평등한 제국적 위계 속에서 작동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제국을 넘어서자’고 외친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 질서는 언제나 제국의 논리로 운영돼 왔다.”


‘세계제국 1.0’ — 자유주의의 제국


창스궁이 말하는 ‘세계제국 1.0’은 19세기 이후 영국과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다. 그것은 군사 점령이 아닌 시장, 법, 금융, 기술을 통해 세계를 통합한 제국이었다. 그는 이 체제를 “식민지 없는 제국(colonialism without colonies)”이라 부른다. 식민지를 물리적으로 소유하지 않아도 과학과 통화, 무역과 국제법을 장악함으로써 세계를 지배한 제국이었다는 것이다.


창스궁은 이 1.0 제국이 세 가지 해결 불가능한 모순에 직면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현재의 세계 제국은 세 가지 큰 난제에 직면해 있다. 첫째, 자유주의 경제가 낳은 불평등의 심화. 둘째, 정치적 자유주의가 초래한 국가 무력화와 정치적 쇠퇴. 셋째, 문화적 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퇴폐와 허무주의”를 지적한다.


경제의 모순 — 자유주의의 불평등


그는 먼저 경제의 차원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불평등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한다고 지적한다. 시장의 자유가 무한 경쟁을 낳고, 그 경쟁이 다시 자본 집중과 사회 양극화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의 시각에서 ‘세계제국 1.0’의 경제는 “글로벌 자본의 흐름으로 통합된 거대한 체계이지만, 그 내부는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그는 이 모순이 “자유주의 제국의 자기 파괴적 속성”이라고 진단한다.

창스궁은 시장을 윤리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다만 자유경제가 만들어 낸 무한한 불균형이 결국 제국의 통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본다. 경제적 불평등이 제국의 기반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정치의 모순 — 자유주의가 만든 무력한 국가


둘째는 정치적 차원이다. 창스궁은 정치적 자유주의가 국가를 ‘무력한 관리자’로 전락시켰다고 말한다. 국민주권과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결국 공공의 이익을 조정할 정치적 역량을 약화시켰다. 그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국가의 무력화를 초래했고, 통치 효율의 저하는 전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진단은 서구적 자유민주주의의 피로를 그대로 반영한다. 정치가 자본에 종속되고, 국가가 복지와 조세정책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현실 말이다. 창스궁에게 이 위기는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체제의 내적 붕괴다. 정치적 자유가 오히려 공동체의 통치력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창스궁에게 위기의 핵심은 통치의 무력화다.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말했듯, 정치는 언제나 ‘결단의 행위’이며 주권자는 예외 상태에서 질서를 창조한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그 결단의 힘을 상실한 채, 법의 이름으로 무질서를 방치하는 제국을 만들어 냈다.


문화의 모순 — 자유주의의 허무


셋째는 문화의 영역이다. 그는 자유주의 문화가 개인의 해방을 넘어서 퇴폐주의와 허무주의를 낳았다고 본다. “문화적 자유주의가 낳은 타락과 공허함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붕괴시켰다”고 지적하면서, 자유의 이름으로 욕망이 제도화되고 공동체의 윤리가 해체되면서 결국 제국의 문명 전체가 방향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이 문화적 위기는 단순히 취향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 스스로를 정당화할 근거를 잃었다는 징후다. 창스궁은 ‘자유’의 극단이 오히려 인간을 공허로 몰아넣는 역설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세계제국 1.0’은 경제적 부, 정치적 제도, 문화적 다양성을 모두 누렸지만,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든 그 내부는 도덕적 피로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붕괴하고 있다.


‘세계제국 2.0’ — 새로운 중심의 예감


그렇다면 ‘세계제국 1.0’의 붕괴 이후,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창스궁은 “제국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지 않는다. 그는 단호하다. “인류는 이미 세계제국의 시대에 들어섰고, 그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즉, 세계제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형태가 변할 뿐이다.


그가 암시하는 새로운 단계는 ‘세계제국 2.0’이다. 그는 “세계제국 1.0은 붕괴하고 있지만, 인류는 아직 ‘2.0’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전환기마다 새로운 문명이 그 공백을 메워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 ‘새 문명’의 후보로 중국을 암시한다. 중국은 단순한 신흥국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위기를 넘어설 도덕적·문명적 자원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이 서구의 과학, 법, 금융, 기술을 흡수하면서도 자신의 전통적 도덕문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때 비로소 “세계제국 2.0의 청사진이 중국 문명에서 그려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제국을 넘어서, 다시 ‘보편’을 묻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계제국 1.0’이 자유주의의 허무로 무너졌다면, 세계제국 2.0은 무엇으로 유지될 것인가. 창스궁이 강조하는 ‘도덕’이 권력의 언어로 전환되는 순간, 그 제국은 또 다른 위계와 복속의 체제가 된다. 그의 제안은 한편으로 급진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스궁의 글은 우리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소환한다. 1848년 유럽 각국의 혁명을 계기로 지난 200여 년 동안 세계를 주도해 왔던 자유주의의 가치가 더 이상 보편의 언어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새로운 질서를 상상할 것인가?


장시궁의 말처럼 세계는 이미 제국적 네트워크 속에 있다. 데이터와 금융, 법과 통화가 얽힌 이 거대한 체계 안에서 ‘주권’은 점점 신화에 가까워지고, 국가는 제국의 한 연결점(node)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질서의 설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국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곧 그 위계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 질서를 상호의존의 원리로 재구성할 언어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제국 2.0’을 보편적 공동체의 질서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자유주의의 붕괴 이후에도 인류는 여전히 제국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제국이 인간의 존엄과 공공선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2.0은 결국 또 다른 이름의 1.0일 뿐이다. 세계제국의 다음 페이지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그것을 누가, 어떤 언어로 쓸 것인가 — 그 질문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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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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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제국2.0이 온다해도 그 제국이 중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말하면 아니어야 합니다. 중국 단일패권이 미국 단일패권보다 더 나을 것 같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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