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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근로시간 문제, ‘평균의 함정’을 넘어서야

2025-07-18 윤효원

부산지하철 자회사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통해 근로시간 이중구조와 그 심각성을 살펴본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일수록, 소득 하위계층일수록, 여성이거나 돌봄 책임이 있는 경우, 초장시간 근로나 초단시간 근로 등 불안정한 근로시간에 내몰릴 확률이 급격히 높다. 근로시간의 격차는 임금, 고용 형태, 사회보장, 건강, 가족, 사회적 관계망의 차이로 연결된다. 장시간 노동자는 건강과 가정을 포기하고, 초단시간 노동자는 생계와 안전망이 없는 절벽에 내몰린다.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를 주 48시간으로 낮추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야간근로, 단시간근로, 휴식과 휴가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국제협약들을 비준해야 한다. 공공부문 자회사 구조의 개혁과 직접고용 확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이 필요하다. 근로시간 이중구조 해결이 시급하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부산에서 확인한 근로시간의 구조적 모순


며칠 전 부산에서 열린 ‘공공부문 불안정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해소 방안’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에서 접한 부산지하철 자회사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실태는 근로시간의 구조적 문제를 잘 드러냈다. 부산지하철 시설을 청소하고 유지하는 자회사에서 일하는 이들은 공공부문의 ‘정규직’이지만 대부분 현행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주 40시간-주 5일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주 60시간, 주 70시간에 달하는 불법적인 초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주 52시간 상한선은 무색한 현실이었고, 초과근로와 주말 비상 대기는 일상이었다. 공공기관이지만 법의 울타리 밖에서 방치된 상태였다.

지난 7월 10일 부산광역시의회 대회실에서 있었던, "부산 지역 공공부문 불안정 노동자 장시간 노동 해소 방안 모색 토론회" 포스터. 자료_부산지하철노동조합
지난 7월 10일 부산광역시의회 대회실에서 있었던, "부산 지역 공공부문 불안정 노동자 장시간 노동 해소 방안 모색 토론회" 포스터. 자료_부산지하철노동조합

한국 노동시장의 다층적 불평등


대한민국 노동시장에 만연한 이중구조의 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공공과 민간, 고임금과 저임금, 숙련과 비숙련, 남성과 여성, 청년과 고령자 사이의 격차와 경계는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다. 그 결과는 분절화(segmentation), 파편화(fragmentation), 양극화(polarization)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이중구조는 더 이상 이분법으로 단순 설명할 수 없는 노동시장 전반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불평등의 체계가 되었으며,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노동자 개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이 심각한 구조적 불평등의 중심에 자리한 '근로시간' 문제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왔다. 임금 격차, 고용 형태, 사회보장제도의 차이 만큼이나 근로시간의 차이야 말로 노동시장의 분절과 양극화, 파편화의 현실을 가장 날것으로 보여 주는 지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평균 근로시간'이라는 기만적 수치에 안주하고 있다.


평균의 착시와 근로시간의 양극화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 준다. 2024년 기준 임금노동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36.6시간, 비임금노동자는 41.3시간이었다. 얼핏 주40시간제에 근접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평균의 함정'에 불과하다. 2214만 명의 임금노동자 중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주 52시간 초과 노동자는 5.8%, 주 49~52시간 노동자는 9.6%에 달했다. 반면에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도 9.3%, 주 35시간 미만 노동자는 20.2%나 된다. 이들의 존재가 근로시간의 평균값을 하향시킨 것이다. 장시간 노동과 초단시간 노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근로시간의 양극화가 노동시장 하층에서 구조화되고 있다.


기업 규모·고용 형태·소득에 따른 근로시간 격차


기업 규모별로 보면 격차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40.5시간인데 반해, 1~4인 사업장은 33.7시간에 불과하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1~4인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으며, 비정규직에서 그 비율이 압도적이다. 임금 하위 20% 노동자의 82%가 주 35시간 미만의 근로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이렇듯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고용 형태가 비정규직일수록, 소득 하위계층일수록, 그리고 여성이거나 돌봄 책임이 있는 경우, 초장시간 근로나 초단시간 근로 등 불안정한 근로시간에 내몰릴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반대로, 대기업 정규직, 소득 상위계층, 고숙련 직종에서는 안정적인 근로시간이 일반화되어 있다. 근로시간의 분포 자체가 노동시장의 분열 구조를 재현하고 심화시키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근로시간 이중구조의 파급 효과


근로시간의 이중구조는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질, 건강권, 휴식권, 가족 관계, 사회 참여의 기회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변수이며, 노동의 가치와 보상의 기준을 규정하는 구조적 토대다. 근로시간 이중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임금 격차나 고용 형태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실질적 개선은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은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근로시간의 격차는 임금, 고용 형태, 사회보장, 건강, 가족, 사회적 관계망의 차이로 연결된다. 장시간 노동자는 건강과 가정을 포기하고, 초단시간 노동자는 생계와 안전망이 없는 절벽에 내몰린다. 근로시간이 곧 삶의 질을 결정하는 선 긋기이자, 노동시장의 실질적 계급 경계선인 것인다.


국제 기준에 한참 뒤진 한국의 근로시간 제도


국제노동기구(ILO)는 근로시간 규제를 가장 오래된 국제노동기준 중 하나로 설정해 왔다. 1919년 제1호 협약은 공업 부문에서 ‘일8시간-주48시간’의 한도를 정했고, 1921년 제14호 협약은 공업 노동자의 주휴일 보장을 명시했다. 이어 1930년 제30호 협약은 상업 및 사무실 부문의 근로시간을 같은 기준으로 제한했으며, 1935년 제47호 협약은 주 40시간제를 국제적 표준으로 제시하였다. 이 외에도 1957년 제106호 협약(상업·사무실 주휴 보장), 1970년 제132호 협약(유급휴일), 1990년 제171호 협약(야간근로자 보호), 1994년 제175호 협약(단시간근무자 권리 보장) 등이 있다.


이 협약들은 근로시간 제한뿐 아니라 휴식과 휴일, 단시간 및 야간근로자 보호, 유급휴가 등을 포괄하며, 근로시간의 양과 질,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복지의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제175호 협약은 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통해 전일제 노동자와 동일한 고용조건과 사회보장을 보장해야 함을 강조한다. 제171호 협약은 야간근로의 건강 위험에 주목하며, 정기 건강검진과 적절한 근로시간 제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 중 제47호 협약(주 40시간제)만 비준했을 뿐, 나머지 협약들은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이는 한국이 여전히 근로시간의 절대적 규제와 더불어, 휴식권, 야간·단시간 노동자의 권리 보장 등 국제 기준을 수용하는 데 매우 미흡함을 보여 준다.


유럽연합 근로시간 지침의 의미


유럽연합(EU)의 근로시간 지침(Directive 2003/88/EC)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노동시장 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법적 기준이다. 이 지침은 주 최대 근로시간을 초과근무를 포함해 평균 주 48시간으로 제한하며, 일일 최소 11시간의 연속 휴식, 주 최소 24시간의 휴식, 그리고 최소 4주의 연차 유급휴가를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하도록 규정한다. 야간근로자에 대해서는 최대 평균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의무화하는 등 별도의 보호 조항을 두고 있다.


EU 지침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 규모나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일부 운송업, 의료 분야, 군인, 경찰 등 특수 직종에만 예외가 인정되며, 이마저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제한적 예외에 불과하다. 또한 자율적 노동자에 대한 별도의 예외도 두고 있지만, 그 기준이 엄격하다. 각 회원국은 이 지침의 최소 기준보다 더 유리한 근로조건을 국내법으로 정할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국제 기준의 부재


EU 근로시간 지침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회복과 삶의 질, 나아가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기능한다. 일수를 기준으로 한 근로시간 논의가 아닌, 시간 단위를 기준으로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의 최소한의 균형을 보장하는 원칙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기업 규모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가 달라지는 한국의 법제와 큰 차이를 보이며, 한국 근로시간 정책이 참고해야 할 중요한 국제적 기준이다. 앞에서 소개한 부산지하철 자회사 노동자들의 실태는 이러한 국제 기준의 부재가 만들어 낸 결과다. 공공부문마저 노동시간의 법적 기준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민간 부문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정책적 결단과 과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진정으로 개선하려면, 근로시간 이중구조의 해소가 선결 조건이다. 근로시간의 불평등을 방치한 채 임금 격차나 고용 형태의 차이를 손봐도, 노동시장의 뿌리 깊은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근로시간이 곧 노동의 가치와 보상을 결정하고,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를 가르며, 나아가 삶의 기회 자체를 구획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위해 이제 반드시 결단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먼저,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를 주 48시간으로 낮추는 법제화, 즉 근로기준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주 48시간 상한은 국제적으로도 보편적인 기준이며, 우리 사회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다음으로, ILO의 근로시간 관련 협약들을 전면적으로 비준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야간근로, 단시간근로, 휴식과 휴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보호를 담은 국제협약들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이들 협약을 비준하고 국내 법제를 정비함으로써,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삶의 질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지침에서 제시한 원칙들을 국내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기업 규모나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등한 근로시간 기준과 휴식권, 유급휴가를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공부문 자회사 구조의 근본적 개혁과 직접고용 확대, 그리고 법의 사각지대였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근로시간 단축의 원칙


이와 함께, 근로시간 단축의 원칙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총근로시간의 단축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순히 근로일수를 줄이거나 형식적인 주 4.5일제, 주 4일제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실제로 일하는 시간의 총량이 줄어야 한다. 둘째,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단축이어야 한다. 기업 규모나 업종, 고용 형태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만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셋째, 노동강도의 완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근로시간이 줄었다고 해서 같은 생산량을 더 빠른 속도로 요구하거나 업무밀도를 높이면,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 개선은커녕 악화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임금 삭감 없는 단축이 원칙이다. 노동시간이 줄더라도 임금은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비용과 기업의 책임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근로시간 이중구조 해결이 급하다


결국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근로시간의 총량을 줄이되, 그 혜택이 모든 노동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고, 노동강도의 완화를 병행하며, 기업의 지불 능력 범위에서 임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근로시간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길이다. 평균의 착시에 갇힌 표면적 접근이 아니라, “누가, 어떤 조건에서, 몇 시간을 일하며 살아가는지를 묻고 교정하는” 데에서부터 한국 노동의 새로운 미래가 시작될 수 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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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7월 21일

근로시간 평균의 함정을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 선진국이라는 국뽕에 쩔어 있을 때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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