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코스피 5000, 금융자본주의의 환상인가 국민경제의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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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9일
- 3분 분량
2025-08-29 윤효원
이재명 정부는 국정 과제로 “코스피 5000”은 강조하며 주가지수 자체를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주가지수는 국민경제 지표일 뿐, 목적이 될 수 없고 한국 경제의 미래는 주가가 아니라 노동소득의 확대에 달려 있다. 정부가 금융자본주의적 사고에 매몰되면 국민경제의 구조 개혁은 지연되고 자산 불평등은 심화된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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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을 국정 목표로 내세운 정부
이재명 정부가 수십 개 국정 과제 중 두 번째로 ‘코스피 5000’을 강조한 것은 상징적이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부동산에 자산이 집중되어 있었고, 정부는 주식시장으로 자금을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주가지수 자체를 국정 목표로 제시한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단순한 증시 부양책이 아니라, 국가 발전의 비전을 ‘자본시장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읽힌다.
정부가 증시 지수를 국정과제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국민경제의 성장을 주가와 동일시하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주가지수는 경기의 체온계일 수 있을 뿐, 경제의 본질을 담보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주가를 경제 성과로 포장하며 금융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소득과 자산소득, 불평등의 구조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기초는 노동소득이다. 임금은 여전히 가계 생활의 중심축이지만, 자산소득은 상위 계층에 집중돼 있다. 한국의 자산 불평등은 심각하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43.5%를 보유하고 있으며, 하위 50% 가구는 고작 6.3%에 그친다. 이러한 자산 집중 구조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한국 사회의 자산 불평등은 금융자산 보유 현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KB금융이 발표한 「202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가진 이른바 ‘한국형 부자’는 약 4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9%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 규모는 2826조 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58.6%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상위 1%에도 못 미치는 소수가 금융자산의 60% 가까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산 집중 구조 속에서는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여도 그 혜택이 노동자 다수에게 돌아가기 어렵고, 금융자본주의의 성과가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즉,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일수록 그 효과는 상위 계층의 자산 증식으로 귀결되며, 노동자 다수에게는 체감되지 않는다. 주식시장 지수의 상승을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곧장 연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자본주의와 국민경제의 간극
주가지수는 경기의 신호일 수 있으나, 그것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아니다. 금융자본주의는 자산 가격을 부풀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착시를 제공하지만, 실제 경제의 기초 체력은 고용·임금·생산성에서 비롯된다.
역사적 사례는 이를 잘 보여 준다. 1980년대 일본 닛케이 지수는 4만을 눈앞에 두었지만,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주가 목표를 앞세운 정책은 금융버블만 키웠을 뿐이다. 2015년 중국 정부가 증시 부양에 나서며 개인투자가 대거 유입됐지만, 몇 달 만에 주가가 폭락하며 사회적 불안만 증폭됐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시 부동산과 금융 파생상품 거품은 월가의 호황을 만들었지만, 붕괴 뒤 실물경제는 장기간 타격을 입었다. 이 사례들은 한 가지 교훈을 준다. 주가는 결과이지 목표가 될 수 없으며, 금융자본주의적 착시는 결국 국민경제를 위기에 빠뜨린다.
국제 정세와 한국 경제의 제약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을 국정 목표로 내세우지만, 국제 정세는 오히려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첫째, 글로벌 공급망 분열이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였다는 점에서 성장했지만, 미·중 디커플링과 보호무역 강화로 수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 의존 구조는 곧 코스피 기업 실적과 직결된다. 공급망 불안은 주식시장에도 구조적 악재다.
둘째, 지정학적 리스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대만 해협 긴장은 글로벌 불확실성을 키운다. 여기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까지 더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기대하는 ‘북한 특수’는 현실성이 없고, 오히려 안보 불확실성이 자본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인다.
셋째, 주력 산업의 위기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반도체는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했으나, TSMC와 미국 기업이 기술·생산에서 앞서가고 있다. 전기차 전환에서 현대·기아차는 테슬라, 중국 BYD에 밀리는 형국이다. 조선·화학산업은 환경 규제 강화와 글로벌 수요 둔화로 성장 모멘텀을 잃고 있다.
이처럼 한국 주력 산업이 구조적 전환에 직면한 상황에서 증시 지수만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구호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IRA, 반도체법, 수출 통제 등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를 강제하고, 국내 고용과 투자를 약화시킨다. 결국 한국은 독자 전략보다 종속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증시 목표치만 강조하는 것은 공허하다.
노동소득과 국민경제의 중심
주가가 국민경제를 대표하지 못하며, 국민경제의 중심은 노동소득이다. 노동소득의 비중이 낮을수록 자산소득에 의존하는 계층만 혜택을 누리고, 불평등은 확대된다. 주가 상승이 노동자 다수의 생활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따라서 진짜 과제는 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임금소득을 확대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민경제와 금융 이데올로기
‘코스피 5000’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서만 의미가 있다. 주가지수는 국민경제의 건강을 반영하는 지표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주가가 아니라 노동소득의 확대에 달려 있다. 주식시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혁, 주주 배당 정상화, 무엇보다 임금과 고용의 질 개선, 이 세 가지가 병행될 때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반대로 노동소득을 외면한 채 주가만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국민경제의 발전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적 착시에 불과하다. 만약 정부가 금융자본주의적 사고에 매몰된다면, 국민경제의 구조적 개혁은 지연되고,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훌륭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