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동시에 흔들리다

2025-08-15 윤효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삐걱거리고 있다. 중국의 공장, 미국의 금융과 소비가 결합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해체되고 있고 유럽도 ‘군사적 유럽’으로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더 억압적인 체재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다. 사이코 코헤이는 무한 성장을 말하는 자본주의를 멈추고 ‘탈성장 공산주의’를 말한다. 나리타 유스케는 선거 중심 민주주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니 무의식적 데이터를 활용한 ‘무의식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기사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삐걱거리고 있다. 이는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정도와 양상만 다를 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는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제어하며 체제를 유지시키는 안전 장치였지만, 그 기능은 이미 약해졌다. 민주주의가 퇴락하자 자본주의 자체의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사적 변곡점 — 글로벌 공급사슬의 해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글로벌 공급사슬 해체 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종언을 맞이했음을 보여 준다.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중국과 미국의 금융·소비 구조가 결합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국제 분업 체제가 형성됐지만, 이제 그 결합은 해체되고 있다.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사의 한 장이 끝나가는 세계사적 변곡점이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출범 당시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을 내세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사적 유럽(Military Europe)’으로 변질되고 있다. 복지와 사회권 확대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던 전략이 안보와 무기 생산이라는 명분 아래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신호다.


자유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 위기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미약하다. 다당제와 정기적 선거를 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빛을 잃었다. 보름달이 기울어 그믐달이 되었듯, 자유민주주의도 한때의 전성기를 지나 쇠락기에 들어섰다.


자연의 달은 다시 차오르지만, 역사 속 제도적 민주주의는 반드시 복원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붕괴된 민주주의는, 더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체제로 대체됨을 20세기 초중반의 역사는 이미 보여 줬다.


일본 학자들의 진단 — ‘탈성장’과 ‘무의식’


이 시대의 위기를 두고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 일본의 젊은 학자들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사이토 코헤이(斉藤 幸平)와 경제학자·데이터 과학자인 나리타 유스케(成田 悠輔)가 그들이다.


사이토는 『인류세의 자본론(人新世の「資本論」)』에서 ‘탈성장 공산주의’를 주장한다. 이는 경기 침체나 제로 성장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자본의 무한 증식이 인간의 행복과 지구 환경을 동시에 파괴한다는 전제 위에서, 자본주의 성장 메커니즘에 과감히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나리타는 『22세기의 민주주의』에서 선거 참여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선거와 동일시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터넷과 감시 기술,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한 뒤, 알고리즘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무의식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인간의 직접 토론과 대표자를 거치지 않고, 데이터와 기계가 민의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사이토 코헤이의『인류세의 자본론(人新世の「資本論」)』(2020)과 나리타 유스케의 『22세기의 민주주의』(틔움, 2024)
사이토 코헤이의『인류세의 자본론(人新世の「資本論」)』(2020)과 나리타 유스케의 『22세기의 민주주의』(틔움, 2024)

자본주의·민주주의의 ‘기능부전’


두 사람의 주장은 결국 같은 문제의식으로 모인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잃었다는 진단이다. 경제 성장은 환경 파괴와 불평등 심화를 대가로 이루어지고, 정치 제도는 이를 완화하기는커녕 불평등을 제도화한다. GDP 성장률과 주가 상승은 일부만의 몫이 되고, 다수는 배제된다.


민주주의는 이런 배제를 완화하는 장치였지만, 현실에서 선거는 당이나 후보를 고르는 것이지 구체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당선 이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유권자가 직접 정책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정치적 효능감은 줄어들고 냉소만 커진다. 그 결과, 빈곤층이 오히려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서민 공약’을 내세운 정당이 집권 후 이를 배신하는 일이 반복된다.


1930년대의 교훈과 오늘의 선택


세계 경제의 흐름은 미국과 중국의 동조화가 해체되는 디커플링 시대로 접어들었다.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움직이며 양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동시에 훼손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노동자와 시민 다수를 대변하지 못하면, 불평등 심화와 정치적 무력감 속에서 극우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가 득세할 위험이 커진다.


정확히 90년 전인 1935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치명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세계대전이라는 참극 속에서 ‘강제로’ 봉합됐다. 전후의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는 강력한 노동조합, 공공부문 확장, 국제적 규범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토대는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확대 없이 이중 위기를 평화롭게 돌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세계는 군비 경쟁과 지정학적 대립, 신기술을 활용한 감시·통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25년의 인류는 90년 전보다 더 많은 경험과 더 앞선 기술을 갖췄다. 그러나 그 경험과 기술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에 쓸 의지와 제도는 여전히 빈약하다. 선택을 미루는 순간, 우리는 제1·2차 대전의 전철을 밟듯 ‘몽유병 환자’처럼 제3차 세계대전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


2025년 6월 24-27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18회 ISEE(국제 생태경제학회) 컨퍼런스와 11회 국제탈성장 컨퍼런스를 안내하는 홈페이지. 사진_ISEE-Degrowth 2025
2025년 6월 24-27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18회 ISEE(국제 생태경제학회) 컨퍼런스와 11회 국제탈성장 컨퍼런스를 안내하는 홈페이지. 사진_ISEE-Degrowth 2025

‘무엇을 위해 성장할 것인가’와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사이토 코헤이는 무한 성장이라는 자본주의의 전제를 멈춰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 파괴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성장 논리를 버리고, 행복과 지속가능성을 사회의 새로운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리타 유스케는 낡은 선거 중심 민주주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사회 전반에서 생성되는 ‘무의식적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와 정치, 두 영역을 겨냥한 이들의 문제의식은 한 지점에서 만난다. 지금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기능을 잃었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무엇을 위해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중 위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와 다음 세대일 것이다.

댓글 1개

별점 5점 중 0점을 주었습니다.
등록된 평점 없음

평점 추가
trokim
8월 16일

"지금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기능을 잃었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무엇을 위해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중 위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좋아요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추천 기사를
선별중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이 기사를 읽은 회원

​로그인한 유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로그인 후에 이용 가능합니다.

이 기사를 읽은 회원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유저 찾는중..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유저별 AI 맞춤
기사 추천 서비스

로그인한 유저분들께만
제공되는 기능입니다.

​ㅇㅇㅇ

회원님을 위한 AI 추천 기사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loading.jpg

AI가 기사를 선별하는 중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