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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 제종길의 남행 수중 탐사4 | 쓰시마 바닷속에 처음 뛰어들다

 

2024-09-19


제종길 박사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해양생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20년간 한국해양연구소에서 일했다. 2001년 대통령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회바다포럼'과 '국회기후변화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환경기자가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했다. 2008년 '도시와 자연연구소'를 만들었으며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2010년 한국 생태관광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한국보호지역포럼 대표를 2014년까지 맡았다. 2014년 제13대 경기도 안산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에너지 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를 이끌었다. 2019년부터 2년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일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도시인숲 이사장과 수중환경과학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숲의 도시』(2022), 『도시재생학습』(2018), 『도시 견문록』(2014), 『도시 발칙하게 상상하라』(2014), 『환경박사 제종길이 들려주는 바다와 생태이야기』(2007), 『우리바다 해양생물』(공저, 2002), 『이야기가 있는 제주바다』 (2002) 등이 있다.

 

산호초의 북상을 찾아서


가깝고도 먼 길, 바로 쓰시마(對馬島)였습니다. 늘 상상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가고 싶은 곳이었으나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수중 세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섬이, 그 슬픈 역사가 궁금했습니다. 제주 바다에 대한 연재(2023년 『한라일보』 특집 연재—“제주 바다 보호 더는 미룰 수 없다”)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면서 갑자기 쓰시마가 떠올랐습니다. 제주도보다 고위도에 위치한 섬인데 산호초가 있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2009년 당시 강원대학교 우경식 교수의 초청으로 일본 국립환경연구소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공동 연구팀에 합류해 이키노시마(壱岐島)를 방문한 경험도 작용했습니다. 연구팀은 북상을 전제로 산호초의 이동 속도와 새롭게 생길 산호초 위치가 궁금했습니다. 당연히 제주도도 후보에 들어 있었습니다. 우연한 참여였지만 산호초의 북상이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여서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이때 경험이 신문 연재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쓰시마를 혼자라도 가서 수중생태계를 직접 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한국수중과학회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팀이 꾸려졌습니다.


4000년 전부터 버티던, 쓰시마의 돌산호


2012년 일본 학자들에 의해 쓰시마에서 산호초가 발견되었습니다. 최북단 산호초의 기록이 이키노시마에서 쓰시마로 바뀌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 산호초는 최근에 생긴 게 아니고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민들은 무엇인지는 몰라도 물속에 일반 바위는 아닌 덩어리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이 차갑고 탁한 내만(內灣)에 있는 산호초는 적어도 4000여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바닷물이 후퇴할 당시에 버티고 남았던 산호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찬물에 견디는 돌산호 종류였던 것이죠. 쓰시마는 해안선이 매우 복잡해서 작은 내만이 무수히 많습니다. 현재 발견된 산호초 외에도 더 있을 개연성이 큽니다. 쓰시마의 산호초는 파비아(Favia) 속의 산호들입니다. 이 종은 열대의 전형적인 산호초 구성 종류인 아크로포라(Acropora) 속과는 적응이 가능한 서식 온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처음 쓰시마 산호초 소식을 접했을 때 아크로포라 속의 산호초일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쓰시마의 파비아 속 산호초(위쪽)와 '산호 삼각지대' 내의 인도네시아 데라완(Derawan) 열도의 아크로포라 속 중심 산호초(아래쪽)의 비교 / 위쪽 사진_일본 환경단체 사진 인용, 아래 사진_ 장필순

오키나와 산호초가 북상해, 쓰시마 산호초를 위협하다


발견된 지 5년이 지난 2017년에 산호초를 처음 발견한 일본 국립환경연구소 소속 연구책임자였던 ‘야마노 히로야(山野 博哉)’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최근 오키나와의 산호초는 기온이 낮은 바다로 피신하면서 서식지 범위를 규슈, 시코쿠, 혼슈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피난처에 있던 산호초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상황은 심각합니다.” 피난처란 쓰시마를 말합니다. 2015년, 2016년, 2017년에 해수온이 급격히 상승해 전 세계 산호초가 백화현상으로 몸살을 심각하게 앓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온 상승이 기존의 찬물에 적응해 온 산호초에겐 재앙이었던 것입니다. 산호초가 살던 일본 두 해역—오키나와와 쓰시마 일대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아크로포라 속 산호들을 촬영하고자


쓰시마를 처음 방문한 2023년 6월에는 오래전부터 머물렀던 기존 산호초에는 관심을 줄였습니다. 체류 기간이 짧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일본 과학자(일부 한국인 과학자 포함)와 보전 활동가들이 지속해서 관찰하고 변화를 기록하는데, 이국의 과학자가 허가 없이 과학연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단순하게 물속을 방문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더군다나 원로(스스로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인 해양과학자 한 명과 네 명의 자원봉사 다이버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과연 무엇이 있나 찾고 사진 촬영하는 것이 목표인데, 그것도 조초산호—특히 아크로포라 속의 산호들이 정착해 있는지 그리고 이들과 기존 대형 갈조류 간 경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평균 30년 이상의 다이빙 경험과 과학지식 그리고 직관을 믿고 출발했습니다. 초여름 한국 부산과 가장 가까운 항인 북섬의 히타카츠(比田勝) 항에 도착하자 다이빙 가게가 있는 남섬의 이즈하라마치(嚴原町)—쓰시마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런 일들을 일사천리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김성훈 교수 덕분이었습니다. 이전에 일본에서 교수를 했고, 현재는 수중사진작가이자 저술가입니다. 일본 도로 운전을 포함해 모든 일을 도맡았습니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혼자 왔다면 막막했을 터인데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오타하마 해변에서 드라이슈트를 입고 다이빙 준비를 마친 다이버들. 뒤편의 바다에 방조제와 산호초가 있다. 왼쪽부터 이진성 다이빙 강사, 제종길, 장필순 한국수중과학회장, 김창모 다이빙 트레이너, 김성훈 전 일본 요코하마대학교 교수.

열대 아크로포라 산호초와 온대 바다가 함께 너울거린다


입도한 날 휴식을 취하지 않고 다이빙 장비를 바로 챙겨 산호초가 십수 년 전부터 형성되고 있다는 모래 해변을 찾았습니다. 이즈하라의 숙소에서 약 11km 떨어진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의 오오타하마(太田浜) 해수욕장이었습니다. 현지 다이빙 가이드는 해안에서 약 150m 정도 떨어진 곳 수중에 테트라포드로 쌓아 만든 방파제가 있고, 방파제를 넘어서면 바로 경사면과 바닥에서 산호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 같은 바닷물인데도 왠지 두근거렸습니다. 일본의 다른 바다에서 다이빙을 여러 번 했는데도 쓰시마의 물은 좀 달랐습니다. 파도는 없었으나 큰 너울이 있어 드라이슈트를 입고 걷고 수영해서 방파제까지 가는 일이 숨이 찰 정도로 꽤 힘들었습니다. 방파제에 올라 내려다보니 오는 데 힘들었던 생각을 다 잊을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시야는 크게 좋지 않았지만, 열대 바다가 있었습니다. 작은 규모의 아크로포라 산호초와 물고기 그리고 아열대 해삼까지. 아직 온대 바다의 모습도 남아있었으나 큰 해조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심이 4∼5m로 얕아 바닥까지 너울 여파가 미쳐 수중 사진을 촬영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습니다. 쓰시마 바다가 방문객을 편히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가이드가 나가자고 할 때까지 비슷한 광경을 쉬지 않고 보았습니다. 탐색을 마치고 왔던 물길을 따라 되돌아 나가려고 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오오타하마 해수욕장의 수중 방파제를 넘으면 나타나는 아크로포라 속의 산호초다. 수심이 얕고 모래 바닥이어서 시야가 좋지 않았다. 사진_김성훈

산호초를 근접 촬영한 장면이다. 파비아 속 산호초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사진_장필순

수온 상승으로 해조류가 급격히 퇴조한, 쓰시마 바다


해변에 올라서니 그제야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에는 보트 다이빙을 계획했는데 바다 사정으로 배를 띄울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해변 다이빙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읍내에서 자료를 찾아보자 해서 책방도 갔지만 관련 서적이 없었고, 여러분에게 탐문해봐도 바닷속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본 시립 도서관에서 귀한 자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쓰시마시해양보호구과학위원회(對馬市海洋保護區科學委員會)가 2014년에 만든 보고서였습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사이에 ‘해조류가 무성했던 번식지(보고서에서 모바藻場이라고 했음)’가 급격히 쇠퇴했는데, 주원인을 초식성 어류와 성게의 식압(두 생물이 해조류를 먹는 압력, 해조류가 현상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많이 먹히는 현상)으로 보고서는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수온 상승이 지속해서 있었고, 1995년 이후부터는 그 전보다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 여름에는 수표면 수온이 무려 30℃였습니다. 수온을 비롯한 쓰시마에서 일어난 일들은 더 알고 싶었지만, 쓰시마와의 첫 만남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면서 재방문을 기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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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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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Se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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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 섬이, 그 슬픈 역사가..."


이 문장은,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첫 문장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에 버금가는 울림이 있습니다.


나머진, 아껴뒀다 내일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저의 보람찬 주말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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