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 유입 | 사전 예방 중심의 검역 시스템으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 Theodore

-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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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9 최민욱 기자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외래생물과의 전쟁에서 한국은 패배해 왔다. 뉴트리아, 가시박, 큰입배스는 이미 전국의 하천과 산림을 장악했다. 이 실패의 근본 원인은 현장이 아닌 국경에 있다. 문제가 터진 뒤 수습하는 ‘사후 박멸’ 중심의 정책은 막대한 비용만 낭비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해답은 이미 유입된 종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위협이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하는 ‘사전 예방’ 중심의 검역 시스템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있다.

수십 억 예산에도 외래종은 전국으로 확산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외래종 제거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는 북한강 유역의 가시박을 제거하기 위해 2025년 약 4억1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역시 동진강 일대를 장악한 양미역취를 제거하기 위해 매년 퇴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재정 투입은 외래종의 기하급수적인 번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9년 부산 대저생태공원의 경우, 축구장 38개 크기에 달하는 생태계 교란 식물 군락지를 제거하기 위해 처음 배정된 국가 예산은 8천만 원에 불과했다.1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대응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실제 데이터는 예산 투입의 효과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데이터만 봐도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가시박의 전국 분포 면적은 19만5천650㎡에서 29만9천100㎡로 늘었다. 2024년 말 기준, 가시박은 강원도에서만 분포 면적이 336만㎡가 넘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했다.2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후 관리에 예산을 쏟는 동안 외래종의 유입 자체가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유입된 외래생물은 2009년 894종에서 2021년 2653종으로 연평균 20% 이상 증가했다. 공식 통관 절차를 통해 기록된 유입종만 해도 2019년 3460종에서 2021년 6840종으로 단 2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이는 현재의 사후 박멸 정책이 확산을 막기는커녕 새로운 위협의 유입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정부는 ‘성공’이라 했지만... 뉴트리아 박멸의 한계
정부는 뉴트리아 퇴치 사업을 사후 박멸 정책의 대표적인 성과로 내세운다. 2014년부터 10년간 총 107억 원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은 사실이다. 퇴치 전담반을 운영하고 마리당 2만 원의 수매 보상금을 지급했으며, 여러 마리를 동시에 잡는 ‘인공섬 트랩’ 같은 신기술도 개발했다. 그 결과 초기에는 성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2014년 약 8700마리로 추정되던 개체 수는 2018년 포획 수가 1930마리까지 줄어들며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박멸은 요원했다. 2020년 이후 포획 실적은 제자리걸음이며 ,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2023년 11월부터 2024년 6월까지 포획된 개체 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35% 증가하며 오히려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예산 문제로 퇴치 작업이 연중 내내 이뤄지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중단될 때마다 뉴트리아가 다시 번식할 시간을 벌어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뉴트리아라는 단일 종에 집중하는 동안, 생태계의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교란이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뉴트리아 퇴치에 막대한 자원이 집중되던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또 다른 생태계 교란 어종인 큰입배스의 상대풍부도는 5.2%에서 13.5%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이는 특정 ‘문제 종’을 지정해 제거하는 방식이 생태계 전체의 건강성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풍선 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뉴트리아 사례는 성공적인 박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하는 동시에, 하나의 종을 관리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어도 다른 생태계 교란을 막지 못하는 사후 대응 방식의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최초 발견 후 방제까지, 놓쳐 버린 골든타임
외래종 방제의 성공은 초기 정착 단계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응 체계는 최초 발견 보고 이후 공식적인 방제 계획이 수립되기까지 긴 시간적 공백을 드러내며 결정적인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지연은 소수의 개체를 박멸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리고, 전국적인 확산과 막대한 방제 비용을 초래하는 직접 원인이 된다.

등검은말벌의 사례는 이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등검은말벌은 2003년 부산 영도에서 국내 최초로 발견되었다. 환경부가 이 종을 생태계교란 생물로 공식 지정한 것은 무려 16년이 지난 2019년이었다. 4월에 동면에서 깨어난 여왕벌 한 마리가 한 해 수천 마리의 군체를 형성하는 등검은말벌의 생태를 고려하면, 16년의 대응 공백은 사실상 전국으로의 확산을 방치한 것과 같다. 그 결과 등검은말벌은 이제 토종 꿀벌을 위협하며 양봉 산업에만 연간 약 1700억 원의 피해를 주는 통제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붉은불개미의 경우, 2017년 9월 부산항에서 처음 발견된 직후 정부 합동조사단이 꾸려지는 등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평택항, 인천항 등 주요 항만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2024년 7월에도 인천항에서 또다시 군체가 확인되었다. 이는 초기 대응이 빨라도 국경 단계에서의 유입 차단이 실패하면 반복적인 침입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수입 화물 속 무임승차, 비의도적 유입에는 속수무책이다
의도적으로 들여오는 외래종보다 더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비의도적 유입이다. 전 세계를 오가는 선박, 항공기, 화물은 외래생물에게 국경을 넘나드는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싣고 버리는 평형수는 외래 해양생물을 퍼뜨리는 가장 대표적인 경로로 지목된다. 국제해사기구(IMO)가 관련 협약을 채택한 것은 2004년이지만, 한국은 2007년에 이르러서야 관련 법안 마련에 착수하는 등 대응이 늦었다. 선체에 달라붙어 이동하는 부착생물 또한 심각한 위협이지만 이에 대한 관리는 더욱 미흡하다.

육상에서는 수입 농산물이나 목재 포장재가 주요 경로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수입 식물에 대한 검역을 수행하고 있지만, 모든 화물을 전수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급증하는 해외 직구와 국제우편물은 검역 시스템의 가장 큰 허점으로 꼽힌다. 개인이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종자, 묘목, 살아있는 곤충 등은 검역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내로 반입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법상 미신고 반입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지만, 수많은 국제우편물을 일일이 개봉해 확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사실상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환경부, 농림부, 해수부, 책임 분산된 칸막이 행정
외래생물 문제는 생태계, 농업, 해양, 보건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있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외래생물 관리는 부처별로 쪼개져 있다. 환경부는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생태계교란 생물을 관리하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식물방역법」에 근거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병해충을 검역한다. 해양수산부는 선박 평형수 등 해양 외래생물 유입을 관리한다.
이렇게 분산된 체계는 부처 간 정보 공유를 단절시키고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농업에 직접 피해를 주지 않지만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새로운 곤충이 수입 농산물과 함께 유입될 경우, 어느 부처가 주도해서 위험성을 평가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규제의 공백은 신종 외래생물에 대한 대응을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일관되게 ‘부처별 상이한 지정 체계’, ‘정보공유체계 부실’, ‘체계적 대응 부족’을 한국 외래생물 관리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해 왔다. 이는 과거 메르스 사태 당시 컨트롤타워 부재로 초기 대응에 실패했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하는 문제이다.
법은 존재하지만 신종 위협을 예측하지 못한다
한국의 외래생물 관리법은 근본적으로 사후약방문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행 「생물다양성법」은 특정 외래생물이 국내에 유입되어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후에야 ‘생태계교란 생물’이나 ‘유입주의 생물’로 지정하는 ‘블랙리스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이미 발생한 문제에 대응하는 데는 유효할 수 있지만,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잠재적 고위험 신종 외래생물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는 완전히 무력하다.
예를 들어, 2024년 10월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된 열대긴수염개미는 목재 등 수입 화물을 통해 국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후에야 유입주의 생물에서 지정 단계가 격상되었다. 이는 위협이 현실화된 뒤에야 법적 조치가 뒤따르는 시스템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 준다. 기후변화로 인해 과거에는 국내에서 살 수 없었던 아열대성 생물들이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행법은 이러한 미래의 위협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유입을 금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다.
"안전함을 증명하라" 수입자에게 책임을 묻는 호주·뉴질랜드
호주와 뉴질랜드의 생물보안 시스템이 한국과 다른 가장 근본적인 지점은 ‘입증 책임의 전환’에 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특정 외래종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만 규제 대상(블랙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 반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수입업자가 들여오려는 품목이 자국 생태계에 안전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만 수입 허가(화이트리스트)를 받을 수 있다.
호주는 「생물보안법 2015」(Biosecurity Act 2015)에 따라 모든 수입품을 잠재적 위험물로 간주하고 엄격한 통제 아래에 둔다. 수입업자는 ‘BICON’이라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자신이 수입하려는 품목의 검역 조건을 사전에 확인하고, 필요한 모든 서류와 절차를 완벽하게 이행할 법적 책임을 진다. 만약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막대한 벌금은 물론, 화물 즉시 파기, 심지어 형사 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
뉴질랜드 역시 「생물보안법 1993」(Biosecurity Act 1993)에 따라 모든 ‘위험 상품(risk goods)’은 정부가 정한 ‘수입 보건 기준(IHS)’을 충족해야만 수입이 가능하다. 만약 특정 품목에 대한 IHS가 없다면, 수입을 원하는 자가 직접 정부에 요청해 수년이 걸릴 수 있는 과학적 위험 분석 절차를 거쳐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 필요한 모든 비용과 안전성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수입 희망자에게 있다.
과학적 위험 평가가 수입 허가보다 앞선다
호주와 뉴질랜드 검역 시스템의 핵심은 모든 결정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운 품목을 수입하기 전에 이뤄지는 ‘수입 위험 분석(Import Risk Analysis)’은 국경 방어의 가장 중요한 절차다. 이 과정은 특정 상품이 수입될 경우 함께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잠재적 해충과 질병을 목록화하고, 각각이 자국에 유입되어 정착할 가능성과 경제, 환경, 인간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을 체계적으로 평가한다.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IHS를 만드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수입 요청이 접수되면 1차산업부(MPI) 소속 과학자들은 해당 품목과 원산지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이 분석을 통해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특정 처리(소독, 가열 등)를 통해 위험을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려질 때만 IHS 초안이 마련된다. 이 초안은 다시 관련 산업계, 학계, 일반 대중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호주의 BICON 시스템 역시 수십 년간 축적된 방대한 위험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된 정교한 의사결정 지원 도구다. 이러한 과학 기반의 사전 평가는 감정이나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객관적인 위험도에 근거해 국경의 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한다.

"신고"가 "애국" 국민 모두가 국경의 파수꾼
강력한 법과 제도만으로는 완벽한 국경 방어가 불가능하다. 호주와 뉴질랜드 성공의 또 다른 축은 생물보안이 ‘나와 우리 공동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높은 수준의 국민적 인식이다. 이들 국가는 입국하는 모든 여행객에게 음식물, 식물, 동물 제품 등 아주 사소한 품목이라도 예외 없이 신고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공항 입국장에는 “신고하지 않아 미안해 하지 말고, 그냥 신고하라(Don't be sorry, just declare it)”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다.
만약 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신고하지 않은 물품이 적발될 경우, 그 자리에서 수백만 원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되거나 비자가 취소되어 즉시 추방될 수 있다. 이러한 강력한 처벌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생물보안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대 사안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한다. 호주는 더 나아가 2022년 발표한 ‘국가생물보안전략’을 2024년 실행 계획으로 구체화했으며, 2025년 8월에는 ‘국가생물보안주간’을 운영하는 등 정부, 산업계,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을 지는 문화를 국가적 목표로 설정했다. 이는 생물보안이 특정 정부 부처의 업무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참여해야 하는 국가 공동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 준다.







단속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