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와 경제ㅣ기후위기 대응이 여는 새로운 산업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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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1 금민, 유승경
기후위기 대응은 산업혁신의 계기이자 새로운 사회계약이며, 공동체 재구성의 기회다. 기술적 전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정의와 시민 참여, 복지와 분배 구조의 재편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단지 위기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엔 게오르그아우구스트대학교 법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운영위원장,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 주필,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를 역임했고, 현재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다. 최근 디지털 자본주의, 에너지 전환, 기본소득, 공유부 기금 등이 관심사이며,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으로부터 기본소득의의 의의를 끌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Financing Basic Income-An Exploratory Study of the Korean Case(공저, 2022), 『모두의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다』(공저, 2021),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공저, 2021),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 쉽게 읽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기본소득』(공저,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2020), 『진짜 민주주의』(2012), 『사회적 공화주의』(2007) 등이 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https://alternative.house/me

유승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유승경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수석연구위원으로서 화폐 및 금융 관련 연구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 경제학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서 근무하고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는 『MMT 논쟁』(2021), 번역한 책으로는 『주권화폐–준비금 은행제도를 넘어서』(2023), 『기본소득과 주권화폐–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의 대안』(2021), 『경제 위기는 반드시 온다–금융 위기 200년사를 통한 경제 위기 예측과 대처법』(2020), 『프리드먼은 왜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자고 했을까?』(2020), 『우주의 거장들–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치의 탄생』(2019), 『세계화의 종말–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2012_)이 있다. 연구보고서는 『탄소세 도입 정책동향과 경기도 시사점』(책임연구)이 있다.
유승경의 ‘화폐, 금융, 경제 이야기’ https://alternative.house/category/economy-story/
기후위기, 피할 수 없는 절박한 과제
2024년 여름, 유럽과 북미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은 수천 명의 사망자와 수십조 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남겼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극심한 가뭄과 집중호우, 동시다발적 산불과 해양 생태계의 이상 변화는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예고가 아니라 현재의 위기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는 단지 환경 보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존속 가능성과 공동체 기반의 생존과 직결된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위기의 핵심에는 에너지 체계가 놓여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5%는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기원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는 에너지 체계 전환의 속도와 방식에 달려 있다.
에너지 전환은 산업 혁신의 실질적 기회다
기후위기 대응을 단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부담’이나 ‘환경적 규제’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지속가능성도, 실현 가능성도 부족하다. 오히려 우리는 이 절박한 위기를 산업구조 혁신과 기술 패러다임 전환, 양질의 일자리 창출, 경제 생태계 재구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재생에너지 산업은 이미 세계 경제의 차세대 동력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신규 전력 설비의 약 80%는 재생에너지로 채워졌다. 태양광, 풍력, 수소,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등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 수단들은 이제 동시에 글로벌 산업 경쟁의 중심 축이 되고 있다.
한국이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하면서, 이 전환의 길을 가장 지혜롭게 설계하고 실행해 나가는 국가가 미래의 산업 패권과 기술 주도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 과거 20세기가 석유를 둘러싼 산업 질서를 구성했다면, 21세기는 태양과 바람을 둘러싼 산업 지형이 결정지을 것이다.
구조적 전환: 생산과 소유의 방식까지 바꿔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단지 석탄을 태양광으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기술적 치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생산과 분배, 소유와 참여의 방식까지 바꾸는 ‘시스템 전환’이다. 지금까지의 중앙집중형 발전 시스템은 대규모 설비와 국가 단위의 전력망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시민은 그저 요금을 납부하는 수동적 소비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기술적 특성은 이러한 구조 자체를 바꾸도록 요구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소규모로 분산 설치가 가능하고, 지역 공동체나 시민이 직접 발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는 곧 에너지 생산의 권한이 중앙에서 지역으로, 소수 기업에서 다수 시민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공동체 복원의 핵심 경로가 된다. 지역 기반의 에너지 자립은 단순한 전력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방식과 직결된다.

주민 참여와 이익 공유, 정의로운 전환의 열쇠
이러한 구조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기초가 바로 ‘이익 공유형 에너지 전환’이다. 지역 주민이 발전 사업의 직접 주체가 되거나, 일정 비율의 수익을 배당받는 구조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지와 책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실효적인 방식이다.
예컨대 독일의 에너지협동조합은 1000개 이상이며,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약 절반 이상이 시민, 농민, 중소기업 소유다. 덴마크는 풍력 발전의 약 80%가 시민이 출자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반면 한국은 대규모 민간 자본 주도의 발전 사업이 주를 이루며, 주민과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일부 지자체는 주민 참여형 태양광 사업, 마을단위 RE100 프로젝트, 공공기관 주도형 이익환원 모델 등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더욱 제도화되고, 법적·재정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에너지 전환이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정책’이 아니라 ‘내부에서 형성된 합의’로 기능할 수 있다.
공공투자와 정책금융: 전환의 선제 조건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구조 전환은 민간 자본의 자율적 결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기술적 불확실성과 장기 회수구조, 초기 자본 투입의 부담, 지역 갈등 조정 비용 등을 감안할 때, 강력한 공공투자와 정책금융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에너지전환기금’, ‘녹색전환공사’ 같은 전담 조직과 장기 투자 재원을 조성해야 하며, 지역 단위에서는 ‘전환 파트너십’을 통해 지자체, 주민, 공공기관, 금융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특히 지방정부가 에너지 자립도 제고를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기능하고, 공공이 설계한 투자 구조 위에 민간 혁신이 연계되는 상향식 모델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단기 수익을 좇는 민간 투자만으로는 결코 지역 기반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형성할 수 없다.
일자리와 복지, 그리고 공동체의 재편
기후위기 대응이 진정한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분배와 복지 측면에서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노동자나 지역, 산업군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위한 ‘전환 노동 프로그램’, ‘직업 재교육’, ‘소득 보전’, ‘지역 지원’ 등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공동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며, 참여와 책임, 기여와 보장이 교차하는 현대적 복지 시스템의 기초가 된다.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기술자의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새로운 형태를 구성하는 철학적·제도적 과제다.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기후위기는 과학이 예고했고, 기술은 대응 수단을 제시했지만, 전환의 실행은 결국 정치와 제도, 시민의 집단적 선택에 달려 있다. 에너지 전환은 수치와 기술을 넘어 ‘누가 결정하고, 누가 혜택을 나누며,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산업혁신의 계기이자 공동체 재구성의 기회다. 기술적 전환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정의와 시민 참여, 복지와 분배 구조의 재편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단지 위기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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