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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리포트12 ⑫ 생물다양성 | 『나무수업』에서 배우는 숲의 뿌리 네트워크와 생명망

2025-09-11 김복연 기자

나무수업은 뿌리 네트워크와 생명다양성 같은 과학적 사실에 서사를 입혀 숲을 자원이 아닌 공동체로 이해하게 한다. 한국의 산림 정책은 여전히 소나무 단일림 중심에 머물러 숲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과학이 이야기로 확장되며 새로운 인식을 열어 주듯, 정책도 자원 관리의 틀을 넘어 숲을 '생명망'으로 바라보는 전환이 필요하다.


숲을 다시 읽는 눈, 『나무수업』


과학은 언제나 객관성을 강조하며 수치와 데이터의 언어로 자연을 설명해 왔다. 그 언어는 종종 생명을 사물화하고, 관계망을 잘라내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회적 통념에 매여 잘못된 전제를 반복한 역사도 있다. 그런 점에서 페터 볼레벤의 나무수업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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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일 라인란트팔츠 주 산림청에서 20여 년간 임업 공무원으로 일하며 숲의 현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했다. 이후 휨멜 지역 공공숲 관리자로 활동하며 벌목 중심 정책을 버리고, 자연림 회복과 생태적 균형을 지향하는 관리로 전환했다. 또한 숲 아카데미를 설립해 숲의 생태 원리를 시민과 산림 소유자들에게 알리는 교육 활동을 이어왔다. 이런 현장 경험은 나무수업을 단순한 문학적 서술이 아닌, 과학적 사실과 숲 관리 경험이 결합된 독특한 책으로 만든다.


볼레벤은 나무를 의인화해 설명하지만, 그것은 공상적 수사가 아니라 과학적 발견에 서사를 입힌 방식이다. 그는 나무를 단순한 자원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 그리고 숲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뿌리와 나무가 짜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NATURE WOOD-WIDE WEB. 이미지 BBC SCIENCE
NATURE WOOD-WIDE WEB. 이미지 BBC SCIENCE

나무수업이 보여 주는 숲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뿌리 네트워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는 나무들이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탄소와 질소를 주고받는 사실을 밝혀 냈다. 볼레벤은 이를 “어미 나무가 어린 묘목을 돌보는 행위”로 서술했다. 수치로 설명되던 양분 이동은, 그의 글 속에서 세대를 잇는 돌봄의 이야기로 바뀐다.


나무는 위험을 경보하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아카시아 연구는 기린이 잎을 뜯을 때 나무가 에틸렌 가스를 방출하고, 이웃 나무들이 이를 감지해 방어 태세를 갖춘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볼레벤은 이를 나무들의 “언어”라 부르며, 숲이 고요한 듯 보여도 사실은 끊임없는 대화로 유지되는 사회임을 드러냈다.


혼효림이 주는 다양성과 회복력


숲은 또한 다양성을 통해 회복력을 갖춘다. 독일과 폴란드의 천연림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혼효림이 병해충과 기후 스트레스에 더 강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볼레벤은 이를 “숲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지속된다”는 말로 정리한다. 한국의 산불 피해지에서도 소나무 단일림은 쉽게 무너졌지만, 활엽수가 섞인 혼효림은 더 빠르게 회복했다. 자연은 단일성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통해 살아남는다.


쓰러진 나무조차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는다. 독일 현장 연구에서는 쓰러진 줄기의 뿌리가 주변 나무로부터 탄소를 공급받으며 수십 년을 살아가는 사례가 보고됐다. 나무수업은 이를 통해 죽음조차 관계망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소나무 숭배가 남긴 편향과 위기

유독 산불 피해에 취약한 소나무. 사진 플래닛03
유독 산불 피해에 취약한 소나무. 사진 플래닛0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는 오랫동안 숲을 주로 자원의 관점에서 다뤄 왔다. 한국의 대표적 사례가 소나무 정책이다. 소나무는 한국인의 정서적 상징이자 가장 사랑받은 나무였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심는 수종이 되었다. 국토를 빠르게 푸르게 만들겠다는 산림녹화 정책은 소나무 단일 조림을 대규모로 추진했고, 그 결과 숲의 다양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최근 통계는 소나무 단일림의 취약성이 현실 위협으로 다가왔음을 보여 준다. 2025년 5월 기준 전국 154개 시·군·구에서 약 149만 그루의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되었다. 특히 최근 5년간 감염목 수치는 2021년 약 30만 그루에서, 2023년에는 100만 그루를 훌쩍 넘기고, 2025년에는 148만 그루에 이르렀다.


산불 피해도 반복되고 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연평균 546건의 산불이 발생해 매년 약 4003ha의 산림이 불에 탔다. 단일림은 병해충뿐 아니라 화재에도 취약해, 회복 과정에서 생태적 불균형이 더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당시의 필요와 사회적 요구에서 나온 선택이었고, 일정한 성과도 있었다. 숲을 자원 중심의 관점에만 가둔 이 편향이 오늘날 숲을 취약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숲을 단순한 자원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숲을 생명망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숲은 자원이 아니라 생명망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수잔 시마드 테드 강연

나무수업은 숲의 가치를 다시 묻는다. 숲은 단순한 경관이나 자원의 집합이 아니다. 뿌리 네트워크로 얽힌 관계망이 무너지면, 그 파장은 순차적으로 확산된다. 먼저 숲은 양분과 수분의 순환 능력을 잃고, 나무 개체들은 병해충과 기후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나무가 약해지면 곤충, 조류, 포유류 등 숲을 터전으로 삼는 생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이는 먹이사슬의 붕괴로 이어진다. 숲이 사라지면 토양은 쉽게 침식되고 물을 머금지 못해, 홍수와 가뭄 같은 재난이 잦아진다. 기후 완충 기능도 약화되어 지역의 기온은 더 극단적으로 변한다. 그 결과 농업과 식수, 재해 안전망에 직접 타격이 가해지고, 결국 인간의 삶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나무수업을 추천 도서로 선정했다. 어떤 부서는 숲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귀중한 책으로 인정하는 반면, 또 다른 부서는 그저 자원에 서사를 덧씌운 문학적 서술로 치부한다. 바로 이 간극이야말로 우리가 지구의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숲의 회복력은 단순히 많은 나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양한 종이 각자의 생존 방식을 지켜 내면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데서 비롯된다. 뿌리 깊은 종, 빠르게 자라는 종, 오래 사는 종이 얽혀 만든 복잡한 네트워크가 곧 생물다양성의 형태이며, 이 네트워크가 숲을 산불과 해충으로부터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


숲에 대한 시각은 더 이상 한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분리하지 않고, 숲을 단순한 자원에서 벗어나 생명의 네트워크로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지구의 생명망을 유지하는 핵심은 인간이 아니라 숲이다. 나무수업이 일깨우는 이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숲과 함께 기후위기를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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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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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대한 시각은 더 이상 한쪽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을 분리하지 않고, 숲을 단순한 자원에서 벗어나 생명의 네트워크로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지구의 생명망을 유지하는 핵심은 인간이 아니라 숲이다." 숲을 자원으로만 보기보다는 기후 인프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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