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리포트12 ④ 폭염 (2) | 바다도 폭염, 히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 Theodore
-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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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8월 25일
2025-07-17 최민욱 기자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이 지구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상승하며, 최근 5년간 해양 폭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해양 생태계의 기초 생산성이 감소하고, 아열대 어종의 확산과 기존 어종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어획량은 장기적으로 줄고 있으며, 양식 어류의 대규모 폐사로 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히트플레이션’ 현상도 나타난다. 해양 폭염은 육상의 이상기상까지 유발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통합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반도 바다, 지구 평균의 두 배 속도로 뜨거워진다
한반도 주변 바다는 지구 평균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7년간(1968~2024년) 우리나라 연근해의 표층 수온은 평균 1.58℃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지구 해양 평균 상승폭은 0.74℃였는데, 한반도 해역은 이보다 두 배 이상 크게 올랐다.
특히 동해의 수온 상승이 두드러져 표층 온도가 약 2.04℃ 상승하여 전국 해역 중 가장 높은 상승폭을 보였다. 반면 서해는 1.44℃, 남해는 1.27℃ 올라 동해에 비해 다소 낮지만 여전히 큰 폭의 상승이다. 전문가들은 동해 수온 상승이 심각한 이유로 대마난류(쓰시마 해류) 강화와 해양 성층화 현상을 지목한다. 실제로 2024년 여름(6~8월) 동안 동해로 유입되는 난류 세력이 평년 대비 20%나 강해져 남쪽에서 막대한 열에너지가 동해로 수송되었다. 여기에 연이은 폭염으로 표층과 심층이 섞이지 않는 성층 현상까지 겹치며 동해 표층에 열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해류 변화와 수온 급등은 한반도 연안 해양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최근 5년 새 심화된 해양 폭염 현상
지구온난화의 가속으로 바다에서도 폭염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해양 폭염(해양열파, Marine Heatwave)은 평균기온 대비 현저히 높은 바다 수온이 5일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과거에는 이례적으로 여겨졌던 해양 폭염이 최근 들어 한반도 전 해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최근 5년간 그 빈도와 강도가 크게 증가했다.
기상청 분석에 따르면 2010년대 중반 이후 한반도 주변 해역의 해양 폭염 발생일수가 꾸준히 늘고 있고, 2020년대 들어 그 추세가 뚜렷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육상의 폭염과 궤를 같이하여 바다도 빠르게 데워지고 있다. 폭염이 극심했던 2021~2023년 여름철에는 매년 10여 일 이상 해양 폭염 수준의 고수온이 관측되었으며, 2024년에는 사상 유례없는 폭염으로 해양 폭염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2024년 한반도 여름은 기록적인 더위로 악명 높았는데, 그 해 7~9월에는 평년보다 늦은 9월 하순까지 고수온 현상이 이어졌다.
그 결과 양식 어류 집단 폐사와 같은 피해가 속출했다. 2024년 한 해에만 약 1430억 원 규모의 양식생물 폐사가 발생하여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최대 피해액을 기록했다. 폭염이 바다까지 달구는 ‘해양 기후재난’이 현실화되며, 해양 폭염은 더 이상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위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기상청은 향후 해양 폭염의 일수가 더욱 늘고 강도도 강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대로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세기말에는 1년 중 대부분의 날에 해양 폭염이 발생하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다시 말해 바다가 끓는 만성적 고열 상태로 바뀔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 해양생태계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너지는 바다의 균형, 경보 울린 해양생태계
한반도 연안을 둘러싼 바다의 급격한 온도 상승은 해양생태계에 일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수온 상승으로 바다 생물들은 서식 환경 변화에 직면했고, 먹이사슬의 기초부터 흔들리는 조짐이 뚜렷하다. 해양 식물플랑크톤 양을 나타내는 클로로필-a 농도는 2003년 이후 전반적으로 줄곧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특히 서해와 동해 중부 해역에서 감소가 두드러졌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24년 기준 우리 바다의 기초 생산력(식물플랑크톤 양)이 전년에 비해 21.6%나 감소했다며 해양생태계 생산성 하락을 경고했다. 바다 생태계의 밑단부터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초 먹이인 플랑크톤이 줄어들면 조피류, 어류, 포식자까지 연쇄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실제로 연근해 어종의 분포와 개체수가 변화하고 있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던 명태, 한류성 오징어 등 전통적으로 풍부하던 어종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난류를 타고 올라온 아열대성 어종이 연안에서 심심찮게 목격된다. 예를 들어 남해에서는 열대성 해초와 함께 자리돔·나비고기 같은 아열대 물고기가 출현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급격히 오른 수온을 견디지 못한 연안의 해조류 숲(켈프 숲)도 황폐화되고 있다. 바닷속 “녹색 숲”이 사라져가는 갯녹음 현상은 제주도와 동해안에서 확산 중이다.
연안 해양 생물다양성은 갈수록 빈약해지고 있다. 토착종이 줄어드는 동시에 열대성 해양생물이 북상하는 ‘종 교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올봄 전남 연안에서는 ‘악마가오리’로 불리는 쥐가오리가 그물에 잡혔다. 이 거대한 가오리는 보통 태평양의 따뜻한 바다에 사는 종으로, 한국 서해에서 발견된 것은 1928년 이후 100여 년 만이었다. 전문가들은 해수 온도 상승이 이러한 열대성 종의 확산을 촉발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는 토착종 상실과 생태계 균형 붕괴를 동반한 변화로, ‘바다의 경고’라 불릴 만하다. 과거에는 보기 드물었던 현상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이는 해양 생물다양성의 구조적 위기를 뜻한다.
수산업 위기와 먹거리 ‘히트플레이션’
바다가 끓어오르자 수산업 전반에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수온 상승과 해양 생태계 교란으로 어획량이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1980년대 연간 약 151만 톤에 달했으나, 2020년대 들어 90만 톤 안팎으로 추락했다. 급기야 2024년 84만 톤 수준까지 떨어지며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실감케 했다.
잡히는 물고기가 줄어드니 어민들의 생계도 위협받고, 소비자들도 식탁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름철마다 ‘어업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 즉 폭염으로 인한 수산물 가격 급등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양식업 피해가 커지며 수산물 공급 불안이 심화되었다. 2024년 기록적인 고수온으로 양식 어류가 떼죽음당한 여파로, 이듬해 광어와 우럭 가격이 크게 뛰었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대표 횟감인 광어는 전년 대비 14%, 우럭은 무려 42%나 가격이 올랐다. 양식장 피해로 공급이 줄어든 데다 폭염으로 수요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을 부추긴 것이다.
실제로 2025년 여름에는 예년보다 보름 이상 일찍 고수온 주의보가 발령되어 양식 어가의 불안을 키웠다. 어민들은 하루아침에 수조 가득 떠오른 폐사체들을 건져내며 한숨을 짓고 있다. 한 양식장은 “물고기가 뜨거운 물에 삶아지듯 죽어나갔다”며 참담함을 토로했다. 폭염이 불러온 농·수산물 전반의 물가 상승, 이른바 ‘밥상 물가 폭탄’은 정부도 우려를 표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폭염을 자연재해 차원을 넘어 식량안보의 위협 요인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수산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한 양식 기술 개발, 적정한 어획조절과 새로운 어종 양식 전환 등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이상 고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다와 대기의 연결 고리, 해양 폭염이 부르는 기상이변
뜨거워진 바다는 해양생물과 수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양 폭염은 대기 순환에까지 영향을 미쳐 육상의 이상기상 현상과 연결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따뜻한 해수면은 대기에 막대한 수증기를 공급해 폭우나 태풍의 에너지원이 된다. 또한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높으면 그 위의 대기 불안정을 촉발해 강한 호우나 폭풍을 유발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엘니뇨와 같은 대양 변동 현상은 지구 곳곳의 기후에 파급효과를 미친다. 가령 열대 해상에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한반도의 여름철 기압계 패턴이 변해 폭염과 가뭄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기상청은 해양 폭염이 증가할수록 극한 폭염 등 극단적인 기상 발생 위험도 높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다가 끓으면 하늘도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인 지리적 특성상, 주변 해역의 변화가 곧바로 우리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여름철 동해 표층 온도가 크게 오르면 상승한 해양 증발량이 동풍을 타고 내륙에 유입돼 집중호우를 증폭시킬 소지가 있다. 반대로 겨울에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높으면 해상에서 발생한 수증기가 눈구름을 만들어 폭설을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렇듯 해양과 대기의 경계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결국 해양 폭염은 해양환경의 파괴를 넘어 인간 사회의 기후 재난으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의 일부이다. 바다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폭염, 홍수, 태풍 등 우리의 일상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해양폭염은 해양생물과 수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지구온난화를 증폭한다. 바다와 대기는 상승작용을 하며 서로를 덥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