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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 김현수 교수 | '기후 부정 심리'부터 '생태불안'까지, 기후위기가 초래한 마음 병의 스펙트럼

2025-08-14 최민욱 기자

기후위기는 더 이상 눈앞의 재난 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일상의 평온을 흔들고, 보이지 않는 무력감을 번지게 하는 정신건강의 위기다. 원망할 대상 없는 기후재난은 인간에게 깊은 상실감과 불안을 남긴다. 국제사회는 이미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축으로 정신건강을 포함시켰지만, 한국의 대응은 여전히 재난 이후의 트라우마의 회복에 그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다양한 재난 뒤에 가려진 이 거대한 심리적 파고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현수 교수는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이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에서 이사장으로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을 맡아 피해자와 지역사회의 심리 회복을 지원했고, 중앙심리부검센터장(2015),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2019~) 등을 역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서울 코비드심리지원단 단장을 맡으며 기후·환경 변화와 정신건강의 연관성에 주목했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기후위기와 정신건강’ 세션을 신설해 세 차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최근 저서 『기후상처』를 통해 기후위기가 남기는 심리적 상처를 사회적 의제로 제시하고 있다.

세계는 기후위기 정신건강으로 시선 확대, 한국은 아직 재난 대응에 머물러


2022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 기후위기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폭염, 홍수, 산불과 같은 재난은 즉각적인 피해를 낳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종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권고했고, 이 권고는 기후위기 대응의 필수 과제로서 각국이 공식 합의한 국제적 의제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 여러 국가는 정신건강 대책을 기후정책의 핵심 축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국제 사회의 이러한 움직임과 달리,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재난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 산불과 홍수 같은 재난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속한 심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장기적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 학계에서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기후위기가 초래하고 있는 정신건강 위기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하다.


기후 부정 심리부터 생태불안까지, 기후위기가 초래한 마음의 병의 스펙트럼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신건강 문제는 위기를 부정하는 심리에서 재난이 남긴 트라우마, 그리고 환경 변화로 인한 정서적 반응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한쪽 끝에는 ‘기후 부정 심리’가 있다. 이는 과학적 증거가 충분함에도 위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심리로, 나르시시즘(자기 중심적 사고), 현재 중심적 가치관, 경제·산업적 이해관계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후 상처』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 탐구한 책이다. 폭염·폭우·가뭄·산불 등 극단적 기후 현상이 불안, 우울, 자살 등 심리적 문제를 유발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생태불안’, ‘생태슬픔’, ‘생태죄책감’ 등 새로운 정서적 병리를 조명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회피 반응을 분석하며, 공동체와 정책 차원의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문제 인식을 넘어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며, 정신건강과 생태환경의 회복을 위한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현수·신샘이·이용석 지음,『기후상처-기후위기는 인간의 신체도, 마음도, 삶도 망가뜨린다』, 클라우드나인, 2025년 1월 2일 출간  
『기후 상처』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 탐구한 책이다. 폭염·폭우·가뭄·산불 등 극단적 기후 현상이 불안, 우울, 자살 등 심리적 문제를 유발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생태불안’, ‘생태슬픔’, ‘생태죄책감’ 등 새로운 정서적 병리를 조명한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한 부정·회피 반응을 분석하며, 공동체와 정책 차원의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문제 인식을 넘어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며, 정신건강과 생태환경의 회복을 위한 연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현수·신샘이·이용석 지음,『기후상처-기후위기는 인간의 신체도, 마음도, 삶도 망가뜨린다』, 클라우드나인, 2025년 1월 2일 출간 

또 다른 영역은 대규모 산불, 홍수, 폭염 같은 기후재난이 남긴 장기 정신적 상처다. 기존에 정신질환이 있던 사람들의 증상이 악화하거나, 재난 후 외상 후 스트레스(PTSD)가 나타나고, 재난 전부터 미래 피해를 예상하며 겪는 외상 전 스트레스가 보고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들은 재난 트라우마 연구의 핵심 대상이다.


여기에 더해, 재난 경험 여부와 무관하게 기후변화로 인한 불안·우울·상실감을 포괄하는 ‘지구감정’ 또는 ‘생태감정(Eco-emotion)’이라는 범주가 있다. 이 안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지속적 불안을 뜻하는 ‘생태불안(Eco-anxiety)’, 삶의 터전 상실에서 오는 우울과 불안을 의미하는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등이 포함된다. 폭염이 뇌 기능과 정서 조절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이 정서적 스펙트럼의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원망할 대상 없는 재난이 낳는 깊은 무력감


기후위기로 인한 정신건강 위기는 다른 재난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인재의 경우 원망할 대상이 분명하고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자연재해는 원망할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 재해를 막는 과정이 한 사람이나 한 회사, 한 나라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다르다. 이런 특성은 사람을 깊은 무력감에 빠뜨리고, 허무감과 종말, 말세, 지구 멸망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게 만든다. 종교적 의존을 상대적으로 더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 등 다른 대재난과 구별된다. 자연으로부터 발생하는 거대한 공허와 두려움, 멸망에 대한 공포, 그리고 개선이 어렵다는 무력감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앞으로 닥칠 기후재난이나 기후위기로 인한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긴급 재난 지원은 있지만, 일상의 위기는 놓치고 있어


한국은 산불, 홍수, 태풍과 같은 자연재난이 발생하면 정신건강 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해 피해자 심리 지원을 한다. 최근 몇 년간 대형 산불과 수해 현장에서 이 체계가 작동했고, 피해자들의 불안과 트라우마 완화에 기여했다. 재난 직후 트라우마 센터가 가동되고, 전문 인력이 지역사회와 협력해 단기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이러한 대응은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국한돼 있으며, 폭염·가뭄·해수면 상승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환경 변화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를 포괄하지 못한다. 정부 차원의 기후위기와 정신건강을 연계하는 전략은 아직 초기 단계다. 현재 한국에서 제공되는 기후정신건강 지원은 재난 피해자 심리 지원, 폭염으로 인한 수면·기분 변화 상담, 일부 청소년 기후불안 사례 지원 등 제한된 범위에 머물러 있다. 일상적으로 누적되는 기후위기의 심리적 영향에 대응하는 체계는 마련되지 않았다.


자연·생태 교육 부재가 낳은 둔감한 기후 감수성


한국 사회는 기후위기와 환경 보전에 대한 교육과 실천 모두에서 심각하게 뒤처져 있다. 유치원부터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국가들이 많지만, 한국은 기후위기나 생태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니 이를 지키려는 감수성도 약해진다.


우리나라는 가르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후열대화 과정에서 실천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기후악당’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오명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협의체 60여 개 나라 중 사실상 꼴찌에 해당하는 성과를 냈으며, 우리 사회는 기후변화와 기후위기에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유치원 시기부터 아이들이 숲과 들에서 활동하며 자연을 익숙하게 접하도록 한다.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계절과 날씨 변화 속에서 놀이와 학습을 병행하며 자연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경험은 공포나 위기감을 주지 않고도 환경 보전에 대한 내면적 동기를 형성한다. 한국에도 ‘숲 유치원’이 일부 운영되지만, 교육 시스템 전반에 자리 잡기에는 아직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기후위기 대응에 무책임한 태도를 바꾸려면,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환경 보전의 필요성을 생활 속에서 체험하게 하는 교육이 필수이다. 부모가 쓰레기 줄이기나 자원 재활용 같은 행동을 실천하며 아이들에게 전하는 생활 교육, 학교에서 자연을 직접 경험하고 생태 보전을 배우는 과정이 뿌리내려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기업이 재생에너지 확대, 환경친화적 산업 구조 전환 등 실질 변화를 이끄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교육·생활·정책이 함께 움직일 때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적 기반이 마련된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코로나19 이전, 많은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재난의 형태로만 인식했다. 팬데믹은 인간 사회와 자연 생태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환경 파괴와 서식지 침범이 예측 불가능한 재앙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수백만 명의 사망이라는 현실은 지구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속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다른 종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실천이 인류 생존과 직결됨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기후변화는 생활과 정체성의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국산 명태를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경상도 사과 대신 강원도 사과를 먹으며, 과거에는 재배하지 않던 작물을 길러야 하는 상황이 현실이 됐다. 이는 단순한 산업 변화가 아니라 삶의 기반과 정체성이 변하는 과정이다.


이제는 환경 파괴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시대적 통찰이 필요한 때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변화가 인간의 심리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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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kim
8월 16일

원망할 대상이 없은 재난이 낳은 깊은 무력감...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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