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동물 | '15분 도시',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 Dhandhan Kim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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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8 김복연 기자
이동 시간을 줄이겠다는 15분 도시는 기후 대응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위기는 단지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배제해 왔고, 무엇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해 왔는지를 되묻는 가치의 위기다. 이 도시 모델이 진정한 기후 대응 전략이 되려면, 단순히 이동 시간을 단축하는 효율성을 넘어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노인과 장애인, 인간과 비인간 생명을 도시의 시혜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 도시를 함께 이루는 필수 주체로 포함하고 동물의 이동 경로가 도로 설계의 기본 조건이 되고, 가장 느린 몸의 속도가 도시의 표준 시계가 될 때, 도시는 비로소 기후위기 시대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

세로와 비둘기가 드러낸 ‘깔끔한 도시’의 배제 기술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도시 정책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15분 도시’는 이동 시간을 줄이고, 동네 안에서 삶이 완결되는 도시. 기후위기 대응과 삶의 질 개선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도시 모델이 전제하는 질서와 기준을 따라가다 보면, 도시가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배제의 구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 '얼룩말 세로의 탈출'이다.
15분 도시, 어디에서 시작됐고 무엇을 약속했나

‘15분 도시(15-Minute City)’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도시학자 카를로스 모레노가 2010년대 후반 제시했다. 주거, 일, 교육, 의료, 여가 등 일상에 필요한 기능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 구조를 바꾸고, 이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며, 동네 단위의 삶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 개념은 2020년 파리 시장 선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고,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밀라노, 영국 런던, 호주 멜버른 등 여러 도시로 확산됐다. 이름은 달라도 ‘근린 중심 도시’, ‘저교통 동네’, ‘20분 생활권’ 같은 정책들이 같은 궤적 위에 있다.
한국에서도 부산이 ‘15분 도시 부산 비전’을 공식 선언했고, 서울은 ‘10분 생활권’, 인천은 ‘i분 도시’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정책을 실험 중이다. 기후 대응, 보행권 확대, 지역 생활 인프라 강화라는 명분은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는가

문제는 이 도시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는가다. 15분 도시는 노인과 장애인을 “배려한다”고 말한다. 경사로를 설치하고, 보행 환경을 개선하며, 의료·돌봄 시설을 가깝게 배치한다. 그러나 이 배려는 도시 설계의 출발점이 아니라 사후적 보완에 가깝다.
도시의 기본 리듬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걷는 몸’, ‘혼자 이동 가능한 몸’, ‘방향 감각과 신체 능력이 전제된 몸’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노인과 장애인은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존재로 남고, ‘배려 대상’이라는 이름으로 주변화된다. 도시를 함께 구성하는 주체가 아니라, 도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적응해야 할 존재로 위치 지워진다.
15분이라는 기준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서열
15분 도시는 시간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도시를 재단한다. 이 기준은 효율적이고 명확해 보이지만, 동시에 삶을 줄 세운다. 어떤 사람에게 15분은 충분한 이동 시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거리다. 이 차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설정한 기준의 문제다. 비인간 생명에게 15분 도시는 애초에 계산되지 않은 도시다. 동물의 이동, 서식, 번식은 이 시간표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가 깔끔해질수록, 계산되지 않은 존재들은 밀려난다.
깔끔한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외주화
15분 도시가 ‘쾌적한 생활권’을 만들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은 익숙하다. 불편한 것들을 도시 밖으로 보낸다. 물류 창고, 폐기물 처리 시설, 에너지 인프라, 보호소,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외곽으로 밀려난다. 도시는 깨끗해지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공간과 다른 존재에게 전가될 뿐이다. 이 방식은 새롭지 않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배제의 기술 위에 세워져 왔기 때문이다.
세로가 드러낸 도시의 본모습
얼룩말 세로의 탈출은 우발적인 사건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세로는 위험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도시가 전혀 상정하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도시는 신호를 이해하고, 차선을 따르며, 예측 가능한 속도로 움직이는 신체를 전제로 설계된다. 그 질서에 맞지 않는 몸은 곧 사고가 된다. 세로는 도시의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도시의 규칙 밖에 있던 존재였다.
이 사건은 “동물이 탈출했다”는 뉴스가 아니라, 도시가 어떤 존재를 허용하고 어떤 존재를 배제하는지를 가장 극렬하게 보여 준 사례였다.
비둘기의 낙인, 또 다른 방식의 배제

최근 비둘기가 ‘유해야생동물’로 분류되는 흐름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비둘기는 도시가 만들어 낸 생태적 결과물이다. 먹이는 인간이 제공했고, 서식지는 도시 구조가 제공했다. 그럼에도 비둘기는 혐오와 관리의 대상이 된다. 세로는 감금되었고, 비둘기는 낙인 찍혔다.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도시에서의 배제다.
기후위기는 탄소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기후위기는 단지 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무엇을 배제해 왔고, 무엇을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해 왔는지를 되묻는 가치의 위기다. 도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연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느린 몸과 불편한 존재를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며, 깔끔함과 효율을 기준으로 공간을 재단해온 도시 구조 위에서 기후위기는 증폭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15분 도시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도시 모델이 진정한 기후 대응 전략이 되려면, 단순히 이동 시간을 단축하는 효율성을 넘어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더 빨리, 더 가깝게 사는 도시가 아니라, 어떤 존재까지 도시의 전제로 포함할 것인지를 묻는 도시여야 한다.
공존을 넘어, ‘구성’으로 나아가는 도시
‘공존’이라는 모호한 단어를 넘어 ‘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인과 장애인, 인간과 비인간 생명을 도시의 시혜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 도시를 함께 이루는 필수 주체로 포함하는 일이다. 동물의 이동 경로가 도로 설계의 예외가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되고, 가장 느린 몸의 속도가 도시의 표준 시계가 될 때, 도시는 비로소 기후위기 시대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
얼룩말 세로가 질주했던 그 골목에서 우리는 이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매끄럽고 효율적인 ‘인간만의 요새’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더 많은 생명이 연결된 ‘모두의 서식지’를 구성할 것인가. 15분 도시의 완성은 시계 위에 있지 않다. 그 시계 밖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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