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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동물 | ‘인간의 도시’라는 오래된 오해, 도시는 애초에 인간만의 공간이었던 적이 없다

  • 작성자 사진: Dhandhan Kim
    Dhandhan Kim
  • 00false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 3분 분량

2025-12-16 김복연 기자

도심 속 공원과 산책로에서 포착된 너구리와 길고양이의 모습은 동물 갈등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 윤리를 드러낸다. '공간윤리'는 도시 공간을 누가 점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길고양이는 도시 내부에서 인간의 윤리적 태도를 묻는 존재이고, 너구리는 개발과 서식지 붕괴로 밀려난 결과다. 도시는 애초에 인간만의 공간이었던 적이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상상해 왔다. 이 논란은 공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누구를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경기도에 있는 한 아파트 근처 하천에서 야생 너구리 새끼 5마리가 주민이 들고양이를 위해 준비한 먹이와 물을 차지하며 먹고 있다. 사진 세계일보
경기도에 있는 한 아파트 근처 하천에서 야생 너구리 새끼 5마리가 주민이 들고양이를 위해 준비한 먹이와 물을 차지하며 먹고 있다. 사진 세계일보

너구리와 길고양이가 마주친 자리에서 드러난 공간 윤리의 균열


도심 속 공원과 산책로 인근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앞에서 너구리가 사료를 먹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자 논란이 확산됐다. 일부는 “야생동물을 불러들였다”며 캣맘을 비난했고, 일부는 위생과 안전 문제를 이유로 급식 자체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장면이 진짜 묻는 것은 누가 잘못했는가가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가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도시 공간을 누가 점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즉 공간 윤리의 한계가 있다.


늘 존재해 왔던 동물은 언제부터 ‘문제’가 되었나


길고양이는 한국 도시에서 갑자기 등장한 존재가 아니다. 서울 등 대도시 전반에서 길고양이는 오랜 시간 도시 공간을 공유해 왔다. 서울시는 2013년 약 25만 마리로 추정된 길고양이 개체수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왔으며, 최근 조사에서는 2023년 기준 약 10만 마리 수준이 확인됐다는 자료가 있다. 이는 일정 규모의 도시 생명체가 도시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길고양이는 도시의 공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보호 대상도, 명확한 관리 체계도 없는 채로 묵인되어 왔고, 인간이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문제 동물’로 호명된다. 동물은 생명이 아닌 민원의 대상, 관리 대상이 되며, 이는 도시가 어떤 존재를 공간에 허용할지를 결정해 온 공간 윤리의 기준을 그대로 드러낸다.


너구리는 왜 도시로 내려왔는가

2023 서울 도심지 출몰 야생 너구리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자료 서울연구원
2023 서울 도심지 출몰 야생 너구리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자료 서울연구원

너구리는 본래 산지와 구릉, 습지 주변의 자연 서식지를 중심으로 분포해 온 야생 포유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시 주요 공원, 하천변, 주거지 인근 등에서 너구리 출몰이 잦아지고 있다.


서울에서 너구리 출몰과 구조 사례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면적의 약 32%가 너구리 서식 가능한 지역이며, 전체 25개 자치구 중 16곳에서 너구리가 관찰됐다. 또 소방청·야생동물 구조 통계에서도 2022년 479건이었던 너구리 구조 실적이 2023년 732건, 2024년 1445건으로 불과 2년 만에 거의 3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자료가 확인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도시의 ‘이상 동물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도시 외곽 개발과 산지 서식지 감소가 너구리의 전통적 생존 기반을 축소시키며, 생존을 위해 인간의 음식원과 식수원으로 기능하는 도심 공원으로 향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지점에서 ‘공간 정의’가 중요해진다. 도시 확장은 중립적인 과정이 아니라, 누가 공간을 차지하고 누가 밀려나는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선택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항상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먼저 전가되어 왔다.


길고양이와 너구리가 마주친 장면의 의미


길고양이와 너구리가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장면은 동물 간의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이유로 이 도시 공간에 존재하게 된 두 생명이 한 지점에서 충돌한 결과다. 길고양이는 도시 내부에서 인간의 윤리적 태도를 시험하는 존재다. 도시에서 가장 약한 생명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를 길고양이를 통해 반복해서 마주해 왔지만, 여전히 명확한 관리 체계는 미흡하다.


반면 너구리는 도시 외곽의 서식지 붕괴와 도시 확장이 만들어 낸 공간적 선택압의 결과다. 더 이상 머물 공간이 없는 생명이 도심으로 유입된 이 상황은 공간 배분의 불평등이 실제 생명체의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장면은 곧 인간 중심의 공간 윤리가 만들어 낸 충돌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왜 비난은 늘 개인을 향하는가

종로구가 동물복지 증진과 쾌적한 거리 환경 유지를 위해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한다. 2025년 7월을 기준으로 와룡공원 등 총 45곳에 53개의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했다. 2016년 첫 설치 이후 관련 민원 해소와 생태 균형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확대해 온 결과다. 사진 종로구청
종로구가 동물복지 증진과 쾌적한 거리 환경 유지를 위해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한다. 2025년 7월을 기준으로 와룡공원 등 총 45곳에 53개의 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했다. 2016년 첫 설치 이후 관련 민원 해소와 생태 균형을 고려하여 점진적으로 확대해 온 결과다. 사진 종로구청

논란의 화살은 캣맘과 같은 개인에게 향했지만, 이들은 도시가 제도적으로 마련하지 않은 윤리적 공백을 개인의 책임으로 메운 주체였다. 각종 행정과 시민사회가 길고양이 관리나 교육에 손을 대지 않는 동안, 캣맘들은 도시 공간에서 생명을 돌보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러나 도시 설계와 개발 정책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여전히 던져지지 않는다. 생태적 갈등은 개인의 도덕성 논쟁으로 환원되면서, 문제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반복된다.


도시를 다시 묻는 질문


너구리는 도시로 침입한 존재가 아니다. 도심 속 공원과 산책로는 오래전부터 비인간 생명들이 이동하고 머물던 공간이었다. 다만 인간이 그 사실을 지워왔을 뿐이다. 도시는 단 한 번도 인간만의 공간이었던 적이 없다. 문제는 동물이 도시로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도시를 오직 인간만의 공간으로 상상해 왔다는 데 있다.


너구리의 출몰은 새로운 위협이 아니라, 그 상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신호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이 도시는 여전히 인간만을 위해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함께 살아온 존재들을 도시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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